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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비록 어리지만...한 번쯤 되돌아 봅니다...

젊은이 |2009.07.27 13:02
조회 395 |추천 1

 

필자의 올해 나이 스무살...생일도 지나가서 깔끔하게 스무살...^*^

 

필자는 정말 바보같이 살았다는걸

 

다시끔 되짚어 보는 글을 적어 보는게

 

일상이 되어 버린걸까요...^^;;

 

필자는 오늘 지금 껏 살면서 후회되는 것과

 

정말 아쉬운 것들이 몇가지가 있습니다.

 

오늘은 가족얘기,그중에서도

 

조부모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자 합니다.

 

필자는 양가에 조부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태어난지 2살이 되던 해에

 

어린 나이에 화병으로 인하여 돌아가셨고

 

할머니께서는 13살이 되던 해에

 

좋지 않은 선택으로 인하여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는 누나가 태어 나던 88년도에

 

혈압과 폐암으로 인하여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가장 최근인 17살때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필자가 유년기를 지나오면서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조부모님은 할머니와 외할머니밖에 계시질 않습니다.

 

그중에도 외할머니의 이야길 하고자 합니다.

 

강원도 원주시 횡성군에 있는 작은 한 마을

 

전체 가구수가 10가구가 채 되지 않고

 

주위엔 산으로 뒤덮여 있어 야생동물들이 아직도 사는곳

 

새벽에 해가 뜰 즈음에 산을 보면 안개 끼는 모습이 마치 구름같아

 

정말이지 작은 마을이 한 풍경화와도 같은 곳...

 

이 작은 한 마을은 나의 어머니,그리고 삼촌,이모들이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외할머니가 계신 곳이기도 합니다.

 

외할머니 께서는 젊으신 나이에 시집와

 

필자의 어머니와 삼촌,이모들 5남매를 낳으셨고

 

한 자리 같은 곳에서 계속 살아 오신 분입니다.

 

필자가 여름방학이 되면 가족과 함께 매년 찾아뵈러 갔는데,

 

자주 갔던 곳이지만...갈때마다 항상 얼마나 마음이 들떴는지....

 

뭐랄까 같은 장소여도 어쩌다 한 번 갈때의 그 설레임?^^...

 

어쨌든...필자는 그렇게 시골집에 내려간다는 부모님의 말이

 

내려가기 전날에 필자를 기대감에 차게 만들었었는데,

 

"아 오랜만에 외할머니 뵈러 간다!잘 계실까?건강하실까?"

 

그리고 항상 나를 반겨주는 이들...이모나 삼촌들,,,그리고

 

누나와 저를 많이 반겨 주시던 외할머니도 계시고...

 

올 때마다 나를 잘 따르던 개(犬) 래판이...

 

(개 이름이 특이하게도 빨래판에서 빨만 빼고 래판이로 지었단다.)

 

개 나이로는 22살...사람 나이로 환산하면 126세에 다다르는 고령견 이였습니다.

 

제가 왜 갑자기 개 얘기를 꺼내는지는 뒤에...

 

어쨌든 외갓집에 가면 재밌는게 많았습니다.

 

근처로 나가면 계곡도 있었고 넓게 펼쳐진 논밭하며...

 

외갓집에서 위로 올라가면 보았던 사슴농장도...하나하나가

 

신기했고 재밌었습니다.특히 외갓집에 내려가면 먹었던

 

고기는 정말 평생 잊을 수 없는 맛으로 자리 잡았지요.

 

그리고 야밤에 모기향 하나 피워놓고 밖에다가 텐트 치고 잤을때의 첫 경험

 

자연에서 잔다는 느낌을 몸소 체험하는 좋은 곳 이였지요.

 

그렇게 해가 지나가고,,,15살이 되던 어느날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갑자기 외갓집에 내려간다는

 

얘기를 하시고는 급히 차를 타고 강원도로 가셨습니다.

