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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아내를 안아 주었습니다'

김시호 |2005.03.31 22:33
조회 3,713 |추천 0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우리 부부는 사랑이라는 믿음 하나로 딸 둘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의류제조 회사에서 재단사로 잔뼈가 굵은 나는  30대 후반에 의류 공장을 차렸습니다.

 

친지들에게 빚을 얻어 시작한 사업이지만, 열심히 일한 덕분에 제법 수출도 하면서 회사는

 

순탄하게 커 갔습니다.

 

 그러나 IMF가 터지면서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채를 쓰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자는 자꾸

 

불어나 감당하기 힘들었지요. 결국 부도가 나고 빚 독촉에 시달리다 몸을 숨겼습니다. 한 달 동안의

 

도피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공허함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잘 해결되었으니 집에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돌아와 보니 돈 되는건

 

모두 경매 처분되고 아내와 자식들은 부모님과 같이 있더군요. 물론 부노민 집도 팔고 단칸방을 얻어

 

나온 뒤 였습니다.눈물이 났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던 아내와 자식들을 오랜만에 보는 그리움의 눈물

 

그리고 가정을 지키지 못한 자책의 눈물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술에 빠져 지냈습니다. 다시 일어설 용기도 생기지 않고 그저 앞이 막막했습니다.

 

어느 날 밤,혼자 집 앞 공원벤치에 앉아 있는데 어느새 따라온 아내가 살며시 내 어깨를 감싸며 말하더

 

군요. "여보,이게 어디 당신만의 잘못인가요? 용기를 내서 보란듯이 일어서세요. 난 괜찮으니 아이들을

 

봐서라도 힘을 내세요."

 

 눈물이 핑 돌더군요. 나는 말없이 아내를 끌어안았습니다. 내 곁에 아내가 있는 한 어떤 고통과 시련

 

이 따른다 해도 이겨내리라. 이를 악물었습니다.

 

 마침 전에 거래하던 원단 회사 사장님이 외상으로 원단을 대 주며 다시 일어서는 데 발판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작은 규모의 공장을 돌리기 시작해 닥치는대로 일하며 재기의 몸부림을 쳤습니다

 

 3년쯤 지나 부모님과 함께 좀더 넓은 전세방으로 이사했고, 아이들도 아무 탈 없이 자라 주었습니다.

 

맞벌이 하면서도 나를 더 걱정하는 아내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 불행한 사고가 또 닥쳤습니다.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아내가 부품 더미에 깔려 척추를

 

크게 다친것 입니다. 연락을 받고 병원에 가 보니 아내는 실신해 있었습니다. 하반신 마비에 언어장애

 

라는 날벼락 같은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의사는 언어장애는 지속적인 물리치료를 하면 어느 정도 좋아

 

지겠지만 하반신은 포기하는 게 좋을 거라더군요. 모든 것을 다 잃은 기분이었습니다. 아내는 눈물만

 

흘리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정식 직원이 아니었기에 산재 보험도 못받고 6개월 만에 퇴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내는 휠체어에 의지해야 할 자신의 운명 때문인지 자꾸만 울었습니다. 그럴수록

 

나는 더 밝은 얼굴로 아내를 대했습니다.낮에는 부모님이, 밤에는 내가 아내를 돌보았습니다. 조금씩

 

아내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손으로 할수 있는 일은 뭐든 하려 애썼고, 어눌한 말투로 '고맙다'는 말

 

까지 해 주었습니다. 그런 아내를 보며 우리 가족은 웃음으로 되찾았습니다.

 

 가끔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눈물이 먼저 앞을 가립니다. 그래도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칠순의 부모님

 

이 건강하신 것도, 열심히 직장에 다니는 두 딸이 시집 밑천 걱정 말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가 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도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힘든 세파에 찌들고 병마와 싸우느라 거칠어진 아내의 손을 잡아 봅니다. 내가 힘들어 할때 아무 말

 

없이 버팀목이 돼 주던 아내..., 사고가 난 뒤 아직 아내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내가 아내를 꼭 안으며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말없이 눈물만 글썽이는 눈에서

 

아내의 마음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지금 나는 오랜만에 외출하는 아내를 위해 휠체어 바퀴를 닦고 있습니다. 내가 닦은 바퀴로 그 동안

 

아내가 견뎌 냈던 그 많은 고통과 아픔의 잔재들을 모두 밟고 지나가기를 기원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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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4월호 좋은생각에서 발췌하였고 서울 중랑구 에 사시는 이호춘 님의 글이었습니다.

 

ㅡ 이 내용이 게시판의 성격과 어울리지도 않음은 물론이요 제 나이 27 으로써 뭘알겠냐고 하시면

 

할말이 없습니다. 건방지다고 하시면 할말 또한 없습니다. 언젠가 80 노모가 서로 아껴주며 살아가는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시는 할아버지께서 그리고 투정 부리시는 모습도 ... 얼마나 이뻐

 

보이던지요.  제가 살아오며 겪은 저희 부모님 젊으실적에는 아버님이 주도를 나이 드시면서는

 

의지할곳이 없으신지 어머니 한테 기대시는 일이 많으시더군요 눈치 보시는 것도 .....

 

이혼하시고 싶은 이유 여러가지 있으실줄 압니다. 물론 정말 구타,도박,외도 등등등 을 필연적으로

 

제외하고 고민하시는 분께 이글을 올리고 싶군요. 위분의 당사자 처럼 힘든 일을 겪으시고 나서야

 

지금 옆에 계신분의 의미를 찾으시겠습니까 오늘 저는 처음으로 어머니께 사랑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저 어깨를 조금 씩 흐느끼시는게 고마웠나봅니다. 제가 오히려 더 죄송한데도요..

 

이 글 읽고 옆에 있는분 미운놈 떡하나 더 주신다는 생각으로 한번더 안아주시고 한번더 사랑하신다는

 

말씀 해보시는건 어떨지.... 죄송합니다...어린녀석이 이런글을 올려 마음 어지럽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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