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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의 달콤쌉싸름한 초콜렛(19) 누구나 비밀은 있다.

瓚禧 |2005.05.12 10:38
조회 2,462 |추천 0

 


(19) 누구나 비밀은 있다.


구름 한점 없는 청명한 가을 하늘이었다. 공기마저도 특별해 마치 행복한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곱게 화장을 하고 분홍색 투피스를 입은 신애가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



“정말 결혼하기는 딱 좋은 날씨네.”



신애는 한 강과 나란히 웨딩홀로 향했다. 대대적인 보수를 한다고 한 동안 막아두었던 천막은 거두어 져 있었고, 환한 크리스털 상제 리에가 건물 내부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둘은 2층 예식홀로 향했다. 황용우와 그의 부모님, 그리고 윤정의 부모님께서 앞에 나와 하객들을 맞고 있었다. 한 강이 한 걸음 먼저 황용우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와 주셨군요!”



황용우가 하얀색 웨딩 슈트를 입은 채 반갑게 한 강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런 한 강 뒤편으로 신애가 다가가 말했다.



“행복하세요!”

“그래야지요!”


신애의 말에 황용우가 쑥스러운 듯 빨개진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곧 식장이 정리되고 신애와 한 강은 신부 하객 측에 앉았다. 달콤함이 금방이라도 묻어나올 것 같은 노란색 등 아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신부가 입장하고 있었다. 청명한 피아노 소리가 식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동화 속 공주님과 같아 신애의 눈에 부러움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신애의 표정을 힐끔 쳐다보던 한 강이 반쯤 넋이 나간 그녀의 얼굴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부러워?”



그의 말에 신애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하얀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일생에 단 한번 있는 결혼식을 부러워하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평소 왈가닥 같던 윤정도 천상 여자처럼 보이게 하는 웨딩드레스에는 마법이 뿌려져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주례사가 끝나고 사회자가 용우에게 지꿋은 행동을 요구했다.



“신랑은 신부이름을 넣어 만세 삼창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윤정 만세, 윤정 만세, 윤정 만세.”



식장이 떠나가라 외치는 용우의 목소리에 아까 전 까지만 해도 눈물을 몽실 달고 있던 신애의 얼굴에 웃음이 감돌았다. 서운함과 기쁜 마음이 교차하는지 식을 진행 하는 내내 윤정의 표정은 중국의 변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시끌벅적한 식이 끝나고 사진 촬영을 위해 신애가 윤정에게 다가가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정말 축하해. 너무 예쁘다.”

“네 결혼식 때는 네가 더 예쁠걸?”



윤정이 신애의 등을 퍽- 소리가 나게 치며 말했다. 그런 윤정의 뒤에서 친척들 중 한분인 듯한 아주머니께서 말했다.



“신부가 너무 웃는다! 그러다 부모님 섭섭해 하시겠네!”



아주머니의 화통한 목소리가 커서 그런지 식장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일순 신부의 얼굴로 몰렸다. 그 시선에 윤정이 당황한 표정으로 손 사레를 치며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고 있었지만, 사실 눈물 콧물로 식을 마감하는 여느 신부와 달리 윤정이 티 나게 좋아하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신부와 신랑 친구들이 나란히 사진을 찍고, 혼잡스러운 식장을 빠져나와 한 강과 신애는 뷔페로 향해 간단히 배를 채웠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한 강이 연신 웨딩 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여기 괜찮은 것 같지 않아? 시설도 꽤 깔끔하고 말이야!”



한 강의 말에 옆에 앉아있던 할머니 한 분께서 웃으며 말했다.



“예비 신혼부부이신가 보군!”



할머니의 말씀에 신애는 빙긋 미소만 지었을 뿐이었다. 사실 한 강의 태도는 금방이라도 결혼할 예비 부부 같은 모습이었다. 여기 저기 자신이 치룰 식장을 보는 것처럼 꼼꼼히 살피는 꼴이 누가 봐도 영락없어 보였다.



“그만 좀 두리번대요!”

“우리도 여기서 결혼 할까?”



신애의 핀잔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한 강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그런 한 강의 모습에 신애가 못 말리다 는 표정으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때 짙은 붉은색 치마에 녹색 저고리를 입은 단아한 모습의 윤정이 같은 톤으로 색깔을 맞춘 용우와 나란히 들어왔다. 둘은 뷔페 안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신애가 넋 잃고 쳐다보고 있자, 한 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조만간 우리도 저렇게 결혼 하자고!”



한 강이 신애의 대답을 원한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대꾸는 해 오지 않았다. 그때 용우와 윤정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와 줘서 고맙습니다.”

“고맙기는..........당연히 와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용우와는 달리 윤정이 뽀루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의 말에 신애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는 괜찮나요?”

“네. 너무 괜찮아서 저희도 여기서 할까 합니다.”



신애의 의사를 묻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말하는 한 강을 신애가 밉지 않게 흘겨보고 있었다. 한 강의 말에 윤정이 신애의 등을 퍽- 소리 나게 때리며 말했다.



