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직장을 다니며 밤에는 식당에서 서빙과 설겆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24살 아가씨 입니다..
요 몇년새 많은 일이 있었고 지금 그 여파로 너무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너무 답답해서 여기서라도 하소연 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제 글 읽구 용기를 주세요~~
저는 아빠 엄마 그리고 저 이렇게 세식구 화목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살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제가 4학년때 부터 아프기 시작해서 확실히 병명은 뭐라 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귀신 씌었다고 해야하나요?? 그래서 귀신때는 굿도 두세번하고 정신병원에도 들어갔다오구... 그 이후론 말도없고 방에만 처박혀 집안일도 하지 않고 매일 누워만 계십니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더 이를깨물고 근검절약하시고 악착같이 돈을모아서 빈손으로 시작해 5억이라는 돈을 모으셨고 돈을 모으시기위해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그냥 집밖에 모르시고 헬쓰한번 다니고 싶으셔도 자신에게는 그돈이 아까워 헬쓰장 한번 못가시고 옷하나 제대로 사입지 못하셨습니다.
아빠는 엄마에겐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하셔도 (아빠는 성격이 마니 급하시고 불같으시고 자기말은 뭐든 들어야 하는 그런분이셨습니다) 저에게만은 소리 한번지르시지않고 용돈도 제또래 친구들보다 두둑히 주셨고 제가 하고싶은건 뭐든지 하게 해주셨습니다. 물론 사치를 싫어 하시기 때문에 옷과 신발 가방같은것은 못사게 하셨구요...
다른부모님도 그러하시겠지만 (공부한다면 돈 팍팍 주시겠지만)
저는 친구들보다 책값도 많이 받았고 야자비며 자율학습비도 아빠에게 많이 받아 썼습니다 (한마디로 띵가뽕!!) ^^
대학교 들어가서도 별 부러움없이 1학년땐 술먹고 놀러다니는것으로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체 철부지로 살아 왔는데 제가 2학년되던 2000년 8월 아빠가 증권을 하시다 평생 그렇게 모으신 돈을 반정도 날리 셨습니다. 아빠는 차도 엘란트라를 타고 다니셨고 저희집은 전세집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빠는 그돈을 한순간에 잃으신것에 더욱 큰 충격을 받으셨나 봅니다.
아빠는 안정을 찾지못하시고 여러날 힘들어 하시더니 한날 저를 앉혀 놓으시고 "아빠 죽으면 어떻게 살지 생각해봤냐"며 물으시곤 통장과 비밀번호를 다 적어주셨습니다.
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아빤 뭔가 이상했던가 봅니다)
그리고는 돈잃은 충격외 여러가지 일들로 신경을쓰시다 아빤 쓰러지셨습니다. 아빠는 계속 구토하시고 머리가 어지러우시다며 눈물까지 흘리셨습니다.
제 앞에선 항상 강한 분이셨기에 그런모습은 첨 봤습니다.
저는 아빠가 여태껏 병원에 한번 가보신적 없으시고 건강하셨기에 큰병이 아닌줄 알았고
제가 119를 불러 타고 해운대 성심병원에 갔더니 꾀병이라며 자고나면 괜찮을거라고 응급실에서 계속 수면제를 놓고 잠을 재웠습니다.
그 다음날 아버지가 깨어나지 않자 그 병원에서 다른병원으로 옮겨야 겠다며 부산대학병원으로 옮겨 줬습니다 47살 나이에 뇌경색이라는 병으로 쓰러지셔서 식물인간 상태가 되셨습니다.
병원에서는 일주일안에 돌아가신다고 장례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돈이 뭐라고 그것아득바득모아서 한번 써보지 못하고 가시는 아빠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암튼 장례를 준비해야 하기에 저는 친척들에게 연락 드렸고 울산에 계시는 친척분들은 다 내려 오셔서 장례를 치르려고 맘에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돈이야기가 나와
(아 참고로 아빠형제는 큰아빠, 아빠, 고모, 작은아빠 이렇게 사형제 이시고 평소에 형제사이에 우예가 좋지않아 아빤 고모랑만 왕례를 하셨고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윤 큰엄마와 고모가 서로 험담을 하며 형제들 사이를 이간질 시켰기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았고 거의 왕래가 없었으며 저는 고모 이야기만 듣고 큰아빠와 작은아빠는 이상한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위와 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는 돈이야기를 고모에게 먼저 하였고 아빠가 남겨주신돈중 일부는 비상금으로 들고 있어야 겠기에 젤 친하다고 생각하는 고모에게 의논을 드렸습니다.
첨엔 고모는 작은아빠 돈가지고 거짓말 할 사람 아니니 믿고 통장을 맡기라고 하시더니 몇시간후 전화가 와서는 사람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들고 있자며 작은아빠께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해서 아빠남은 재산중 일부는 작은아빠께 맡기고 일부인 8000만원이 든 통장은 고모랑 같이 은행에가서 찾아 바로 고모의 빽속으로 들어갔습니다.(그러니 8000만원은 고모와 저 이외에는 다른사람은 모르는 돈이었습니다)
그리곤 아빠 장례식을 치뤄야 했기에 형제들이 모두 있는 울산으로 병원을 옮겨 장례준비를 했습니다
병원에선 일주일을 넘기기 어렵다고 하더니 아빠는 제걱정때문이었는지 엄마걱정때문이었는지 눈을 감지 못하셨고,
저는 아빠가 돌아가지 않으시고 계속 누워 계시니 집을 부산에서 울산으로 이사 해야 했습니다.
