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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의 에이에서 엔젤까지.

역사 |2009.06.14 15:23
조회 825 |추천 0
간통의 A에서 엔젤의 A로...


글 목차

- Intro
- Shangri-La : Lost Horizon
- 존재는 글자다 (L'etre est les lettres)
- 간통(Adultery)의 A에서 천사(Angel)의 A로
- 찢긴 자아들의 화두
- Outro



- Intro


옆집 개가 허구한 날 짖어댄다고 해서,
옆집에 매일 밤 도둑이 들었다는 의미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개소리에 침묵한다고 해서,
그게 곧 '할 말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늘 하는 대로, 문어적으로,
또 거기에 더해 박자(비트)를 살려 표현하자면 ;

'침묵은 언어의 결핍(缺乏, lack)이 아니다.'



- Shangri-La : Lost Horizon


"불가능하기 때문에 확실하다."

크게 재미있지도, 아주 감동적이지도 않지만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한 번은 읽어볼만한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 (Lost Horizon)>에서,
이 문장(p.31)으로 샹그릴라(Shangri-La)는 존재하게 되고,
콘웨이의 실제적 진실이 얘기된다.


소설 속 '샹그릴라'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샹그'는 흰 달빛, '릴라'는 태양을 의미하며,
중띠엔(中甸)의 古城인 日月城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고,
그리하여 2001년 12월 17일,
윈난 성(雲南省)의 중띠엔(中甸)이 공식적으로 샹그릴라(香格里拉)로 지명이 바뀌었다.

한편, 티베트 불교 경전에 나오는 샹바라(香巴拉)를 의미하는 방언이라는 설명도 있다.
샹바라(香巴拉)는 피안(彼岸)세계, 이상향 등을 뜻한다.

그러나, 티베트 언어학자들은 샹그릴라의 뜻을 이렇게 풀이한다.
샹(香)은 마음, 그(格)는 속, 릴(里)는 태양, 라(拉)은 달로서,
"마음 속의 해와 달" 이라는 것이다.


소설에서 티베트와 히말라야의 접경에 있는 이 "마음 속의 해와 달" 샹그릴라는
최첨단의 문명과 수천 년의 전통이 이상적으로 조화된 사회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평균 나이가 200살이다.
100살 먹은 사람은 아기 취급 받는다. ㅡ.ㅡ;



- 존재는 글자다 (L'etre est les lettres)


성취 위주의 서구적 관점으로 보면
나태하고 부도덕할 수도 있는 샹그릴라에서의 삶을 거부하고,
투쟁적인 삶으로 나오려는 멜리슨과의 대화 중에
예견되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2차 대전이 1939년에 일어났으니, 그 예상(?)이 빗나간 것은 아니다.

참고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은 1933년 발표되었고,
1937년 미국 컬럼비아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믿음'에 대한 대화 내용이 있다 :

"실제의 증거 없이 무언가를 믿을 때에는 자신의 마음이 제일 끌리는 것을 믿고 싶은 것"
- p.272.


이처럼 인간은 객관적이지 못하고 주관적이기 마련인데,
이와 관련하여 독일 출신의 미국인 언어학자 사피어의 언급이 있다 :

"인간은 객관적 세계에서만 사는 것도 아니고,
보통 이해하는 것처럼 사회 활동의 세계 속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표현 수단이 되는 특정한 언어에서도 상당히 영향을 받는다.
......
현실 세계는 상당한 정도로 그 개인과 집단의 언어습관의 기반 위에 형성이 된다"

- 에드워드 사피어, <언어>, 1929, p.207.


언어가 사고를 담는 그릇이라는 사피어나 워프의 가설은
이론의 여지가 없지 않으나,
언어와 사고가 서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라캉은
자아나 주체도, 그리고 심지어 무의식까지도,
글자(언어)를 통해 규정된다고 주장했다.

한 때 다들 인용하기 좋아했고, 지금도 뽀대(?)나는 인용에서 간혹 보이는,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쉽지않은 라캉은 말한다 :

'존재는 글자다 (L'etre est les lettres)'.



