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뭔가라도 해 봐야 하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중국으로 가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놈으로 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이렁~
급기야 맥이 다을수 있는 모든 연락처에 연락을 했다
어디 또 술타령이나 하고 있는건 아닌지
그리고 며칠뒤 겨우 녀석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방에서 만났는데 녀석은 멋적은듯 연신 미안 하다고만 연발했다
난 녀석에게 최대한 희망을 불어 넣어주도록 노력 했다
그렇게 출발일을 정하고 세부 계획을 밝힌후 그날은 그렇게 헤어졌는데...
집사람이 역까지 태워 주었다
먼저 후배녀석의 집으로 가서 같이 가기로 했는데 글씨 아이들 둘까지 모두 델고 나오지 않는가
당초 예정에도 없었는데...
아이들을 중국 처가에 맡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기가 막혔다
일이야 어떻게 되었건 앞뒤 가릴것 없이 차에 몸을 싣었다
그런데...
토요일이라 좌석이 없다는 것이다
이렁~ 장장 4시간을 서서 가야한다는 것인데...
하지만 그후 일정에 비하면 그쯤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중국 여행기의 첫발이 시작 되었다
출발직전의 인천항은 그야말로 전쟁 전야를 방불케 한다
일명 보따리 상인들의 물건 싸기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위의 타이틀 처럼 나 또한 여행 목적을 보따리로 잡았기 때문에 우선 그들의 행보가 나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난 이것 저것 물어 보았는데 잘 가르쳐 주지도 않을 뿐더러 지금은 무척 바쁘니 배에 가서 보자는 애기 뿐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물은 내용들은 전혀 쓸데없는 애기 들이라고나 할까
4시
드디어 출발 시간
외국여행이 처음인 나는 앞사람이 뭔가를 꺼내고 있기에 불안한 맘에 옆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주머니걸 모두 꺼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렁~
울 아이들이 10원 짜리 50원 자리 동전을 한가득 주머니에 채워놓은 터라 그걸 다 꺼내자면...
하지만 세무직원 앞에서 열심히 꺼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가득 밀려있는데...
동전 휴지조각 라이터 등등 얼마나 많은지 한참을 꺼내도 아직도 가득 이었다
특히 달러는 쓰기 편하게 1,2달러등으로 환전하여 그 뚜게가 얼나마 푸짐한지 주머니에서 잘 나오질 않는다
결국 세무 직원이 기다리다 못해 포기를 하구서 빨리 가라고 소리친다
난 분명 할걸 하는데...
역시 지고는 못 참는 성격
좀 친절하면 안되냐구 맞대응 낑~
후배네 짐 보따리가 얼마나 많은지 힘좋은 내가 그중 가장 무거운걸 두개나 맡았다
그렇게 시작된 짐잔치가 대구에 다시 도착할때 까지 끊이질 않았고...
배가 출발하자 말자 난 집에서 갖구온 술잔치를 벌렸다
근처 상점에서 사면될걸 대구에서 낑낑 거리며 운반 했으니 그 노고는...
하지만 배에는 참소주를 팔지 않는다
모두들 부러운 눈치는 이르떄 없구
찬 뱃바람을 맞으며 소주 한잔 걸치는 재미는 아마 느껴보지 못한 분은 모를거야
누군가 동석을 부탁했다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뭐하러 중국 가나..고 물으니 자기는 여자 장사 하러 간다고 한다
일명 기생 관광 주선자 이다
즉 조선족 한족 여자들 잡아놓구 한국에서 손님구해 델구 간다는 것이다
값비싼 한국여자 더우기 요즘은 법으로 엄격히 금하고 있는 실정이니 장사가 수지가 맞을것 같기도 했다
특히 구한 여자들은 반 감금 상태로 월급도 주지 않아도 팀으로 산다는 것인데...
어릴때 들은 일본인들의 기생 관광이 생각이 났다
개네들 울 나라 여행 오는게 아니라 여자보러 온다는...
당시 한국 여자들이 일본놈에게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얼마나 울분이 삭였던가
하지만 지금은 울 나라가 그렇게 하고 있다
저 사람이 아니면 또 딴 사람이...
꽤 수지맞는 장사인지라 너나 할것없이 뛰어 드는 형국
중국에서 7년간 있었던 후배놈이 자기도 그기에 대해선 잘 아니 우리도 저거 한번해 보자고 한다
잉~ 그럼 여자는 맘대로...???
