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독재정권 때는 바쁜 길을 가려면 마음부터 조마조마했다.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불심검문이 곳곳에서 무차별적으로 행해졌기 때문이다.
전혀 예상치도 않은 상황에서 불심 검문에 걸려서 곤욕을 치러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도민증이라도 깜박 잊고 나갔다가는 꼼짝없이 경찰서로 직행해야 했고, 그것을 항의라도 했다가는 지하실 같은 데로 끌려가서 뒈지도록 얻어터지기도 했다.
내 친구 아버지도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이었다. 그 분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달려가다가 불심 검문에 걸려들었다. 서둘러 나서는 바람에 신분증을 챙기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사정이 그렇다는 것을 누누이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그 분은 관원이 경찰서로 연행하려고 차에 태우려고 하는 틈을 타서 냅다 튀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도로변의 화단을 뛰어 넘다가 발이 삐끗하는 바람에 넘어지고 말았다. 뒤쫓아 온 관원은 사정없이 그 분을 짓밟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관원은 개의치도 않고 폭력을 휘둘렀다.
친구 아버지는 경찰서로 끌려가서 수상한 사람으로 분류되어 정밀 조사를 받았다. 사흘동안 이 새끼 저 새끼 욕설을 들으며 걷어 채이기도 하고 쥐어 박히기도 하며 늘씬하게 시달린 끝에 겨우 풀려 날 수가 있었다.
어머니는 운명한지 이미 사흘이나 지난 뒤였다. 그 분이 도착했을 때는 어머니의 시신은 장지로 운구 되어 있었다. 장지로 달려가 보니 어머니는 이미 땅에 묻친 뒤였고 봉분이 쌓아 올려지고 있었다. 그분은 그 위에 쓰러져 흙을 움켜쥐며 통곡하였다.
우연잖게도 그 날밤 박정희는 궁정동 안가에서 원조교재 (여기에서 원조교제라고 하는 것은 술시중을 드는 것을 말함) 를 즐기다가 총을 맞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