 

어리던 저는 무슨 일인지조차 모르고 물어봐도 아무런 대답을 안해주시기에

 

외갓집에 무슨 일이 있는가보다 하고 집에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나서 집으로 다시 돌아온 어머니에게

 

여쭈어보았습니다."외갓집에 무슨 일 있어요?"

 

어머니"외할머니가 좀 아프시다는구나,그래서 어제 급하게 내려갔어."

 

나중에 누나에게 듣고서야 알았습니다. 누나는 그래도

 

어느정도 얘기를 들었던건지...

 

"외할머니 저혈당에 암까지 걸리셨어"라고...

 

얘기를 해주더군요. 암이라는 병은 최근에서야

 

치료가 어느정도는 가능성이 보이는 병이지만

 

그 당시 암이란 병은 정말 극 소수가 간신히 살아 남는 병이였습니다.

 

암으로 인한 각종 합병증으로 인하여 일주일에 세 번씩 병원에 가셨는데,

 

공근면이라는 곳이 너무 외진 곳이다 보니 버스를 타고 2시간은 나가야

 

원주시내까지 갈 수 있었고,시간이 너무 지체되고...

 

버스도 잘 다니지 않아 결국은 30분정도를

 

택시로 원주에 기독교병원까지 가셨다고 합니다.

 

택시 해서 하는 얘기인데, 택시 기사분이 저희 외갓집의 사정을

 

알고는 제 시간이 되면 미리 와서 기다리시고...

 

게다가 택시비도 절감해주셨던...정말 고마우셨던 분입니다.

 

어쨌든...그런 병을 가족 몰래 안고 오시다가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은

 

결과...이미 암이 퍼질때까지 퍼져서 수술을 해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결과가 나와서 큰 충격에 휩쓸렸었습니다.

 

언제 어떻게 외할머니가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어느샌가 전 남들이 보기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학교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05년 여름의 어느날...

 

외갓집에 또 놀러 갔었습니다. 도착하고 나서 목이 말라서 냉장고를 열어봤는데

 

슈크림이나 초콜릿,요구르트와 같은 달고 맛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저혈당이니까 할머니것이구나"하고는 다시 문을 닫는데

 

외할머니께서 "멀리 온다고 더울텐데 뭐좀 꺼내 먹어"라고 하시는데

 

차마 손이 가질 않았습니다.한편으로는 아 먹고 싶은데,,,였지만

 

할머니가 아프시다는걸 다시끔 깨달았던 저는 괜찮아요 할머니 라고 하고는

 

방에 들어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얘기도 나누고...그날 계곡에 가서

 

물고기도 잡고 신나게 놀았습니다.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외할머니가 집앞까지 배웅을 나오시는데

 

창문을 내리고 인사를 하려는데 하셨던 한 마디...

 

"얘들아 뭐 주지도 못하고 어떻게 하니 미안해서...XX야... 용돈도 못 줘서 미안하구나..."

 

이 한 마디가 외할머니와 저와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저는 이게 마지막일거라 생각지도 못하였는데 마지막 대화가 되어버렸네요..

 

그렇게 나와 가족들은 다시 본가로 돌아오고...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17살이 되던 2006년 1월...직장에서 일을 하시던 어머니가

 

왠일인지 집에 일찍 돌아 오셨습니다. 평소 같았다면 늦은 밤이나 되야

 

돌아오시던 어머니께서 이른 오후에 급히 집에 오시더니

 

아버지와 같이 외갓집을 간다고 하시는 겁니다.

 

전 궁금해서 어머니에게 여쭈어보았습니다"갑자기 무슨일이에요 어머니?"

 

라고 묻자 어머니께서는"외할머니가 위독하시대.그래서 지금 얼른 내려가봐야되"

 

그래서 전 "그럼 나도 따라갈래요 같이 가요"라니까...

 

누나와 같이 있으라고...좀 있다가 데리러 올테니까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외할머니가 걱정된 저는 그날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평소에는 밤 새가면서 컴퓨터앞에 앉아 있지도 않던 저는

 

새벽 2시까지 컴퓨터를 하고 있었습니다. 외할머니 괜찮으시겠지 라고

 

마음속으로 되새기면서...불안함에 떨다 못해 결국 컴퓨터를 했는데..

