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하세요..
그냥 제가 살아 오면서 보고 느끼고 제 삶에 대해 잠깐 글올립니다^^
전 올해 스무살 대학교1학년에 다니는 대한민국 평범한 남자 입니다.
평범이라는 말이 글쌔 어울릴지 는 몰겠지만 전 평범하게 살아 가는게 작은 꿈입니다 ^^
저희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때 돌아가셨습니다.
병으로 돌아가셧습니다 병명은 만인의 적 술... 간경화 에 여러 합병증이었던걸루 기억이 나네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구 전 외할머니와 엄마 누나 저 이렇게 4명이 살았는데 어머니가 생계를
전적으루 책임 지셨죠~ 저희 외가쪽은 친척분들이 화목한데 친가쪽은 거의 드라마에서
나올정도로 서로들 시러 하는 집안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장손이었기때문에
친가쪽에서 저를 대려 갈려구도 했었죠 저희 엄마가 재혼을 할거라구 생각을 해서였나봅니다..
하지만 저희 엄마 꿋꿋이 일을 하시면서 저와 저희 누나를 키웠죠 ..하지만 말이 쉽지 이험한 세상
서른 갓넘은 여성의 몸으로 아들딸 거기다 노모 까지 모시는게 쉽지 않으셨나봅니다 어느날 부턴가
엄마도 술기운을 빌려 일을 하시곤 했는데... 어느날 인가 엄마의 몸이 이상한걸 느꼈습니다..
엄마도 역시 알콜중독이시더군요.. 알콜중독이란 병이 한번 빠지면 열에 아홉은 나오지 못하는
중병입니다... 그런 엄마를 살리려고 외가나 친가 그리구 외할머니 많은 사람들이 부단히도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병원을 안방드나들던 엄마와 힘든 나날들 보내다 정신적 지주였던
외할머니가 노환 등으로 병석에 누우셨습니다.. 엄마는 몸이 힘든거보다 정신적 기둥이었던
할머니가 그렇게 허무하게 누워게시니 참 힘들어 하시는거 같드라구요..
그렇게 제가 중3때 할머니가 돌아가셧고~ ~ 저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누나는고등학교를 졸업하구 집안사정도 그렇고 해서 대학 진학 포기하구
일을 했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여러번 병원을 다녔지만~
할머니가 않계시니 저희도 정말 힘들더라구요~ 병원을 가도 저와 누나가 엄마를 모시고 갔지만
누나나 저나 아직 세상을 다알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였으닌깐요,.,
그렇게 병원을 수없이 다녔죠 자다말고 병원 간적도 있고.. 엠블런스 타고도 가보고.
고등학교 1학년때는 한달정도 학교 에 못가고 중환자 대기실에서 지내본적도 있습니다.
혹시 천안 분이 보실지 몰겠는데 천안에 쌍용동에 있는 충무병원에서 오래 계셨죠~
누나가 병원에는 많이 있었지만 보건소에서 일하는 누난지라 상사들이 사정을 많이 봐준다곤 해도.
직장은 직장인지라 학교 다니는 제가 차라리 빠지는게 편했습니다. 아마 보건소가 아니라
일반 공장이나 회사였으면 회사를 그만 둬야겠었죠~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도와주셔서 그나마
엄마 병원생활이 조금 원활했을겁니다..
그렇게 그럭저럭 지내다가 고등학교 1학년 어느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조금늣게 일어나서 기냥 주섬 주섬 세수하고 옷입구 나올려구하는데
엄마가 그러시드라구요 우유먹고 가라고~ 전 됬다고 그냥나왔습니다..
아직도 그때 생각 하면 눈물이 납니다 .. 전 그게 엄마가 자기 정신에 하는 마지막 대화가
될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고 생각도 ..상상도 못한 일이었으닌깐요..
학교에 가있는데 누나에게 전화가 왔드라구요 엄마 갔는데 말도 못하고 의식이 없다고..
그날 천안으로 올라갔죠 주치의는 뇌신경 조직이 파괴된거 같다고만 말하고 확실한이유도
방법도 말해 주지 못하더군요... 그렇게 간호를 하다가 어느날 MRI 촬영을 한다고 하더군요
48만원인가 루 기억 하는데 당장 돈이 있을지라 없었죠 그때 이모가 병원에 계셨는데
통장에 있던 30만원인가를 빼서 천안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모가 나이가 좀 있으셔서
이모 가 가지구 계시던 돈이랑 어케어케 마춰서 바로 촬영했습니다 결과가 나왔는데~
신경조직파괴로 약물 치료는 해보겠지만 알수 없다구 하더군요...