짤라 말했다
지금 우리 목적이 뭐냐구
밖이 너무 추워 술판을 임시 접기로 하구서 안으로 들어 왔다
그리고 아까 말을 건넸던 보따리 상인들이랑 여러 사람들을 만날수 있었다
그중에 한국에서 교수를 하다가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노 신사를 만났는데...
라면 한그릇에 소주 한명을 거뜬히 비우는 실력에 탄복을 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그정도 술은 중국 북방인에게 입 가심 이었다
우린 인천에서 부터 같이 친해온 싹시한 40대 여인과 꽤 친하게 지냈는데 교수라는 분은 그기에 자꾸 작전을 건다
난 은근히 둘을 붙여 주기두 하구 여러가지를 묻기도 하였다
연길이 고향 이라는 그 여인의 사연은 이러 하였다
그녀는 중국에 남편이 있는 여인 이었다
그러니까 위장 결혼을 하여 한국인이 된 것이다
예전엔 다방을 했다가 지금은 개인 보따리업을 하고 있는 모양 이었다
그녀는 여러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특히 보따리 상인들의 생태에 관해서...
그들은 정말 비참했다
배가 집이라는 그들...
자신들의 숙소가 정해져 있고 생필품들이 모두 배에 있다
배를 타고가서 물건을 내리고 다시 배를 타고 들어온다
그리고 또 다시 배를 타고...
대장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텃세가 심하다고 한다
그럼 그밑에 사람들은... 그저 일당이나 받는...
노부부도 끼여 있었고 여자들도 많았다
일당 그저 5만원
갔다 오는데 그 가격인지
아님 일당이 그러한지
하여튼 그들에게 주어진 댓가였다
배에서 16시간의 여행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술 한잔 허구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준비하니 도착 했다고 한다
행여 여권을 잊을까 놋미초사 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뱃전에 나가니 찬바람이 콧등을 떄린다
뭔가 허름한 건물이 세워져 있었는지 아무리 읽어도 무슨 뜻인지 알지를 못했다
왜 한자로 씌여져 있담
난 그저 미친놈이 폼 낸다고 저렇게 썼나보담 허구 생각했는데
글씨 여기가 중국 이란다
글구 반대로 한자를 읽어야 뜻이 되지 끙~
별다르게 없었다
이국적인 그런 모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빨리 나가는게 문제이고 전쟁이었다
처음본 중국은 너무 초라했다
꽤 크다는 대련항 이었지만 무빙워커 하나 보이질 않았다
다음은 통관
선상 비자를 받은 후배네 땜에 한참을 기다렸다
난 그저 까불고 다녔는데 드디어 후배 부인으로 부터 목소리 큰 주의가 들어왔다
여기는 중국 이라고...
함부러 하지 말라고
외국이 첨인 난 정지선을 한두번 넘었을 뿐인데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른 생각을 고쳐 먹었다
여긴 중국 판이고 재네들판... 서서히 텃세 불리기 시작 하는데 그냥 죽어 주자고...
아니나 다를까 가만히 서 있던 제복입은 여자가 나에게로 걸어왔다
이미 정지선을 물러나 있었으므로 그렇게 시위를 하면서 지나갔다
후배가 애기를 시작한다
중국은 재네들이 곧 법이라고
말안 들으면 바로 잡아가구 반 죽여 내 보내는다나
이야기는 이어졌다
다음에 갈 길림 경찰서에서 목격한 바로는 사람을 잡아 들이는데 영하 20도가 넘는 한 밖에 사람을 묶어서 그냥 몇 시간이고 세워 놓는다고...
그것두 신발을 벗기구 맨발루...
도무지 법이 없는 나라 제복이 곧 법인 나라...
그렇게 되 내기며 난 서서히 중국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왠 아가씨 한명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까 제복입은 여자가 다시 그녀에게로 걸어간다
둘이서 한참을 싸운다
한참뒤 제복입은 여자는 당당히 돌아섰고 아가씨의 눈엔 눈무ㅡㄹ이 고인다
후배 부인이 설명을해 줬다
비자가 만료 되었다고...
아가씨는 몇년만의 고향 방문인데 좀봐주면 안되냐고 사정 했다는 것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냐고 물으니 벌금을 물어야 하는데 엄청 나다는 것이다
개네들 월급 기준으로 몇달치...
