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을 비우는 효원의 얼굴빛이 포구에서 보다 더 창백해 지고 있었다. 종현은 그의 술잔을 더 이상 채우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자...못한 술은 가서 하면 되질 않느냐..."
"아니다...영월각으로 가자..."
여홍이 반갑게 두사람을 맞아 사람이 들지 않는 안채를 내어 주었다. 뒷짐을 진 채 달을 보고 선 효원의 뒷 모습이 만지면 흩어져 살아질 듯 아련하게 느껴졌다. 달빛을 받고 선 그 모습이 너무도 허허롭고 스산해 보여 잠시 시름을 놓았던 종현의 가슴에 휭하니 바람 한 점이 불어들었다.
"많이 지쳐 보인다..."
"먼저 들어가 있거나..."
"아니다...술기운이 돌던 차다...달빛이 좋구나..."
여전히 달빛에 시선을 주고 있던 효원이 돌아보지 않고 종현을 불렀다.
"종현아..."
"듣고 있다..."
부르고도 아무말을 하지 않고 있는 효원에게 종현이 되 물었다.
"왜 말이 없느냐...할말이 있어 부른 것이 아니냐..."
효원이 돌아보며 달빛보다 은은한 미소를 흘렸다.
"아니다...그냥 한번 불러 본 것이다...잠시 사념을 버리고 싶구나...먼저 들어가 있거라"
"바람이 차다...너무 오래 있지는 마라..."
잠시 홀로 섰던 효원이 보이지 않는 도진을 불렀다.
"그기 있느냐..."
도진이 모습을 들어내며 효원 앞에 섰다.
"방으로 드십시오..."
방으로 들어 불을 밝히자 사색이 될 듯한 효원의 낯빛이 들어났다. 포구에서 부터 참았을 그 고통을 알아 도진의 가슴이 쓰라렸다.
"어찌 이리도 무심하신 것이옵니까...이리 하시면 몸이 견디시지 못하시 옵니다..."
"침을 놓아라..."
"소용없습니다...이미 통증이 시작된지가 한참이 옵니다...약을 드십시오...시셔야 합니다.."
효원이 참고 있던 인내를 버리고 팔을 움켜 쥐었다. 귓볼을 타고 내린 땀방울이 목섶을 적시고 있었다.
"안된다...지금 내가 정신을 놓아버리면 덧없이 흘러가버리고 말 시간이다..그리 아깝게 보낼 시간이 아니다...견뎌질 만큼이면 되는 일이다....그러니 사혈을 하고 침을 놓아라..."
"마마..."
"참아질 만큼이면 된다......그러니 가장 빠르게 효과가 들어나는 걸로 놓아라.."
침을 맞고도 가시지 않는 통증으로 효원이 계속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원인을 알지 못할 통증이 수년 째 계속되고 있었다. 재대로 가지지 못한 몸으로 뼈를 깍는 수련과 연마를 통해 지금의 효원이 있었다. 깊은 시련이 몸을 혹사시켜 그런 탓이라 여겼다. 이제 그 통증은 온몸을 불덩어리로 만들고 가슴을 조여들게 해 사람의 인내를 허물게 할 고통이 되어 있었다.
"종현이 기다릴 것이다...내 잠시 있다 건너간다 이러거라..."
방문을 나서던 도진이 돌처럼 굳어 있는 종현과 마주했다.금방이라도 쏟아낼 것 같은 서러움과 분노가 그 눈에 가득했다. 이미 모든 것을 들은 듯 했다.
"언제 부터 이리 계셨던 것입니까..."
"아직도 내게 숨길 것이 남았는가..."
"물러가 계십시오...잠시 쉬다 나오실 것입니다..."
종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어디가....어디가 얼마나 아푸신건가.."
"의원에게 보이시지 않아 정확한 것은 알지 못합니다...이미 수년째 앓고 계시는 통증이고.. "
도진이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방안에서 들리는 신음소리에 반사적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종현의 심장이 온몸을 진동하며 그 신음소리에 함께 반응했다. 종현은 더이상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할 여념이 없었다. 피를 토해 낼듯한 그 신음소리가 이미 그 심장을 베어 온몸이 떨리고 저려왔다.
"비키게..."
"아니 됩니다...물러나십시오..."
"비켜라....내가 봐야 겠다...저리 홀로 둘 수 없다....비켜서라..."
"바라시지 않을 것입니다..."
종현이 더 침지 못하고 온 힘이 실린 주먹으로 기둥을 내리쳤다. 그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신음처럼 떨리고 경직 돼 있었다.
"...비켜서라...저리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도진이 그 눈을 보았다. 그 속에 지옥이 담겨 있었다. 이미 자신이 그 마음을 겪어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보고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생으로 앓는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알아 더이상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도진이 품에서 약봉지를 꺼내 종현의 손에 쥐어 주었다.
"드시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천금같은 시간이라 하셨습니다..정신을 놓게 돼 덧없이 보낼 것이 두려워 저리 버티고 계십니다....드시게 하십시오...지금 저 고통을 멈출길은 그것 뿐입니다..."
종현이 다급히 방을 들어섰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들어 눈앞이 흐려지든 효원의 시선이 잠시 종현에게 머물다 맥없이 침상에 고개를 숙였다.
"나가 있으라..."
그의 어깨를 감싸앉은 종현의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가 있으라 하지 않느냐..."
