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아버진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나셔서 어릴적부터 노력과 책임감으로 커오신 분입니다.
대학은 안나오셨지만, 5대고등학교중 하나인 대전 고등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신 분입니다. (아버지 또래들에게 물어보시면 알겁니다. 옛날 5대 고등학교가 어디냐고 말입니다. 참고로 저희 아버진 58년생이십니다.) 전에 대학은 왜 안나오셨냐고 물어보니, 당시에 할아버지가 집안 재산 모두 탕진하고, 등록금조차 없어 가지도 못했다시더군여. 글구 연세대 가면 장학금 받으며 생활도 하고, 등록금도 내고 하실수 있으셨다는데 쪽팔려서 못가셨 답니다. 아버지 친구분들은 전부 서울대 갔는데 겨우 연세대엔 가기 쪽팔리셨다구여(전... 솔직히 동감 못합니다ㅡㅡㅋ 제가 가고싶었던 1순위는 고려대지만... 수능공부도 하지도 않았고, 도저히 인문계 애들이랑 수능으로 맞짱까는건 자신이 없어서 1차수시로 전문대 합격해버리고, 베이스 뜯고 있으니까여;;) 그런 아버지께선 국세청 본관에서 거의 20년간 근무하셧습니다. 하지만, 당시 일산에 땅을 사서 우리 가족이 살 튼튼하고 아름다운 전원주택을 지으셨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고를 치는 바람에 그 집을 팔아 병원비, 위자료 등을 물어주느라 아버지의 작은 소원 하날 날려버렸져... 그리고, 남은 돈은 어머니께서 탕진해 버리셧습니다. 곗돈도 들고, 주식도 하고, 바람도 피시고 하시며 생각없이 그 큰돈을 형체도 없이 날려버렸습니다.(그 당시 아버지의 표정을 전 아직도 잊지못합니다. 말로 표현할수 없는 분노와 서글픔, 책임감 등등이 섞여 제가봐도 무서웠습니다. 때릴까봐 걱정된게 아니라, 충격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실까봐 무서웠습니다. 아버진 절 유난히 아껴서 자주 데리고 다녔습니다. 제가 막내둥이라 그런것도 있겠지만서도여ㅋ 그때엔 일산에 모델하우스가 정말 많았습니다. 아버진 모델하우스를 절 데리고 다시니며 남은돈으로 아파틀 하나 사서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했습니다. 그런 그 돈을 어머니께서 날리신 거져;; 후담이지만, 그당시는 할머니가 같이 살으셨었습니다. 그때 할머니가 주택 2층에서 주무셨는데 저승사자 네명이 왔었답니다. 할머니가 아닌 아버질 잡으러여. 그걸 할머니가 바지를 잡고, 있는 힘껏 늘어지셔서 울고불고, 부탁하고, 애원하고 하시며 몇시간을 그러셨답니다. 계속 그러시니 저승사자중 우두머리 되보이는 한 저승사자가 고개를 저으며 세명의 저승사자에게 그냥 가자고 했답니다. 솔직히 말하긴 싫지만 전 어릴때 신기같은게 있었습니다. 보통의 신기처럼 강한건 아니지만 기라고 해야하나... 암튼 그런걸 무지 잘 느끼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인기척을 느껴 봐보면 강한기운이 있어 자주 겁을 먹곤 했습니다. 그런 저도 그당시 죽음의 기운을 느꼈었습니다. 그때가 밤이었는데, 너무 무서워서 아버지 곁에 꼭 붙어서 아버지의 팔을 베고 잤던게 기억납니다. 그때 제가 곁으로 가기 전에 아버지에게 느낀건 마치 시체의 기운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붙어 "아빠 아빠 아빠 나 무서워,," 이랬더니 온화한 미소를 지으시며 절 안아서 눞혀주시고, 팔베게를 해주셨습니다니다. {그당시엔 저희 일가는 거의다 알았을 겁니다. 제가 그런 기에 예민한 지를여. 그래서 걱정도 많이 하고, 큰어머니, 할머니께선 백일기도도 자주 가시고, 큰어머니는 제게 어릴적에 자주 약도 먹이셨습니다. 제 병에 아주 좋은 약이라시면서여. 그래선지 이젠 살기엔 예민하지만, 다른건 별것 없습니다. 살기는 제가 하도 무술을 좋아해서 단련하고, 관장님의 특별 교육으로 무술쪽에 눈을 떠서일 겁니다. 한마디로, 다 나은거져ㅡㅡㅋ) 그때의 흐릿한 기억속에 생각해 보면 아버지 곁에만 가면 그런 기운을 무서워 하지 않게 되고, 평온해 질수 있었습니다. 마치 요기가 뒤덥힌 어둠에 있다가 개나리가 활짝 핀 봄의 따사로운 햇살로 들어간 기분이었져ㅋ
