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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 어을우동 _ 32편 (역사 로맨스)

국화 |2005.03.29 13:34
조회 790 |추천 0

황사가 오는 듯합니다.

바람에 먼지가 뿌연 것이, 눈 앞을 가리고 있습니다.

다들 건강 조심하시고, 오늘도 멋진 하루 되세요!^^

홈피 따라잡기 위해 또다시 두편 연속으로 올리고 갑니다.

양해해주시고,  많은 보살핌 부탁드리는 국화입니다. 늘 감사합니다. 국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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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는 청풍의 넋두리에 실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 얼마나 참담한 노릇인가. 연이의 목청소리가 더욱 거세게 들려오자, 청풍이 연이에게 호통을 쳤다.

“네, 이년! 눈물을 거두지 못할까. 무슨 눈물이더냐. 초상이라도 났더냐? 어디 있느냐. 부인이 어디 있냐고 묻질 않았더냐.”

“아이고, 아씨! 아씨......! 그리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서방님께서 오셨는데, 이제야 오셨는데....... 이 일을,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아이고, 불쌍한 우리 아씨!......”

청풍이 마루에 주저앉고 말았다. 청풍의 넓은 어깨가 간혹 들썩거렸다. 흘러내지 못하는 눈물 때문인지, 청풍의 목소리가 쉬어있었다.

“내, 아직 그대와 못해본 것이 너무나 많거늘....... 그대에게 해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거늘. 그대가 그리 좋아하던 매화꽃도 같이 보지 못하였거늘....... 여름날 시원한 콩 냉국 한 사발도 같이 하지 못하였거늘. 내, 내, 그대에게 냉면을 먹이고 싶었거늘....... 그 냉면을 그리 잘하는 이를 알고 있거늘....... 그대가 그리 가고파하던 만폭대도 가야하거늘....... 진정, 진정 없단 말이요? 진정, 이제 없단 말이더이까....... 나를 이리 만들어 놓으시고, 어찌하여 무심히 가셨단 말이요. 왜 내게 말씀하시지 않았단 말이요....... 어찌, 어찌 숨을 쉬라고, 내게 이리도 큰 벌을 주시고 간단 말이요.......”

잠시 말을 끊던 청풍이 도포자락에서 작은 보따리를 꺼내었다. 청풍은 보따리를 풀며 또다시 흐느꼈다.

“이것 좀 보오. 이것 좀 보시란 말씀이요....... 그대가, 그대가 입맛이 달지 않다하여, 이것이 식을세라 품에 안고 달려왔거늘....... 그대가 맛나게 먹을 모습만을 상상하며, 그리 달려왔거늘.......”

보따리 안에는 소고기 편육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윤이 흐르는 떡과 조청도 들어있었다. 그것들을 내려다보던 청풍이 허겁지겁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믿지 않을 것이다. 내 직접 부인을 보아야겠다. 관을 열어라. 그렇지 않고서는 믿을 수가 없느니라. 모두가 거짓을 고하고 있음이야. 감히, 감히, 내가 누구라고 이런 흉측한 일을 꾸민 다더냐.”

연이가 화들짝 놀라며 청풍을 막아섰다. 두 팔을 옆으로 벌린 연이가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됩니다. 서방님! 아니 됩니다. 참으세요, 참으셔요. 서방님!”

“비켜라.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사지가 찢겨 죽고 싶지 않다면 썩 물러 꺼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청풍이 두려웠다. 연이는 청풍의 눈을 피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아니 되옵니다. 아니 됩니다요. 아니 됩니다. 상감마마! 전하! 차라리 쇤네를 죽여주시옵소서....... 이년도 죽여주시옵소서. 으흐흑!”

청풍이 갑작스레 모든 거동을 멈추었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듯하였다. 허옇게 질린 얼굴로, 청풍이 말을 더듬으며 입을 열었다.

“네, 네, 지금. 네, 지금 뭐라? 뭐라 하였더냐?”

“이년도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전하!”

청풍이 마른침을 삼키더니,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사방이 숙연했다. 언제 들어섰던지, 갑상이 마당에 서있었다. 성종이 연이를 향해 물었다.

“부인도, 부인도 알고 계셨더냐. 언제 아셨더냐....... 혹여, 혹여 그로 하여금, 그로 하여금 저리, 저리 되셨더냐? 아니라고 대답하라. 어서 아니라고 대답하라!”

연이가 계속하여 흐느끼며, 머리를 바닥에 박고 아뢰었다.

