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와줬구나...."
하면서 나를 반겨주는 세강이다. 그럼 안나올 줄 알았나...? 핸드폰을 보니.. 내가 10분을 늦긴 했다.
" 오래.. 기다렸어...?"
예의상 물어봤다.. 그런데 이 아이...
" 음.. 1시간 전부터 기다렸어..."
뭐...? 약속 시간은 3신데.. 왠 1시간 전부터...?
" 왜...? 우리 3시 약속 아니었어...?"
" 그냥.. 내가 그러고 싶었어.. 먼저 나와서 기다리면.. 뭐랄까..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다는 설레임..
기대.. 그런게 난 좋아.. "
이 아이.. 말하는 거.. 왠지 좀 느끼하다.. 어쨌든..1시간 먼저 와 기다렸든.. 난 약속시간에서 10분밖에
늦지 않았으니..
그런데... 세강이가 자기 볼을 가리키며.. 나를 쳐다본다.. 뭐.. 내 얼굴에 뭐 묻었나...?
나는 몸을 홱~ 돌려서 얼른 손거울을 꺼내 보았다. 집에 나서기 전에 잠깐.. 현관에 있는 거울을
보고 나오긴 했지만.. 뭐..묻진 않았는데....
" 그거 뭐야....?"
하면서 자꾸 볼을 가리킨다...
" 뭐.. 말하는건데...?"
" 그.. 분홍빛깔.... 그거..."
아.. 볼터치~ 오늘 좀 진하게 됐나...? 음.. 좀 그렇네.. -_ -;;;
" 이거...? 볼 화장한거야.. "
" 이뻐..."
하면서 배시시 웃는 세강이다. 나는 민망하기도 하고.. 이 아이의 말투며..사고방식..너무나도 생소해
같이 있기가 좀 뻘쭘했다..
" 난 어때...?"
하면서 난데없이 물어보는 그 아이다.
" 뭐가...?"
" 나 오늘 너 만난다고.. 안입던 빨간 니트 입었는데.. 서영이한테 물어보니까.. 니가 빨강색을 좋아한다
길래...."
벌써 사전조사까지 마친것인가....? 나 때문에 빨강색 니트를 입고 왔다고는 했지만.. 왠지 그 아이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순간 예전 생각이 났다. 고 3 때 야간자율학습을 끝나고 정류장에 내려갔더니...
현욱이가 빨간모자.. 빨간색 티 , 빨간색 반바지.. 빨간색 운동화..를 입고와 나는 물론이고 내 친구들
까지 깜짝 놀래켰는데.. 그때.. 서영이는 현욱이더러 고추장에 찍은 멸치라고 했다.. 너무 마른 체격에..
온통 빨강색으로 치장을 해왔다고.. 어쨌거나.. 날 위해 그렇게 찾아온 현욱이가 너무 이뻐.. 다른 사람
이야 보든말든.. 볼에 뽀뽀를 해줬었는데..
" 하...은아....?"
오마나.. 내가 잠시 헛생각을 하고 있었다....
" 무슨..생각을 그렇게 해...? 나 오늘 별로야....?"
아.. 맞다.. 빨강색 이야기 하다가.. 내가 잠시 헛생각을 한거구나....
" 아니야.. 잘 어울려 보여...."
" 고마워.. 근데 오늘 날씨 너무 덥다.. 우리 시원한 거 마시러 갈래...?"
우린 커피숍에 들어가기로 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는 체리콕을
시키고.. 그 아이는 레모네이드를 시켰다..
" 이렇게 같이 있다니.. 꿈만 같아...."
또 그 아이.. 느끼한 말투가 시작된다.. 마치 그 아이를 보고 있자니.. 연극이나.. 영화에서 꼭 대본에
짜여진 그런 말투다. 곧 주문한 체리콕과 레모네이드가 나왔다..
세강이는 레모네이드를 한모금 마시더니...
" 이야~ 시원하니 정말 맛있다.. 하은이 너도 레모네이드 마셔볼래...?"
난 사실 레몬이나.. 신 음식 종류는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 아니.. 난 레모네이드 별로 안좋아해...."
" 아.. 그렇구나.. 아.. 너 혹시 사진 있어...?"
사진.. 맞아.. 지난번에 내가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현욱이 사진 2장을 몽땅 잃어버렸었지... 그 후로..
