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소설] << 흡혈귀 마녀와 동침을 -09 >>
쓰는 이 : 연지바른 마녀(mskim0920@nate.com)
등장인물
-최선우(남, 34세, 화자) :엔터테인먼트(탈렌트, 영화배우, 가수)
-김윤아(여, 31세) :드라마 작가
-강현민(남, 26세) : 엔터테인먼트(탈렌트, 영화배우, 가수)
-이태석(남, 36세) : 탈렌트, 영화배우
-드라마 감독 및 스탭들
-매니저
-소희영(여, 27세) : 탈렌트, 영화배우
-그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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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가 떠난 뒤에도...
우리는 변함없이 정해진 촬영 일정에 따라
반복적인 하루하루를 보냈다.
대본 연습하고, 리허설하고, 촬영하고,
무예와 중국어 배우고 실습하고,
집에 가면 음식만들고, 만든 거 먹고, 설겆이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수정본 대본은 꼬박꼬박 촬영 일정에 맞춰
제 날짜에 조감독 이메일로 들어왔다.
사람이 들어온 자리는 몰라도 떠난 빈 자리는 크다더니...
개인적인 연락은 하기 뭣했지만, 제 날짜에 대본을 받아들면...
무엇보다 -아, 건강이 괜찮은가보다 - 안심이 됐다.
마녀가 떠난 후부터
대본 뒷부분에 등장하기 시작한
마녀의 멘트는 우리에게 큰 힘과 정보통이 되어주었다.
(조감독이 한 자도 편집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인쇄해서 대본 뒷부분에 함께 붙여서 나눠줬다)
"여긴 송림세자 반응이 뜨겁습니다! ^^
짬 나시면 PC방에서 방송국 사이트 게시판에 들어와 보세요.
제가 간간히 모듬답변 해주기도 벅찰 정도로,
시청자들의 관심이 대단합니다.
곧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송림세자 시대와 송림세자의 죽음 대한 미스터리에 대한
토론장도 마련될 예정이랍니다.
참, 중국서도 동시 방송 되는 거 알죠?
중국 팬들이 촬영장 찾아가진 않았나요?
어제는 외교관이 신문에 쓴 사설에서 '국가 간의 옛 아픈 역사를
어루만지는 드라마'라는 과분한 찬사도 들었습니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겠지만, 오늘도 행복한 마음으로 수고하세요~
-참, 희영이 너 중국어 많이 능숙해졌더라
니 연기 다시 봤다는 글도 많이 올라온다, 수거! ^0^
-현민인 역시 내 예상대로 ㅋㅋ 무수리와의 베드씬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너 귀국하면 아무래도 에로 영화 섭외가 많이 들어올 거 같다.ㅎㅎ
-동희씨, 남편의 마음이 다른 곳에 가있는 것을
순간적으로 정확히 느끼는 것은 여자만의 무서운 직감입니다.
어떤 증거도 필요없지요.
그러나 세자빈은 그 모든 것을 감내하는 현모양처입니다.
항상 이 점을 꼭 명심해주시도록! 동희씨의 눈물... 굉장히 감동적입니다.
-태석씨, 선공자는 주미 공주에 대한 사랑과 세자와의 우정을
저울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정과 편안함을 주었던 사랑과 순수하고 맑고 깊은 우정 사이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운명을 자신 스스로 바꿀
엄청난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지요.
그래서 커다란 갈등과 두려움과 당혹스러움을 동시에 느끼는 것입니다.
태석씨의 내면도 선공자만큼이나 사랑과 우정에 관한한 어느 누구보다
순수하리라 믿습니다, 갈등과 결정을 번복하는 장면에서
그 내면을 끌어내보세요.
-선우씨, 송림세자는 자기 자신보다 나라와 백성을 걱정했던 비운의 왕세자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는 주미공주의 마음도 자신의 나라를 위해
극악하게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시대가 대의를 위해서 다른 것은 입에 함부로 올릴 수 없을만큼
송림세자에겐 모든 것이 위협적이었습니다, 생명의 위협보다 더요.
송림세자에게 결정적인 순간엔 사랑도 여자도 우정도...아주 하찮아야 했습니다.
사랑과 눈물은 가슴에 묻어두고 소리없이 울지언정,
주미공주를 이용하는 것은 그만큼 절박했습니다.