 

집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저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아직도 안 잤구나...외할머니 좀 전에 돌아 가셨으니까 일찍자고 아침에 데리러갈테니

까 기다리고있어"

 

라고...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였습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니...

 

아직 고등학교 들어간 모습도 보여 드리지 못했는데 그렇게 벌써....

 

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셨다는 얘길 들었음에도...

 

그냥 남일처럼 전혀 실감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날이 2006년 1월 26일이였습니다. 그렇게...억지로 잠을 청한 뒤에

 

꼭두 새벽부터 준비 해서 강원도로 갔습니다.

 

강원도에 내려가서 외갓집에 들어서는 입구에 떡하니 있던 푯말...

 

"故 XXX 초상"

 

푯말을 본 그제서야 실감이 났고,그제서야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외갓집으로 들어가고...영정에 담겨져 있는 외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한동안 또 다시 멍하게 바라보다가...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울고 나서...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어머니 곁에 갔는데

 

어머니는 오열을 하셨던지 누워계셨고...이모들은 한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시간이나 흘렀을까...염을 하는데 마지막으로 고인의 얼굴을

 

보라는 말에 봤는데...너무나도 곱디 고우신 모습으로 편안하게 눈을 감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염을 마치고...어머니를 진정 시키고 나서야...

 

겨우 3일제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3일제를 치르는데 영정사진에 보여진 외할머니의

 

모습...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시는 눈빛에...

 

밤을 새가며 장례를 치뤄냈습니다..그렇게 3일이 지나고...

 

고인을 모시러 온 꽃상여차량이 들어오고...

 

마지막으로 외할머니와 작별인사를 할 수있는

 

시간이 다가오고...고인을 꽃상여차에 태우고 나서

 

외할아버지 무덤으로 갔습니다. 외할머니께서 원하시던

 

합장을 하였는데 제 손으로 직접 자리를 파고...고인을 안치시키고

 

그러고 나서 잔디를 위에 깔고 나서...모든 정리를 다 마친 뒤에

 

외갓집으로 다시 돌아오고...가족들은 며칠 더 지내다가 먼저 올라가고

 

전 뒤늦게 혼자 올라갔습니다..뭔가 못다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며칠 더 있다가 집에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고....

 

그러고 나서 후에...이런 저런 생각들로 지난날을 되새겨보았습니다.

 

"왜...할머니나 외할머니나 보면,,,할머니는 내가 중학교 들어가는것도 못 보시고 돌아

가셨고,

 

외할머니는 내가 고등학교 들어가는것도 못 보시고 돌아가셨을까...?"

 

"왜 나는 할머니가 계실때 더 잘해드리지 못했는가"

 

"왜 더 재밌게 해드리지 못했는가,"

 

"왜 나는 할머니가 살아 생전에 계실 때 철없이 그랬는가"

 

이런 생각들에...집에 돌아와서...어머니 품에 안겨 울었습니다.

 

왜 꼭 내 주위에서 안계시고 나서 후회를 하는지

 

정말 바보 같았습니다. 왜 살아 계실때 더 잘해드리지 못했나....왜...

 

왜 이제와서 후회를 하나 바보같이...후회하지 않게 잘했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마음을 추스리고 나서 고 3이 되던 2008년...

 

다시 한번 외갓집에 찾아갔습니다.외할머니 제사도 다가오는 겸 해서

 

일찌기 외갓집으로 내려갔는데...도착해서 보니

 

평소에 저를 반겨주던 래판이가 보이지 않고 빈 개집만 있는 겁니다.

 

래판이 어디갔냐고 묻자...외할머니가 돌아 가시고 나서 몇년 되지 않아 죽었다고

 

나이가 다 되서 인지 그렇게 래판이도 죽어버렸다고...