친척분이 지갑을 선물로 해 주셔서 조그만 빨강색 반지갑을 가지고 있다.. 몇개 없다던 현욱이의,,,
사진을 내 실수로 잃어버려.. 나는 그 뒤로 차마 또 달란 소리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대학교 오면서
학과사무실에 내라고 해서.. 새로 사진을 찍었던 모양이다. 그리곤.. 선주랑 윤정이에게도 그 사진을
하나씩 주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난 슬그머니 윤정이에게.. 그 사진을 달라고 했었다.. 윤정이도 별 말
없이.. 주었었는데..
" 지갑 좀 구경해도 되...?"
뜬금없이 지갑을 구경하잰다. 아.. 현욱이 사진 있는데.. 뭐.. 깊숙히 넣어두긴 했지만.. 세강이가...
거기까지 손이 미친다면....
" 그다지 볼 거 없어.. 돈 밖에 안들었거든.. 니 지갑은 뭐.. 두둑히 든것 같다..? 두꺼운데...?"
그러자 자기 지갑을 열더니.. 친구들 사진이며.. 자기 사진을 보여준다.. 매우 어렸을 적 사진도...
갖고 다니고 있었다.. 그 사진들 속에는 영기 사진이며.. 서영이가 맘에 들어하던 그 남자애의 사진도
들어있었다...
" 아.. 얘 이름 뭐야...?"
나는 서영이가 맘에 들어하던 그 아이 사진을 빼서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세강이는 왠지.. 좀
경계시하는 눈빛으로
" 이정우... 그건 왜...?"
" 아.. 서영이가 얘 맘에 들어한다해서.. 연결 시켜달라하대...?"
" 서영이가....?"
그제야.. 씩.. 웃으면서.. 정우라는 애한테 말해보겠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도 그 아이는 쉴 새 없이..
나에게 질문을 쏟아부었다.. 진실대로.. 아는 것만큼.. 대답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이 아이..
나에 대해서 뭐가 그렇게 궁금한것이 많은지.. 정말.. 이 아이가 더 궁금해진다..
" 술을 잘 마시나봐....?"
갑자기 뜬금없이 그렇게 물어본다...
" 술...? 아니.. 갑자기 왜 그런걸 물어봐...?"
" 지난주에도 일주일에 2번이나 우리 가게에 왔었자나.. 첨엔 니가 술꾼인가 싶었는데..."
하면서.. 슬쩍 웃는다. 술꾼은 서영이지...내가 아니라구.. 난 이제 겨우 술에 입을 대기 시작했는데뭐..
" 아.. 그런데 어떡하지...?"
" 왜...?"
" 너 그때 친구 2명이랑 우리 가게 온적 있지...?"
" 응.. "
" 정우가.. 그때.. 얼굴 하얀 애.. 볼 통통하고.. 걔 맘에 들어했었는데..."
" 아.. 미영이~"
" 이름이 미영이야...? 내가 사실은.. 그때 손님이 몇 없어서.. 너네 쪽 테이블 자꾸 쳐다봤었거든..."
" 알고 있었어...."
" 그래..? 티가 많이 났나부네...? 내가 정우랑 영기한테 너 맘에 든다고 하니까.. 영기가 펄쩍 뛰더라?
정우는 옆에 있는 그 미영이란 애가 훨씬 낫다고 하고..."
" 미영이가 이쁘긴 하지.. 피부도 좋고.. 착해...."
" 아니.. 내 눈엔 너만 보였어...."
아.. 이 또 뻘쭘한 분위기.. 이 아이는 도통 뻘쭘함을 모르는 것 같다.. 술에 취한 것도 아니고.. 어쩜..
이런 낯 뜨거운 말을.. 술술..쉽게도 잘 하는지...
" 너도 나한테 궁금한 것 있으면 물어봐...."
궁금한것..? 그다지.. 궁금한 건 없는데...... 아...
" 넌 그럼 무슨 색깔 좋아하는데...?"
" 난.. 연두색이랑 녹색을 좋아해..."
특이한 색을 좋아하는구나....
" 왜...?"
왜라고 물어보는 나도 특이하다....
" 맘이 따뜻해져.. 봄이면.. 들에서나.. 나무에서나.. 다들 초록빛깔 새순이 돋자나.. 새 생명이 움트는..
그 작고 고귀한 생명이.. 얼마나 위대해...."