사랑으로 우정으로 갈등하는 감정보다
스스로 차가운 남자가 되어가는 모습이 더 필요합니다.
감독님께 따로 의논드렸습니다,
그래서 대본은 몇 번 더 수정될겁니다.
짜증나더라도 이해해주세요.
현대물과 사극의 차이점은
송림 세자가 가만히 서 있는 모습에서도
그 뜨거운 내면과 겉의 차가움을 동시에 느낄수 있을만큼
확연히 판가름 나야 합니다.
감정적인 연기만 끌어내지 말고,
내면의 용광로와 함께 이성적인 겉모습을 끌어내보세요.
감정적인 씬에서도 쉽게 감정에 쏠리는 모습은 절대 안됩니다.
지문으로 더 이상 잔소리 하지 않겠습니다.
주인공인 송림 세자 역에 최선우씨만을 고집했던 것은
지금까지 있었던 선우씨의 연기만이 전부가 아닐거라는 판단과
뮤지컬이나 다른 분야에서 보여준 열정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선우씨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분발해주세요, 그럼."
#
예정된 촬영 일정보다 일주일이 더 지연되었다.
중간중간 공휴일이나 식중독 사건들 이후로 열심히 했음에도,
구멍난 부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송림세자 팀은 공항 입국대를 빠져나오자
소란함과 카메라 찍는 소동 속에 갇히고 말았다.
여러 달을 세트장과 야외만 오가며 촬영하다가
갑작스레 맞닥트린 엄청난 반응들에 당황스러웠다.
물론 마녀가 팬들과 시청자들의 글들을
자주 갈무리 해 보내줬지만..
이 정도로 대단할 줄은...휴우~
[감독 : 김작가~!!!! ^^]
어...? 마중나와 있구나?
멀리...마녀가 손을 흔들고 있는게 보인다.
반갑다, 무지 반갑다. ^_^
[마녀 : 어서오세요 ^^]
하더니...감독님과 와락 포옹한다.
[현민 : 누나, 나두 ^^]
[마녀 : (포옹하며) 오오... 넘넘 보고 싶었어.]
[현민 : 나두...^^]
[마녀 : (태석형 포옹하며) 태석씨 수고했어요 ^^]
[태석 : (얼떨떨) 네에-]
난 안보이지?
[선우 : 저기... 나는....]
[마녀 : 희영아- 동희씨-]
[희영 : 언니~]
뭐냐, 대본에 넣은 멘트에선 날 무지 생각하는 거 같더니..
하긴 나보다 세자 연기에 대해 생각한 거지만...
[마녀 : 선우씬 액션씬 때 힘들지 않았어요?]
[선우 : 예? 예...]
피... (울컥-) 얘기하는 거구나.
그러게 왜 대본에 사냥하는 장면하구 대결하는 장면은
꼬박꼬박 양념처럼 넣은거냐구우-
[선우 : 나도 포옹해주면...]
[마녀 : 가요! 다들 아시죠? ^^
토크쇼에 우리 팀 모두가 나가는 거.
지금 곧바로 방송국으로 가야 해요.
아마 모두 스탠바이 하고 우리만 목빠지게 기다릴거에요!]
[선우 : -_-;;;]
왜 나만 빼?
왜 나만 미오해?
#
방송국에서 촬영용으로 사용하는 대형 버스로 이동했다.
가는 동안 여배우들은 화장하느라, 머리 손질하느라 정신없었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자느라구 까치 머리 된 것을
어떻게든 만져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마녀는 감독과 나란히 앉아 머리 맞대고
또 뭔가 의논하고 있다.
중국서 든 정은 언제 다 날라갔나,
눈길 한 번 안준다.
에라, 포기하자.
드라마에 미친 여자한테서
내가 무슨 수로 관심을 끄냐?
잉? 이건 또 먼 소리? 0.0
[선우 : 현민아, 니 무스 어디갔냐?]
[현민 : 나도 써야 되는데-]
[선우 : 조금만 줘.]
[태석 : 나도.]
[현민 : 나중에 갚어.]
[선우 : 우씨.. 치사한 놈.]
[희영 : 오빠 나 어때?]
[선우 : ^^ 예뻐.]
[희영 : ^^ 오빠, 드라마 끝나면 나한테 기회 줘야 돼?]
[선우 : 응?]
마녀가 통로를 통해 뒷쪽으로 왔다.
