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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관계-(15) 이별하려던 날 일어난 일

瓚禧 |2005.07.08 10:10
조회 2,381 |추천 0

   

이상한 관계




 

(15) 이별하려던 날 일어난 일



여자는 상현의 전화를 끊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우두둑- 떨어질 것 만 같아 그렇게 고개를 올리고 있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오늘 7시까지 온다는 남자의 말에 짐짓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끊자마자 이 모양이라니. 이래서 오늘 잘 할 수 있을지가 더 걱정이었다. 여자가 허술하면 분명 남자가 눈치를 챌 것이고, 그러면 한낱 실 같은 희망으로 살아가는 주리에게 상처를 주는 일임을 여자는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주리가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상현을 가지려 한 것이었다면, 영효는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상현을 되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진심이었다. 여자는 여자가 더 잘 알고, 남자는 남자가 더 잘 아는 법이었다. 적어도 주리는 영효 앞에서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상현과의 행복을 바라는 주리에게 영효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녀의 행복을 짓밟을 수는 없었다.


“박영효. 왜 울고 그래. 원래 이렇게 될 것이었잖아. 뭐. 상현이랑 바람이라도 필요량이었어? 왜 울고 그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물은 연신 흘러 내렸다. 이렇게 해서는 오늘 연극이고 뭐고 상현의 넓은 등에 매달려 울 것만 같았다. 영효는 눈물을 꾹꾹 눌러 담고, 눈언저리를 매 만졌다. 상현이 오기까지 아직 세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그 세 시간 안에 영효는 가장 잔인한 이별을 상현에게 선물해야 했다.


[오늘 하루만 남자친구 노릇 해 주면 안돼?]


울먹인 듯한 목소리였지만, 영효는 분명 남자에게 그렇게 말해였다. 주혁은 영효의 말에 연습도 내 팽개치고 그녀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사랑도 타이밍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그녀가 자신을 원하고 있었다. 주혁은 자꾸만 터져 나오는 웃음을 밀어 넣으며 백미러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오늘 새로 산 화이트에 핑크색 박음질이 되어있는 남방을 입고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패션쇼 준비로 바꾼 카키색 머리도 무척이나 잘 어울려 보였다.


“기다려라! 못난이 인형!”


남자는 속도를 좀 더 올렸다. 여자의 집 앞에서 주혁은 옷을 매만졌다. 딩동- 벨을 누르자, 누구냐는 소리도 없이 문이 열리면서 간만에 보는 여자가 초췌한 얼굴로 서 있었다. 야윈 여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당장이라도 ‘무슨 일 있는 거야?’ 물어 보고 싶었지만, 여자의 얼굴에는 어떠한 질문도 사절한다는 표정이었기에 남자는 입을 다물고 안으로 들어갔다. 술에 취한 그녀를 주민등록증에 적힌 주소를 보며 집에 데려다 준적은 있지만, 여자가 이렇게 초대해 준 것은 처음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영효의 집은 천상 여자의 집이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 환한 원목으로 만든 DIY가구들. 집안 곳곳에 있는 십자수 소품들. 남자는 구두를 곱게 벗어 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곰돌이가 수 놓여져 있는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저기 앉아서 기다려. 조금 있으면 남자 한명이 올 거야. 그 사람 앞에서 내 남자친구인척만 해 주면돼. 어려운 것은 아니야. 그냥 그것만 해 주면 돼.”


여자는 빠르게 주혁에게 요구사항을 말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불안함을 나타내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여자는 원하지 않았다. 남자에게서 어떤 질문도. 온몸으로 거부감을 들어내는 여자에게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라보는 일 뿐이었다. 그렇게 초조한 시간이 흐르고, 벨이 울렸다. 정확히 두 번. 그 두 번 울린 벨소리에 주혁과 영효의 고개가 거의 같은 속도로 현관을 향했다. 떨림이 있는 눈동자로, 여자가 잠깐 주혁을 쳐다 보다 주방용 타월에 손을 닦고 현관으로 향했다. 영효의 뒤편으로 주혁이 다가섰다. 현관문이 열리고 빼꼼히 열린 현관문 사이로, 주혁과 영효 그리고 상현이 마주 섰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매형!”

