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 내내 '생명존중' '인권옹호' '공생공존' '평등평화'를 외쳐온 세계는 오늘날 어이없게도 그들의 입으로 부르짖어온 구호와는 정반대 되는 야생동물 수준의 치졸한 약육강식적 경쟁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각국 정부는 그 경쟁원리를 현대자본주의의 필수요소라 강변하며 '경쟁'이 마치 그들의 종교라도 되는 양 신성시하기까지 하면서 인류사회 전반에 걸쳐 빠짐없이 도입·적용하고 있다.
그렇다. 원래는 고등동물 정신에서 출발한 <온건자본주의>를 야생동물수준으로 변질시켜놓고만 현대사회의 <전투자본주의>의 틀 안에서는 그 말이 옳을 수밖에 없다. 전투자본주의의 핵심은 '너 죽고 나 살자'의 원리인데, '경쟁'은 바로 그 원리와 정확히 부합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경쟁'에다 '선의(善意)'라는 단어를 붙인 '선의의 경쟁'은 약육강식 그 본래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시켜주면서도 비인간화에 따른 양심의 가책을 대폭 줄여주고, 경쟁승리자들의 인간적 품위를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아주 잘 위장시켜 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변질의 정도와 속도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현대 전투자본주의의 잔인성과 비인간성, 비도덕성, 그리고 그것이 인류사회에 가져다주고 있는 엄청난 폐해와 오래지 않아 우리들이 감당해내야 할 치명적 위험에 대하여는 1천 밤을 꼬박 새워 천일야화를 만들어도 그 나머지가 있을 것이다.
더구나 우리들 대다수는―선진강대국에서 나온 이론과 제도라면 거의 맹신하다시피 하며 스스로의 판단은 처음부터 포기한 일부를 제외한―우리들 대부분은 그 모든 것들을 이미 오래 전부터 실감하고있는 형편이어서 재론의 필요조차 없을 듯 하다.
자본주의는 원래 제법 합리적으로 보이는 원리를 그 바탕에 깔고 출발하였다. 생산수단의 사유화에 기초하여, 순리적이어야 한다는 묵계 하에, 사적 이윤추구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상품생산과 판매가 자유롭게 이루어지게 한 제도로서, 한 쪽에는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기업가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가 있어, 생산활동은 기업인의 이윤추구를 목표로 이루어지지만, 노동자에게도 충분한 노동대가를 지불한다는 것이었고, 이윤은 거래가 자유로운 시장에서 순수하게 성립되는 가격에 의하여 순리적으로 순조롭게 결정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시초의 원리는 퇴색되었고, 약속은 대폭 파기되었고, 거래상황은 불순해지고, 시장은 복잡하고 산만해가기만 했다. 이윤의 증대에 정비례하여 물욕·소유욕도 함께 증대된 인간은 자신의 악성 특성을 애초의 순수원리에 투사시켜 드디어 <순수자본주의>를 <불순자본주의>로 만들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시간이 더욱 흐르자 이제는 단순한 약속파기, 눈속임, 가격횡포 등으로는 만족할 수도, 날마다 높아 가는 경쟁에 이길 수도 없었고, 거기다 인간 내면의 악성은 선성을 전폭 장악하여 아예 상대방을 사멸시킴으로써 자신의 이윤추구를 극대화하는 갖가지 비인간적 수법을 날마다 획책, 실행하기에 이르러, 갖가지의 비리와 불법·탈법·편법·위법을 서슴지 않으면서, 미소짓고 친절 베푸는 겉과는 달리 맘속으로는 '너 죽고 나 살자'를 날마다 외치게 되었던 것이며, 이 모든 것은 경쟁자본주의의 원천적 결함에서 오는 것이어서, 온갖 비법을 다 강구하여보아도 경제흐름이 지극히 불순해짐을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각국 정부로 하여금 더욱더 복잡하고 치밀한 갖가지 방지책과 새 제도를 이중 삼중으로 마련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으며, 그 결과 오늘날 경제체제는 수만 가지의 어지러운 경제이론과 제도로 누더기가 되다시피 한 상태가 되어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복잡하고 희한한 제도와 이론이 등장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한 국가 내의 문제로 생성 소멸을 거듭하던 것이 언제부터인가는 세계의 각 국가간에도 꼭 같은 원리가 작용하여 이제는 지구촌이 하나의 거대한 경제전쟁터가 되고 만 것이며, 이렇게 하여 공생공존의 이상을 품고 출발했던 <온건자본주의>는 이제 노골적 약육강식의 무자비한 하등동물성 <전투자본주의>로 완전히 탈바꿈해버린 것이다! (3부에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