[마녀 : 도착하자마자 피곤할텐데 힘들어서 어떻해요,
내일부터 당장 촬영 시작하는데.]
[선우 : 뭐, 이젠 10회 밖에 안남았으니까.
체력 관리만 하면 힘들것도 없어요.
큰 고비야 다 넘긴 거 같고.]
[마녀 : ^^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주니까 힘 되네.]
뭘... 그까짓 거 갖구.
어차피 할 거면 즐겁고 씩씩하게 해내는 게 좋은 거니까.
[조감독 : 오늘은 토크쇼 끝내고 각자 집에 가시구요.
내일 촬영 끝나면 회식할거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마녀 : 참, 최선우씨.]
[선우 : 네?]
[마녀 : 잠깐 얘기했음 좋겠는데..]
마녀를 따라 뒷자석 구석으로 갔다.
갑자기 무슨 얘길?
겁난다, 겁나.
헉! 왜 이렇게 몸을 가깝게 하고....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마녀 : (목소리 낮춰서 소근소근)얼마 뒤면 법적으로 허용된
국회 의원 선거 운동 기간이 시작되요.]
뜬금없이 웬 국회 의원 선거?
[마녀 : 지금 우리 드라마가 정치쪽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어요.]
[선우 : 아, 알아요. 지난 번 대본에 같이 보낸 편지에서...]
[마녀 : 타이밍 절묘하게 국민이 선거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할 때
송림 세자가 우국충정을 부르짖으며 방송이 되고 있는 거에요.
상황이 어떤지 알겠어요?]
[선우 : 그런데요...?]
[마녀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의원 후보자들이 너도나도 자기가
송림 세자같은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청년이라고
이미지 홍보를 하고 있다구요.]
[선우 : -_-;;;]
[마녀 : 예전에도 중국 드라마의 청렴결백한 포청천 이미지가
지방국회 의원 선거에 이용됐던 적 있어요.
그 때야 외화였고, 서로 눈치보느라구 그 배우를 함부로
초청하기 쉽지 않았으니까... 그다지 걱정될 거 없었지만.]
마녀는 말을 멈췄다.
[선우 : ...걱정마요, 난 정치쪽은 하나도 모르니까.]
[마녀 : 방송인 중에도 정치로 방향을 튼 사람이 있고,
대놓고 지지하는 당을 당당하게 후원하기도 하니까요.
그걸 뭐라고 하는게 아니에요.
하지만 느닷없이 여기저기서 최선우씨 손을 끌어당기려는
사람들이 많을거구, 선우씨가 어느 쪽이든 판단도 서기 전에
무턱대고 끌려다닌다면 결코 득이 되진 않을거라는 거에요.
기업도 정치와 결탁되면 대부분 종말은 비참해요.
<송림 세자> 촬영하면서도 잘 알겠지만,
정치판은 다른 곳보다 모략과 배신, 드라마틱한 반전이
몇 배는 더 많은 곳이니까요.
전 개인적으로 방송도 정치에 깊이 의탁하면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방송국 경영자처럼 정치계 사람들과 꼭 접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의 위치에만 충실하는게 좋을 거 같아요.]
[선우 : ...]
[마녀 : 내 말이 불쾌해요?]
[선우 : 아뇨.]
[마녀 : ...기분 상했군요?]
[선우 : 우리 소속사 사장님하고 매니저한테도 이런 얘기했어요?]
[마녀 : (도리도리) 아니오. 만날 일도 없었는걸요.]
[선우 : 나보다 먼저 주의줘야 했을텐데요.]
[마녀 : 사장님이나 매니저 분이 뭐라해도,
중요한 건 당사자 판단이잖아요.
선우씬 이미 소속사에서 하라는 대로
어린애처럼 마냥 끌려다닐 군번은 아닐텐데요.]
[선우 : 알았어요, 충분히 알아들었구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내 주변엔 정치판에 깊게 관계된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마녀 : 그럼...다리 좀 비켜줄래요? 나가게요.]
[선우 : 나한테 한 얘기,
이거 드라마 이미지 때문이에요?
아니면 날 걱정하는 거에요?]
마녀는 잠깐 나를 쳐다봤다.
이 여자, 어딘가... 중국에서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무엇이 달라진거지?
[마녀 : ... 최선우라는 연기자의 앞날을
잠깐 주제넘게 걱정한거죠.]
