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에서 이제 아홉 식구가 버글거리게 되었다.
이 식구들은 성격들이 모두 제각각인데 정말 일부러 이렇게 섞어 놓으라고 해도 힘들꺼다. 게다가 왜그렇게 하나같이 개성맞은지...쩝.
먼저 활화산 같은 성격으로 나누자면 당연 우리 시아버님, 울랑, 시누, 그리고 우리 형님까지 합세한다. 그 담에 우리 시어머님은 활화산과 눈물을 보이시는 여린면을 갖추셨고, 아주버님은 평소 말이 없는데 화나면 대책없는 분같다. 어쩌면 그건 나랑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나? 내 성격은 복잡미묘하다. 여릴 때는 한없이 여리고 화날 때는 정말 대책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날 이 때껏 시댁 식구들에게 화를 내본 적이 없다는거다.
시아버님은 전후 어려웠던 시절에 우리 나라를 일궈낸 새마을 역군의 대표주자시다. 종가집 장손으로 태어나셨지만 누구하나 돌봐주는 사람없이 그대로 소년 가장이 되어 누나 남동생 여돌생들 엄마 이 모두의 입에 밥이 들어가게 해야하는 책임이 주어졌다.
뭐 얘길 들어보니 절대로 남의 밑에선 일을 못하실 분이다. 당신 본인의 일은 지나칠이만큼 너무 열심히 하신다. 암튼 잘해보려고 양계장 차려서 닭 얼른 크라고 밤을 새워 영양제 만들어 모든 닭 입에다 강제로 영양제 구겨넣어서 담날 양계장의 모든 닭을 의문의 죽음을 맞게 한 일도 있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적극적으로 나서서 당신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러니 남을 부리지도 못하고 당신 손을 거쳐야한다. 이 성격은 원래 부리기 좋아하며 아버님과 정반대로 게으른 우리 세대의 대표주자 울랑과 매일 부딪힌다.
시골에서 같이 양봉하며 부딪히는데, 사람 부리기를 좋아하고 합리적이며 넓게 생각하는 랑에 비해 부지런 하시고 직접 눈으로 확인 하셔야 하는 아버님은 극과 극이었다. 일하다 둘이 파바박 부딪히면 집안이 전쟁 분위기가 나는데 그 땐 난 바닥만 보다가 아버님을 편드는 한마디 맨트를 던진다. 울랑 그럼 바로 삐져서 나가버리고 살얼음같은 분위기에서 난 아이와 밥을 차렸다. 왜? 우리 아버님은 식시 시간에서 5분을 못참으신다. 시장한걸 절대로 못 참으시니까.
게다가 식이요법을 하셔서 맵고 짠걸 못드신다. 울랑은? 물론 맵고 짠거만 먹는다. 휴~
첨에 시집와서 아버님의 부지런 하심에 정말 감탄이 나왔었다. 물론 어머님도 부지런함에 빠진다면 절대로 안되는 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새벽 네시면 두 분은 토닥토닥 말다툼을 시작하신다. 그게 한 다섯 시 반까지 이어지는데 어머님의 한숨소리로 저 말다툼의 승자를 알 수 있다. 대부분 어머님의 한숨소리로 끝나는데 그 뒤로 두분의 움직임은 바쁘시다.
아버님은 매일 뭔가 일을 만들어서 하시는거같다. 굴뚝도 만지고 뭔가 나무 사다가 하루종일 톱질하시고 정말 가만히 계시는걸 못봤다. 아르헨티나에선 비가와서 공사를 못하면 나무를 톱질해서 아이 권총이나 칼이라도 만들어주셨다.
나 시집오자마자 이런저런 공사가 시작됐는데 이민 갈 준비하느라 살던 집을 개조해서 가게를 만드신다고 거실도 부수고 마당도 부수고 그랬다. 그렇게 아버님은 혼자 힘으로 가게를 다섯개나 만드셨다. 뭔가 해야겠다 생각하면 바로 실행에 옮겨야한다. 꾸물거리는걸 못참으신다.
어머님은 항상 외출준비를 끝내신 모양으로 지내셨는데 그 이유를 나중에야 알았다. 아버님은 어디 나가자 함 기다리는게 없다. 바로 나가서 차에 시동을 건다. 어머님은 그 상태서 외투만 하나 더 걸치고 나가는 거다. 나중에 나도 아버님이 아가 안으며 나가자고 함 바로 그 상태서 기저귀 가방만 들고 나가게 되는 숙련된 며느리로 변신하지만 첨엔 무지 신기했다. 왜냐하면 울 친정오마닌 어디 나가려면 한시간 치장이 끝나야 나가기 때문이다.
