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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율(礎律) 제 51화

피바다 |2005.03.13 21:54
조회 313 |추천 0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요새 뭐가 그리 일이 많은지 통 시간을 낼 수가 없더군요.

  글을 쓰다보니 잔인한 표현이 나오곤 하는데, 제 글의 배경 상 희석시킬 수 없어 그냥 올리겠습니다.혹시 어린 친구들도 드나들지 않을까 좀 염려스럽네요.

 

  잠시 자리를 비웠던 아화는 대신 초율의 상태를 훔쳐보던 유목에게서 그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하던 일을 당장에 멈추고 그녀는 집무실에 딸린 침실로 달려갔다. 한걸음에 달려간 아화는 숨을 몰아쉬며 반가운 얼굴을 하고 문을 열었는데, 확 끼쳐오는 적막한 공기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우고 말았다.

  늘 참을성있게 멀찌기 앉아 초율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던 환휴가 이미 초율의 곁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런데 그런 환휴 앞에서 상체를 일으켜 앉아있는 초율의 태도가 이상했다. 초율은 자신의 양 손을 눈 앞에서 들어올린 채 뚫어져라 자신의 두 손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화가 들어서는 것도 모르는 듯 그는 자신의 두 손바닥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이었다.

  " 환휴...."

  마침내, 초율은 나즈막히 목소리를 내었고, 아화는 분위기에 눌려 문 간에 서서 완전히 들어서지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 예, 전하. 하명하시옵소서."

  언제나처럼 환휴는 감정이 느껴지지않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고 여전히 두 손에만 몰두한 초율의 불안한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 천마가 가까이 있느냐?"

  " 전하의 천마를 이 기루에 준비해두었나이다."

  그제서야 초율은 집착하고 있던 두 손을 힘없이 늘어뜨렸다. 하지만 그는 결코 환휴나 아화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 끌고 오너라. 내가...갈 곳이 있다."

  환휴는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더니, 아화를 본 체 말고 그 옆을 지나 집무실을 빠져나갔고, 아화는 같은 자리에 붙박힌 듯 서 있을 뿐이었다.

  초율은 한참을 정적 속에서 버티었다. 잠 들어 있던 지난 열흘 동안 그의 몸과 마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 물을..가져오너라. 목이 매우 마르다."

  아화는 처음으로 초율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자, 정신이 번쩍 들어 급히 몸을 움직였다. 문 밖에 있던 기녀가 서둘러 물주전자와 잔을 챙겨오자, 초조하게 기다리던 아화는 문 앞에서 건네받고는 초율 곁으로 다가가 곁에 조심스레 앉았다.

  그녀가 잔에 물을 따르려고 주전자를 집어드는데, 초율이 주전자를 통째로 낚아채었다. 그는 온 몸의 세포가 굶주린 듯, 입 안으로 물을 부어넣었다. 입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지 못한 물이 그의 가면 위와 아래로 흘러나오며 이불 위로 떨어져내렸지만, 초율은 오랫동안 비를 맞지 못한 한 여름의 마른 나무뿌리처럼 허우적대며 물을 갈구할 뿐 신경쓰지도 않았다. 

  ".......챙그랑!"

  아화는 순간 소스라쳤다. 초율이 던져버린 자기로 만든 주전자가 벽에 부딪히며 조각났다. 초율은 그러면서 몸을 벌벌 떨었다. 그러더니 그는 마셨던 물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 우....우욱..."

  깨끗하게 비어있던 위에서 역류한 물이 솟구쳐 초율의 턱을 따라 흘러내리더니 몸을 뒤트는 그의 움직임에 따라 사방을 적시었다. 초율은 계속 구역질을 하며 물을 뱉어냈고,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마침 환휴가 들어서면서 그 광경을 보았다. 그 역시 꽤 놀란 얼굴이었다.