마녀가 그녀의 자리로 돌아간 뒤에...
마녀의 대답이 여운처럼 남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의 의미가 참 애매하다....
버스가 좌회전을 하느라 몸이 왼쪽으로 쏠렸다.
창 밖 너머 국회의사당 건물이 보였다.
[조감독 : 자, 곧 방송국에 도착합니다.
내릴 준비 해주세요.
짐도 빠트리지 말고 챙겨주시구요.]
#
[마녀 : 수고하셨습니다.~ ^^]
대형버스 운전자에게 인사하며
마녀가 마지막으로 내렸다.
땅으로 발을 디디며 휘청거렸다.
[선우 : 어어? 괜찮아요?]
얼결에 부축하다가 마녀를 안는 포즈를 취하게 됐다.
둘 다 금세 화들짝 떨어졌다.
[마녀 : 예에- 괜찮아요.^^
어서 들어가세요.]
[선우 : 김작가님은 같이 안가요?]
[마녀 : 아- ^^ 시청자들이 출연진만 알지,
감독이나 작가를 아나요? ^^
난 여기만 오면 집까지 걸어갈 수 있으니까
마중 핑계로 무임승차한 거에요.]
[선우 : 아...예-]
마녀의 옥탑방이 여의도 옆이었지.
[마녀 : 그만 가세요-]
마녀는 나를 보내려고 하는데,
난 이상하게 자꾸 잡고 싶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선우 : 내일 촬영장 와요?]
[마녀 : 아니요.]
[선우 : 왜요?]
[마녀 : 대본도 수정해야 되고...
게시판에 답변도 올려야 되고...
따로 할 일도 있구요.
나두 알고 보면 무지 바쁜 사람이에요 ^^]
[선우 : 몸은 괜찮아요?
아까 보니까 전보다 더 마른 거 같던데, 그쵸?]
[마녀 : 와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내 신체 사이즈를 다 아는 줄 알겠다.]
[선우 : -_-;;; 누, 누가...그렇대요!]
[마녀 : 훗- 그만 들어가세요,
주인공이 빠지면 프로그램 스탭들만 죽어나요.]
[선우 : 저기요-]
[마녀 : 네.]
[선우 : 아까... 충고 고마워요.
사실 그 땐 기분이 좀 나빴어요.
갑작스럽게 상황이 실감났기도 했고,
이 나이에 앞뒤 모르는 것도 아닌데
이래라 저래라 휘둘리는 거 같기도 했구요.
근데 생각해보니까 감정적이 될 게 아니더라구요.
김작가님 아님 그런 말 해줄 사람도
변변찮게 없었을 거 같구.]
모처럼 ^^ 말 한번 멋지게 했다.
[마녀 : 그렇게 생각해주니까, 고맙네요.
선우씨가 많이 삐쳤나 해서
사실 속으로 좀 전전긍긍했거든요.^^]
[선우 : 에이- 남자가 그 정도로 삐치면 되나요.^^]
[마녀 : 갈께요.]
[선우 : 네-. 짬되면 촬영장 오세요.]
[마녀 : 왜요? 저 가면 다들 긴장할텐데? ^^]
[선우 : 아- 그게, 막상 중국서 김작가님이 없으니까
무지 허전하드라구요.
나만 그런게 아니구, 모두 그랬어요.
습관처럼 김작가님 찾구요, 부르구요...]
[마녀 : 풋- 알았어요, 가능하면 갈께요.]
...뭔가 달라졌던 느낌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마녀는 나에게서...
아니, 우리 송림 세자 제작팀에서...
조금씩 뒷걸음치고 있었다.
개인적인 친함을 슬슬 피하고 있었다.
아직 촬영이 10회분이나 남았는데...
중국에서 감독님 말씀처럼
배우와 가까운 것도
선이 있어야 한다던 것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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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온다던 마녀는
10회분 촬영 내내 한번도
촬영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나는 149회에서 죽는다,
(핫 ^^ 내가 아니라 송림 세자지...)
독약으로 인해 몸 전체가 까맣게 녹아들며...
죽어가며 변하는 몸 상태를 디테일하게 잡기 위해
특수효과와 CG가 동원됐다.
특수효과 촬영을 위해 따로 여러 번 온 몸을 분장하고
같은 자리에 누워 촬영을 마쳤다.