시댁의 한국에 있는 집은 대문의 위치가 다섯번, 화장실이 세번인가 바꼈댄다. 물론 아버님이 맘에 안드셔서 그렇게 고치신거란다.
아버님은 전후 세대답게 그리 많이 배우지 못하셨지만 이민 갈 요량으로 매일같이 스페인어를 라디오로 청취하시고 그래서 숫자에 관한 스페인어와 지도를 보고 익힌 지명하난 확실하시다.
나랑 같이 가시다 물론 아버님이 운전하시고....길을 잃으면 사람들에게 물어야하는데 나를 거쳐 통역을 필요로 하는 일이 없다. 바로 당신이 그 사람에게 질문하시는데, 그 방법이 재밌다.
지도를 꺼내어, 아님 그 주소가 적힌 종이를 그 사람에게 보여주며...
"돈데?"(어디?)
여기를 가려면 어떻게 가나요? 가 아니다. 상대방이 눈치빠르게 알아들어서 가르쳐줘야한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몰라도 자세하게 너무도 친절하게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틀리게 가르쳐 줄 때가 사실 더 많다.
상대는 길고도 길게 설명한다. 아버님은 심각하게 들으시다 한마디 하신다.
"그라시아스"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내게 한마디 또 하신다.
"잘 들었지?"
난 들은걸 기억하며 길 안내를 하지만 아버님은 그래도 지도를 봐가면서 그걸 우선시하신다.
사실 가르쳐준 대로 길을 찾은 적이 열 번에 세 번 정도였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계획이 잘된 도시다. 그래서 사실 지도 하나갖고 주소만 정확하다면 첫 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떨어져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잘 되어있다. 도시 전체가 블럭으로 나뉘어져 구분되어 찾기가 수월하게 정리된 유럽식 아름다운 도시다.
모험심이 아주 강한 아버님은 아르헨티나에 첨 도착해서 말도 제대로 안통하는 그 시절에 친구 부부 네분을 차에다 태우고 당신 부부 이렇게 여섯이 무조건 여행을 떠나셨다. 물론 그 때 쫓아간 분들은 옛스와 노 이 두 마디만 하시는 분들이었다. 그래도 지도 하나 갖고 노인네들이 떠나서 일주일이 넘게 재미나게 놀다가 오셨다니 겁 없는 분들인건 확실하다. 사실 도시 계획이 잘된 아르헨티나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가다가 배고프면 한분은 계란 사러가서 닭이 알낳는 흉내를 내시기도 하며 계란을 샀고, 소꼬리를 사고 싶으면 소의 울음소리를 낸다음 팔로 엉디 부분에서 흔들어 사먹기도 하고 그랬댄다.
울 아버님 팔뚝엔 문신이 하나있다. 뭐 조폭들이 있는 그런 문신이 아니고 하트 모양에 큐피트 화살이 그려져 있다. 후후후~
나중에 안 일이지만 첫사랑 여인에게 그 사랑의 정표로 그렇게 문신까지 하셨는데 어머님과 결혼을 하게 된거라고 한다. 완전히 갑돌이와 갑순이의 스토리와 흡사하다. 그렇게 순정도 있고 열정도 있는 아버님은 무지 구두쇠다. 원래 그 또래분들이 다 그렇지만 우리 아버님은 정말 대표격이다. 뭐하나 헛되게 쓰는걸 못 참으신다. 그런데 저지르자 싶음 과감하게 큰돈을 팍 내질르기도 하신다. 백원짜리 뭐 하나 사려면 힘들어 하시지만 몇만불짜리 차가 튼튼하고 쓸모있음 바로 사버린다.
언제나 젊은 정신의 소유자이신 아버님은 농장에 말을 사서 말타는 걸 배운다고 하셔서 어머님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아구~ 당신 말에서 떨어지면 그 나이에 뼈가 안붙어요. 주책좀 부리지말아요."
이렇게 어머님이 한마디 하시면 새벽녘 토닥토닥 말싸움의 주제가 되었다가 누군가의 승리로 끝났다. 이 주제는 어머님의 승리로 끝난거같다. 그 뒤로 말 사신다는 말을 못들었으니...