  아화는 도저히 침착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놀라서 벌어진 입을 손으로 틀어막아 비명을 누르고 있었다. 초율은 끔찍한 것이 몸에 달라붙은 듯 몸을 움직여 털어내기도 하고, 헛되이 팔을 휘둘러 무엇인가를 떼어내는 시늉도 하며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그 바람에 그의 손에 걸린 연분홍빛 비단 이불이 갈기갈기 찢어지면서 목화솜이 튀어올라 난장판이 되었다.

  아화가 더이상 상황을 감당할 수가 없어 엉거주춤 일어서려는데, 초율의 손이 방향을 바꾸어 그녀의 팔목을 거세게 잡아 끌었다. 그 바람에 그녀는 균형을 잃고 솜이 나뒹구는 찢긴 이불 위로 쓰러졌고 초율이 토해낸 축축한 물이 등과 팔에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순간, 초율의 손은 그녀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있었다. 아화는 그 순간에 초율의 눈이 보고 있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이야말로 그는 악마이자, 야수였다. 그녀는 피하지못할 죽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공포에 쌓였다.

  초율이 움찔 경련을 일으켰다. 그의 뒤에는 어느새 환휴가 서 있었다. 초율은 아화를 놓아준 뒤, 손을 뻗어 환휴가 등 뒤에 꽂은 침을 빼어내 바닥에 팽개쳤다. 그리고, 그는 왼손으로 자신의 정수리 부근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며 그곳을 나가버렸다. 환휴가 급히 뒤를 쫓았다.

 

 피빛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늪지대에서는 안개마저 비릿한 피냄새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짐승의 시체를 들고 서 있는 초율이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것은 두 개의 방향이 다른 기형의 뿔을 가진 포유류의 머리를 한 짐승이었다. 하지만, 털이 덮힌 꼬리와 날카롭고도 길게 자란 발톱이 아니라면 한 쌍의 팔과 한 쌍의 곧은 다리를 가진 사람의 몸뚱아리를 달고 있었다.

  초율은 혀를 빼문채, 숨이 끊어져 늘어진 그 생물의 등가죽을 한 손에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통을 잡더니 죽 찢어 머리를 몸과 분리했다. 그와 함께 아직 식지않은 뜨거운 피가 안개 속으로 뿜어져나갔다.  안개는 살아있는듯 그 피를 머금으며 꿈틀대기 시작했고 더욱 짙은 피냄새로 춤을 추는 것같았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안개의 저편에서 자극적인 피냄새에 흥분한 이계의 생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 크르르르...."

   " 키...키키...키키..."

 " 스..르륵...스륵..스륵...."

  각기 특유의 소리로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생물들은 모여들고 있었다. 차차 모여드는 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어느덧, 초율은 기형의 생물들에 온전히 포위되어버렸고, 다가 선 생물체들의 흥분만큼이나 초율의 숨소리도 야릇하게 거칠어지고 있었다.

  머뭇거리던 생물체들의 무리 속에서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그것을 신호로 피에 주린 짐승들은 일제히 초율을 향해 발톱을 세우고 몸을 날렸다. 땅 속을 뚫고, 나무 위에서, 하늘에서 온갖 괴물들이 초율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주받은 중간계-혼계(混界). 그곳은 바로 천계, 마계, 수라계의 중간에 위치해 있는 저주받은 땅 혼계였다. 저주받은 사랑으로 태어난 혼혈이 기형의 형태로 태어나 버려졌고, 역적의 오명으로 달아난 자들이 숨어살며 또 다시 흉측한 생물을 만들어냈다. 수라계에서조차 환멸하는 더러운 땅이었던 것이다.

  초율은 달려드는 괴물들을 찢고 그 피를 뒤집어쓰며 황홀감에 젖었다. 그는 무기가 아닌 두 손으로 찢는 느낌을 좋아했다. 특히 손에 젖어드는 피의 느낌을 원했다. 쉴 새없이 달려드는 괴물들은 초율의 살육의 연회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아침해가 떠올라 안개를 거둘때까지 그의 혼자만의 잔치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의 머릿 속에는 유모 능리의 기억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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