작은 아빠는
1.제가 고모랑 젤 친하고
2.엄마와 고모도 고등학교 친구 사이셔서
3.그리구 고모도 남편없이 딸과 둘이 살고 있었고 ,
4.또 고모는 아빠가 쓰러지고 나서 아빠에게 돈빌려준게 있다며 그돈 1600만원을 받아야 한다며 삼촌에게 거짓말하고 (실은 아빠가 5000만원 고모에게 빌려줬는데 그돈의 일부를 쪼금식 갚은 것이었습니다) 돈을 온라인 시켜준 통장을 보여주며 그돈 꼭 받아야 한다면서 말을 수시로 했기에
고모에게 고모집도 안좋고 그러니 저와 곁에 살수 있는집으로 골라 집2개를 전세로 3000만원씩 두개 얻으라고 하였습니다.
고모는 그돈으론 전세 얻기 힘들다며 작은아빠에게 돈을 더 달라고 말하였고 작은아빠는 500만원을 더 얹혀 주었으며 결국 고몬 작은아빠에게 3500만원을 받고 고모가관리하는 내돈에서 1500만원을 빼서 5000만원짜리 전세를 얻어 옛날에는 꿈도못꾸는 32평짜리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곤 이사가도 가구가 없다며 제 앞에서 엄살 피우셔서 제가 가구좀사라고 말을했고 고모는 하나부터 열까지 농부터 식탁 티비 쇼파 침대 김치냉장고며 등등 모두 바꿔 들고 있는돈중 1000만원을 또 썼습니다.
저는 24평 4000만원짜리 아파트에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고모는 옆에사는 우리집에 몇번 와보지도 않으셨고,,, 암튼 억울한 세월을 살던중에 아빠가 1년 반동안 병석에 누워계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작은아빠는 맡아 보관해주신돈을 병원비며 제 생활비로 다 주셨고 아빠돈은 남은게 없었습니다.
장례치룰때도 제가 고모에게 아빠 장례비가 없는데 들고있는돈을 좀 내놓자고 하니 작은 아빠가 알아서 할거니까 가만히 있으라며 말도 못꺼내게 하셨습니다.
2001년 3월 그렇게 아빠 돌아가시고 저희아빤 납골당 할 돈도 없어 화장해서 산속에 뿌려졌습니다.
그후 고모는 병원비 계산이 들된게 있다며 작은아빠가 병원비를 덜 보내 주셨다며 작은아빠가 보내주는 생활비를 100만원씩 6개월동안 600만원 들고 가셨고 저는 그동안 카드로 생활하며 카드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아빠돌아가신지 2년이 넘은 지금도 병원에서 아직 병원비가 계산이 들됬다고하여 제가 남은 100만원을 한달에 십만원씩 갚고 있습니다.
그후 저는 고모 가게인 오락실에서 돈을받지않고 몇개월 일한적도 있고, 고모는 작은아빠에게 고모가게에서 일하는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 잠시 방황하던 저는 고모딸과 매일 술마시고 유흥을 즐겼고 (카드로) 그리구 고모딸은 카드값을 돌려막지 못해 저에게 1100만원을 카드를 빼서 들고 갔고...
고모는 또 오락실을 그만두고 새로 식당을 차려 저보고 일하라고 하여 자기 딸은 일을 시키지도 않고 저는 하루 12시간 넘게 일을 한적도 있고 새벽 4시에나가 저녁 7-8시에 들어오며 일을 했습니다
월급도 2-3만원씩 찔끔찔끔 나눠서 주었고 그만둔다고 이야기해도 씨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9달동안 이야기를 해도 눈하나 까딱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모는 그와중에도 대출내어 저희아빠 돈을 합쳐 자기 집 장만을 했고
저는 담보 잡혀있는집을 구해주어 600만원 손해보고 쫓겨 나야했고
그후 옥탑방에서 살았습니다.
아빠차도 자기가 가지고가서는 다른사람 줘버렸습니다.
고모는 그리고 아파서 수술해야 되는데 의료보험료가 밀려따며 200만원을 쓰시고
아빠첨에 쓰러졌을때 가게 문 몇일 닫아서 가게 손님이 떨어졌네, 돈이 빵구가 났네 어쩌며 하시며 또 200만원정도를 써버리셨습니다.
그렇게 살던중 2003년 여름 고모딸과 싸워 (고모딸이 술먹고 저희아빠보고 "개같은 너희아빠" 라는 소리를 하더군요) 돈한푼 없이 고모가게에서 나와 친구들에게 돈을빌리고 직장을 구해 엄마랑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고모는 제가 돈 한푼없고 고모딸이랑 싸워서 힘들거라는걸 알면서도 저희집 한번 찾아오지 않으셧습니다.
