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서 유괴된 초등학생이 10시간 만에 ‘부모가 집을 비운데다 가난하게 보인 덕분’에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20일 오후 3시쯤 서울 강남의 모 초등학교 3학년인 ㅇ군(10)은 방과후 교내에서 실시하는 컴퓨터 특기적성교육을 받기 위해 학교에 가다가 30대 중반의 남자에게 납치됐다. 유괴범은 ㅇ군을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서울 삼성동·성수동·양평동 등을 돌아다니며 가족에게 거액의 금품을 요구하다 다음날 오전 1시쯤 풀어준 뒤 달아났다.
경찰은 유괴범이 ㅇ군 집에 건 전화의 통화 내용과 ㅇ군의 진술을 조사한 결과 이 범인이 ㅇ군을 가정형편이 고만고만한 집의 아이로 짐작한 데다 때마침 부모가 집을 비운 까닭에 무사귀환할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했다.
유괴범은 납치 뒤 ㅇ군 집에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를 받은 사람은 ㅇ군의 외할아버지(76)였다. 교수인 아버지(39)가 부부동반으로 중국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차 집을 비운 통에 외할아버지가 대신 전화를 받은 것.
유괴범이 “카드빚을 갚으려니 1만원권으로 8천만원을 준비하라”고 요구했으나 귀가 어두운 외할아버지는 연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안들리니 천천히 크게 말해달라”고 주문했다. 할아버지의 통화를 통해 당장 큰돈을 마련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닌 것으로 여긴 유괴범은 ㅇ군이 휴대폰까지 갖고 있지 않자 “너 부잣집 아들 맞느냐”고 몇차례 되묻곤 하다가 결국 풀어줬다.
한편 경찰은 전화발신지를 추적, 범인이 ㅇ군 집에 마지막으로 전화한 20일 오후 10시쯤 서울 양평동의 한 공중전화부스 옆에서 범행 차량을 발견했지만 범인이 경찰을 발견하고 급히 출발하는 바람에 검거에는 실패했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