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아비
1998년 1월 3일
아이가 집을 떠나기 허둥지둥 500백원씩 주고 헌옷 가계에서 싸온 낡은 옷 몇 벌을 자크가 고장난. 아이크기 만한 가방의 배가 불쑥 튀어 나도록 아이가 가방을 발로 꾹꾹 밟고 밟아 쑤셔 박으니 자크가 고장난 가방은 아가리를 한일자로 쫙 벌리며 낡은 헌옷이라도 더 넣어 달고 하는 것 같았다. "쾌안니더 아부지요""이래가 가가머 되니더" 하는 아이를 나무라 가방을 거꾸로 뒤집어 흔들어도 아이 발길질에 눌린 옷은 그리 쉽게 나오지 않았다. 손으로 하나하나 꺼내고 낡고 볼품 없는 옷이지만 차곡차곡 개어 가방의 다시 담고 붉은 나이롱 줄로 가방 위 양쪽을 옷이 보이지 않게 무릎으로 조여 묶으니 아가리 벌리고 있던 가방은 그나마 가방모습을 되찾았다. 옷 가방을 문 앞에 내어놓은 아이는 어미의 정이 그리운지 지어미의 두 손으로 부여잡고 "엄마 내가 성남 가서 돈 마이 벌어 오꾸메이" 하며 두 눈에 구슬 같은 눈물을 어미의 가슴에 뚝뚝 떨구다가 아비인 내 품에 안기어 소리내어 울어도 아비인 나는 차마 어린 아들과 함께 목놓아 울지 못하는 비정한 아비다. 그렇게 한동안을 아비의 품에서 울던 아이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니 그 제서야 아이는 울던 울음을 멈추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고. 울어서 얼룩진 얼굴을 대충 씻고. 운동화 뒤꿈치에 손을 번갈아 넣고 운동화를 신고. 발끝을 바닥에 서너 번 툭툭 차고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신발 신은 체로 방으로 뛰어 들어가 지어미를 부둥켜안고 대성 통곡을 한다, 저 어린것이 얼마나 어미 품이 떨어지기 싫어서 그럴까 싶어. 고개를 쳐들고 입술로 타 들어가는 눈물을 아이가 볼까봐 소리 죽여 꿀꺽 꿀꺽 삼키고. 흐르는 눈물을 제 빨리 손바닥으로 닦고 방에 들어가 "차시간이 다 되 떼이" 하고 아이를 어미 품에서 떼어 내니 아니는 더욱더 서럽게 어미를 부등켜안고 어깨를 강하게 들썩인다. "느그 엄마 절대로 죽지 않는다"며 아이 등을 두 두려 억지로 지어미의 품에서 떼어내어. 하루에 너 댓번 다니는 버스를 아이가 가져갈 아이 몸집 만한 가방을 앞세워 타고 시외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아이가 과자 부스러기 사러간 사이에 차표 자동판매기에 돈을 넣었다. 아비를 잘못 만나 열 네살 아직은 어미 품속에서 보살핌 받으며 어리광 피워야 할 저 어린 핏기도 체 마르지 않은 아이를 못난 아비대신 돈 벌러 다시 돌려보내야 하는 내 자신이 서러워 차표 자동판매기에 기대어 흐르는 눈물로 발등을 찍으니 발등 찍은 눈물의 아픔은 내 배꼽을 치고 올라 와 내 명치끝을 꽉 눌러 나의 숨통을 조여와 갑자기 쉬던 숨을 멈추게 하더니. 무릎을 사정없이 꺾어 그 자리에 폭 싹 주저 앉혀다. 나는 한동안 숨도 쉬지 못하고 내 목을 움켜잡고 입 속에서 터져 나오는 컥컥 소리만 질렀다. 아이가 "아빠" 하고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어 정신을 차려 일어서 아이를 쳐다보니. 아이는 집에서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토끼모양 깡충깡충 뛰듯이 아비인 내게 다가와 껌을 하나를 불쑥 내밀어 내게 건넨다. 나는 껌을 고개 돌려 받고. 생질이 입던 녹색 오리 털 잠바를 큰누이가 생질 놈 몰래 내게 주었다고. 자식한데 꾸지람까지 들으며 내게 준 단벌 외출복 잠바에 반들반들 얼룩 때가 묻어. 검은색이나 다름없는 입고 있던 팔 등으로 눈물을 급히 닦고.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비비고 가방을 아이에게 건 내 주려는데 개찰구의 서 있는 검표 원은 "성남 가실 분 없어요"하는 외침에 아이는 "아빠 갈께요" 하며 뛰어가려는 아이를 붙잡아 만 원짜리 석 장을 아이의 손의 쥐어 주니 아이는 나" 이 만원 있니더"하며 한사코 받지 안으려 하였다. 아비가 돈이 없다는 것을 아이도 알고 있기
때문 이 아닌가 싶어 어린 자식을 돈벌러 보내야 하는 아비의 마음을 아는 것 같아 마음 이 아프게 저려왔다. 한사코 받지 않으려는 아이의 웃옷 주머니에 3만원을 찔러 주며 "성남 가거든 막내고모 집에도 자주 가고 열심히 해라"라는 나의 당부의 말을 들은 아이는
