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은 맑고 바람은 잔잔했다.
시은이는 수풍을 떠나는 소녀처럼 들떠 있었다. 모처럼 만에 그녀의 해맑은 미소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제일 먼저 어디를 가고 싶은데?"
정우는 진희가 준비해 놓은 시은이의 짐을 트렁크에 실으며 물었다.
"음...... 대전."
"대전?"
정우는 트렁크를 닫으려다 말고 고개를 돌려 시은이를 보았다. 머릿속으로 거대한 나방 한 마리가 시꺼먼 날개를 휘저으며 날아갔다.
"설마...... 소망원에 가려는 건 아니겠지?"
"응, 맞아!"
시은이가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심하고 있다가 어디선가 날아온 축구공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얼떨떨했다. 충격이 다소 가시자 비로소 그녀의 음모를 알 것 같았다. 여행 운운했을 때 왜 그 생각을 못 했는지 후회스러웠다.
정우는 시은이를 노려보았다.
"와아! 날 너무 좋다!"
시은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딴청을 피웠다.
"그냥 갔다와."
옆구리를 찌르며 진희가 귀엣말을 했다.
내키지는 않지만 이미 뗀 발걸음이었다. 어렵게 휴가까지 얻어 놓고서 이제 와서 안 가겠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정우는 시은이에게 따지고 싶은, 가슴속 가득한 말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길게 심호흡을 했다.
"시은아, 잘 갔다와. 돈 아끼지 말고 재미있게 놀아."
"미안해, 우리만 가서......"
"난 다음에 가지, 뭐. 하여튼 부럽다야."
"진희야, 그 동안 정말 고마웠어."
"계집애, 고맙기는...... 영영 떠나는 사람처럼."
시은이는 진희을 오랫동안 포옹하고 있다가 돌아섰다. 진희가 차문을 열어 주자 시은이가 천천히 차에 올라탔다.
"진희 누나, 갔다올게."
"그래, 차 조심하고......"
진희가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웃는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이마에는 은근한 걱정과 수심이 물그림자처럼 어려 있었다.
골목길을 조심스레 빠져 나왔다. 늘어선 상가 건물을 지나는데 시은이가 손가락으로 주차장을 가리켰다.
"조오기, 사진관 앞에 차를 좀 세울래?"
"뭐하게?"
"우리, 사진이나 한 방 찍자."
"사진?"
정우는 백미러를 올려다보았다. 시은이가 뭘 그리 놀라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등 뒤에서 경적 소리가 들려 왔다. 정우는 핸들을 꺾어서 흰색 선이 그어진 공간 안으로 차를 밀어 넣었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리며 고개를 들었다. 사진관 진열장에 걸려 있는 사진이 한눈에 들어왔다. 퍼뜩 영정 사진이 떠올랐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 둘이서 사진 찍은 지도 오래 됐잖아."
"카메라 갖고 왔는데?"
"그건 그거고...... 우린, 찍자. 여행 기념으로."
"......"
"싫니?"
"응? 아, 아니."
정우는 불길한 생각을 털어 버리기 위해 재빨리 머리를 흔들었다.
차에서 내려 시은이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사진관 안은 바깥보다 어두웠다. 모든 게 정적이기 때문인지 사물들이 차분히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왠지 기분이 울적해졌다.
신문을 보던 중년 남자가 소파에서 일어나면서 "오서오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시은이는 목례를 하고는 유리 진열장 위에 놓인 동그란 거울 앞에 섰다. 그녀는 얼굴을 거울에 바짝 들어대고 이리저리 살폈다.
"나, 흉하지 않니?"
살이 빠지면서 생긴 얼굴의 주름이 신경 쓰이는지 손바닥으로 볼을 비비며 물었다.
"예뻐, 누나."
시은이가 안쓰럽게 느껴져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고마워."
시은이는 핸드백에서 자주색 립스틱을 입술 화장을 다시 했다.
화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무료했다. 돌아서자 벽에 걸려 있는 여러 개의 액자가 보였다. 가족 사진도 있고 독사진도 벽에 걸려 있는 여러 개의 액자가 보였다. 가족 사진도 있고 독사진도 있었는데 한결같이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전에는 몰랐는데 그 미소가 몹시 슬퍼 보였다. 마치 입을 모아 속삭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안녕'이라고......
"괜히 찍자고 했나 봐. 우리 그냥 갈까?"
시은이가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다시 물었다.
"그러든지."
"아냐! 이왕 들어온 거 그냥 찍자."
시은이가 거울에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손가락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겼다.
"생각 잘 하셨어요. 특별히 잘 찍어 드릴게요."
한쪽에 장승처럼 말없이 서 있던 사진관 주인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스튜디오의 조명을 밝혔다. 정우는 내키지 않았지만 시은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소파에 앉았다.
"누님이 팔짱을 끼세요."
사진관 주인이 말하자 시은이가 팔짱을 꼈다. 렌즈에 눈을 대고 구도를 살피던 사내가 다가와서 시은이의 상체와 턱의 각도를 잡아 주었다.
"자, 이제 찍습니다. 겁나게 웃어 버리랑게!"
미소를 짓게 하기 위함인지 사진관 주인이 전라도 사투리를 썼다.
