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만남
아저씨……. 나 아저씨 사랑해도 돼?
일탈(逸脫).
휘황찬란한 빛깔의 네온사인이 두 여인의 머리위에서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콩닥콩닥
심장이 콩닥거리는 소리가 귀에서도 울렸다.
두 사람 중에서 약간 더 키가 큰 여인은 고개를 들어 마주선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벨라지오」
핑크빛 형광등이 휘갈겨진 글씨체로 구부러진, 멋진 모양의 간판이었다.
그 주변에는 푸르고 노란빛깔의 갖가지 전구가 번갈아가며 깜박이는 중이다.
불빛의 리듬에 맞추어, 안에서는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건물을 훑어보는 여인은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딱 달라붙는 원피스는 여인의 몸매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봉긋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는 아찔할 만큼 육감적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옮기며 고개를 돌렸다.
약간 검은 듯한 윤기가 도는 피부에, 쭉 뻗은 도도한 콧날 그리고 매혹적인 입술까지.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는, 네온의 조명을 받아 그녀만의 매력을 폭발적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이윽고 작은 입술이 벌어지며 낮은 소리를 토해냈다.
“희영아, 들어가자. 여기가 벨라지오야. 아직 시간 안 늦었지?”
“으…으응!”
곁에 서 있던 또 한명의 여인이 약간 불안해 보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불안한 목소리 뒤에는 분명히 묘한 기대감이 서려있었다.
설레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흰 스커트에 분홍 니트를 차려입은 청순한 분위기의 희영.
선영이 막 불타오르려는 붉은 장미라면, 희영은 청초함을 머금은 새하얀 백합이었다.
선영이 희영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곧 둘의 모습은 간판아래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두 여인은 터널 같은 계단을 한동안 내려갔다.
따각따각
대리석바닥을 토닥이는 구두 굽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우와! 희영에게는 처음 보는 구경거리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리저리 고개를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그야말로 내부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고풍적인 조형물들과 소품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고급스러움을 한층 더 높이고 있었다. 우아한 조명이 비추는 계단을 따라 복도를 내려가자, 화려한 분수대가 나왔다. 남녀가 뒤엉킨 모양의 조각상이 여기저기서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화려한 빛깔의 조명을 받아 찰랑이는 물빛은, 오색의 물감을 풀어 놓은 것만 같았다.
“어서 옵쇼!”
우렁찬 목소리.
꿀꺽
화들짝 놀란 희영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복도 양편으로 쫙 도열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반갑게 두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희영과 선영의 아래위를 쭉 훑어보는 그들은, 눈빛을 번득이며 묘한 웃음을 띠었다.
가장 왼쪽에 서 있던 남자가 반가운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혹시 찾아오신 주임님이 있으신가요?”
희영은 왕방울만큼 커다래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머뭇머뭇 거리는 사이, 곁에 선 선영이 딱 잘라 대답했다.
“닥터봉 오빠를 찾아왔어요.”
“아~ 그러시구나! 잠시 만요…….”
아쉬운 눈빛을 흘린 남자는, 돌아서서 이어폰 마이크에 대고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인지는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희영은 그 말들이 꼭 SF영화에 자주 나오는 암호문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홀 안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똑같이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인상이 깔끔한 남자였다. 한가득 미소를 머금은 그는 희영과 선영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모습이 보이자, 밖에서 도열해 있던 남자들이 간단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아마도 약간 더 직책이 높은 듯.
분명히 저 사람이 닥터봉이 틀림없었다.
그는 웃음 띤 얼굴로, 선영과 희영을 천천히 번갈아 보며 물었다.
“어느 쪽이 선영이……?”
허나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질문을 하던 남자는, 결국 그 물음을 끝맺지 못했다.
대신 그의 입가에 터져나갈 듯한 웃음이 걸렸다.
그의 시선은 선영의 얼굴에서 딱 멈추어져 있었다.
뿌직
이마에 깊은 골이 패는 선영.
허나 닥터봉이라는 남자는 선영의 반응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하하하……!”
그리고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선영이가 파리해진 안색으로 낮게 중얼거렸다.
“그만 웃어요. 제가 울 언니 붕어빵인건 잘 알고 있다고요!”
“아아~!”
그랬구나.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희영도 낄낄거리며 따라 웃었다. 선영은 자신의 언니와 틀로 찍어낸 붕어빵처럼 꼭 닮아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그녀의 콤플렉스이기도 했다.
닥터봉은 며칠 전에 받은 전화가 떠올랐던 것이다.
