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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러브송 < 12 >

나비 |2005.02.02 05:22
조회 3,146 |추천 0

12


“지금 대답해 주실래요?”

“아니에요. 내일 하도록 하죠.”

“좋아요. 그럼 오늘은 집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더 있는 것도 부담 되실 것 같고.”

“저도 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죠?”

“궁금한 게 있으시군요. 아주 좋은 현상인데요.”

“왜 제가 좋으세요?”

“음. 첫 느낌이요. 문희씨가 절 처음 바라보았던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더군요. 꼭 아는 사람을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문희씨를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으로 느꼈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말을 이으려다 멈칫했다. 알고 있는 사람을 보는 듯한 낯익은 느낌의 눈이라니. 그건 윤태씨로 오해했기 때문이 아닌가. 이 남자가 날 좋아하는 이유로는 적절치가 않은 것이다. 그런 이유라면 설명을 하고 포기 시켜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예?”

“아니에요.”

“그 날 아주 잠시 동안이었지만 문희씨 눈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어요. 이제 와서는 제 오해라는 생각도 들지만 절 좋아하는 듯 했죠. 그리고 난 당신을 유혹하고 말겠어, 라는 도전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했구요.”

“그것뿐인가요?”

“무슨 말씀이신지.”

“절 좋아하는 이유가 그것뿐이냐고요?”

“그것만은 아니지만 솔직히 첫 느낌이 너무 강했어요. 처음에 제 마음을 모두 뺏겨 버렸단 말입니다. 용준이를 따라 스키장에 간 것도 문희씨 때문이었어요.”

“채련이는요?”

“채련씨라뇨? 그 친구 분 얘기가 여기서 왜 나오죠?”

“일요일에 만나셨잖아요. 관심 있어서 만나신 것 아닌가요?”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시는 군요. 채련씨는 우리 형을 좋아하고 있어요. 절 만난 것이 아니라 우리 형을 만나기 위해 절 불러낸 거죠. 일요일에 형과 저 그리고 채련씨 셋이 만났습니다.”


기집애. 나한테는 한 마디 말도 없더니. 혹시 그 말을 하러 왔던 걸까?


“아직도 절 의심하는 건가요?”

“아니에요.”

“제 첫 느낌이 틀렸던 걸까요? 문희씨도 절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이요.”

“그건.”

“아, 그건 내일할 대답이죠. 오늘은 모셔다 드릴게요. 갑작스럽게 죄송했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그의 차에 올랐다. 그의 운전은 꽤 안정적인 것이었다. 도로에 차가 없어도 서두는 법이 없었고, 차선 변경하는 일도 드물었다.


“운전을 얌전하게 하시네요.”

“그렇게 보이나요? 사실 꽤 애쓰고 있었거든요. 문희씨 편하게 모실려구요.”

“늘 여자를 배려하시나봐요.”

“아닙니다. 저는 여자에게 잘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함부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문희씨니까 잘 해드리고 싶은 거죠.”

“제가 만약 내일 ‘노’ 라고 대답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무슨 이유로요?”


꽤나 자신이 있다는 걸까? 자신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그의 모습이 귀여웠다.


“이유야 어떻든 대답이 ‘노’ 라면요?”

“이유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은데요.”

“만약 용준씨라면요? 윤섭씨는 용준씨 형 아닌가요? 용준씨가 절 마음에 두고 있는데 이러시는 거 알려지면 곤란해지실 테죠.”

“곤란해질까요? 그 녀석은 문희씨 말고도 여자 많아요. 저는 문희씨 밖에 없지만.”

“그래서 더 곤란한 거죠. 바람둥이에게 여자를 뺏은 선수가 되는 거잖아요. 전 선수는 싫어요.”

“하하하. 용준이가 바람둥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군요?”

“그래도 용준씨 스타일이 좋아요. 여자를 편하게 해주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건 잠시죠. 자신의 여자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면 무섭게 변하는 녀석입니다. 저는 여럿 봤죠.”

“지금 용준씨 험담하는 건가요? 보기 좋지 않아요. 남자라면 험담은 하지 말아야죠.”

“제 점수가 깍이겠군요. 그만해야겠는데요. 사실 동생이 점찍어둔 여자를 뺏는 건 나쁜 행동이죠. 하지만 용준이가 아니라 아끼는 동생이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전 문희씨를 뺏어 왔을 거라구요.”

“그러니까 첫 느낌 때문이라는 거죠?”

“네?”

“지금 이런 행동도 동생에게 뺏고 싶은 마음도 첫 느낌 때문이라는 거 아닌가요?”

“예. 전 제 첫 느낌을 믿습니다.”


난 더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고픈 생각도 없었다. 첫 느낌 때문에 매달리는 남자를 즐겁게 받아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여기에요. 저 앞에 세워 주시면 되요.”

“402동 인가요? 접수 했습니다. 앞으로 자주 올 거니까요.”

“저 혹시 윤섭씨는 싫다고 하는 여자 스토킹하는 그런 남자는 아니죠?”

“모르죠. 문희씨라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구요.”

“데려다 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저, 문희씨!”

“예?”

“저 오늘은 손바닥에 입맞춤을 하고 가겠습니다.”

“네?”


이 남자 이렇게 안 봤는데 가지가지 한다.


“저 사실은 문희씨가 내일 ‘노’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럴 땐 깨끗하게 보내드릴 겁니다. 그게 남자다운 거겠죠. 오늘 손바닥 키스 허락해 주신다면 깨끗하게 물려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답이 ‘예스’이길 바라지 만요.”