“서방님께서 마지막으로 다녀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아셨습니다요.”

성종이 눈을 질끈 감았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어찌 아셨단 말이냐. 혹여, 낯선 이가 들었더냐? 지체하지 말고 어서 대답하라.”

연이가 고심 끝에 입을 열려하자, 갑상이 무릎을 꿇고 먼저 입을 떼었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그것이 중요하옵니까? 그것이 그리 중요하옵나이까. 속히, 여길 벗어나주시옵소서. 돌아가신 아씨께서 더욱 곤경에 처하지 않도록 말이옵니다. 본체, 허약하신 분이었사옵니다. 앓고 계신 병마가 있었나보옵니다. 제대로 돌봐주는 이, 하나 없던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전하! 사대부의 아녀자가 아니옵니까? 청컨대, 더 이상, 더 이상, 아씨를....... 아씨를 더럽히지 마시옵소서.”

갑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람처럼 나타난 내금위무사가, 갑상의 목에 또다시 칼을 겨누었다. 갑상이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성종이 무사에게 명을 내리며 갑상을 쳐다보았다.

“검을 거두어라.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갑상이라 하옵니다.”

“보아하니, 옳은 양반은 아니구나. 천출이더냐. 아비가 누구더냐?”

“천출이 아비가 어디 있겠사옵니까. 아비와 어미를 떠난 지, 이미 오래되었사옵니다.”

성종은 잠시 먼 곳을 응시하다, 관을 숨기고 있는 병풍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연이를 향해 말했다. 성종은 목소리가 너무나 아팠다.

“술을 가져오너라. 잠시만, 잠시만 머물다 갈 것이니라. 조용히 갈 것이니라. 그러니, 술을 가져오너라. 내, 부인과 마지막 술 한 잔 정도는 하여야겠다. 갑상이라 그랬더냐. 그리하여도 되겠느냐? 연이야! 술을 가져오너라.”

성종은 병풍 앞에 자리한 상위로 술잔을 올렸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어우동과 석 잔을 비웠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산단 말이요. 내, 곧 진심을 보이려 하였건만. 왜 내게 진심을 털어놓을 기회도 아니 준 채, 떠나셨소이까. 내, 조금만 빨랐더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어떤 방도를 쓰더라도, 그대를 이리 보내진 않았을 텐데....... 이리 허무하게 보내진 않았을 터인데....... 야속한 사람, 어찌 이리도 매정하게 나를 떠났단 말이요.”

성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갓을 풀더니, 상투를 지탱하던 동곳을 빼어내었다. 금으로 된 동곳에는 왕을 상징하는 용(龍)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었다. 성종은 동곳을 상위에 내려놓았다. 사내가 동곳을 빼고 머리를 풀어 내리는 것은 잘못을 비는 의미였다. 용서를 구하고 있음이었다. 자신의 우둔하였던, 짧았던 생각으로 인하여, 상처를 받았을 어우동에게 잘못을 빌고 있음이었다.

“나와 함께 가시오. 나를 잊지 마시구려! 내, 꼭 그대를 찾아가리다. 고이고이 가슴에 넣어두었다가, 훗날 그대를 찾아가리다. 은애(恩愛) 하였소. 그대를 진정 은애(恩愛)하였소....... 그 마음 그대로 가져가리다. 그러니, 그러니 나를 잊지 마시구려. 그곳에서도 나를 잊지 마시구려. 아니요, 그도 아니요. 내가 이리도 나밖에 모르는구려. 그로 인하여 그대가 아팠을 것이 온데....... 나를 잊으시구려! 이 못난 사내를 잊어버리시구려. 내가 찾으리다. 그대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내가 또 그대를 찾으리다....... 내가, 이 몸이 찾으리다.......”

성종이 병풍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걸음을 내딛었다. 씩씩하였다. 방을 나서, 마당을 지나, 대문을 활짝 열고, 성종이 씩씩하게 걸음을 내딛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마지막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날 것이었다. 영영, 이별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성종의 얼굴 위로 때 아닌 한 방울의 눈물과 미소가 교차되었다. 세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또한 세상을 잃어버렸다.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실체가 없는 듯, 공허하기만 하였다.
연이가 대문을 걸어 빗장을 단단히 채웠다. 이미, 방안에서 원귀(寃鬼)인 마냥 여인네의 아프도록 시린 울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제대로 소리 한번 내어보지 못한 울음이, 하늘을 찢을 듯, 애통하고 비통하였다.