「오빠! 우리 동생 내일 푸싱으로 좀 넣어줘요. 부탁할게. 담에 거하게 밥 살 테니까.」
「누구 부탁이라고 내가 거절해. 동생 보내. 그런데 동생 혼자 와?」
「아니, 친구하고 둘이 간대. 걔도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야. 잘 부탁해요.」
「오케이. 참, 그런데 어떻게 알아봐?」
「그건 걱정하지 말고. 일단 보면 알아.」
「임마, 그게 무슨 소리야. 보면 안다니.」
「몰라. 더 묻지 마. 보면 안다니까.」
아무튼 그렇게 황당하게 전화를 끊고 나서,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도 어떻게 알아보지 하고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만나 보니 정말로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었던가! 언니와 똑같이 닮은 선영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본인에게는 미안했지만 자꾸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서둘러 두 여인을 안으로 안내했다.
“자아, 오늘은 이 오라버니가 책임지지요. 따라오세요, 숙녀 분들!”
닥터봉은 유쾌하게 웃으며 선영과 희영을 홀 안으로 정중하게(?) 들이밀었다. 그러면서 곁에 서있던 남자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테이블에 부킹 안돼. 내 손님들이야. 오늘 그냥 기분 풀다 가는 거니까.’
‘아, 네에. 그래도 한번만 안 될까요? 오늘 저 중요한 단골 한분 오시는데…….’
처음 희영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가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희영과 선영의 흔치않은 외모가 몹시 아까웠던 것이리라. 하지만 닥터봉은 엄한 표정으로 그 말을 대번에 잘랐다.
‘안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내가 곁에서 지키고 볼 거다. 허튼 생각 말고.’
‘할 수 없지요. 알겠습니다, 주임님’
‘수고.’
빠르게 말을 주고받은 닥터봉은 서둘러 희영과 선영을 따라 홀 안으로 들어갔다.
* * *
“우와……! 정말로, 정말로 다른 세상이야!”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희영의 두 눈동자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허나 그 목소리는 바로 앞에 앉은 선영에게도 잘 전해지지가 않았다. 희영은 다시 한번 크게 고함을 질러야 했다.
“뭐라고?”
“좋다고! 신단다고!”
희영은 두 손을 모아 쥐고 크게 외쳤다.
그 입 모양을 본 후, 선영은 의미하는 바를 곧바로 알아들었다.
“오길 잘했지? 오늘 스트레스 다 풀고 가자!”
“으응!”
중앙 홀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었다. 어둠을 잘라먹으며 수백 개의 조명이 정열적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희영과 선영의 머리위로도 오색의 불빛들이 어지럽게 흩어진다.
쿵쿵쿵쿵
빠른 박자의 리듬은, 앉아 있는 두 여인의 가슴을 공연히 설레게 만들었다.
쿵쿵
두근두근
흥겨운 음악이 빨라질수록 두 여인의 심장 박동수도 덩달아 빨라졌다.
음악이 쿵쿵거릴 때마다 피부에 닿는 풍경도 같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마치 울리는 소리가 주위의 공기마저도 진동시키는 것만 같았다.
저쪽 복도에서부터 닥터봉 오빠가 사뿐히 레드카펫을 밟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두 여인의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세팅하기 시작했다.
풍성하고 신선해 보이는 과일안주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왕새우튀김이 놓여졌다.
희영의 눈동자에 자그마한 하트가 걸렸다.
두둥-
마지막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양주의 위용.
닥터봉은 능숙한 솜씨로 얼음과 음료수 그리고 우유와 물수건을 희영과 선영의 앞자리에 각각 놓아주었다. 그리고 씩 웃으면서 마무리.
“너무 많이들 마시지 말고, 취기가 들면 나가서 춤도 추고. 맘껏 기분 풀다 가세요. 일 있으면 곁에 지나가는 아무 웨이터나 잡고 닥터봉 찾아요. 그럼 내가 올 테니까.”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희영과 선영이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닥터봉은 마지막으로 주위의 웨이터들에게 주의를 준 다음 자신의 일을 하기위해 다시 복도 저편으로 멀어져갔다.
선영은 유리잔에 얼음을 채우고 양주를 조심스럽게 따라 부었다.
그리고 유리잔을 딸각딸각 흔들며 독주를 희석시켰다. 희영은 그 모양을 지켜보며 서툴게 따라했다.
챙-
기분 좋은 웃음과 함께 잔을 부딪치는 두 여인.
“으앗~! 쓰다. 너무 써……! 으으~”
한 모금 머금었던 양주를 억지로 삼킨 희영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선영이 다시 잔을 채우며 눈을 흘겼다.