밖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포근했던 한국의 날씨속에 그리 추위에 대한 생각이 없었건만 나의 중국 방문은 그리 달가워 하지 않은지 날씨가 갑짜기 추워지기 시작한다
보따리 무역상들의 물건 하역하는 아우성
마중나온 사람들..
호객들...
또 한번 전쟁터가 연상된다
우린 아이들이 있는지라 급하게 택시를 잡았다
역까지는 20원 남짓~
꽤비싼 편이다
중구은 각 지역마다 물가가 천차만별이다
우리와 수준이 맞 먹는 지역도 허다헌데 바로 대련도 그중 하나이다
택시 기본료가 3원.. 타 지역은 2원이다
길림행 기차는 5 시간을 기다려야 한단다
우린 그 시간안에 식사두 할구 둘러 보기로 하였다
후배가 생각해줘 시킨 음식은 우리 우동과 비슷한것~
특별히 날 생각해줘 향을 넣지 말라구 했는데 아~ 글씨 그 향이 우쩜 그리 나와 잘 맞노~
음식을 먹으며 탄복했다
와 ~~~ 난 중국 체질이나 보다 중국음식이 입에 짝짝 붙는다
사실 난 음식 안 가린다
뚱뚜한 체격이 무엇보다 잘 증명해 주고 있으니...
식사후 젤 거리를 나섰다
한국거 이란데가 있어 우리도 물건을 가져와 저기 넣어보면 안될까 하는 어린 생각에 들어가 보았더니 글씨 점포는 모두 문을 닫고 한국 제품은 찿아볼수도 없었다
급기야 한국 제품 받느냐구 물어봐라고 했다
물론 대답은 쓸 필요두 없다
실망을 안구서 담은 내 신발을 사기로 하구 지하 상가로 나섰다
값싼 중국에서 모두 갈아서 올거라고 모조리 헌것들만 걸치고온 나였으니...
근뎅 구두가 젤 먼저 탈을 내기 시작했다
물이 샜던 것이다
맘에 드는걸 고르라고 그리고 중국말로 주고 맞으니 난 무척 당황했다
젤 먼저 가게는 퇴자를 놓구 나섰다
그러길 여러차례.. 솔직히 물가가 한구과 맞먹는다
이렁... 계산에 첨부터 오차가 생기는 것이다
후배 부인은 무조건 골라 보라고 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네들이 부르는 값은 크게 문제될꼐 없었다
그토록 공부 하구도 첨 실전에서 모두 까 먹구 말았던 것이다
겨우 들린집...
일단 걸치고 앉았다
이번엔 꼭 살거라구...
여기 또한 300원을 부른다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가 친구 부인이 나가 버린다
아마 나가면 잡는다는 뜻일건데 난 지치고 내땜에 그렇게 신경 쓰는게 실어서 직접 흥정을 했다
계산기를 받아 100 이라고 찍어 주었다
뭐라고 하는데 사이즈를 뜻하는거 같았다
그 가격에 주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었인가
언른 부인을 불렀다
상점 아가씨도 따라 나온다
부인과 상점 주인은 또 한번 제슈츄를 한다
나도 끼워 들었다
그 가격에 된거라구.. 다른 애기할꼐 없는데... 라구
그런데 그런데...
분명 소가죽 이라고 샀는데... 몇일이 지나자 신발이 여기저기 끍히고 날아가기 시작한다
일명 비닐 신발
보기좋게 당한 것이었다
첨으로 흥정한 나의 참패였다
여러가지를 둘러 본다고 서성이고 짜증
끼워 들었다가 티박.. 괄시~
후배는 애초부터 물건에 관심도 없었다
이 장사를 할려면 관심을 갖구 보래두 별루~
난 그네들과 모든게 엇나가고 있는걸 느겼다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무척 춥다
시간까지 게겨야 하는데는 의견 일치
하지만 방식이 다르다
난 백화점을 찿아 보자고 했고 여기 백화점이 어디 있냐는게 부인 답변
난 생각했다
중구이나 한국이나 사람 사는건 다 똑 같다
그럼 도시 구조 또한 매 틀릴꼐 없다
여긴 대련 변두리라고 한다
난 얼른 대구역 주변을 생각한다
한국을 기준으로 도시 구조를 짐작
실랑이 끝에 kfg가 눈에 들어왔고 나와 부인은 더 돌구 후배는 아이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한참을 말없이 걸어가다가 이게 아니다 싶어 부인에게 물었다
나땜에 가냐구...