마지막 150회는 남은 이들의 모습을 비춘다.
도림대군, 주미공주, 선공자,
세자빈, 그리고 세자의 두 어린 아들...
송림 세자의 죽음으로 희망적이었던
모든 상황이 순식간에 급반전된다.
세자빈과 세자의 두 어린 아들은
역적의 누명을 쓰고, 극약을 마시고 죽게되고...
도림대군도 세도가들의 모함으로
극약을 마시게 된다.
뒤늦게 세자빈의 죽음을 알게된 주미공주와 따라온 선공자는
더이상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고...
깊이 절망한다.
청나라로 돌아가도 자신들의 위치는 이미 없다.
두 사람이 청나라로 떠날 적에
두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으로 가장되어
장례까지 치뤄진 후이기 때문이다.
이미 무너질대로 무너진 주미공주의 마음과
주미공주를 해바라기하면서 역시 같이 무너진 선공자는
한치 앞의 미래를 생각할 여유조차 갖지 못한다.
둘은 하염없이 조선땅을 방랑하다가 알 수 없는 무리의 기습을 받게된다.
필사적으로 싸우며 도망치지만
주미 공주를 지키려던 선공자가 온몸이 난자되어 죽고,
(역쉬..드라마답게 선공자는 주미공주에게 할 말 다하며
애절한 사랑을 고백하며 죽는다 -_-)
주미 공주는 두가지 사랑을 지킬 수 없었음에 좌절하기도 전에
역시...한밤중에 자객에 의해 목졸리며 단칼에 살해당한다.
그리하여 모두 죽는다 -_-;;
이런 드라마 본 적 있는가?
등장인물들 몽땅 죽는다 -_-;;;
드라마 역사상 전무후무하다.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는지 -_-;
그렇게 쓴 마녀나 그대로 만든 감독도
정말 특이한 이들이다.
방송국 게시판은 벌써 난리가 났다.
사극인지라 역사상 결론은 이미 나있지만...
가상 인물이었던 선공자와 주미공주까지
죽인 건 너무했다는 거다.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아파트로 돌아와 컴퓨터로 게시판에 올라온
마녀의 모듬 답변들을 챙겨 읽었다.
"선공자와 주미 공주의 죽음 역시
송림 세자와 도림대군, 세자빈, 아들들의 죽음과 동반된
잔인한 역사의 일부를 뜻하는 것입니다.
제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실지로 송림 세자와 그 가족들의 사망 기간 전후에
소리소문없이 실종되거나 죽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천민, 평민, 양반, 중인까지... 다양했으며,
주로 청나라와 조선의 국경 근처와
궁궐 주변에서 직간접으로 주변에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송림 세자와 직접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송림 세자가 뒤늦게 조선 내에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는 데에
힘을 보탠 이들이 아닐까 하는 추측은 할 수 있지요.
선공자와 주미 공주의 캐릭터는 그 자료에서 유추되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송림 세자와 한 배를 탔고, 함께 풍랑을 이겨내며,
함께 몰락할 처지였다는 겁니다.
또한 선공자와 주미공주의 죽음이
자객과 습격으로 인한 살해라는 점에서
송림 세자를 음해한 세도가들이 송림 세자 지지자들을
꾸준히 주시해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상징하면서
자료와 일맥상통하도록 의도한 점이기도 했습니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세요.
그들이 실존 인물이었다면, 송림 세자의 죽음 이후
그들은 남은 시간을 얼마나 절망스럽게 살아야 했을지.
그래서 저는 그 시대에 가장 핑계대기 좋은 방법으로...
계백 장군이 전쟁터로 떠나기 전
자신의 부인과 자식을 칼로 베어야 했을 그 심정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습니다.
살아간다는 것과
살아낸다는 것과
살아진다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사랑이 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우정이 될 수도 없습니다.
헤어지든, 함께이든...
두 사람은 살아야 할 의미와 신념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자신들의 의지와 달리 그저 살아지는 삶에 절망했을 것이며
씩씩하게 살아내지도 못했을 것이며,
살아가는 것조차 힘겨워했을 것입니다.