**

봄이 오는 소리는 아직 일렀건만, 봄에 이용하는 편전인, 만춘전에 성종이 들어 있었다. 사정전을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 만춘전도 늦추위를 피해갈 순 없었다. 불을 지피긴 하였으나, 이리도 추울까. 이리도 마음이 추울까. 정사를 살펴야하겠지만,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벌써 매화가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미색의 매화는 어우동의 곱던 살결과 같았고, 홍매화는 수줍어했던 자그마한 입술을 그립게 만들었다. 유달리 매화꽃을 그리워했던 어우동이 아니었던가. 그리도 보고파하던 매화가 지천으로 피었건만, 어우동의 넋이 궁 안의 매화에 와 닿았던지, 더욱 향긋하고, 어여뻐 보여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것들을 만지고, 보고 있자니, 더욱 가슴이 미어졌다. 성종이 경을 불러들였다. 경은 성종의 야행 시, 항상 뒤따르는 내금위무사였다. 내금위무사라고는 하나, 경에 대해 아는 이가 많지 않았다. 성종에게 경은 남다른 존재였다. 피를 나눈 형제와 같았다. 나이도 비슷하거니와 마음이 통하는 경이었다. 그리고 늘 말이 없는 경이었다. 묵묵히, 그림자처럼 성종을 보호하며 따랐다. 그래서 더욱 신임을 하는지도 몰랐다. 경도 천출태생이었다. 무과(武科)를 치르자면, 무예가 뛰어나기도 하여야겠지만, 무과출신의 질을 높이기 위해 무경(武經)시험까지 치러야했다. 그리고 양반자제들이 어려운 문과(文科)를 버리고 무과(武科)로 몰려옴을 경계하여 경서(經書)시험을 부과하기도 하였다.
허나, 경은 이도저도 아니었다. 무예가 출중하나, 태생이 그러했고, 학문도 뒤지지 않았으나,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신세였었다. 그런 경을 성종이 거둔 것이었다. 야행을 시작하며 알게 된 경이, 성종을 지킨 지도 몇 년이 흐르고 있었다. 경은 눈썰미도 빼어났다. 경은 성종의 심중을 잘 헤아리는 심복 중의 하나였다. 무엇보다 믿음이 가는 경이었다. 경이 어느새 나타났는지, 소리 없이 예를 갖추며 무릎을 꿇었다. 성종이 경을 흐뭇해하며 입을 열었다.

“경아! 매화가 한창이구나....... 그런데, 어찌하여 봄을 알리는 매화가 시리게만 다가오는 것이더냐.......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내놓고 볼 수가 없는 사람이었으니, 슬픔도 허락되지 않는구나. 속내를 열어놓고 그리워하지도 못하는구나....... 어찌, 어찌 이리도 아프단 말이더냐.......”

경이 고개를 숙였다. 성종은 그런 경을 바라보다 다시금 입을 열었다.

“누군가를 마음 깊이 흠모해 보았느냐? 건곤일색(乾坤一色)이라. 천지가 온통 검은 먹구름뿐이니, 눈앞이 캄캄하도록 그리워해보았느냐? 참으로 내가 희한하구나. 참으로 내가 한심스럽구나. 허나, 어찌하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들을 어찌 모으란 말이냐....... 준비하라고 이른 것들은 어찌하였더냐?”

유난히 매화를 자주 언급하던 어우동이었다. 그런 어우동을 위해, 경을 일러 매화나무 몇 그루를 준비하라 하였었다. 그러나 매화나무는 한순간, 손길 받을 주인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하찮은 식물이라고는 하나, 어우동을 생각하니 쉽사리 지나칠 수가 없었다. 경이 성종의 눈을 맞추지 아니하고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납시는 길목에 조심스레 묻어두었사옵니다. 눈길이 가지 않도록, 잘 심어두었으니,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되옵나이다.”

성종이 경을 쳐다보며 씁쓸히 꾸짖었다. 그것은 성종의 애석함이었다.

