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날 이슬이와 키스하는 걸 좋아하는 남자. 지난 금요일 퇴근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들어오질 않아서 전화를 해보니 여지없이 동료들과 술을 한 잔 하고 온단다.
부자도 아니고 가난뱅이도 아니지만, 술 마시며 쓰는 돈 보다도 나이 들수록 이젠 당신의 건강이 염려스럽다. 난 그런 당신에게 염려스러운 마음에 동료들과 술자리를 하고 있을 때 12시가 가까이 되면 전화를 넣는다. 혹시나 내가 전화를 하는 게 당신을 되려 귀찮게 하지나않을까 싶어 며칠 전에는 집에서 같이 술을 한 잔하며 물었었지.. 자기가 밖에서 술 마실 때 내가 전화하는 거 싫어? 싫다면 앞으로는 전화 안할게...라는 내 말에 당신의 대답은 아니~~아니~~무슨 소리야? 좋아좋아~~~라고 대답해 주었지. 그나마 다행인 걸....그래도 아직은 날 귀찮아하지 않으니...후후~~ 남보다 체구가 작은 편이라서 같은 양을 마셔도 더 많이 취하는 당신. 그런 당신의 작은 어깨에 나와 우리 집 두 녀석들을 맡긴다는 게 때로는 얼마나 미안한 생각이 드는지.... 한 집안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이란 게 얼마나 때로는 당신의 어깨를 책임감으로 짓누르고 고달프고 쓸쓸하게 할까나.. 주부가 힘들다지만 그것은 한 집안을 이끌어 가야하는 가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리라....
그러하기에 난 당신이 술을 마시고 와서 그 다음 휴일 날
하루 종일 낮잠을 자도 당신이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그냥 둔답니다.
야유회나 모임에 가서 가끔씩 고스톱이란 걸해서
일이십을 잃고 와도 뭐라 못한답니다.
그런 일로 내가 당신한테 바가지를 긁는다면
또 얼마나 속으로 자신이 비참해지랴 싶기도 하고...
남자는 이럴 때도 있고 그럴 때도 있는 거지...싶기도 한 게
내 마음이랍니다.
지난 토요일 계양 산에서 열린 향우회 모임에 가서도
이십 만원 가까이는 잃었나보다.
월급쟁이란...
통장에 맨 날 한 달 들어오는 월급 빤하고 그 월급으로
한 달 살아가기 빠듯하다.
요즘엔 빚 안지고 살면 잘 사는 거라나..
빚은 없으니 그럼 우린 잘 살고 있는 셈인가?
당신이 워낙 술을 좋아하는지라 예전엔 당신 스스로가 카드를 아예
안 지니고 다녔었지...그런 당신에게 난 이삼년 전에 주유카드로 활용하라며
두어 개의 카드를 만들어 주고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현금이 부족할 때
급한 상황에서 쓸 수 있도록 해주고 혹시나 술김에 분실할까 봐
카드를 쓰는 즉시 휴대폰으로 문자로 알려주는 문자 서비스까지
연결해주었고,
월급 통장의 카드는 당신 이름이지만 늘 내가 가지고 지니고 있는 게
난 당신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당신은 한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게 고맙기도 하지...
당신은 누구한테 빚지고는 못 사는 사람이라 고스톱하면서 빌린 돈도
다음날이면 즉시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난 그런 당신에게 그런 날은 아무 말 않고 통장의 카드를 건네주었지.
출근해서 회사 내 은행에서 돈을 빼서 갚으라고...
돈을 잃고 온 당신에게 하는 나의 한 마디 잔소리라면
"잘 하셨어요. 아주 잘 하셨어요~" 하면서 엉덩이를 한 대 때려주는 일이 고작이지.
당신은 그 말을 들으면 "미안해" 다시는 안할게...라고 말하며
미안함에 겸연쩍은 웃음을 보이지..
휴.........마음이야 돈 잃은 당신이 더 하겠지...그걸 모를까...