- 간통(Adultery)의 A에서 천사(Angel)의 A로


헤스터와 딤즈데일 목사가 숲속에서 사랑의 도피를 계획하면서,
adultery 의 첫 글자인 주홍글씨 A를 옷섶에서 떼어버린다.

그러자 어린 딸은 묘하게도 자신의 어머니를 거부한다.
어쩔 수 없이 헤스터는 다시 A를 주워 가슴에 달면서 딸을 달랜다 :

"이제는 냇물을 건너 엄마에게 올 수 있겠지?
내가 다시 슬프고 죄 많은 존재가 되었으니까..."

그러자 어린 딸은 헤스터의 품에 안기면서,

"이젠 나의 엄마야. 그리고 나도 엄마의 어린 딸"

이라고 대답한다.


이 장면은 한갓 글자에 불과한 A가 헤스터의 존재를 규정하고,
또 심지어 위협씩이나 하고 있음을 잘 드러낸다.

이 장면에서 헤스터의 <원래의 존재와 모습>은 중요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정리하자면,

존재가 글자에 의해서,
주체가 언어에 의해서,
본질이 표현에 의해서,
그리고
뜻이 기호에 의해서
형성되고,
심지어 조작된다는 점을 일깨우는 장면이다.


헤스터의 A가 간통(Adultery)의 A에서 천사(Angel)의 A로 변해가는 것이나,
닥터 지킬과 미스터 하이드를 하나로 묶는 것이나,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싸돌아다닌 범인이 집에서는 자상한 아빠라거나,
요부(妖婦)와 현처(賢妻)를 한 몸에 담으려 하는 데에는
크게 힘든 상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찢긴 자아들의 화두


책 속에 검을 숨기고,
애(愛) 밑에 증(憎)이 돋고,
지킬 박사가 하이드 씨로 변하고,
유태인 살인마 히믈러(Himmeler)가 그의 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자상한 아빠였고,
그리고 '보통 사람'이 보통 이상의 수완을 발휘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늘 확인시켜주는 일상의 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삶이 이중성을 넘어 복잡기묘하다는 것이며,
심지어 보기에 따라서는 도무지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황에 따라 시시때때로
서로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미안>의 속삭임처럼,
모두가 신이면서 악마이고,
낮과 밤의 세계를 모두 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아프락사스의 자손인 것이다.

물론, 누구나 스스로의 마음 속에 '찢긴 자아'를 담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찢긴 자아의 양면성, 다면성을 속속들이 파헤친 학문이
바로 심리학이다.
그런데 그 양면성과 다면성에 있어
사물이 아닌 사람은 저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유독 그 정도가 심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심리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하지만 타인의 삶은
열어야 할 자물쇠도, 그리고
풀어야 할 문제도 아니다.

닭이 홰를 치지 않아도 태양은 떠오르는 것처럼
오히려 삶이, 그리고 자아가 그 수없는 짖음과 찢김에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가 스스로의 상처를 찡그림 없이 대면하고 살아갈 수 있는
깊이와 역사를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나는 배우고 익히고 다시 확인할 뿐이다.


선승이 아니어도
누구든 한두 개의 화두를 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

자신의 삶을 구속하는 화두,
자신의 삶에 성숙과 해방의 경지를 안겨주는 화두,
미우나 고우나 함께 뒹굴어야 하는 화두,
한 때의 창녀처럼 저만치 기억의 뒤편에서 뒹굴고 있는 화두들...



- Outro


어리석음과 위험의 사이에 그어진 선을 밟은 채
무모하고 치기어린 도발을 계속하려는 당신!

당신의 존재는 지금 이 순간
어떤 화두,
어떤 찢김,
어떤 글자와 싸우고 있는가?


걸어야 할 길은,
텅 빈 길일 뿐......


그러나 기억하라,

글자는 결코 예정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데리다의 말이다.

그리고,
끓는 물 위에서 오래 떠다니는 얼음을 기대하고
굳이 시험해보려는 생각은 금물이다.
차가운 얼음은 그 순간 바로 끓게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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