그렇다고 한다
난 얼른 부인도 그곳에 가 있으라고 했다
어떻게 혼자 보낼수 있냐구...
하지만 난 떠밀다 싶이 부인을 돌려 보냈다
오히려 속이 편했다
나 편한대로 중국을 익힐수 있으니까
여기저기 들어가 보기도 하구.. 안내자가 옆에와 열심히 설명 했지만 난 그저 묵묵 하기만 했다
설명 필요없다~
가격표가 씌여져 있어 물건값을 한눈에 알아보기 쉬었지만 그 가격은 그냥 한국과 다를바 없었다
중국인의 월금이 얼마라는데 그럼 몇달치 월급을 보아야... 장만?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럼 한국에 들어오는 중국재는 뮈꼬~
도매와 소매의 차이?
그도 어느 정도라야지
관심이 있는 가죽잠바에 눈길이 쏠렸다
그런데 디자인 엉망
가격은 한국돈 7,8만 정도
이렁~
이게 아닐거다 싶어 누군가 흥정을 하는걸 지켜 보았다
옆에 내가 서 있는걸 의식 했어인지 손가락을 밑으로 깔고서...
짜석~ 그런다구 칼 눈치인...날... ㅎㅎ
아하~ 중요한걸 또 깜박 했구나...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물론 물건값 깍는데는 반 달인 수중인 나지만 택도 아닌 값을 제시하면 웃음거리일수도 있다
그리고 중국은 우리처럼 그런식의 흥정을 하면 안된다
예로 다시 그 집을 갔더니 오히려 물건값을 더 비싸게 부르고 다시 그 가격이라도 살려니 우린 그런 한국인에게 물건을 팔지 않는다고 하면서 내 보낸다
중국 특유의 장사법
하지만 도시 문명이 깃든곳엔 중국 상술 이란것도 없다
다만 돈만 있을뿐...
그리고 더욱 중요한것은 그 물건의 진짜 값을 알아야 하는데 너무 터무니 없는 가격을 써 놓은지라 감히 진짜 가격을 어림잡기 힘들다
다만 한가지...
모든 종류의 한국 가격 즉 상점 시장 할인점 인터넷등 각양 물건의 값이 머리속에 입력되어 있는데 큰 도움
그래서 여러가지를 감안 어느정도 가격이면 수지가 맞다 안 맞다로 산술해 내는수 밖에...
깍는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후배 부인도 무조건 한 가게를 골라 흥정을 하는것 밖엔 도리가 없어 보였다
옆에서 볼때 그 정도면 얼마 손해야... 라는게 보여두 우선은 인정해 주는수 밖에...
한시간 가량을 돌면서 집사람이 힘들게 싸중 샌드위치를 먹었다
매서운 기운 속에 거리에 서서 그걸 먹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아내의 정성을 휴지통에 버릴순 없었다
약간 상했던것 처럼 어쩌면 몇푼 안 들이면 싼 중국 음식을 먹을수도 있지만 그래도 먹는데 까진 먹어야...
여하튼 얼굴 철판 깐것 허구 베짱 하나는 나도 탄복했다
외국이 초행길인 사람이 그것두 혼자 거리로 나와 길거리에 서서... 낑~
난 상점을 돌면서 아까전 부터 한가지가 자꾸 걸렸다
이것만은 왜 이렇게 못 만들까
왜 이렇게 조잡하지
나중에 본 메이커란 것두 조잡하기 이를떄 없었고 사람들은 그렇게 모두 한국제라면 반색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 안 가르쳐 주지
만일 중국에 팔수만 있다면???
시간이 되어 역으로 되돌아 갔다
맡긴 짐들을 찿고 (글씨 짐 맡기는게 우리돈으로 거의 3천원 수준... 중국 물가에 비하면 엄청 비싸다)
기차에 몸을 싣는다
"아 이게 누굽니까"
너무 반가웠다
침대 기차에 오르자 말자(워프) 배에서 헤어진 교수란 분을 만난 것이다
그것두 우리 옆 자리에...
대번에 술판이 벌어졌다
각자 준비해온 술이 슬거머니 나오고...
