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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교사 3人의 ‘반공교육 참회’) “정권의 선전도구였던 선생님을 용서해다오

진정한원로 |2004.09.24 16:54
조회 140 |추천 0

 

자자~~ 요즘 소위 원로라는 "얼라"들이 썡 난리를 피우고 있는데,

 

원로라면 이 정도는 되야 하지 않케뜨?

 

난로(亂老)들은 아래 원로들을 보고 반성흐라~~~

 

 

 

“정권의 선전도구였던 선생님을 용서해다오” [좌담] 퇴직 교사 3人의 ‘반공교육 참회’ 진행·정리= 미디어다음/ 김진경 기자, 사진=김준진 기자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가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가운데 퇴직 원로 교사들이 ‘반공교육 참회’를 선언하고 나섰다. 태풍 ‘송다’가 마지막 비를 흩뿌리는 지난 7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반공교육에 앞장섰던 자신의 과거를 참회한다’고 고백하고 나선 퇴직 원로 교사들. 지난 9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교육문화공간 향’에 이들 퇴직 원로 교사들이 다시 모였다. 노스승들은“교사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밥술이나 먹겠다고 정권의 압력을 거부하지 못한 채 반공교육을 했다”며 울분을 토해내며 당시의 제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1965년부터 1999년까지 진주초등학교와 성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쳤던 윤한탁(68) 선생, 1956년부터 1997년까지 선린상고, 성동여자실업고에서 국어를 가르쳤던 이의협(73) 선생, 그리고 ‘아람회 사건’의 주역으로 옥고를 치른 정해숙(71) 선생 등 3명이 참석했다.

국가보안법 개정이냐 폐기를 놓고 정치권과 사회가 뜨겁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퇴직 원로 선생님들의 '반공교육 참회' 선언은 신선한 충격입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던 건가요.

윤한탁 : 대부분 교사들이 퇴직 후에는 교육과 담을 쌓고, 건강과 취미 생활만 주로 합니다. 하지만 우리 셋은 오래 전부터 교육개혁과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활동하면서 친분을 쌓았어요. 이곳 교육문화공간 '향'을 만들어 예비 교사들에게 역사강의, 민족사상 강연 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국가보안법 폐기 논의가 시작됐고, 평생을 가슴 속의 울분과 원한으로 남았던 것에 대해 참회하지 않고서는 교사로서 양심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더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을 먹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이의협 : 반공교육 참회 선언이 대단한 일도 아닌데 관심을 갖는 것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돼 있는가를 다시 한번 느꼈어요. 아무도 나서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살고 있으니 우리들의 작은 움직임에 주목하는 거겠죠. 참회 선언 후 한 학생에게 "선생님들의 잘못 이미 다 알고 있는데 너무 늦은 것 아닙니까"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너무 부끄럽더군요. 우리의 이야기가 물꼬가 되어 양심고백이 이어졌으면 합니다.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군인들이 민간인을 많이 살해했는데, 아직 양심선언이 없단 말입니다.

지금 인터넷 세대들에게는 '멸공' '북진통일' '우리의 다짐' 이런 문구들이 생소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의 '반공교육'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정해숙 : 교편을 잡았을 당시 제 담당은 임업이었어요. 하지만 시골에는 과목마다 담당선생님이 따로 없어 미술과 국어도 가르쳤지요. '때려잡자 공산당' '박살내자 공산당'과 같은 무시무시한 글귀를 담은 반공 포스터를 수없이 그리게 했어요. 반공 내용을 잘 표현한 그림은 골라서 교실 뒤 게시판에 붙이게 해서 학생들이 매일 보도록 했지요.
봄과 가을, 그리고 계절마다 열리는 각종 반공 글짓기 대회와 반공 웅변대회에 참석하도록 학생들을 독려했고, 교장선생이 좋아할 수 있도록 더 강력한 반공 문구를 넣도록 했습니다.
또 학생들이 등교할 때 '북진'이라고 소리 높여 인사하면 '통일'로 받았지요. 학급 반장은 수업시간마다 목소리를 높여 거수경례로 '멸공'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빨갱이의 실체도 모른 채 무작정 증오심만을 키우게 한 겁니다.


윤한탁 : 제가 창덕여고에서 문예반 지도를 맡았던 때 얘깁니다. 학생들이 문예지를 만드는데 글에 '박정희 대통령'이라고만 돼 있는 것을 본 교장 선생이 '각하'를 왜 넣지 않았느냐고 불호령을 치면서 다시 만들라고 했죠. 박근혜 영애(令愛)의 사진도 넣으라고 강요해서 다 만들어 놓은 문예지를 학생들이 밤새워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교장 선생의 출세를 위한 것인 줄 알지만,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그 뿐인가요. 시험문제에 통일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시험지 복사해서 묶어 놓은 것을 다시 만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반공교육은 군사정권이 일선 초·중·고교 전반에서 시행한 일종의 '사상교육' 입니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반공교육에 교사들이 알면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국가보안법은 학생자치회 활동 등 교육활동 전반에서 교사와 학생들을 반공 이데올로기의 초라한 희생물로 만들었습니다.

