Mercedes Sosa(메르세데스 소사)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
Mercedes Sosa & Francis Cabrel
Gracias a la Vida / Mercedes Sosa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 Mercedes Sosa & Francis Cabrel
Quien dijo que todo esta perdido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Tanta sangre que se llevo el rio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No sera tan facil ya se que pasa
No sera tan simple como pensaba
Como abrir el pecho, y sacar el alma
Una cuchillada de amor
Luna de los pobres siempre abierta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Como un documento inalterable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Y unire las puntas de un mismo lazo
Y me ire tranquilo, me ire despacio
Y te dare todo, y me daras algo
Algo que me alivie un poco mas
Cuando no haya nadie cerca o lejos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Cuando los satelites no alcancen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Y hablo de paises y de esperanzas
Y hablo por la vida, hablo por la nada
Y hablo de cambiar esta nuestra casa
De cambiarla por cambiar no mas
Quien dijo que todo esta perdido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
내 마음을 바치려 합니다.
누가 모든 것을 잃었다고 말하나요?
여기 나는 나의 마음을 바치러 왔습니다.
저 강은 너무도 많은 피를 가져갔지요.
그래도 여기 나는 나의 마음을 바치러 왔습니다.
쉽지는 않겠지요. 이미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른지를 알고 있거든요.
생각했던 것처럼 그래 쉽지도 않겠죠.
내 가슴을 열어 영혼을 꺼내는 방법은
작은 사랑의 칼로 상처를 내는 것.
가난한 이들의 달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여기 나의 마음을 바치러 왔습니다.
절대로 지울 수 없는 한 장의 서류마냥
여기 당신에게 나의 마음을 바치러 왔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속한 매듭 안에 나도 함께하렵니다.
그리고 조용히 가렵니다. 천천히 가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모든 것을 드리겠습니다.
당신도 나에게 무언가를 주겠지요.
내가 조금이나마 숨쉴 수 있게 해 줄만한 무언가를..
당신의 가까이에도 멀리에도 아무도 없을 때
나는 당신에게 내 심장을 드리러 옵니다.
인공위성도 닿지 않는 그 시간에
나는 당신에게 내 마음을 드리러 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나라들과 희망에 관해 얘기합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생명과 그리고 없음,
아무것도 없음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우리의 집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누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나요?
여기 나는 당신에게 나의 마음을 드리러 왔습니다.
당신에게 나의 심장을 드리러 왔습니다.

1935년 7월 5일 아르헨티나 북서부 전통문화 보호구역 투쿠만에서
태어났으며 아르헨티나 민속음악의 어머니 15살 방송국에서 개최한
아마추어 컨테스트에서 우승하면서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1966년 아르헨티나 코스킨 페스티발에서 우승, 필립스 레코드 계약
“침묵하는 다수의 목소리”라 일컬어지는 Violetta Parra, 그리고 누에바
깐씨온의 선구자 Atahualpa Yupanqui 등, 1960 년대에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통해 저항 음악의 출현을 예고했던 이른바 "nueva cancion”
운동에 크게 영향받았으며 소사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와
폭력에 저항하는 노래로 아르헨티나 민중의 지지를 얻는다.
그러나 이는 곧 군부에겐 반정부적 걸림돌로 규정되고 소사는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며 마침내 1975년에 그녀는 체포되었다.
죽음에 대한 위협들로 인해 그녀는 1979년에 아르헨티나를 떠나며
1979년 망명하여 1982년 까지 존 바에즈, 밥 딜런, 해리 벨라폰테 등과
전쟁의 만행을 고발하는 컨서트 가지며 1982년 2월 군정종식과
더불어 3년간 국외추방을 당했던 소사는 고국으로 돌아온다.
소사는 Atahualpa Yupanqui와 록 가수 Tito Paez 같은 다양한
음악가들과 교류하며 인권을 위한 그녀의 투쟁과 라틴 아메리카의
독자적 정체성 추구는 그녀를 누에바 깐씨온 최고의 해석자라는
반열에 올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