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 Wind Park.
그 날도 찌든 하루였다. 하루 종일 서류더미와 씨름하고 미간을 찌뿌리고 일이 잘 안풀릴때마다 소매
를 걷어 올리는 버릇이 있었으므로 소매단도 엉망이었다.
린지는 연신 커피와 차 등을 날랐고 제 자리에서 뭔가 내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리며 긴장하고 있었
지만 나는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
나는 변호사다. 일년 전 지독한 소송을 치루고, 그 일로 나는 이 건물 꼭대기 바로 아래 층에 내 사무
실을 갖게 되었지만, 올라온 만큼 내게는 않좋은 기억이 남았고, 잊으려는 생각으로 밀려드는 업무를
거절 한 적이 없다.
왼쪽의 유리창이 어두워지고 퇴근 시간이 지나자 린지는 약속이 있는지 연신 눈치를 주었다.
며칠 전 부터 속을 썩이던 사건은 오늘도 내내 실마리가 없었고 지쳐있었다.
충실한 비서인 린지를 위해서라도 나는 코트를 입고 나와야했다.
린지는 내가 사무실에 오기 전에 와있으며 내가 떠나기 전까지 떠나지 않는다.
이것이 이 회사의 방침이다.
내가 코트를 입자마자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낸다.
지긋지긋한 거만한 빌딩을 나와 집으로 걸어간다. 윈드 파크, 이 공원만 건너고 한 번 더 길을 따라
내려가면 그래도 쉴 수 있는 집이 있고, 아이들이 있었다.
쌀쌀하다, 추웠다. 주머니에 손을 깊숙히 넣고 하루 종일 찌뿌리던 얼굴을 애써 풀려고 노력하며
걷고 있었다. 공원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나 처럼 급히 귀가 하는 사람이나, 저 건너편에는 나와는 상
관 없는 연인들이 서로를 감싸고 있었다. 내 집은 공원 뒤쪽을 넘어가야 있다. 그래서 집으로 갈 수록
공원은 어두워진다. 조용해진다.
" 흑...흑....."
여자의 흐느낌이 들렸다. 혹시 내가 잘 못들은 것이 아닌가, 과도한 업무로 환청인가.
덤불 옆으로 갈색 머리가 있는 걸로 보아 환청은 아니었다.
집에가려면 어짜피 그 덤불을 지나야했으므로 찜찜한 기분을 앞세우고 걸었다.
"이봐요, 괜찮아요?"
얼굴과 머리가 젖도록 울고 있는 그 여자에게 말을 했다. 여자는 눈을 감사고 있던 왼쪽 손을 내리며
나를 흘끗보더니 오른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옷깃사이로 넣었다.
나는 손수건을 내밀며 말했다.
"어둡습니다. 오래 있지는 마세요."
"........................네, 네....."
어두웠지만 오렌지색 가로등 불 밑으로 보이는 그녀의 눈은 초록색이었다. 문득 내가 알고있는 또
다른 초록색 눈의 여인의 얼굴이 스쳤다. 그리고 나는 돌아서서 가던 길을 걸었다.
" 딩-- 동---"
"누구세요~ 여기는 끌레르 공주님이 사는 성이에요~"
"공주님을 뵈러온 기사입니다~ 오늘도 하루 종일 공주님 생각만 했답니다."
딸깍 하고 문이 열리고 조그만 여자아이가 내 다리로 꼬옥 안긴다.
작은 딸이다. 네살짜리 끌레르는 나를 무척이나 따른다. 2층에서 쿵쾅소리가 나더니 에바가 내려온다.
에바는 16살이며 내 첫째딸이다.
"아빠, 피자 시켜 먹던 중이에요, 같이 먹어요.."
아이들과 피자를 먹는다. 끌레르가 오물거리며 먹는 모습을 보니 피로가 가신다.
에바는 한쪽을 먹더니 배가 부르다며 제 방으로 들어가고 끌레르는 티비소리를 듣더니 먹던
피자조각을 두고 쪼르르 달려간다.
샤워를 하고 침대 머리 맡의 환히 웃고있는 초록눈의 여자를 본다.
갑자기 그리움이 밀려온다. 이봐.. 거기서 그렇게 웃고 있지 말라고..
커피를 한가득 내려 창가로 갔다.
윈드 파크가 내려다 보인다. 앗.. 그녀, 울고 있던 그녀, 이제는 갔겠지?
잠시 생각이 난다. 무엇때문에 울고 있었을까? 실연? 내가 말을 걸자 감춘것은 뭐였을까?
애인의 사진? 아니다..그러기엔 좀 묵직했다.
피곤이 밀려온다. 항상 새벽 2시에 집에 들어왔던 것이다.
쇼파에 앉아 머리를 젖히고 잠시 생각을 하다 잠이 든다.
갈색머리...... 프레릿가의 사건.... 초록눈......... 마지막으로 보던 서류.......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