“야! 윤희영. 이게 소주냐? 앙? 아무 때나 원샷이야. 비싼 술은 천천히 음미하는 거라고.”
선영은 잔을 입게 갔다댄 다음, 적당히 입술을 축였다. 희영이 어설프게 그녀를 따라했다.
“크~!”
으앗! 쓰기만 한걸.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화끈한 감각이 몹시 자극적이었다.
벌써부터 가슴 한 편이 뜻뜻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좋은 술을 먹어야, 담날 머리도 안 아픈 거야. 야, 우리 동동주 먹은 날 생각해봐~
으윽 상상하기도 싫다. 뒤끝 없는 술이 좋은 술이지. 아무렴.”
“그건 그래. 그래도 삼겹살에 소주가 최곤데…….”
“하하하. 아이고, 윤희영씨. 누가 자네 얼굴을 보면 삼겹살에 소주가 최고라고 그러겠습니까! 정말로 못 말린다니까. 하긴 첨엔 도진이 오빠도 깜짝 놀라긴 했지. 술도 입에 못 댈 것처럼 생긴 니가 주당이라니. 정욱이 오빠도 그래서…….”
‘아차!’
자신도 모르게 정욱의 이름을 내뱉어버린 희영은 뜨끔했다. 곧바로 합죽이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눈치 빠른 그녀는 희영의 얼굴색이 순간적으로 바뀌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런, 어쩐다지. 기분 풀어준다고 데려왔다가, 내가 오히려 망치게 생겼네. 입조심, 입조심!’
굳게 입을 다문 희영은 말없이 양주병을 잔으로 가져왔다.
쪼르르
좁고 가는 잔에 채워지는 연갈색의 액체가 찰랑거린다.
‘……정욱 오빠. 그래, 잊어줄게. 다 잊어 준 다구.’
곧바로 스트레이트 원샷!
선영이의 눈이 놀라서 크게 떠졌다가, 다시 아래로 착 가라앉았다.
후우.
짧은 한숨을 토해내는 선영.
“너, 너너 천천히 마셔! ……암튼 다 잊자. 오늘은 그냥 맘껏 기분 푸는 거야.”
“……그래. 싫다는 사람 안 붙든다고. 죽을 것 같아도, 내색 없이 참을 거야. 바보 같지?
근데... 그게 내 마지막 자존심이야…….”
“잘 생각했어. 니가 어디가 모자라서 그런 바람둥이 때문에 가슴아파해? 자 한잔 더해.”
“그래. 다 털어내 버릴 거야. 그 사람 말대로 우린 ……인연이 아닌가봐.”
연거푸 두 서너 번의 술잔이 더 기울었다.
화끈하고 몽롱한 술기운이 돌자 두 여인의 볼이 모두 빨갛게 상기되었다.
아찔한 술기운 덕분인지, 이내 쫑알거리며 다시 들뜬 분위기로 돌아온 두 사람.
선영이가 희영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야, 우리도 나가자. 스테이지가 우리를 부르고 있네!”
“어마? 야 너 혼자 갔다 와. 난 못가. 나 몸치인거 니가 더 잘 알잖아. 후후”
희영이가 긴 생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하지만 선영이는 막무가내.
“야아~ 나 혼자 어떻게 나가? 가자. 응? 잔말 말고 따라와.”
“정말 나 못 춘다니까!”
“날 때부터 춤 잘 추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 보고 천천히 따라해. 가자!”
“아이, 참……!”
* * *
① 좌우 찌르고,
② 한바퀴 돌아 위아래 흔들고,
③ 몸통 휘젓고,
④ 팔다리 사선으로 번갈아가며 후비기!
‘아싸~ 후비고, 후비고!’
흥에 겨운 희영은 열심히 리듬에 맞춰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알딸딸한 술기운의 힘을 빌려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댄스실력을 선보이는 희영. 더군다나 휘황찬란한 조명까지도 어디까지나 주인공인 자신을 집중적으로 비춰주고 있었다.
①→③→②→④ 그리고 그다음은 ①→④→③→②.
랜덤하게 이어지는 네 가지의 연결동작이 무궁무진하게 응용되고 있었다.
쿵쿵쿵쿵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음악소리가 사방을 진동시킬 때마다, 희영의 영혼이 조금씩 부서져서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무아지경(無我枝莖)
지금 희영은 완전히 스스로를 잊어가고 있었다. 주변 풍경이 사라진지는 옛날이다.
왜냐? 두 눈을 꾹 감아버렸기 때문이다.
‘아하하하!’