당신이 땀 흘려 힘들게 번 돈인데 속이 상하면 당신 속이 더 상하겠지..
언젠가 칠팔년 전쯤에 1박 2일 야유회를 갔다가 돌아온 후
당신은 풀이 팍 죽어 있었었지...
그때 난 당신이 어디가 아픈 줄 알고 걱정하며 물었지만
그냥 피곤해서 그렇다며 말하고 그렇게 며칠을 지났었지...
잠자리에서도 정열적이던 당신이 왠지 시들시들 해지고..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며 하던 일을 멈추고 풀이 죽어서
내 몸 위에서 내려오곤 했지..
그때 난 당신도 나이를 먹나보다...살면서 당신한테 한번도 보약이란 걸
해준 적이 없는데 밥이 보약이라고 생각하며 살아 온 내게
남들처럼 보약이라도 지어
주어야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고 있는 동안 일주일쯤 흘렀을까.....
당신은 나와 마주 앉아 술 한 잔하자며 말하곤 술자리가 무르익어가자
내게 무겁게 입을 열었지..
고백할게 있다고.......화내지 말라고......정말 화내지 말라고..
그때 내 가슴이 얼마나 철렁 내려
앉았는지 당신은 알까?
잠자리에서도 평소와 달리 소홀하고 변해버린 당신이
혹시나 여자 문제일까 싶어서였지..
하지만 당신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생각과는 완전히 빚나가
후유~~~~~~~~
안도의 한숨을 쉬게 했었지...
야유회가서 고스톱을 해서 무려 구십 만원을 잃었다고 고백을 하며
회사 신협에서 오십 만원을 빌려서 갚았다고...
물론 빌린 돈은 다음달부터 월급에서 다달이 빠져 나가겠지...
그러니 빌렸어도 월급 명세서를 내게 가져다 주어야하는 날이면
다 밝혀질 것은 뻔한 일...
그때 내게 사십 만원 잃었다고 해서 여비로 가져간 돈 이십 만원에
난 이십 만원을 더 찾아 이미 당신한테 주었었지...
그런데 총 구십 만원이라니.....
속으로는 정말 그 소리를 듣고 난 아찔했지.
하지만 어쩌랴...이미 엎질러진 물인 걸...
화를 낸들 무슨 소용 있으랴...
어쩌면 당신이 내게 진실을 말해 준 것 하나만으로도 고마워서
사나이가 뭐 그럴 때도 있지 싶었지.
신협에서 빠져 나가면 다달이 이자도 만만치 않고..
마침 3년간 부었던 적금을 탔던 돈이 있어 그걸 헐어서
신협에서 빌린 돈을 갚으라고 오십 만원을
내 주었지..
야유회 다녀온 후
잠자리에서 마누라 얼굴만 내려다보면 죄책감에
밤일이 안 된다는 당신..
당신은 그때 이렇게 말했지..당신한테는 절대 거짓말을 못 하겠어..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상해...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난 후후.........그나마 다행이네...라고 생각을 했지.
당신은 고민을 훌훌 털어 놓고 나니 시원하다며
나의 코를 가볍게 꼬집어 맥주를 먹이며 밝게 웃으며 하는말..
참 당신은 이상한 여자야..당신 앞에선 거짓말을 할 수가 없으니
말이야 라고 말을 했었지.. 그런데 그 말을 듣는 난 왜 행복할까..
서로가 딴 주머니를 절대 못 차는 당신과 나..
아니 그런 것은 서로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할 생각도
전혀 안하는 당신과 나..
그러하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속이 비치도록 투명하기는 하지만
이럴 때면 나 몰래 당신이라도 어디 비상금을 따로
만들어 두는 통장이라도 있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는 건 왜일까..