“너도 나쁜 놈이었구나. 이제 보니 너도, 참으로 나쁜 놈이었구나!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니 말이다. 나를 위해 내가 드는 길목에 심었다고는 하나, 쉽사리 보지 못하도록 배려를 하였으니....... 왜 그리했느냐? 혹여, 내가 마음을 잡지 못할까 그리하였더냐? 내, 내, 나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더냐. 휴우! 그러지 말았어야 했음이다. 그 사람이 떠난 지도 며칠이 지났구나.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라, 한시가 삼년과 같이 느껴지니, 쉽사리 날마저 가질 않으니....... 꽃이 핀 매화를 준비하여라. 필시, 돌봐주는 이도 없을 것이니라. 이리저리 내팽겨졌던 사람이 아니더냐. 연이가 있다고는 하나, 얼마나 힘이 들겠느냐. 경아! 나를 위해 네가 한 번 더 애를 써야겠구나. 그 사람의 무덤가에 가보아야겠다. 제대로 햇살이 들긴 하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애꿎은 차임을 당하지는 않는지, 내 한번 가보아야겠구나. 그리하면 쉽게 놓을 수 있을 것만 같구나. 그 사람이 그리도 봄을 기다리지 않았더냐. 그 사람을 닮은 매화꽃을 찾아와야 할 것이니라. 꽃을 피되, 색이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아야 할 것이며, 꽃잎이 두툼하되, 찢기거나 벌레가 먹지 않아야 할 것이며, 향이 짙되, 은은해야 할 것이니라. 알아들었느냐? 연이를 찾아라. 연이를 찾아보면 그 사람이 누운 곳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니라. 이리 조금만 더 시려하다 털고 일어날 것이니라. 꼭 그리 할 것이니라. 그 사람도 그리 바랄 것이니라........”

“예, 전하!”

“두 번 다시 야행을 나갈 수나 있을지 의문이구나. 길을 걸어도, 바람이 잔잔히 스치어도, 술을 마셔도, 뭇 사람들과 말을 섞어도 기억이 나질 않겠느냐. 여길 빠져나가, 한발이라도 내딛는다면, 발걸음을 떼기라도 한다면, 그 사람과의 추억들이 나를 휘어감을 것만 같구나. 나를 그 사람 곁으로 데려가 줄 것만 같구나. 야속한 사람 같으니라고, 박정한 사람 같으니라고....... 가련한 사람 같으니라고....... 아직 바람이 제법 차건만, 얼마나 땅속에서 떨고 있을 고........ 경아! 그도 아니다. 잠시 시간을 두자꾸나. 그 사람도 이리 흔들리는 나를 원치 않을 것이니라. 어디 추슬러보자꾸나. 추슬러보자꾸나. 그리 담담해지면, 그때, 그때 찾아보자꾸나.......”

성종이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깊은 한숨을 몰아쉰 성종이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경이 사라진 후였다. 그것마저도 성종을 울적하게 만들었다. 허허롭게 만들었다. 자신의 심정을 미리 간파하고 있질 않았던가. 지독히 쓸쓸하고, 지독히 괴로워하며, 지독히 그리워하니,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경이 자리를 비켜준 것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어우동을 병들게 만들었는지, 피폐하게 만들다 못해 결국엔 명줄을 끊어놓았는지, 혐오스러웠다. 형체가 보이기만 한다면, 단칼에 베어 죽이고 싶었다. 분명, 심병(心病)이었을 것이랴. 근심으로 인하여, 갖은 고심들로 인하여 그리 되었을 것이었다. 물론, 자신도 단단히 한 몫을 하였으리라. 그에까지 미치자, 성종이 결국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떨구었다. 거짓을 고하지는 않음아,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줄 수는 없지만, 거짓은 고하지 않겠노라, 그리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 기약 없는 약조들은 하지 않음아, 라며 끝끝내, 거짓은 고하지 않겠노라, 그리 뱉어내질 않았던가. 얼마나 충격이 심하였을까. 얼마나 심장이 쪼그라들었겠는가. 천변(天變)이었을 것이었다. 중전윤씨임에 분명하였다. 잡아떼긴 하였으나, 알고 있질 않았던가. 딱히 꼬집어 들추어내진 않았지만, 그리 비추질 않았던가. 성종이 주먹을 내리치며 입을 악다물었다. 병약한 어우동에게 그 말만을 전하지만 않았더라도, 죽기 전 어찌해볼 방도는 틀림없이 있었을 터였다. 틀림없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릴 수가 있었던 터였다.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마지막으로 한번은 더 담을 수가 있었을 것이었다. 어찌하여, 한 나라의 국모가 그리도 옹졸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이던가. 중전한씨(공혜왕후, 성종의 첫 번째 비(妃))는 어떠했는가. 손수, 성종이 아끼던 후궁에게 당의를 지어 내리질 않았던가. 성종은 저녁이 찾아옴과 동시 교태전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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