“내숭 그만 떨고 그만 너도 시집 가!”



윤정이 때린 등을 신애가 쓸어내리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때 윤정이 문득 할말이 생각났는지 신애의 귓가에 대고 소곤대었다.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그 둘을 쳐다보는 남자들의 시선은 무시한 채 낮은 목소리로 윤정이 신애에게 말했다.


“저번에 내가 용우씨랑 결혼 무른다고 했던 거 없던 일이다?”


윤정은 신애가 용우에게 말할까봐 걱정스러웠는지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비밀이라고 입 모양을 만들어 내었다. 궁금해 하는 용우를 향해 윤정이 혀를 짧게 쏙 내밀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가르쳐 줄 생각 없으니깐 말이야!”


그녀의 말에 용우가 피식 웃었다. 아마 용우도 아는 모양이었다. 저렇게 말해도 언젠가는 윤정 자신의 입으로 털어놓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시간이 촉박했는지, 집들이 때 보자는 말을 남기고 그 둘은 종종걸음 치며 사라졌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한 강과 나란히 집으로 향하는 길에 한 강이 궁금하다는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결혼하기 싫어?”



그의 말에 신애는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결혼하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여자 일생에 단 한번 조금이라도 더 이뻤을때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은 소망은 전국 노처녀들의 일관된 소망일 테니깐 말이었다.



“결혼하기 싫은 게 아니라, 아직 우리는 모르는 게 더 많잖아요.”

“더 알고 싶어서 연애하고 더 알고 싶어서 결혼 하는 거 아닌가?”



한 강이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난 연애의 연장선이 결혼이라고 생각해! 서로 더 알고 싶고 느끼고 싶으니깐 결혼 하는 게 아니겠어?”
“..........”



한 강의 말에 신애는 말이 없었다. 그의 말에 인정하면서도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까닭은 따로 있었다. 신애는 말없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창 밖 풍경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날 저녁 피곤한 몸을 커피 한잔으로 추스르고 있었다. 결혼식에 다녀온 것만으로도 온 몸이 나른하고 금방이라도 깊은 잠의 나락 속으로 빠져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신애는 한껏 웅크린 자세로 앉아 한 강의 말을 떠올렸다.



“결혼이라.........”



결혼이라는 두 단어를 입 모양으로 만들어 내 손가락으로 만져 보았다. 몇 개월 후면 31살이 아니던가? 노처녀의 반열에 낀지 한참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 강과 결혼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그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흉한 치부를 그에게 만큼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우현과 사귀는 10년 동안에도 그녀는 그 흉한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했었다. 부끄럽고 한 없이 수치스러웠다. 결혼을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까발려야 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신애는 머리를 절래 흔들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한 강에게 만큼은 그에게 만큼은 아름답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게 그녀의 마음이었다. 못되고, 안된 모습만 보여줬던 자신이 그런 모습까지 보여준다면. 그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광경이었다. 그때 딩동- 딩동- 연속해서 벨소리가 울렸다. 신애가 침대에 기대어 있던 몸을 일으켜 현관문으로 향했다. 현관문 너머로 신애의 엄마인 진숙이 위태롭게 서있었다. 며칠이나 지났다고 또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었을 게 뻔한 엄마의 모습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는 신애였다. 얼른 문을 열고, 진숙을 침대에 앉혔다. 말없이 텔레비전 받침대 밑에서 작은 구급상자를 꺼내었다. 유리병이 깨졌는지 진숙의 잠옷 여기저기에 날카로운 파편들이 박혀 있었다. 신애는 말없이 그 상처들을 치료해 나가기 시작했다. 진숙은 말이 없었다. 다만 가끔 쓰라린 듯 인상만 찌푸릴 뿐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인형 같은 진숙의 모습에 신애의 마음이 쓰라렸다. 애써 담담하게 신애가 상처를 치료해 나가며 말했다.



“은행원 그만두고 간호사로 취직해도 되겠어. 몇 번째야 이게........”

“면목 없다......”



신애의 말에 진숙이 발끝만 바라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런 진숙의 모습에 신애가 폭발하듯 소리쳤다.



“왜 그래! 아프면 아프다, 싫으면 싫다 뭔가 말을 좀 하라고! 고작 면목 없다가 다야? 그래? 이혼 하라고. 이렇게 뭐 하러 살아!”

“그래도 너 결혼 하는 것 까지는...........”

“내 핑계 대지마! 나 엄마 아빠 이혼해도 잘 살수 있어. 제발 자신 좀 돌보라고. 지금 이게 사람 사는 거야? 엄마 몸을 봐! 성한 곳이 한군데라도 있냐고!”



신애가 거칠게 진숙의 잠옷을 걷어 올리며 외쳤다. 신애의 말에 진숙은 그저 잔잔히 미소만 머금을 뿐이었다. 그녀의 태도에 신애는 잔뜩 격분해 있었다.