그렇게 한달 정도를 병원 중환자 대기실에서 보냈는데 어느날 인가는 중환자실에 들어가보니
엄마가 의식이 돌아왔더군요.. 정말 눈물날정도로 반가웠지만 대화를 조금해보니 정신이 다돌아
오시진 않았더라구요 숫자에 대한 개념도 없엇구 그냥 의식 적으로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그런것만 아는것 같았어요... 그렇게 그렇게 몇백이 넘는 중환사실 병원비를 물어가면서
엄마의 목숨을 끈을 놓치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 했지만.. 엄마는 날이 갈수록 그끈을 노으셨습니다..
아니 어쩌면 엄마는 더욱더 살고 싶으셨겠지만.. 저희의 노력부족으로 제가 노친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랬을것입니다... 그렇게 병원에서 퇴원을 하시던날 집에오셔서.. 하루 저녁인가를 주무시고
바로 돌아 가셨습니다.. 정말 눈물이 미친듯이 쏟아 지더군요... 스무살 .. 꽃다운 나이에 아버지 한테
시집오셔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구... 인제 아들 딸들 커서 재미점 보실 나이 되셨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눈을 감으시다니..... 인생 태어나 50은 살아 보구 가야 인생이지.... 정말
산사람은 어떻게든 산다지만.. 죽은 사람은 무슨 재미가 있을런지 낙이있을런지....
그렇게 상을 치르고 누나와 둘이 살았고 누나는 보건소를 다니면서 전 학교를 다녔습니다..
어떻게 살아 가야할지도 무엇을해야 할지도 몰랐지만 힘들면 힘든데로 아푸면 아푼데로
살았습니다. 고3때 전 실업게라 취업을 나갔습니다. 취업 나가는데 누나가 참 불쌍해보이더군요.
아무리 하는거 없는 동생이지만 그래도 저마저 나가면 혼자 일다니면서 밥도 해먹을지 않해먹을지
모르는데.. 그렇게 취업을 나가서 5개월인가 6개월인가 열씸히 일했습니다..
천안 두정동 기숙사에서 살고 회사는 직산읍에 있었습니다~ 마정공단이었죠 ㅋㅋ
그렇게 돈을 벌어서 대학교를 왔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않습니다만..
제가 1학년 다니고 군대를 갈 생각으로 1년 다닐 돈은 취업나가서 진짜 열씸히 모았습니다..
누구누구 처럼 술잘먹고 많이 놀고 펑펑쓰면서 나지만 못하겠지만 그래도 누나가 백조가 아니구
열씸히 일을 하는지라 전 제 앞가림만 하면되닌깐 1학년은 마칠수 있을거 같내요 ^^
지금 이글을 쓰면서 옛날 생각이 물씬 나네요.. 솔찍히 아직도 엄마는 병원에 계신거 같아요~
아마 병원에 오래 계시다가 집에 오셔서 돌아가셔서 그런거 같아요...
요즘 TV 신문보면 돈않준다 부모때리고 머않해준다 부모 욕하고 하는 정말 개념 상실
인간 말종 사람도 아닌 놈들이 가끔 메스컴을 타는걸 봅니다..
정말 이런것들은 꺼꿀로 매달아서 활화산에 던져 버려도 모자른 놈들입니다..
개돼지도 지들 부모 한테 그러지는 않을겁니다.. 하물며 사람의 탈을 쓰고 태어나..
그따위 짓을 하는것들은 정말~ 말이 필요 없습니다..
지금 이글을 보신분들은 한번 생각 해보세요.. 아무리 부모가 해주는게 없다소니 쳐도..
부모가 있는 그차제가 당신들 에계는 천군만마가 부럽지 않을 엄청난 힘입니다..
만원으로 무엇을 살까를 고민하는게 부모가 있는 사람이라면
만원으로 전기세를 낼까 전화세를 낼까 고민 하는건 부모가 없는 사람이 하는 고민입니다 ^^
글쎄 비유가 적절한진 몰겠지만. 하여간 단돈 만원으로도 나에게 투자 하는 자와 우리집에 투자 하는
자 이차이 일것 같네요... 부모님께 잘들 하세요 ^^
한번 떠나시면 두번다시 죽을만큼 보구 싶어도 볼수없습니다..
지금 부모님 방들어가서 얼굴 한번 더 뵙구 다리 한번 더 주물러 드리세요..
떠나시면 밥한 수져 같이 못먹습니다..
제 인생 최대의 후회는 엄마가 병원 가던날 아침 같이 못먹구 온겁니다..
정말 제가 저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날 아침 않먹구 온게 후회가 됩니다..
부디 제글을 보시고 100%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단 10% 만이라도 깨닫기를 바랍니다 ^^
글솜씨가 없어서 그냥저냥 끄적입니다.... 재미 없는 글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
앞으로 좋은 일만 있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