시어머님은 음식을 아주 잘하신다. 게다가 큰며느리인 우리 형님은 요리학원 원장인 이모를 두고 있어서인지 별의별 요리를 다 할줄안다. 시어머님의 요리솜씨로 식구들의 입맛은 극도로 발달 되어있다. 그래서 웬만큼 맛이 없으면 바로 쿠사리를 맞는다. 게다가 건강식을 찾는 요샛말로 웰빙을 찾는 가족이니 나같이 초짜에겐 오죽 어려웠으랴....짐작이 가지 않겠는가.
나중에 형님과 내가 밥을 번갈아가며 하게 됐을 때, 형님은 닭냉채, 두부선, 마파두부 뭐 이런거 하는데 (사실 난 나중에 잡지책 요리코너에서 우리 형님이 한 음식들을 접하곤 했다.) 난 그저 김치찌개, 된장찌개 그런 종류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난 아직도 뭐 평상시 우리가 해먹는건 무쟈게 숙달된 요리사가 되어서 뚝딱~!! 금방 해올 수 있다.
우리 어머님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있는데, 결혼해서 얼마 안있다가 거실과 맞붙어있던 아주버님 방을 가게로 만드느라 부시게 되었다. 아침부터 공사는 커져서 사방팔방에 먼지는 날리고 쿵쿵 벽을 부시는 소리로 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형님이 어머님께 점심으로 무슨 음식을 할까 여쭈었더니..어머님 왈
"응 간단하게 잡채나 해먹자."
헉, 잡채.
그때까지의 내 상식은 잡채는 잔칫날만 먹는 음식이다.
울 친정어머님은 오래전에 과부가 되셔서 벌이를 하셔야 했기에 집에서 잡채를 해먹는다는 건 누구 생일에나 명절에나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 담날 비가 엄청 쏟아지는데, 어머님이 비가 쏟아지는 마당을 보시며 또 한마디 하셨다.
"얘들아 비도오고 그러니 간단하게 녹두 빈대떡이나 부쳐먹자."
그래서 녹두 물에 불려서 깍지 까서 믹서에 갈고 숙주나물 고사리나물 삶아 데쳐 꼭 짜서 넣고 김치 잘게 썰어 넣고, 먹는 사람만 간단한 녹두 빈대떡을 해먹었다. 게다가 우리 형님은 요리 학원을 다녔는지 맹그는거도 무지 이쁘게 맹근다. 빈대떡을 부쳐도 모양을 만들어가며 이쁘게 부치니 그게 어디 간단한 음식이란 말인가. 적응하며 살다보니 지금은 뭐그리 대수롭지않은 음식이 되어서 이젠 나도 간단하게 잡채나? 녹두 빈대떡이나? 이렇게 물들여졌지만 말이다
어머님은 청소를 하나해도 엎드려서 무릎걸음으로 걸레로 훔쳐야 제대로 청소한 기분을 느끼신다. 사실 그렇게 청소해야 구석구석 먼지 하나없이 청소할 수 있긴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던 집이 보통 넓은 집이던가. 거기 거실을 그렇게 무릎걸음으로 청소를 하면 난 허리가 뻑적지근했다. 게다가 거실 뿐인가. 뭔 층계는 그리 많은지 옥상도 넓디 넓고...아..나처럼 청소 못하는 애한텐 고통이었다. 나중에 내가 그 집을 관리하게 됐을 때는 난 마포 자루를 밀며 뛰어 댕겼다.
막내 시누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성격도 강하기도 했지만 성실하고 자존심이 강하다. 학교를 명문이라고 들어간게 지독하게 규율이 강한 카톨릭 학교를 가게되었다. 학생은 여러가지 질이 있게 마련이라 특히나 인종차별이 있는 나라에서 못된 구석이 있는 애가 있었다. 아마도 시누를 쫓아다니며 못살게 군거같다. 학교에서 무슨 일만 있으면 쫓아와서 꼬투리를 잡든가. 자존심 상하는 말을 던졌는데 하루는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샤워하고 나왔더니 그 학생이 그러더란다.
"한국인이 샤워도 하네. 니네 나라 사람은 이빨은 닦니?"
아가씨는 그 날 집에 와서 침대에 엎으러져 엉엉 울어댔다.
그리고 이내 학교를 때려치우고 검정고시 공부를 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성악 전공을 하게됐다. 음악 쪽이라 아가씨는 피아노 치고 형님은 첼로 배운다고 낑껭 거리고 아....조카도 뛰어댕기고 우리 아들도 있고 집안은 점점 정신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