 

유난히 사람 말을 잘 따르던 개 래판이...특히

 

외할머니와 지금껏 보낸 세월이 있어서 인지...외할머니 말을 유독 잘 들었던 래판이...

 

외할머니가 돌아 가시고 나서 몇날 몇일을 밥도 못 먹고

 

끙끙 앓다가 결국엔 안타깝게도...죽었던 겁니다.

 

전 또다시 슬픔에 눈물을 보였고

 

(정에 약한건지...눈물이 너무 잘나는것도 참..제가 바보같네요..)

 

그렇게 외할머니 제사를 끝내고 나서 집에 돌아와서...

 

잠을 자는데. 그 날 꿈을 꾸었습니다.

 

왠 하얀 소복을 입고 덩치가 큰 황소를 타고 있는 한 사람과

 

덩치가 크면서도 거무잡잡한 개가 한마리 있었는데,

 

 하얀 소복을 입고 있던 사람은 외할머니였고

 

한 마리의 검은 개는 바로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나버린 견공,래판이였던 것입니다.

 

아직도 꿈이 생생합니다...옛날 외갓집이였는지 지붕도 옛날 기와고...

 

집 바로 앞에 외양간에 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딘지 조차도 모르고 돌아 다니다가

 

황소의 등에 타있는 외할머니와 래판이를 보았는데

 

절 보자마자 래판이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어댔고,

 

외할머니께서는 넌 아직 여기를 오면 안된다며

 

당신께서 타고 계시던 소위에 태우시고는...저 멀리...

 

거리가 점차 멀어지다가...꿈이 깼습니다.

 

그 날 아침...부모님에게 꿈 얘기를 해 주었더니 하시는 말이

 

"넌 외할머니가 지켜주는거 같다"고...

 

"꿈에서 조상님이 나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것이야"라고 하시더라구요...

 

꿈에서까지 지켜주시는데...돌아가시고 나서도 이렇게 날 지켜 주시는데...

 

난 도대체 외할머니를 뵙고 무얼 했던 걸까...왜 살아 계실 때

 

더 잘해드리지 못했나 라는 생각에...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물론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나눠지겠지만......이렇게

 

돌아가시고 나서 까지 어린 손자를 지켜주시는 조부모님의 사랑에

 

다시끔 외할머니를 생각 해 봅니다..

 

전 그렇습니다, 지금 현재 조부모님과 같이 살고 계시거나, 멀리 떨어져 있으나

 

살아 계신 조부모님이 계신 분들,,,진심으로 한 마디 해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있을 때 잘해주시라고...살아 계실 때 잘해주시라고...

 

안그러면 나처럼 평생 마음에 두고 갈지도 모른다고...말해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고 있습니다.

 

지금의 자신을 있도록 해준 건...부모님도 부모님이지만 그 이전에 조부모님이 계셨기

 

지금껏 이어져서 나 자신이 있는겁니다. 부모님 이전에 조부모님에게...

 

평소에 소홀한건 아닌가...한 번 되짚어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살아 계실때...정말 잘 해드렸으면 합니다. 물론 저 혼자

 

후회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이 후회하는 일 중에

 

한 가지 일겁니다. 

 

그런고로...지금 살아 계신 가족분들과 더욱 더 많은 추억 남기셨으면 합니다.

 

그런 추억 하나 하나로 저처럼 후회 하는 분들이 적어졌으면 합니다.

 

모두...옛 기억을 한번 쯤 다시 되돌아 보는 시간을 한번 가져 보는건

 

어떨련지요....^^

 

55세라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너무 그립습니다....

 

물론 이미 지나간 일들이지만...너무나도 컸던 조부모님들의 사랑에...이 어린 나이에

 

아직도 조부모님을 그리워 합니다...그것도 많이...보고싶습니다...

 

전국에 계신 모든 분들...있을 때 잘 합시다...있을 때...

 

살아 생전에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주셨으면...

 

가시는 길에 부디 좋은 추억들을 가득 안고 가실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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