“처남........”


이라고 외쳤다. 서로 마주보며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것에 대해 의아해 하고 있을 때, 현관문 밖에 서 있던 상현의 눈빛이 이상하게 변했다. 섬뜩한 상현의 눈빛에 영효는 불안해 졌다. 상현과 사귀면서 상현의 저런 눈빛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상현의 여동생인 상주가 동네 불량배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 했을 때, 그 모습을 길 가다 본 상현의 눈빛이 지금과 똑 같았다. 매서운 눈빛. 관용과 이해 따위는 전혀 없는 듯한 눈빛.


“누나가 보냈나? 나 감시하라고? 이제 별 짓 까지 다 하는군.”

“매형, 그게 아니라…….”

“됐어! 변명 따위는. 어차피 난 누나의 인형일 뿐이니깐. 감시가 붙는 것도 당연해. 내가 깜박했었군. 처남 누나가 무서운 여자라는 사실을 말이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주혁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상현은 저 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지금 무슨 소리야? 왜 매형이 너희 집에 온 거지?”


첩첩 산중을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여자는 난감한 표정으로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이 사람에게 무어라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일까? 네 매형과 바람피운 여자? 아니면 네 매형의 전 애인? 영효가 적당한 표현을 찾는 사이, 주혁이 열린 현관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아 버렸다. 그리고 멀뚱히 서 있는 영효의 팔을 부여잡고 소파에 던지듯 앉혔다. 영효 아래에 앉아 그녀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말해봐.”


낮은 목소리. 분명 화가 머리끝까지 치 밀어 올랐을 때 내 뱉는 말일 것이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여자도 당황스러웠다. 주혁이 주리의 동생이라니. 상한과의 관계를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묘한 감정이 다시 영효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말해 보라고!”


감정이 폭발한 남자가 거칠게 영효의 작은 어깨를 흔들었다. 주혁이 흔드는 대로 몸을 맡기던 여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상현이는 내 남자친구였어. 우린 서로 결혼하기로 한 사이었고.”

“뭐? 그럼 누나가 말했던 매형의 전 여자가 너야?”

주혁의 말에 영효가 포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현과의 결혼은 집안에서도 반대가 심했었다. 네가 뭐가 모자라서 그런 결혼을 하냐고 호통 치는 부모님과 절대 포기 못한다고 했던 누나. 나중에 알았다. 매형과 결혼할 여자가 있었던 것을 누나가 빚을 갚아 주는 조건으로 매형과 계약 결혼을 한 것을.


‘왜 그런 결혼을 해. 다른 사람 눈에 피 눈물 나게 만들면서 까지. 그거 이기적인 거 아니야?’


묻는 주혁에게 주리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절박했다고, 상현이 없다면 죽을 만큼 절박해서 다른 사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벌 받을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던 주혁의 말이 이루어 진 것일까? 주혁은 누나가 가여워 졌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분명 상처를 더 받은 사람은 영효일 것인데 주혁은 누나의 걱정이 더 먼저 떠올랐다.


“근데 왜 매형이 여기 와 있는 거고, 넌 왜 남자친구 노릇 해달라고 부탁한 거야?”


영효는 남자의 말에 순간 바닥으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어버렸음 좋겠다는 타이밍이 딱 지금이었다. 영효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에게 만큼은 질책을 받고 싶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앞에 있는 남자에게 만큼은, 세상 어느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질책을 받아도 남자에게 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다른 사람의 질책을 받기도 전에 남자의 질책을 먼저 받게 될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말해봐. 왜 그런 거냐니깐.”

“그, 그게..........”

“야! 나 성격 급하거든? 빨리 말 안 해!”


남자의 말에 여자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제발 꿈이어라. 제발. 제발.


“상현이랑 만났어. 하지만 오해 하지는 마. 그런 이상한 관계 아니야. 그냥 가끔 밥 같이 먹었던 것. 딱 거기 까지였어.”