이의협 :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거치며 국가보안법과 군사문화는 학교에도 뿌리깊게 침투했습니다. 교장들 중에 악독한 사람들 많았거든요. 선생을 몽둥이로 때리는데 학생인들 때리지 않겠습니까.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학생이 있으면 무조건 달려들어와 머리를 몽둥이로 때리는 등 폭력이 난무했어요. 진실과 정의를 가르치기보다는 거짓과 침묵을 가르치도록 강요 받았고, 결국 학생들에게 아첨하고 굴종하는 노예의 순종을 미덕이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교육 받은 40~50대들이 국가보안법을 지지하고, 북한을 빨갱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맹목적인 반북 의식,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가 나올 수 밖에 없게 만든 것이 바로 우리 교육자들입니다. 학교에서 교육 본연의 양심적인 교육을 했다면 이미 국가보안법은 폐지됐을 것이라고 봅니다. 5·18 광주민중항쟁을 보면서 국가보안법이 무고한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가는 악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반인권적 반공교육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못하고 교단을 지켜온 것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정해숙 : 국가의 주인이 진정으로 국민이지 못하던 시절부터, 그들이 노회한 정치가든 야만적인 군인이든 법은 국민의 보호막이 되거나 정의의 버팀목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국가와 국가의 안위를 과장해 폭력을 행사하고 인권을 유리해 온 것이죠.
이승만 정권이 자신을 위협해온 제1야당 당수인 민족지사 조봉암을 사형시킨 일이나 반공독재자인 박정희가 인혁당 사건을 조작한 게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평화 시대를 맞이한 오늘에도 그 눈을 부릅뜨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있습니다. 이성을 갖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최대 비극입니다.

친구 아이 백일잔치, 반국가단체 조직모임으로 둔갑 학생들에게 반공교육을 시켰다고 참회하셨지만 그간의 면면을 보면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셨던 것 같습니다. 정해숙 선생의 '아람회 사건'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 같습니다만.

정해숙 : '아람회 사건'은 전두환 정권 최초의 공안사건으로 불리고 있죠. 동료와 제자 등 6명과 함께 구속돼 2년 5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습니다. 당시 친구의 딸 '아람이'의 백일잔치에 모였던 우리들이 모두 반국가단체 '아람회'의 조직원으로 둔갑했고, 광주항쟁에 대해 토론하던 중 "전두환 일당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 '대통령 시해 기도' 혐의로 둔갑했습니다.
전두환 일당이 피 묻은 손으로 정권을 잡았을 때 이대로 있으면 역사에 큰 빚을 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터무니 없고 말도 안되는 일이었지만 어디 하소연할 때도 없었습니다. 5공화국이 막 들어서고 암흑의 시기였지요. 감옥살이를 하고 나오니 주위 사람들이 저를 멀리했어요. 그때 국가보안법이 무고한 사람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서로 의심하고 불신하게 만드는 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냉대에 더 가슴 아팠던 시절입니다.

윤한탁 : 수업 시간에 "남과 북은 같은 민족으로, 언젠가는 통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가 서빙고 대공분실로 끌려가 3일 동안 고초를 겪기도 했었죠. 당시 교사들은 반공 교육을 시켜야 하고,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면 끌려가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진실을 감출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선생님들의 반공교육 참회 선언에 대해 한국 교총에서는 '일부 소수 의견일 뿐'이라며 '교사 전체의 의견으로 잘못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정해숙 : 전두환이 피 묻은 손으로 정권을 잡았을 때 각계 반응을 보니까 지식인들은 '환난의 시대에 태어난 영웅'이라고 추켜세웠고, 교육계는 알량한 지식으로 선전에 앞장섰습니다.
종교계는 조찬 기도회에서 5.18은 구국의 결단이라고 선도하고, 예술인들 또한 자신의 재능으로 5.18을 미화했습니다. 그 가운데 교육계가 저지른 죄라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한국교총은 교육 관료들이 주축으로 교육계 가운데서도 앞장서서 반공교육을 해온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교총의 상부는 옛 조직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으며, 교장과 교감 등 교육관료는 일제 시대 유학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반공 교육 의식이 잡혀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들의 발언을 축소하고 폄하하고 싶은 사람들 입니다.

"존경 받지 못하는 후배 교사들 보면 안타까워" 요즘 교육계에서는 교사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한탄합니다. 학생들은 존경할 만한 스승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요. 사제지간의 정도 찾아보기 어려워진 듯 합니다.

윤한탁 : 현재의 교육을 보면 '너'와 '나'를 냉정하게 가르는 것을 가르치는 듯합니다.
교육은 '너'를 '나보다 못한 사람' 또는 '나보다 잘난 사람'으로 구분 짓기를 강요하고 있어요. 또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 사이에 불신의 벽이 쌓여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기에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풍토도 아닙니다.
학생들에게 존경의 대상이어야 할 선생들이 고통의 주체가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돈봉투를 요구하거나, 과외로 부를 축적하는 등 월급쟁이로 타락한 일부 교사들이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의협 : 사람이 살아가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 아닙니까. 하지만 수십 년간 국가보안법이라는 틀 안에서 경직된 사고를 하다 보니 그 영향이 아직까지 뿌리깊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요.
우리나라 민주주의 토양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하는데, 건전한 토론문화와 소통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배 교사들을 보면 사회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보다 사소한 농담을 더 즐기고, 아이들과 진실한 마음으로 소통하기보다 단순한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에 머물고 있습니다. 진실한 대화가 사라지고, 공허한 웃음만 짓는 것이 고작입니다.
교육계에 뿌리깊게 그늘을 지게 한 것이 국가보안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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