비록 두 사람은 가상 인물이며
송림 세자 이야기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 사극이지만,
제가 드라마를 쓰는 동안만큼은
등장 인물들은 제 곁에서 저와 똑같이 숨쉬고 생존하는
실지 사람에 다를 바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늘 등장 인물들의 삶을 탄생부터 들여다보고
드라마가 끝난 후에, 남겨질 그들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오직 불행한 미래만이 남아 있다면,
제가 돌팔매를 맞고 제 손에 피를 묻힐지언정
제 손으로 그들의 삶을 마무리지을 것입니다.
저도 선공자와 주미 공주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송림세자와 그 가족들은 산에 묻혔지만,
선공자와 주미 공주는 제 가슴에 묻혔습니다.
제 가슴은 피멍이 들었습니다.
송림세자 작가 김윤아 올림"
#
촬영이 마무리 되고,
마지막 회가 방영될 때까지
달콤한 휴식 기간이었다.
소속사에서도
해외 촬영까지 다녀와
여기서도 강행을 했던 것을 잘 아는지라
다음 음반 얘기를 미루고,
신문에도 당분간 휴식을 갖는다고
기사보도를 내보내고
휴가를 내줬다.
덕분에 거실 바닥에다
내 앞으로 들어온
시나리오들을 흐트려놓고
뒹굴면서 이거 읽어보고,
시작이 아니다 싶으면
다른 거 읽어보고...^^
온갖 주접과
시나리오 작가의 피땀을 모욕하고 있는데.-_-;
전화벨이 울렸다.
송림 세자팀 조감독이다.
드라마가 끝났으니 이젠 아니지만...
[조감독E : 쫑파티 날짜 잡혔어요.^^
에메랄드 호텔 개나리실에서
다음 주 화요일 오후 4시요.]
[선우 : ^_^ 방송국에서 지원을 팍팍 했나보네요.
에메랄드 호텔 비용이 만만찮을텐데...]
[조감독E : 하하... 아예 모두를 하와이로 휴가 보내준다는 걸
김작가님이 먼저 사양하고,
다른 출연자들은 스케쥴 핑계대고 내빼서 무산됐죠.
선우씨는 아쉽죠?]
아..진짜 아쉽다...^^
모처럼 제대로 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송림 세자 팀은 다른 드라마와 달리
외국서 오래 체류까지 하며
워낙 힘들게 서로 다독이며 만든거라...
울었든 웃었든 쉽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과 사람들이다.
이렇게 헤어지면 다시 모두 모이긴 힘들텐데...
정말 좋은 기회였는데.
잠깐! 마녀가 젤 먼저 사양했다고?
하여튼 초치는데는 뭐가 있어 -_-;
[선우 : 김작가님도 오시나요?]
[조감독E : 그럼요, 당연히 오겠죠.]
올까...?
약속하고도 촬영장에 안 왔는데...
쫑파틴데 에이, 오겠지...
술이나 실컷 마시며
약속 안지켰다고 땡깡이나 한번 부려봐? ^^
하와이 휴가 건을 왜 초쳤냐고 생떼 부려봐? ㅋㅋ
...보고 싶다.
#
쫑파티장.
휘양찬란한 샹드리제,
끝이 안보일 것처럼 진열된 부페 음식들...
송림세자150회 시청률이
드라마 역사상 가장 높았던
97년도 조**작가의 주말극 '첫사랑'의 시청률을 깨트려
새로운 기록을 남겼으니..
방송국 부장급, 국장급에서도
허술하게 송림세자 팀을 대접할 수 없었던 듯 하다.
지난 주에 송림세자가 끝났는데도
취재 열기는 여전하다.
여기저기 플래쉬가 터지고,
인터뷰들로 소란스럽고 분주하다.
두리번, 두리번...
마녀는... 아직 안왔나보다.
저기선 감독님이 덩치에 안맞게
수줍어 하며 인터뷰하고 있고,
어라? 저건 현민이 아냐?
송림세자 끝나면 염색한다더니...
어린 놈이 웬 백발이냐 -_-;;;
[태석 : 왔냐?]
[선우 : 어..형.]
[태석 : 희영이랑 동희씨는 저 쪽. (눈짓으로 가리킨다)]
희영이도, 동희씨도,
기자한테 잡혀서 바쁘다...
다음 작품 얘기, 영화 출연 섭외 얘기가 나오고 있다.
[J기자 : 아, 최선우씨, 이태석씨! 오랜만이네요.]
희영이와 마녀의 싸움 장면을 목격했던 그... 악질 J기자.
여기선 또 뭘 찾아 긁어내려고 나타나셨나?