“그래도 그건 좀······.”


윤섭씨는 내 손을 잡아 입술로 가져갔다. 물컹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그보다 보드랍다고 할까. 그는 그렇게 십여초 있었다. 손을 빼려 했지만 그가 놔주질 않았다.


“아, 팔 아프셨죠?”

“힘이 세시네요.”

“예. 힘으로는 문희씨를 이길 수 있을 만큼요. 하지만 힘을 쓰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 겁니다.”

“들어가겠어요.”

“좋은 꿈 꾸세요. 그리고 내일 뵙죠.”


나는 그의 차가 출발하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뒤돌아보진 않았다. 멀리 사라졌다고 생각되었을 때 뒤를 돌아 그가 떠난 곳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좋을까?’


그는 내게 너무 큰 고민을 안겨준 것이었다. 그날 밤 늦게까지 난 고민을 해야 했다. 고민을 하다 채련에게 승리의 문자를 보내줄까 했지만 밤도 늦은 것 같고, 너무 유치한 것 같아 참기로 했다. 내일 만나고 나서 천천히 말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자기 전 나는 내 대답을 결정했다.


***


다음날.


“윤섭씨! 잘 들어요. 솔직히 저는 윤섭씨를 좋아했던 게 아니에요. 윤섭씨 형을 좋아하고 있었어요.”

“예?”


그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3년 전 스키장에서 윤태씨를 만났죠. 아주 잠깐이요. 그리고 윤태씨를 좋아하게 됐어요. 3년 동안 내내요. 그 때 윤태씨는 자신이 윤섭이라고 했죠. 그래서 윤섭씨를 처음 봤을 때 윤태씨인 줄 착각했던 거예요. 처음 제 눈빛 이제 이해하시겠죠?”

“말도 안돼요. 어떻게 그럴 수가.”

“죄송합니다. 윤태씨에겐 비밀로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먼저 일어날게요.”

“안돼요. 문희씨! 문희씨!”


문희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를 빠져 나온다.


이것이 내 계획이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악!”


거리에 내 비명이 넘쳐나고 있었다.


“문희씨, 괜찮아요?”

“아니요. 아파요. 아! 아프다구요.”


그를 만난지 5분도 안되어 나는 길바닥에 제대로 넘어지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팔이 부러졌는지 너무나 아팠다.


“어디요? 팔이요?”

“예. 손목 있는 팔. 아악! 119, 119 불러요. 빨리요. 팔이 부러졌나봐요.”

“문희씨, 그러지 말고 일어날 수 있으면 택시를 타죠. 119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래요. 아악! 내 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려 버린 나. 현실의 나는 아주 치열하게 살고 있다.


***


응급실에서는 로맨스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면 아마도 드라마 속일 것이고. 깁스를 하는 동안 그는 밖에서 발을 동동 굴렸고, 그 사이 무서운 우리 엄마가 도착했다. 나도 연락하긴 싫었지만 알리지 않았다고 화내실 엄마를 생각해 그럴 수는 없었다.


“이 기집애야! 나이를 스물여섯을 먹고 길에서 넘어져? 너, 술 마셨지? 기집애가 술 먹고 돌아다니니 이런 일이 생기지.”

“아니야. 나 술 안 마셨어.”

“술 안 먹고 왜 넘어져, 넘어지길? 어휴, 술 냄새!”

“술 안마셨대두!”

“기력은 살았구나.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 보니까. 집에 가자, 얼른. 다 끝났대?”

“응. 저, 인사해. 윤섭씨.”

“안녕하세요? 이윤섭입니다.”

“누구신지?”


생전 남자를 데리고 온 적이 없었기에 엄마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아는 사람이야.”

“아는 사람이랑 왜 돌아다녀? 남자 친구야?”

“아니야. 그런 거.”

“아니긴. 애미한테 거짓말하고 남자를 만나고 돌아다녀? 이 기집애야! 이 남자랑 술 마셨지?”

“아니라니까.”

“그리고 당신! 댁도 그래. 같이 다니는 여자를 잘 데리고 다녀야지. 넘어지는 걸 그냥 봤어? 애 꼴이 이게 뭐요? 당신은 우리 애 남자 친구 자격 없으니 그렇게 알아요.”

“내 남자 친구 아니래두. 채련이 알지? 채련이 남자 친구야.”

“뭐?”


엄마는 채련이 남자친구라는 말에 더 놀랐다.


“에구, 에구. 내가 못 살아. 이 기집애야! 친구 남자를 뺏어? 어디 할 짓이 없어서.”


평소 같으면 등짝이라도 후려쳤을 엄마는 내 부상 상태를 보고 참는 듯 했다.


“어머님! 고정하세요. 저 문희씨 남자친구 맞습니다.”

“에? 몰라요. 몰라.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당신은 안돼요. 여자를 지켜줘야지 이게 뭐냐고. 문희야! 얼른 가자.”


엄마는 윤섭씨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휙 먼저 병원을 나가셨다.


“엄마!”


나도 윤섭씨에게는 목례만 하고 엄마를 따랐다.


‘좀 미안하기는 해두. 어쩔 수 없지, 뭐.’


내 등 뒤로 아쉬워하는 윤섭씨의 얼굴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 듯 해 마음이 아팠지만 그런 내 마음을 무시하고 엄마와 함께 택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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