“맞설 수 없으면, 차라리 피해 버리던가! 나도 지긋 지긋해!”



그때, 쾅 소리와 함께 미처 잠그지 못한 현관문이 열리며 신애의 아버지인 민철이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보나마나 또 어디선가 술에 잔뜩 절었으리라. 신애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 꼴을 보고 싶지 않아 그동안 집에도 발걸음 하지 않았는데, 자신의 눈앞에서 또다시 악몽이 되 살아나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진숙을 죽일 듯 노려보는 민철을 신애는 바라보고만 있었다. 현관문을 넘어서자마자 오랫동안 듣지 않았던 민철의 욕지거리가 신애의 귓가를 후벼 파듯 스며들었다.



“이, 갈보 같은 계집! 네가 도망을 가? 쳇, 어림없지! 암 어림없어. 너 같은 계집 내가 버릇을 고쳐주마!”



긴 감색 티의 팔을 걷어 부치며 무섭게 민철이 진숙을 향해 다가섰다. 그런 민철을 보던 진숙이 두 눈을 질끈 감은채로 앉아있었다. 마치, 성난 범앞에서 자신의 생을 포기한다는 듯 진숙은 민철의 처분을 기다린다는 표정이었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그녀의 표정에 신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다가서 진숙의 뺨을 갈길 것 같던 민철을 향해 신애가 악다구니 쳤다.



“그만! 그만해요! 뭐하는 짓이에요!”



마귀의 손길처럼 진숙의 팔을 부여잡고 있던 민철의 손길을 뿌리치며 말했다. 그녀의 행동에 민철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피식 거렸다. 진숙을 내팽개치고 민철의 발걸음이 신애에게로 향했다. 짝-소리와 함께 강한 마찰음이 그녀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지 어미가 그러니깐 딸년 꼴도 저모양이지! 안 맞으면 정신들을 못 차린다니깐!”



민철이 중얼거리면 시선을 돌려 매질할 수 있는 도구를 찾았다. 그의 눈은 광기로 번뜩였다. 좋은 것을 찾았다는 듯 민철이 신애의 낡은 허리띠를 잡아 손에 감았다. 그러면서 꼳꼳히 서있는 신애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휙 소리와 함께 허리띠가 허공으로 뜨자 신애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내려쳐져야 할 허리띠의 아픔은 없었다. 대신 민철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넌 뭐야?”

“안녕하십니까?”



보고 싶지 않은 광경에 여전히 두 눈을 감은채로 서있던 신애의 촉각은 예민할 리만큼 섬세해 져 있었다. 그런 그녀의 귓가에 달콤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 반사적으로 신애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언제 왔는지 모를 한 강이 민철의 손에 감겨져 있는 허리띠를 잡은 채, 허리를 구십 도로 굽혀 인사하고 있었다. 그의 예의바른 모습이 민철이 잠시 주춤하다 싶더니 이내 언성을 높였다.



“누구기에 남의 집 가정 사에 참견이야! 참견이!”



한 강을 보고 민철이 주눅 든 자신을 보이고 싶지 않은지 더욱 큰 소리로 흥분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던 한 강이 덥석 그의 손을 잡고 그를 집에서 이끌어 내었다.



“약주한잔 하시지요.”



한 강에게 거의 끌려가다 시피 나가는 민철을 신애는 씁쓸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들켜버린 치욕감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신애는 한 강의 뒷모습을 원망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민철이 나간 것을 본 진숙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신애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보이지 않으려 입술을 꼭 깨물었다. 비릿한 피맛이 혀안에 맴돌았다. 진숙은 잔뜩 헝클어진 머리칼을 매만지더니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가?.....”



울음을 삼키며 이상한 목소리로 신애가 진숙의 등에 대고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진숙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답했다.



“집에 가 봐야지......”




잔뜩 쉬어버린 진숙의 목소리에 신애는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신애는 문득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발버둥 쳐도 나올 수 없다고 지레 짐작으로 자포자기 해 버린 엄마가 불쌍했다. 남에게는 쉬운 일이 자신의 일이 되면 한 없이 고통스러워 질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애는 끊임없이 진숙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작은 진숙의 등을 보는 순간 신애의 마음속에 뜨거운 것이 올라와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신애는 그대로 뛰어 진숙의 작은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미안해…….미안해…….엄마.”




그런 신애의 마음을 안다는 듯 진숙이 팔을 뒤로 돌려 신애의 등을 쓰다듬었다. 같은 여자이기에 이해 못하고, 같은 여자기이기에 이해하는 무언가가 그들 모녀사이에는 존재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을 닮아버린 신애가 진숙은 아프고 아렸다. 진숙은 차마 딸애를 볼 면목조차 서지 않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민철과 헤어지려 몇 번을 결심했어도 그를 끊지 못한 자신의 마음을 신애가 알아줬음 하고 있었다. 두 모녀는 말없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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