머리가 띵했다. 어질어질 한 것 같기도 했다. 가슴이 빠르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을 만큼 즐거웠다.
‘아, 이것 참. 오늘 춤 좀 되는데? 흐흐흐흐’
슬금슬금.
뒷걸음질로 조금씩 멀어지는 선영.
희영의 광란을 지켜보는 선영의 팔 동작은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는 더욱 바닥으로 수그러드는 중이다. 멀쩡한 정신으로 희영이를 보고 있자니 참 난감했다.
말그대로 만감이 교차하는 중.
‘술 급하게 마실 때 알아봤어야 했어!’
곁에선 사람들도 자꾸 힐끔거리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어 보였다.
고개를 들고 있자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금 그녀는 인간적인 번뇌에 시달리고 있었다.
친구를 위해서 이 순간을 함께 해야 할 것인가? 저렇게 즐거워하는데. 주위의 시선이 대수일까?
아니야. 희영이의 사회적인 체면도 생각해 줘야해. 말려야 해.
아아. 내가 왜 춤추러 나가자고 했을까!
선영의 이마를 비집고 삐질 삐질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허나 그녀의 번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핸섬한 디제이의 목소리가, 어두웠지만 더없이 화려한 허공을 반갑게 수놓았다.
“자아~ 캄 다운(Calm Down) 베베! 워-워. 잠시 뒤 뵙겠습니다. 렛 미고~(Let me GO!)"
빠른 템포의 시끄러운 음악이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대신 분위기 있는 음악이 자욱한 안개처럼 뭉클거리며 잔잔하게 바닥에 깔리기 시작했다.
선영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희영을 잡아끌었다.
빙그르-
갑자기 세상이 빙그르 돌았다. 불빛도 빙그르. 디제이도 빙그르.
“선영아? 어지러워. 너 왜 옆으로 도니? 어라? 음악 끝났네?”
베시시 웃으며 자연스럽게 비틀거리는 희영.
뿌직-
그리고 다시 한번 이마에 깊은 골이 패는 선영.
그녀는 희영을 재빨리 잡아끌며 낮게 중얼거렸다.
“야, 그렇게 사방을 휘젓고도 세상이 안돌면 그게 사람이니?”
“크큭. 신난당. 그런데…. 나 술 넘 급하게 먹었나봐. 어지러워. 영아.”
“가서 좀 쉬자. 너는 왜 딴 사람들이랑 반대야? 그렇게 흔들었으면 술이 깨야 정상아냐?”
“헤헤헤”
여럿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던 두 사람의 모습은 재빠르게 테이블 속으로 사라졌다.
* * *
피식.
“멀 보고 웃냐?”
“후훗. 암 것도 아니야. 귀여워서.”
“귀여워? 뭐가?”
빠르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남자.
옆 테이블? 아니야. 그럼 뒤쪽 테이블? 흐음. 괜찮긴 하지만… No. 귀여운 여자? 없는데?
검은 썬글래스에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바쁘게 시선을 옮기는 그는, 스테이지와는 구별된 왼쪽의 귀빈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는 편안한 캐주얼 차림의 남자가 술잔을 채우고 있었다.
일행은 그들 둘로 보였다.
“거봐라. 오길 잘했지? 너 웃는 거 정말 오랜만에 본다. 짜식.”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는 호기롭게 웃으며 맞은 편 남자가 채워 둔 술잔을 단번에 비웠다.
캬아. 술맛 좋고.
“음악이 좋고. 분위기가 좋고. 여자 많아 좋고.”
“…….”
피식-
하늘빛 니트를 입은 남자는 검은 양복의 감탄사를 들으며 그저 나직이 웃을 뿐이다.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적당히 숱 많은 갈색 머리칼이 나부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양복 입은 남자가 테이블 위의 붉은 색 등을 들어올렸다.
불빛을 본 지나가던 웨이터가 즉시 달려왔다.
허리를 깊이 굽히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는 웨이터.
웨이터의 가슴팍에는 「원빈」이라는 이름표가 떡하니 붙어 있었다.
“불렀으예, 형님. 더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예?”
“야. 내가 원빈이 너 하나보고 챔피언에서 이리 옮겨온 거 모르냐. 괜찮은 아가씨들 좀 대령해봐. 형님 그냥 확 챔피언의 동건이한테로 가버린다? 응? 걔는 물 좋은 날 나한테 전화도 하고 그런다, 짜식아. 확실히 좀 해봐.”
“아이고, 형님 왜이라십니꺼. 기다려 보이소. 제가 확실히 책임져 드릴끼라예!”