옆에 유학갔다 돌아 온다는 조선족 두명도 합석을 했다
중국안에서 완전히 한국판이 벌어진 것이다
같은 침대칸을 쓰고 있는 중국인 부인이 쌍수를 들어 주었다
커다란 여행 가방을 탁자에 올려 술상을 만든 것이다
몇년째 술을 마다한 나였지만 그날만은 독한 50도 짜리 중국 빼갈을 연신 들이켰다
중국엔 25도 짜리 소주는 없다
그저 20도 짜리 청도 맥주가 있을뿐...
난 한국 방식대로 "원샴" 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마시는게 아니란다
나중에 교수님이 걱정이 여간이 아니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묻기도 하구 배우기도 허구...
어디 가냐는 질문에 난 올바른 대답을 할수 없었다
뭐~ 어떠니 함무로 말하지 말라구 그럼 써리꾼의 표적이 된다구...
미리 입 함무로 놀리지 말라는 주의를 얄밉게도 받은터라 공연히 미운털 박히는게 싫어서 어디 한국 가거든 두고 봐라는 다짐으로 참고 있었다
그기다 아부까지... 나원 디러워...
얼마나 시간이 지났건만 멀찍히 앉아 있는 후배(내 후배가 아닌 칭구 후배...)터러 같이 어울리자고 했다
청하니 멋쩍은척 끼어 들었다
첨에는 조선족 사람들과 어우리리더니 점차 우리 자리로 파고든다
난 대화에 안 빠지도록 한번씩 말을 건네 주어야 했다
중국 부인에게 술을 권했다
정중히 거절한다
난 자꾸 권했다
미지 못해 잔을 비웠다
그렇게 한참을 어울렸다
명함도 받구서...
중국부인의 자랑스럽게 내미는 삼성 애니콜 휴대폰도 구경하구...
광야에서 해가 뜨는 절경을 애기하는 교수님의 목소리에 나도 그걸 한번 보았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
담배를 피우려 차칸으로 나왔다
후배도 따라 나온다
둘이서.. 애기가 이어졌다
여긴 중국이라는 경고와 함꼐 여러가지 공격이 들어온다
그중 중국 부인에게 술을 권했던거...
한마디로 죽을죄를 진 실수라는 것이다
교수라는 사람에게도 너무 함무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말을 너무 함무러 놀린다나...
나도 더 이상 참을수 없었다
사람 사는건 다 똑 같다
그리고 분명 저긴 모두 한국 말을 하고 한국판이다
중국에 왔다고 너무 죽어 지낼 필요는 없지 않는가
자기 소신대로 떳떳이 애기하면 된다...
날 이우까지 데려다만 주고 자기는 물건 하나도 안 사갈 거라고 한다
한국에서 물건 팔릴건데 그것두 불 투명하고 말인즉선 자기는 다른 계획이라는 것이다
도무지 그들이 온 목적을 짐작하지 못한 나로선 황당하기 이를때 없었다
비춰지긴 어디다 내버려 두고 갈것도 같은...
술은 마셔도 그것 하나만은 분명했다
절대 정신은 잊지 않는것
여긴 중국이고 말도 한마디도 못하는곳
내게 있는 유일한 무기인 것이다
무조건 내가 잘못 되었다고 사과했다
온갖 감언이설로 희망을 불어 주었다
겨우 겨우 달래서 다시 들어왔구...
나를 업혀놓은뒤 녀석은 의기양양 했다
중국 무역하러 왔다고...
녀석은 허접나게 떠들엇다
몇번 신경전을 벌리다가 이 사람은 술을 잘 못한다고 그렇게 애기하면서 술 취했다며 자러 가라고 한다
별수 없었다
자러 가야지...
몇 시간을 잤을까
잠 버릇대로 새벽에 일어났다(난 불변증이 있다)
담에는 잠이 오지 않는게 습관
불이 꺼진 침대칸을 서성이다 난 내 물건들을 들고 미리봐둔 세면대가 있는 쪽으로 갔다
이 밤 시간들을 대비해서 집에서 미리 할것들을 준비해온 것이다
얼마후 안내원이(말이 안내원이지 제복 입은 카리스마..)와서 뭐라고 한참을 애기한다
어설프게 한국인 이라고 했다
몇번을 그렇게 당하고서 2시간 가량을 견디다가 난 다시 침대칸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 다음부턴 지옥같은 이불속 시간 꺠기...
아침녁의 창밖은 그야말로 과관 이었다
모두가 얼어붙어 있었다
보이는 창밖에도 모두가 눈 천지였다
한기가 침대칸에도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