난 고스톱을 모르는 사람이라 얼마나 그게 재밌는지는 모르지만,
일이백 잃은 것도 아니고 자주 하는 것도 아니고
야유회나 모임에서 가끔씩 재미로 하는 것이니 이해를
해주는 편이고, 그이에게 십만 원선에서 끝내라고
말을 해 두지만 본전 생각에 그게 그렇게 딱 그 선에서 끝내는 게
쉽지 않고 미련이 남는다고...
잃으면 다 갚아야 할 돈이지만 또 몇 푼 따면 당신은
집으로 들고 오는 적이 거의 없지.
동료들에게 이리주고 저리주고 술 사주고...
다 쓰고 들어오는 게 다반사지.
마치 의리의 사나이처럼 말야...
그 곳에서 번 돈은 밖에서 동료들에게 다 써야 한다는 당신의 고집을
누가 말릴까....
난 당신이 고스톱을 치는 게 걱정은 전혀 안돼.
자기가 지켜야 할선은 당신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으니까..
남들 다하는데 안하고 있는 것도 보기 안 좋지..
사실 난 몇 십 원 몇 백 원 아끼려고 슈퍼도 세일 전단지
보면서 요리조리 비교해 보고 조금이라도 더 싼 곳 찾아다니는데..
한번씩 당신이 그럴 때마다 그런 내 모습이 참 우습기도하고
괜히 허탈해지는 게 탈이라면 탈이지...
이야기를 쓰다가 보니 잠시 삼천포로 흘렀네...
그날 밤 11시 반이 넘어도 당신이 안와서
난 또 걱정이 되어 문자를 보내려고 막 휴대폰을 열어
첫 글자를 찍으려는데 휴대폰으로 당신한테서 전화가 왔지.
사실 당신과 내가 동시에 가끔씩 이런 일이 일어날 때 난 깜짝 놀라지..
문자 보내려는데 전화가 오다니..
부부는 역시 이심전심인가..
휴대폰으로 들려오는 당신의 술취한 목소리에 애교섞인 목소리가
더해서 하는 말인 즉..
날씨도 선선하고 걷고 싶어서 집에까지 걸어가는 중이니
나보고 마중을 나와 달라는 당신.
그러면 어느 아파트가 중간쯤이니 당신이 지금 출발하면
그 곳 쯤에서 만날 거라면서 혀 꼬부라진 소리로 횡설수설...
아.......이런...
이 남자 간이 부었지 아무래도...후후~~
난 그런 당신한테 이 밤중에 누가 나를 데려가면 어쩌려고? 라고
협박 아닌 협박도 해 보았지만 혼자 걸어오기 심심하니
그쯤에서 만나서 데이트 하잔다.
난 또 그렇게 못 이기는 척 넘어가서 두 녀석이 모두 잠든
11시 반도 넘는 밤 시간에 집을 나섰다.
한참을 걸어 중간지점인 그 아파트 보도의 저 쪽 끝에 약간
팔자걸음으로 몸을 흔들며 긴 우산을 어깨에 메고 걸어오고 있는
당신이 보인다.
난 당신 시야에 조금이라도 빨리 띄게 하려고
긴소매 얇은 남방을 입은 두 팔을 비행기 날개처럼
쭉 양쪽으로 뻗어 보이니 당신은 그런 내 모습에 이내 날 발견하고는
크게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서는 역시 내 마누라야 ~~~~~라며
상기된 얼굴에 만족스런 웃음을 머금고 숨이 막힐 듯이 날 품에 꼭 안고
당신의 꺼끌꺼끌한 수염이 내 얼굴 이곳저곳을 스치며
볼에 입맞춤을 하였지..
그런데 왜 난 그 순간 행복하다고 느낄까..
혼자서 걸어오는데 노래를 크게 부르며 왔다고 말하는 당신.
음치에 박치 까지 고루 갖춘 당신의 노래를 지나가는 사람이
들었다면 얼마나 웃었을까 싶다.
당신도 자기가 그런 줄 다 아니까 크게 노래를 부르며 걸어오다가
저만치서 누군가가 걸어오면 이내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
작은 소리로 흥얼흥얼거리며 왔노라고...