“뭐? 매형이랑 만났었다고?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래. 알겠어. 억울한 감정. 그거 이해 못할 만큼 나 그렇게 속 좁은 놈 아니야!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결혼 안했을 때는 몰라도, 결혼한 남자랑 그런 거면 그거 불륜이잖아.”


이럴 줄 알았다. 여자는 예상 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주혁의 입 밖으로 이런 말이 튀어 나오니 가슴이 아려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이럴 줄은 몰랐다. 상현이 오면 남자친구라고 주혁을 소개 시켜주고, 상현의 성격상 영효가 그렇게 나오면 다시는 찾지 않을 성격이니깐.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 꺼내지 않고 이별하는 방법을 영효는 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상현이 오해한 채로 가 버리고, 주혁이 지금 자신의 앞에서 불륜 운운할 이런 광경은 아니었다. 영효는 무슨 변명을 하더라도 남자의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비친 남자는 이미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상태였다. 남자의 싸늘한 눈빛. 여자는 눈을 다시 감아버렸다.


‘이건, 이건 아니야.’


남자가 현관문을 열고 집 안에서 사라질 때 까지 여자는 눈을 뜰 수 없었다.

 상현은 무슨 정신으로 집으로 도착한 것인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안방 문을 벌컥 열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주리를 찾은 것은.


“무슨 일이예요?”


방 안에 딸려 있는 욕실에서 주리가 나오며 문 앞에 장승처럼 서 있는 상현을 향해 물었다. 남자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여우같은 계집의 뺨을 사정없이 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빠르게 여자를 향해 걸어갔다.


“지금 나에게 이성 같은 것은 존재 하지 않아. 난 지금 짐승이야. 분명히 말하지만! 난 오늘 짐승이야. 그러니깐 사실대로 말해!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널 죽여 버릴 것만 같으니깐!”


상현의 눈빛이 이글거리며 타고 있었다. 무섭도록 차가운 말투에 주리는 일이 틀어진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이런 위험 요소도 없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여자는 일단 방 안 구석에 놓여진 러브 탁자 의자에 앉았다. 남자와 긴 대화가 필요할 것만 같았다.


“앉아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주리의 말에 상현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앉으며 넥타이를 신경질적으로 풀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주리를 향하고 있었고, 그 시선에는 다분히 적대적인 감정이 들어나 있었다. 남자의 매섭고도 차가운 시선에 여자는 팔에 오돌 도돌 살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그의 냉기가 몸속으로 스며드는 느낌.


“내가 영효를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가 궁금한 거예요?”


주리의 말에 상현은 그녀를 노려보기만 할뿐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말할게요. 그래요. 나 영효 만났어요. 만나서 빌었어요. 당신 다시는 만나지 말아 달라고. 진심으로 그녀에게 부탁했어요...........”

“부타악? 당신의 부탁이라는 것은 동생을 거기다 매복시켜 놓는 건가 보지? 당신이 무서운 여자라는 것을 내가 간과 했어. 그렇지. 당신의 추잡스러운 눈에는 불륜으로 보여 그렇게 했겠지.”


남자가 잔뜩 비꼬인 말투로 그녀를 조롱했다. 남자의 말을 여자는 이해 할 수 없었다. 동생을 매복 시키다니. 그럼 주혁이 영효의 집에 갔단 말인가? 분명 주리는 자신 이외 그 누구에게도 상현의 불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럴 여력도 없었거니와,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기운조차 없었던 그녀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영효의 집에 주혁이 있었다는 거예요?”

“또! 또! 또! 제발 그만해! 추악하니깐.”

“정, 정말 모르는 일이예요. 정말이에요.”

“모른다고?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안다는 말이야!”


무언가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져 버렸다. 상현은 더 이상 그녀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있었다. 여자는 절망스러운 얼굴로 남자를 올려다보았지만, 남자는 여자와 한 공간에 있는 것조차 싫다는 표정으로 방을 나가 버렸다. 쾅- 닫힌 방문이 그가 여자를 향해 조금 열어 놓은 문마저 닫아버린 것 같아 여자는 절망스러운 얼굴로 망연자실 굳게 닫힌 방문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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