[선우/태석 : 아, 예 ^^ 안녕하세요.]
[J기자 : 김작가님은 아직 안오셨나보죠?]
-_-;;;; 우리가 목표가 아니었다.
하긴 태석형과 나는
한동안 쉰다고 큰소리 쳐놔서 ^^
별다르게 할 말이 없을 거다.
[태석 : 어? 김작가님 이제 오네.]
J기자가 마녀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마녀는 건성으로 인사만 주고받고
J기자를 뿌리치고 태석형과 나한테 온다.
애써 미소를 지어보이는데...웬지 창백해보인다.
조명이 워낙 쎄서 그런가?
[선우 : 어디 아파요?]
[마녀 : 피곤해서요, 국장님하고 담판짓고 왔거든요.
아아- 인기가 많아도 피곤해 ^^ 그쵸?]
[선우 : -_-;;;]
인터뷰하고 있던 감독님이
마녀를 발견하자마자 달려온다.
[선우 : ...?]
[감독 : 김작가야, 우리 얘기 좀 하자.]
마녀를 구석으로 데리고 가려고 한다.
[마녀 : 여기서 얘기해요, 저 무지 피곤하고 배고파요.
국장님한테서 연락받으셨어요?]
[감독 : 갑자기 웬 계약 파기야?
우리 방송국하고 200회분은 남았잖아.
벌써 다른 데로 스카웃되서 가는거야?]
뭐? 계약 파기?
방송국이 작가와 전속 계약을 한 것을 말하는 건가?
[태석 : 선우야, 한 잔해라~
(술잔 주고 술따라 준다) 수고했다 ^^]
[선우 : 어, 어...(받으며) ^^ 나만 수고했나?
다들 힘들었어도, 그래도 이런 날 오니까 좋다~]
[태석 : 야, 지금와서 말이지만...
내가 첨에 얼마나 환장하고 싶었는지 아냐?
사극은 처음이지, 게다가 8개월이나 해외 촬영이지,
중국이라 그 흔한 영어가 통하길 하냐?
중국어랑 말타기, 팔자에 없는 검술까지 익히라지...]
술을 홀짝홀짝 마시며
태석형 상대를 해주면서도
온통 내 신경은 마녀에게 가 있었다.
[선우 : 헉! 형 이 술 도수가 얼마야?]
[태석 : 응? 이야- 이거 도수 무지 높네 ^^
야, 이 술 임자 제대로 만났다,
마시자~ 마시자~ ^0^]
[선우 : (홀짝홀짝~)]
[마녀 : 걱정마세요, 그런 거 없어요.
제가 왜 다른 방송국으로 가요?
저 계약할 때 다른 데보다 대우가 최고여서 여기하고 한 거잖아요.
이미 준비하고 있던 현대물 대본 초고 넘겨드리고,
수정은 다른 작가한테 일임하는 걸로 얘기 마무리했어요.
계약 위약금 물어줄 여력은 안되서요.]
[감독 : 좋아, 놔준다고 해.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어?
국장님두 이유를 모르니까 답답해 하는 거 아냐.]
마녀가 꽤 망설인다.
전속을 파기까지 할 정도면, 뭔가 분명한 이유가 있을텐데.
[마녀 : 공부 좀 하려구요.]
[선우 : (꿀꺽-) 유학가요?]
[마녀 : 네, 스폰서 잡았어요.
회장 비서실 책상부터 엎었더니
상대해주데요.]
[선우 : -_-; (태석형에게) 형아, 딸꾹! 술 떨어졌다~]
도수가 높아선지, 금방 취기가 돌았다.
태석형도 마찬가지였다.
[태석 : 그으래? 더 갖고 오지 뭐.^^]
[현민 : (오며) 어? 두 사람 뭐야?
나 빼고 벌써 시작한거야?
이런 배신자들같으니!!!]
[감독 : 정말이야? 유학을 얼마나 길게 가길래 계약까지 깨?
사정 있으면, 기간이야 재계약으로 연장할 수 있는 거 아냐!]
[마녀 : 방향 틀었어요, 드라마는 다신 안쓸거에요.
그래서 파기하는 거구요.]
[선우 : 아하하하- 거짓말 마요.
당신이 드라마를 안 쓴다고?
차라리 지금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요~^^
당신은 드라마 아님
사는 것도 귀찮은 사람이잖아.딸꾹!]