아무래도 이 아이는 나랑 코드가 달라도 너무 다른 것 같다.. 그치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세강이가
더욱 궁금해져가는 것만은 사실이다.
커피숍을 나왔다..
"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내 의견을 먼저 물어보는 세강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 그럼.. 우리 노래 부르러 갈래...?"
난 또 예전에 현욱이랑 오락실 노래방을 갔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절대 다른 남자들 앞에서.. 노래 ..
부르지 말라고 장난섞인 경고를 했었었는데...
" 가기..싫어...?"
또..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나에게 재차 물어보는 세강이다...
" 아니.. 가자.... 가...."
그런데 이번 오락실 노래방에 있는 기계는 좀 달랐다. 두 사람정도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인데...
둘이서 해드폰을 끼고 노래를 부르는 그런 곳이었다. 왠지.. 같이 있는 공간이 더 좁아지다 보니...
몸이 절로 움찟..해졌다. 손수 내 머리위로 해드폰을 끼워주었다.. 그러더니.. 동전을 넣고는...
번호를 누른다.. 유리상자의 " 사랑해도 될까요..."다....
난 그다지 유리상자 노래는 좋아하지 않는다. 발라드.. 랩.. 댄스.. 다 좋아하지만.. 발라드 중에서도
그냥 조용한 발라드보단.. 락발라드 종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아이는.. 내 앞에서...
그 노래를 정성껏.. 불러주었다... 그래도 현욱이만 하지 못한 노래실력이다. 노래가 끝나고..나는..
박수를 쳐 주었다...
" 하은이 너는 어떤 노래 좋아해...?"
" 나...? 그냥 다 좋아해..."
" 니가 좋아하는 노래로 불러줄께... 말해봐...."
흠.. 내가 좋아하는 노래...? 싸이의 " 끝" , MC 스나이퍼 "BK LOVE", DJ DOC의 "비애.." 정도...?
이런 노래들을 나열하자.. 이 아이..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이 아인.. 랩엔 약한가 보다..
" 음.. 그럼 조성모 노래 불러줘.. 사랑할 때 버려야 할 몇가지 "
" 아.. 그 노래..? 2번인가 들어봤는데.. ....."
내 표정을 살짝 살피더니.. 버튼을 누른다..
" 오늘은 그냥 못 불러도 이해해줘.. 나중에 열심히 연습해서 더 잘 불러줄께..."
하면서.. 그 아이는 노래를 시작했다.. 처음 부분은 좀 떨리고 어색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잘 불렀다..
그런데 클라이막스를 치닫을 때는.. 정말.. 음정..박자 완전 무시하는 자기 맘대로 노래를 불러댔다..
그래도 열심히 부르는 그 모습이 가상했다..
어느덧.. 저녁까지 먹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자..집에 갈 시간이 다가왔다.. 내가 집에 가겠다고 하자..
정류장으로 바래다 준다.
" 오늘.. 어떻게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 재미있었어.. 즐거웠구..."
" 정말..? 다행이다.. 난 내심 조마조마 했는데.. 괜히 만났다.. 생각 들어할까봐..니가..."
이 아이..조금은 소심하기도 하다...
" 아니야.. 그런 걱정 하지마.. 나 재밌었어..."
그때 쩌만치 집으로 가는 버스가 왔다..
" 나 이제 집에 가 볼께.. 안녕~"
하면서 버스에 올라탔다.. 그 아이.. 뒤에서 손을 흔들어 준다.. 나는 맨 뒷좌석으로 올라앉고는...
창밖을 내다봤다.. 그런데 그 아이 세강이가 보이질 않았다.. 뭐야.. 인사하기도 전에 먼저 가버린건가?
그런데..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를 했다.. 깜짝이야.. 버스에서 구를 뻔했네.. 코 다치면 안되는데...
이게 얼마 짜리고.. 얼마나 모진 고통속에서 참아낸 결과물인데.. 그런데.. 버스 앞문이 열리면서...
세강이가 버스에 올라탔다.. 뭐야...? 이 버스를 왜 타....? 자기집 방향이랑 반대방향인데....
요금을 내고는.. 내 쪽으로 천천히 웃으면서 다가오는 그 아이.. 내 옆자리에 털썩.. 앉는다.....
나는 놀래서는.. 그 아이를 계속 쳐다봤고.. 그 아이는.. 계속 앞만. 보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뭐야.. 진짜... 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