전 그당시엔 어머니께서 그렇게 날린줄은 하나도 모르고, 아버지가 책임론에 의해 퇴직을 하실때까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을 없는건지 정확히 2000년 3월 28일 제가 중학교에 갓 입학해 거의 적응해 가던때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퇴직을 하셔서 알게 된 거져. 그때부터 근 1년간 어머니를 인간취급도 안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되는 일이져.. 글애도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어머님인데 말이져. 지금은 최대한 효도를 하고 있습니다. 집안일 도와드리고, 선물도 사 드리고, 안마도 해드리면서 말이져ㅋ)그때 어머닌 많은걸 느끼시고 정신을 차리셨던거 같습니다. 지금은 노래방을 하시며 그당시 잃은 돈을 갚기위해서라는 것처럼 돈을 엄청 벌고 계십니다. 그래도 자식된 제가 보면 안쓰럽져. 노래방도 보통 노래방이 아닌 심야 노래방이라 엿같은 손님도 많이 오고, 치우고, 말싸움 하고, 술먹고 개된 손님 도와드리고 하시느라 곱던 피부가 까칠해져 버렸져. 전에 저도 한달간 어머니 노래방에서 알바를 한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골병들고, 장 망치고, 위에 구멍뚫려서 오히려 그당시의 매상을 제 병원비에 다 써버렸을 정도 입니다. 그걸 여자인 어머니가 하고 있다는 것도 안쓰럽지만, 업보이시다 보니 자식이라도 어쩔수 없더군여... 글구 아버진 예전에 이혼까지 생각하셨던것 같습니다. 지금도 보통의 부부처럼 사이가 좋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족도 아니고, 부부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왠수도 아닌 어정쩡한 사이로 계십니다. 부부관곈 끊긴진 제 기억 상으론 7년정도 된것 같구여. 한마디로 아버진 팔자에도 없는 독수공밯을 하시고 계시져. 차라리 창녀촌이라던가 바람이라도 피셔서 해소를 하셨음 좋으실 텐데 자식들 보기 떳떳하기 위해서 이신지 절대 그런일은 하질 않으십니다. 전 어릴적부터 어머니가 밤에 돌아다니셔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턴 아버지 손으로 컷습니다. 아버진 어머니가 제게 주고있지 않은 정을 느끼게 하기 위해 정말 피나는 노력도 하셨습니다. 어린 제가 삐뚫어 지는걸 막기 위해서였져. 결국 약간의 탈선은 했었지만 학교도 한번도 꿇지 않고 잘 해왔져. 지금은 아버지가 원하시는 세무사가 되는게 꿈입니다. 제가 이게 되는 길만이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할 수 있는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여. 그래서 절 키워준 분은 전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꼭 필요할때 곁에 있어주신 부모님은 아버지니까여. 저희 형제는 아버지가 키우신거나 진배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청년이 되어 아버지를 바라보니 정말... 불쌍해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여러가지 큰 일들의 뒷처리를 하시느라, 우리 형제를 키우기 위해서, 우리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자기인생은 모두 포기하신 분입니다. 전 그런 아버지가 남자로서, 자식으로서 너무 불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