"이제 홀로 두지 않을 것이다...어찌 해야 하느냐....너를 어찌 해야 하느냐...어찌.. 이 삶이...이리도 고달플 수 있단 말이냐...어찌..."
효원을 침상에 뉘인 종현이 떨리는 손으로 물그릇에 약을 털어 넣었다.
"물려라...먹지 않을 것이다.."
"나를 위해서다...내가 더 볼 수가 없다...이런 너를 내가 어찌 견디겠느냐... 그러니 마셔라..곁에 있을 것이다...한 시도 홀로 있게 하지 않을 것이다..."
서러운 눈물이었다. 가져올 수 있어 나누어 지는 것이면 다 들어내 자신의 몸에 싫을 것을....그 애끓는 심정이 한스럽게 흘러 내리고 있었다. 자신의 몸을 죽이는 통증보다 종현의 그 오열이 더 견디기 힘들었던 효원이 약을 마시고 침상에 들었다. 가물거리는 정신속에서도 끝까지 그를 놓지 않으려는 듯 그 시선을 붙잡고 있었다. 젖은 이마를 닦아내든 종현이 그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서야 참았던 오열을 다 토해 냈다. 힘없이 풀려있는 그 손을 부여잡고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그렇게 아픈 눈물을 쏟아 냈다.
[어찌 이리도 자닌한 것이냐...
도대체 네게 얼마만큼의 고통이 더 있는 것이냐...
그 몸에서 피끓는 그 고통들을 다 들어내고 나면 도대체 무엇이 남아 있겠느냐..
어찌 이런 삶을 가졌느냐...
어찌 이리도 아프고 서러운 삶을 가질 수 있단 말이냐...
이런 너를 내가 어찌 보아야 하느냐..]
종현이 오열을 멈추고 잠든 그의 얼굴에서 한순간도 눈을 때지 않고 있었다. 살아 있지 않은 듯 창백한 그 얼굴에 손을 가져가 만지면 부서질 듯 조심스레 스쳐 보았다. 땀이 식고 열이 내려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떤 것으로도 그 고통 한점 가져 올 수 없는 것이 너무도 서러워 자꾸 가슴이 뫼어지고 있었다. 온 정신이 그 속에 있어 도진이 인기척을 하고 방안에 들때까지 알 지 못하고 그렇게 넋을 놓고 있었다.
"깊이 잠드셨을 것입니다..."
"어찌 이리 고통스러워 하시는가...."
"몸속을 열고서만이 알 길 입니다..."
도진이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청교도를 따르는 사람들 말로는 그내들은 몸을 열어 병을 본다 했습니다..
그 속에 환부가 있으면 칼로 도려내고 치료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청나라로 가십시오...마마를 모시고 떠나십시오...제가 길을 찾을 것입니다.."
종현은 효원을 염려하는 도진의 그 마음이 어쩌면 자신과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여겨졌다.
"그리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상관 없네...방법이 있다면 난 뭐라도 할 것이니 내게 일러만 주게.."
새벽이 깊어 눈을 뜬 효원이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종현의 흔들리는 시선을 마주 했다.
"나를 만난 인연이 너에겐 고통 뿐이구나...닿지 말아야 할 것을..."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좋은 것만 나누려 했더냐..아직도 너에겐 내가 그리도 가벼운 사람인 것이냐.." "미안하다..." "
몸은 어떠냐..."
"이제 괜찮다...시각이 얼마나 지났느냐..."
"자시다..혹 피접이라도 떠나는 것이냐...그래서 이리 시각을 다투는 것이냐..."
"내가 아픈 것 조차도 죄가 되는 곳이다..어찌 피접을 논하겠느냐.."
"그럼...혹여...내가 옥에 갔던 것과 연관이 있느냐..."
효원이 깊은 미소를 보내며 종현의 말을 받았다.
"괘념치 마라...그곳은 한시도 바람 잘날 없는 곳이다.... 다 듣고 다 말하고는 살아질 수 없는 곳이다... 그저 눈뜬장님처럼... 말을 잃은 벙어리처럼.... 그리 살아야 하는 곳이다..."
종현이 몸을 일으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정이 좋지 않아 궁을 떠나있을 것이다."
"얼마나 걸리느냐.."
말없이 종현을 보고 있던 효원의 얼굴에 알 수 없는 연민의 정이 서려 있었다. 한참을 그리 보다 무거운 입을 열었다.
"기약이 없을 것이다....."
종현의 가슴에 애써 묻어두고 있던 두려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미 놓는 그 순간부터 그리워 할 사람이었다. 그래서 두번은 그리하지 않을 다짐을 하고 있었다.
"기약이 없다해도 기다릴 것이다...그러니 그리 다짐하는 말은 거두어라"
"허망한 시간들이 될 것이다...그리 보내지 마라...."
"아직도...내게 하지 않은 말이 있느냐..."
"우리가 서로를 알아보아 그 마음을 나눠 가졌으도 끝까지 가져갈 인연은 아니다.."
종현이 흔들림없이 그 눈을 마주했다. 이미 그를 놓고는 살아지지 않을 삶이였다.
"기다릴 것이다...그러니 한번은 다시 와 줄 것을 믿을 것이다.."
"니가 기약도 없는 나를 기다리며 그리 허망하게 사는 것이 내 짐이다..
그러니 그리 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