"예 걱정하지 마소"하며 밝은 목소리 머리를 긁적이며 힘차게 대답하여 주었다. 개찰구 쪽으로 급히 몸을 돌리는 아이를 돌려세워 내 품에 꼭 안고 천륜의 정을 잠깐 이나마 나누었다. 아이는 아비에 섭섭함도 모르는지 얼굴에 환한 미소를 퍼 널며 개찰구를 썰물처럼 야속하게 빠져나갔다. 아이가 6개월을 가출하면서 내 속을 무던히도 태우며. 이 아비를 절망으로 몰아가. 아내를 부등켜안고 농약을 부어놓고 아내에게 먼저 먹이고 나 또한 스스로 목숨까지 끊으려니 아내는 농약의 냄새 때문인지 한사코 농약을 먹지 않으려는 아내의 입에 강제로 가져가니 아내는 손 휘저으며 농약을 뿌리 쳤다. 몇 날 몇 일을 굶으며 세수도 하지 않아 6.25 때 고아 거지의 모습으로 새우처럼 몸을 오그리며 잠을 자던 긴 나무의자가 내 시선을 한동안 묶으며 얼마전의 처절했던 악몽을 떠올렸다. 막노동 일을 다니면서. 동이 트기 전의 잠든 길을 이르켜 글썽이는 오토바이 한줄기 빛을 앞세우고 아이를 찾으려고 시내 아이가 자고 있을 만한 구석구석 돌고. 일을 마치면 경주시내 피시 방과 오락실을 이 잡듯이 뒤져. 타일러 굶주린 아이에게 밥 싸 먹이고 목욕을 함께 하며 집에 데려다 놓기를 7-8번을 반복하여도. 아이는 야속하게도.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의자에서 또 거지의 몰골로 새우잠을 잤었다. 새우잠을 자는 아이를 깨워 아이 손을 밧줄로 묶고 아이 신발을 벗겨 오토바이에 싣고 내남 사거리까지 아이가 넘어져도 오토바이로 아이를 개처럼 질질 끌고 오던 비정한 아비 였다. 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의 만류로 오토바이를 세워 아이의 발을 보니 아이의 발바닥을 하나도 남김없이 닳아 벗겨져 붉을 혈로 피범벅 되어 있었다. 발바닥이 피 범이 된 아이를 태우고 오릉을 지나 고속도로 사거리에서 신고를 받고 쫓아온 경찰 차를 타고 황남 파출소에 가서 조사를 받고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한성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니 파출소에서처럼 입과 코를 막으며 근성으로 치료를 받고 거금을 3만원을 지불하고 나니 지갑이 말라 버렸다. 치료받은 아이를 업고 2키로도 넘는 황남 파출소를 돌아오다. 택시 운전하는 얘들 큰외삼촌을 만나 태워달라니 바쁘다며 냉정히 우리 부자를 버려 두고 가버려 다시 아이를 들쳐업고
황남 파출소에 가서 이상한 글을 쓰고 주민등록을 맡겨놓고 아이를 집에 데려다 놓아도
아이는 발도 다 낳지 않고 아비가 한달 이나 벌어다 놓은 생활비와 지갑까지 들고 방황을 다시 하였다. 같은 또래아이와 남의 집에 들어가 저금통까지 훔쳐내남 파출소 경찰 차로 집으로 겨우 돌아왔다. 돼지 저금통 훔친 집에 찾아가 아이를 옆에 함께 꿇어앉히고 아비가 잘못 가르켜 다며 손이 발 이 되도록 머리를 조아리며 몇 시간이나 빌고서야 아이는 평정 한 마음을 찾아 섰다. 내 가슴을 그렇게 아프게 했던 딱딱한 나무의자에서 기억조차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나무의자에 시선을 단단히 박아놓고. 대합실을 빠져 나와 푸른 신호등이 켜진 수십 미터는 족히 넘을 길을 건너 아이가 타고 갈 버스를 기다리니. 아이가 버스 안에서 아비인 나를 먼저 발견하고 손을 흔들기에 나도 고개를 쭉 내밀고 손을 흔드는데. 멈춰 설 것 같은 버스는 적색 신호임에도 불구하고 매정하게 내 아이와 승객 두어 사람을 태운 채 야속하게 손살같이 내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나는 신호가 몇 번이나 바뀌도록 아이가 타고 간 길을 한참이나 멍하니 서서 바라보다가 담배 하나 피워 물고 피 비린내나는 내 삶이 너무나 버거워 가파른 형상 강 시멘트 뚝 에 앉아 김유신 장군의 무덤을 바라보며 목을 놓고 대성 통곡을 하며 잘못 살아온 내 인생을 탄식하였다. 얼마나 울었을까 정신 없이 울고 있는데 길가는 노인이 "젊은 사람이 벌건 대낮에 와 그래 우노" 한마디 던지시며 지나 가셨다. 나는 흘리던 눈물을 두 손으로 세수하듯이 문지르고. 도도히 흘러가는 형상 강 애 기 청수 깊은 물 쪽으로 내 여린 마음을 떠내려보내고 양복점 친구 집으로 발걸음을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