원빈은 재빠르게 등을 보이며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검은 양복의 남자.
“민이 형, 나 여자는 관심 없다니까. 됐어. 그냥 술이나 마시다가 가자. ……내가 살게.”
“시끄러워. 내 말대로 해. 그만 하면 됐어. 벌써 반년이 넘었다. 그리고 이제 이 형님도 좀 살아보자.
옆구리가 시려서 요즘은 뼈가 저린다. 내가.”
갈비뼈를 만지작거리는 민이의 표정은 정말로 절실해 보였다.
* * *
자신들의 테이블에 돌아온 희영과 선영은 음료수로 목을 축이며 잠시 쉬고 있었다.
“야, 너 괜찮아?”
“그으럼~! 이제 좀 가라앉았다. 헤헤”
방금까지만 해도 목까지도 벌겋게 달아올랐던 희영의 얼굴이 다시 제 색깔을 찾고 있었다.
선영의 얼굴에도 안심하는 빛이 스쳐지나갔다. 그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잉 지이이잉
주머니에서 핸드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어마? 도진이 오빠다!”
선영의 얼굴에 당황하는 빛이 흘렀다. 희영이의 눈동자도 흔들거렸다.
핸드폰을 쥔 선영의 손이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받지 말까? 나이트 온다고 말 안하고 왔는데. 그냥 너랑 술 마신다고 했거든. 나 걸리면 죽음인데.
어쩌지? 응?”
“선영아, 그냥 전화 받어. 오빠 걱정한다. 내가 잘 말할게. 나 때문에 왔다고.”
“흐음. 그걸로 어림없어. 히잉. 모르겠다. 나 일단 받고 올게. 여기 시끄러우니까, 화장실에서 받아야겠어.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응? 죄짓고는 또 못 살잖아 내가.”
“으응. 갔다 와. 기다리고 있을게. 오빠 화내면 나가자. 지금 간다고 그래.”
선영은 서둘러서 복도 쪽으로 뛰어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돌린 희영.
사람들이 요란스럽게 춤을 추고 있는 스테이지로 시선을 옮겼다.
‘와아. 정말 잘 추는 구나. 어라? 저 사람은 꼭 댄서 같아.’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려 왔다. 선영이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잠시 잊고 싶었다.
일탈(逸脫).
성인이 되어 처음 느껴보는 나른한 해방감과 자유로움.
도발적이면서도 지극히 자극적인 그 어떤 분위기.
덥석-
희영은 소름끼치는 느낌에 화들짝 놀랐다. 등골을 타고 전율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자신의 팔을 덥석 잡은 것이다.
콩콩콩
희영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리따운 아가씨께서 여기서 혼자 우짠 일입니꺼? 예에? 이라시면 안되는 기라예.
가입시더!”
“어, 어어? 어디를 가요? 저기요?!”
완력으로 잡아끄는 웨이터의 힘에 희영의 몸은 벌써 반쯤 끌려가고 있었다.
“아이고, 참말로. 걱정 딱 붙들어 매시고예, 따라 오이소. 진짜로 괜찮은 분들이라니까예.
일단 만나보시고예, 싫으시면 제가 바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더.”
“저, 저기요. 친구 기다리는 중이거든요? 좀 놔주세요.”
“안 되겠습니더. 너무 이뻐가꼬 일단은 따라 가셔야겠습니다. 아이고, 지나가는 길이 다 환해지네예!”
“여, 여보세요!”
질질질
심도 있는 저항에도 불구하고, 희영은 팔을 잡힌 채로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다.
희영을 끌고 가는 웨이터의 가슴팍에는 「원빈」이라는 이름표가 떡하니 붙어 있었다.
멋진 사냥감을 획득한 득의만만한 하이에나의 표정을 한, 자칭 원빈의 뒷모습은 빠르게 사라져 갔다.
그때까지 꽤 즐거운 마음으로 희영과 선영의 노는 모습을 지켜보던 닥터봉은, 딱 그때마침 계산을 하러 카운터로 자리를 비운 참이었다.
잠시 뒤
자리에 돌아온 선영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디 갔어?’
희영이가 있어야 할 자리가 휑하니 비어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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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지요?![]()
오늘도 잔잔하게 이야기들을 풀어 놓고 갑니다.
20대 초반에서 30대 후반까지.
사랑에 관한, 이별에 관한 생각들을 조심스럽게 꺼내놓습니다.
희영이는 사랑과 이별을 통해 더욱 성숙해 가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겠지요.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다들 감기조심하시고, 좋은 하루되시길 (^_^)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모든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