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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25살~

사나이 |2006.02.19 02:55
조회 379 |추천 0

금지어가 있었나??-0-;; 아까 감정에 의한 글을 못쓰더라도 다시 가다듬고 몇자 적는다.

나도 25살이 되었구나. 뭐 나보다 연배가 되신 분들은 뭐가 벌써냐고 말씀할 수 있을 거라 본다. 이해함.

가끔씩 TV에 나오는 나와 같은 동갑자들을 보노라면 겉모습과 말하는 품위가 내가 벌써 이들과 똑같은 나이가 되었나?? 이런 생각과 가장 많이 실감한다.

또한 얼마전에 전해들은 결혼소식 그리고 애기가 있다는 소식들..

학교 동아리 선배의 결혼 소식.

늘 젊기만 할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몇일전이 고등학생 였던거 같은데.. 이런 생각들을 해본다. (심지어는 유치원때도 기억이 생생할때가 있다)

 

내가 원하는 대학들을 다 떨어지고 재수는 싫었기에 가장 늦게까지 원서접수를 했던 학교를 등록하여 생활했던 그곳. 주민들. 친구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오리엔테이션, MT, 학교 축제,  태권도, 농구, 단짝 친구, 동아리, 목포 먹거리 골목, 인형뽑기, 펌프 정말 후회하지 않는 대학생활을 했다고 본다. 그래도 아쉬웠던건 숙기가 없어 다른 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거.. 이건 아직도 가장 후회된다.

 

고등학교때와 중학교때는 솔직히 좋은 기억이 많지가 않다. 그래서 그런지 다시 돌아갈래? 별루다.

그래도 기억을 찾아보자면 학교 ▶ 농구 ▶ PC방 ▶ 도서관 ▶ 집 늘상 똑같은 생활이 아닌가 싶었지만 난생처음으로 고3때 교내 친구들이 보는가운데 짝사랑을 고백했던 기억. 고2때 정식 아르바이트를 처음으로 해보았던 주유소 알바 등 큰 추억은 없지만 그래도 그립다.

 

초등학교때는 이땐 정말 어렵게 살때라 그 무엇보다도 나에게 가장 값지고 기억에 많이 남고 가장 추억이 많다.

동네누나들과 동생들 그리고 우리형과 놀이터에서 밤새도록 지어낸 귀신얘기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던 기억.. 소꿉장난을 하면서 아버지 역할도 해보고 의사역할도 해봤던 그기억.. 오락실에서 공짜오락하기 위해 따따기를 2시간이 넘는 쓰레기 매립장까지 가서 구해와 공짜 오락을 하다 오락실 아줌머님께 걸려 3시간이 넘도록 손들고 있었던 기억.. 돈이 없어 항상 교문문고에 가서 공짜 만화책을 보고 나와 시장오락실을 들려 오락기술을 연마했던 기억..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올라가기 전까지 청량리에 살다가 어머님 집 나가시고 아버지 따라 춘천 그것도 거의 사람 보기 힘든 끝자락 산에위치한 곳으로 이사가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고추개구리, 백개구리, 잠자리, 자갈, 시냇물, 방아깨비, 도랑, 강아지, 땔감, 장난감, 형, 여동생...

얼마 후 어머님이 집에 들어오신 후 정말 뼈빠지게 우리 셋을 위해 집안 일과 땔감 나무 손수 구해오시고 여름에는 밭농사며 술좋아하시는 아버님과 자주싸우시기는 하셨지만 우리 셋을 위해 그 몸으로 저지하셨던 우리 어머님.. 그렇다고 우리에게 짜증한번 안내시고 감싸 주시고 학교 방학숙제가 밀려 아침에 숙제하던 나아게 칭찬해주셨던 기억.. 학교에서 나머지를 하며 걸어서 1시간30분이 넘는 학교에서 혼자 귀가하던 나. 그렇다고 산밤길이 캄캄하다고 해서 나혼자 귀가를 해도 무섭거나 그렇지는 않았던거 같다. 요즘 시골이 많이 그립다. 힘들고 많이 아파했지만 그래도 이때가 그립다.

초등학교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안된다는거 안다. 그렇다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군대 이때로 돌아가고 싶은건 아니다. 그립지만 다시하라면 못할거 같다.

 

내가 말하고 싶은건 어차피 사람은 죽는다.

한번 썩어 없어지는 인생. 사람이 못나면 어떠나. 장애가 있으면 어떠나. 키가 작거나 못생기면 어떠나. 돈이 없으면 어떠나. 색안경을 끼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잘난사람이 더 유치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서로 격려 해주고 못하는것에 대해서는 잘 알려주고 아껴주고 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줄줄 몇자 적어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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