저는 하는수없이 작은 아빠와 큰아빠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후에도 큰집과는 왕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소식을들은 큰엄마는
어떻게 고모가 그럴수 있냐며 고소를 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고모와 큰엄마는 사이가 좋지않기에 고소하도록 도와주는게 쉬우셨던것 같습니다
저는 일단 고모에게 돈 내놓으라고 이야기를 하였고
고모는 막무가네로 배째라며 나를보면 눈을 쑤셔버리겠다는둥 엉뚱한소리를해서
그러면 고소할거라고 이야기하니 할테면 하라는 식으로 막가자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시는 고모라고 부르지 말라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고소를 하게 되었고 그후에도 고모는 집도 내놓지 않고 우리아빠돈으로 하는 가게 전세금도 월세로 다까먹었다며 전세금 걸린게 없다고 하였습니다.
고모는 민사로만 생각했나봅니다. 고모는 사기죄에 횡령죄까지 있어서 형사건이었는데 그걸 몰랐나 봅니다.
고모가 조사받는 과정에서 견디기가 힘들었는지 자살한다며 유서를 써놓고 도망갔다가
경찰에게 잡혀서 결국 구치소로 넘어갔습니다.
고모가 구치소에 있는동안에도 집도 팔생각도 하지 않고 나가서 돈을 해주겠다며 합의금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고모가 구치소에 들어간지 3달쯤 되던때 법원에서 증인으로 나오라고 해서 나갔습니다
죄수복 입고 있는 고모를 보니 마음이 안됐어서 처벌할 마음이 없다고 하고 울며 재판장을 나왔습니다.
고모는 석방 되었구요
그런데 고모는 전화한통 없습니다
마음이 씁슬합니다.
지금저는 마지막 남은 재산인 전세금 4000만원을 가지고 큰집 밑으로 들어왔습니다.
전세금을 걸었는데 전세계약서를 써주질 않네요..
첨에 고모와 고소문제가 있을때만해도 저에게 잘해주고 시장도 봐다주며 엄마를 챙기는 큰엄마가 고마웠습니다. 근데 이집에 들어오게 한후 계약서도 써주질 않고 윗집 아랫집에 살면서도 한번 들여다 봐주시질 않네요
마지막 남은 전세금은 이번엔 큰집에서 꿀꺽할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왜 다 그런걸까요...
조카인저에게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 자기자식이 저처럼 살면 어떨건지 생각은 안해보는걸까요??
이제까지 일을생각하면 제가 당한것도 있지만 우리아빠가 친구도모르고 자기도모르고 술도 돈아까워서 안먹으며 모은돈이 아니 그러며 산 인생이 너무 가슴아파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우리아빠도 외로울때가 있었을텐데 그때는 어떻게 살았나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아빠가 여자를 만나보고 싶어도 돈이아까워서 못하겠다고 하던 말이 생각나네요
우리아빠 그러면서 살았는데... 엄마랑은 정도 없고 엄마가 아프니 부부생활도 안하고 그렇게 살았는데... ㅠㅠ
다 죽여버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픈 엄마가 있으니 열씸히 살아야 겠죠
인제는 카드빚 4000만원 않은채 엄마랑 열씨미 살아볼렵니다.
글을쓰면서도 눈물이 자꾸 나려고 하는게.... 너무 힘듬니다..
지금은 직장다니고 저녁에는 아르바이트하며 삽니다.
설겆이하며 트고 찢어진 손을보면 너무 서럽습니다.
떡볶이 먹고싶어도 1-2백원으로 바둥거리는,
찜질방가고싶어도 목욕비로 아둥바둥하는 제모습도 너무 싫습지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는 요새 경기가 안좋아서 그런지 월급보다 더ㄴ많은 돈이밀려있어 그만두지도 못한채 일하고 있습니다.
에휴~
돈도벌어야하고 집안일 시장도봐야하고 살기가 힘듭니다
엄마생각하면 어깨가 무겁습니다
친척들은 아무 소식도 없고 세상은 혼자입니다
아무데도 믿을 곳이 없어 마음의 갈피를 잡질 못하겠습니다
의지하고 싶고 기대고 싶은데 그럴수 없네요..
친구들에게 말해도 그때뿐입니다.
다들 살기 바쁘고 자기일 하기 바쁘니 말입니다
제 친구들은 대학원에도 들어가고 아직 공부하고 있는친구들도 많은데 부럽습니다.
저도 아빠가 있으면 공부 할수 있을텐데 말이예요 나이가드니 이래저래 하나씩 세상에 대해 알게 되는게 느네요~~
이러면서 살아가는건가 봅니다
어디 믿을사람 없나요~~
제가 글솜씨가 없어서 왔다갔다 횡설수설 했는데요 그래도 잘 이해하시구 격려해주세요
지금 마음이 계속 혼란해서 마음잡기가 힘드네요~~
제 이야기읽고 여러분도 힘내시구요~~ 나보다 힘든사람도 있네 하시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