[마녀 : (나즉히) 선우씨 취했다.]
[감독 : (한숨) 휴우- 김작가 무슨 일 있었는지 몰라도,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거 아냐.
이 바닥 떠서 끼 죽이고 사는 거 만만찮아.
다 다들 돌아오기 마련이야.
결혼이라도 해? 그렇다면 축하할 일이고.]
[마녀 : 훗... 사람있음 그것도 생각해봐야죠.]
[선우 : 아, 그럼 나랑 할래요?
나두 썩 괜찮은 놈인데.^^]
[현민 : 어? 형 진짜 취했나보네?]
[태석 : 취한 거 아냐, 이 자식 술김 빌려서 청혼하는겨-]
[현민 : 정말이야? 아- 이거 열받네, 형 나두 한 잔 줘.]
[태석 : (술주며) 니가 왜 열받냐?]
[현민 : 몰라, 그냥 열받어!
(술마시고) 으악! 이거 왜 이래,
혓바닥에 불났어!!! 으악으악!!!(팔짝팔짝!)]
[선우 : 왜 대답 안해요!]
[마녀 : 감독님 이제 다 끝난 얘기니까...그 얘긴 그만 해요.
시청률 기록 깬 축하 해야죠 ^^]
[감독 : 그래, 그러자 ^^
그거 다 김작가 덕분인데, 주객전도가 됐다.(잔 들고)]
[마녀 : 뭘요 ^^ 제 대본에 딴지 안걸고
전적으로 수용해주신 감독님 아니었음,
스토리가 그렇게 못나왔죠.(잔 들어 부딪치고 마신다)]
[선우 : 나 무시하는 거 이젠 재미없으니까, 그만하구요.
왜 대답 안해요! 나 또 화나요!]
[마녀 : 취했을 때 한 얘기 하나도 기억도 못할 거면서
대답같은 거 소용없잖아요.]
어...? 그건 또 어떻게 알지?
가끔 취중에 후배들한테 한 소리가 기억안나서
담날 후배들을 전부 소집해서 리바이벌 시키는 거.-_-;
#
우웅....여긴 어디냐?
아직도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몸을 일으키려다 그냥 다시 엎어졌다.
[현민 : 으윽-]
[선우 : 응? 넌 누구냐?]
[현민 : 나야, 멋진 현민이 ^^]
어쩐지 갑자기 침대매트가 푹신해졌다했지,
현민의 배였다. -_-;;;;
침대 아래 바닥을 보니
태석형이 大자로 뻗어 자고 있는게 보인다.
아... 여긴 내 아파트구나.
그런데 어제 쫑파티에서 어떻게 집에 돌아왔지?
마녀한테 땡깡부리던 거까진 기억나는데
그 뒤는 깜깜하다.
발로 태석형 옆구리를 찼다.
[선우 : 형, 형... 일어나!]
[태석 : 야, 더 자...]
[선우 : 어제 우리 어떻게 들어왔어?]
[태석 : 몰라...자, 임마. 쿨-]
[선우 : 나 기억 안나는 거 있음 깝깝해서 미치잖아.
아는 사람? 아는 사람?]
[현민 : 작가 누나가 데려다줬어.]
[선우 : 김작가가? 우리 셋을?
무슨 힘으로? 갑자기 마징가 제트라도 됐대?]
[현민 : 나는 좀 멀쩡했구, 형이랑 태석형은 완전 뻗었구...
택시기사가 형들을 처박아서 델쿠 와서
여기에 던져줬어.]
그랬구나...마녀가 고생 좀 했겠다.
현민이 스스로 멀쩡하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분명 걸음은 갈지자였을테고.
고생했다고 공치사 해주려고
마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받는다.
여러번 해도 신호만 가고 안받는다.
마지막엔 파워를 껐는지,
다른 음성 메세지가 들린다.
일부러 안받는건가?
어제 내가 취해서 큰 실수했나?
낭패다....
전화가 울렸다.
매니저 형 번호다.
[매니저E : 니들 셋 다 빨리 술 깨라.]
[선우 : 왜요?]
[매니저E : 니들 셋을 세트로 출연섭외 들어왔어.
오후 3시야, 준비하고 있어.
그리로 데리러 갈게.]
우씨... 우리 쉰다니까!!!!
오늘은 휴업이야, 휴업!!!!!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