그렇게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 어깨동무를 하고
둘이서 집으로 걸어오면서 당신은 어머님께 전화를 한다.
한참을 어머님과 얘기 나누다가
그리고는 마지막에 엄마 내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라고 말하고는 며느리 바꿔줄게~~~라고 말하고는 내게 건 낸다.
어머님께 안부를 여쭙고 나도 당신한테 전염이 되었는지
덩달아 "어머님 사랑해요" 라고 말로
전화를 끝맺었고...
며칠 전 난 당신한테 진지하게 말을 했지.
이젠 술 좀 줄여 보라고...
교육상 애들 보기도 안 좋고,
이젠 당신의 건강도 생각할 나이라고.
당신은 일주일에 세 번 만 먹으라는 내 말에
그렇게 해 보겠노라고 나와 약속을 했지.
그 약속이 지켜지기를 ....
난 당신을 믿고 싶다.
당신은
미워도 내 사람이고
고와도 내 사람인 걸 어쩌랴...
한 남자와 또 다른 한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좌충우돌 부딪히기도 하고 때로는 투닥 거리며 싸우기도 하지...
그렇게 살을 맞대고 몸 부비며 같이 살면서 흐르는 세월만큼
부부는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서로에게 맞춰가며 서로를 위해
배려해 줄 줄 아는 넓은 마음과 믿음이 바닥에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
그게 각각의 다른 환경의 가정에서 자란 남녀 두 사람이 만나
또 다른 새로운 한 가정을 이루고 부부가 되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의 하모니가 아닐까 싶다.
PS: 며칠 전에 난 새로나 온 현미녹차 대형 포장 100 티백을 샀다.
물을 잘 안 마시는 버릇이 있는 내가 날마다 유리 주전자에 물을 끓여
대여섯 개의 티백을 넣어 우려서는 물을 대신해서
하루 종일 수시로 따라 마신다.
그런데 그게 바닥 난지가 벌써 스무날이 훨씬 넘었다.
슈퍼엔 이삼일이 멀다하고 수시로 들러 아이들 먹을 거며 필요한 생필품은
잘 사오면서 난 녹차가 놓인 진열대를 지나칠 때면 괜 시리 망설여진다.
그걸 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당신이 벌어 온 돈을 나를 위해 쓴다는 게
미안해서 며칠을 두고 뜸을 들인 것 같다.
내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없어도 살아가는 것이기에.....
술 먹고 다시는 장기 안둔다고 약속했던 당신이
밤에 또 잠 안자고 술 한 잔하고 인터넷 붙들고 장기를 두던 날.
난 당신과 그날 밤 투닥투닥 말다툼을 하고 그 다음날 슈퍼로 가서 용감하게
현미녹차 티백을 100개나 들어 있는 걸로 샀지...
하지만 마침 세일을 하고 있어서 오천 원이 채 안되더군...
음.........하지만 그날은 만약에 세일을 안했더라도 난 샀을 거야.
그래야지 당신 때문에 난 화가 좀 수그러들 테니까...
내가 이러이러한 이유로 녹차를 며칠 동안 못 마셨고,
또 이러이러한 계기로 사게 됐다고 말하면 당신은 아마
쯧 쯧 혀를 차며 기가 막힌다는 모습으로 날 바라보며
이러겠지..... 당신 바보 아냐? 돈이 없어서 못 사냐? 라고.....
하지만 남편이 힘들여 벌어 온 월급 한 푼 두 푼 아끼고 아껴 쓰는 게
그게 주부의 살아가는 모습이란 걸 알아줬으면 싶다.
그리고 진정 마음이 행복하면 갖고 싶은 것이 곁에 없어도..
필요한 것이 좀 부족해도 조금 불편은 하겠지만
그 행복만으로도 충분히 메 꿀 수 있고 만족한다는 것을 .....
당신은 분명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