정우는 고개를 돌려 시은이의 표정을 살폈다. 이를 살짝 드러낸 채 웃고 있었다. 시은이의 미소가 슬프게 느껴졌다.
"자, 여기를 보세요!"
사진관 중인이 소리쳤다.
정우는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표정이 굳어 있는 것 같아 미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어쩌면 시은이와의 마지막 사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에 무겁게 했다.
둘이서 사진을 찍고 나자 시은이가 독사진을 한 장 찍겠다고 했다. 영정에 쓸 사진을 미리 찍어두려는 것 같았다. 정우는 시은이가 사진을 찍는 동안 유리벽 너머의 햇살을 보았다. 늦가을 햇살은 마치 웃자란 갈대 같았다.
"너도 한 장 찍어."
시은이가 사진을 찍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럴까?"
정우는 시은이만 사진을 찍게 하면 정말로 영정 사진이 될 것 같아서 순순히 독사진을 찍었다.
사진관을 나와서 차에 오르자 시은이가 "후후."하고 웃었다. 정우는 주차장에서 빠져 나오며 백미러를 보았다. 시은이가 미소를 띄원 채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왜 웃어?"
"아냐. 불쑥 옛 생각이 나서......"
"무슨 생각?"
"소망원 있을 땐데...... 뒷산에 밤 따러 갔다가 뱀 본 적 있지?"
"기억 안 나."
정우는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벌써 십 삼 년 전 일이었다. 그때 일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시은이가 신기했다.
"아까 사진 찍을 때 보니까 너 그때처럼 완전 얼음이더라."
"그랬어?"
정우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 차례 훑었다. 모처럼의 여행인데 경직되어 있을 것까지는 없었다.
"너, 소망원에 가기가 그렇게 싫니?"
"누나는 단순히 소망원에 가 보려고 그러는 게 아니잖아?"
"그래......"
시은이가 순순히 시인했다.
"갑자기 왜 찾으려는 거야?"
"그냥......"
"우릴 버린 사람이야!"
"그래도... 궁금하지 않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거추장스러운 짐일랑 다 털어 버리고 나비처럼 훨훨 날아갔으니까 잘 살고 있겠지."
정우는 빠르게 내뱉고는 차창을 살짝 내렸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역류했다. 여섯 살 때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는 젊고 아름다웠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십 삼 년이 흘렀다고 해도 어머니는 쉰 안쪽밖에 안됐으니 분명 어딘가에 살아 있을 터였다. 남의 아내가 되어 또 다른 자식들을 키우고 있든지,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못한 불우한 생활을 하면서......
혼잡한 도로를 벗어나 달리다 보니 뒷좌석이 잠잠했다. 백미러를 들여다보았다. 시은이는 이마를 차창에 기댄 채 밖을 보고 있었다. 집을 떠나 때와는 달리 울적해 보였다.
"누나는 아버지 생각나?"
차의 속력을 늦추며 물었다. 시은이가 차창에 머리를 댄 채 "응." 하고 힘없이 대답했다.
"어떤 거?"
"아빤 술을 좋아하셨어. 가끔씩 날 번쩍 들어올려서 안아 주곤 했는데 입 안에서 찔레꽃 같은 싸아한 냄새가 풍기곤 했지. 아마도 쇠주 냄새였던 거 같아."
"아버지는 정말로 원양어선 타러 가신 거야?"
"글세?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셨던 거 같아......"
자신이 없는지 시은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꼬리를 흐렸다.
"생모도 생각나?"
"응."
"누나 네 살 때인가 돌아가셨다면서?"
"그래도 몇 가지 장면이 떠올라. 어렴풋이... 꿈처럼......"
"어떤 건데?"
"굿했던 거......"
"무슨 굿?"
"이건 순전히 느낌인데... 엄마에게 바람기가 있었던 거 같아.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무당이 엄마의 몸에다 쌀도 뿌리고 물도 뿌리고 그랬어. 난 무서워서 막 울고 있었는데 무당이 엄마의 입을 벌리고 손을 넣어 뭔가를 꺼내는 거야."
"그게 뭔데?"
"글세... 뭐라고 해야 하나? 무슨 혼령 같은 거야. 하얀 건데 처음에는 잘 안나왔어. 그러다가 무당이 주문을 외우며 엄마 등을 손바닥으로 치니까 밖으로 툭 튀어나왔지."
"후후. 재밌는데."
"사람 얼굴처럼 생겼는데 너무나도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어. 무당이 뭐라고 하니까 혼령이 엄마 머리 위를 한 바퀴 돌고는 스르르 사라졌지. 엄마는 그날 이후로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고... 그 일이 있고 나서 보름쯤 지나 갑자기 세상을 떴어."
"말도 안 돼!"
"내가 생각해도 그래. 어쩌면 내가 상상한 건지도 몰라."
시은이가 힘없이 웃었다.
정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늦가을 햇살이 앞유리창으로 쏟아져 내렸다. 도로는 단풍잎으로 뒤덮여 있었다. 갈 곳을 잃은 노란 단풍잎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다가, 앞유리창으로 불쑥 날아와서는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우리 엄마는 어떤 분이셨어?"
"응, 약간 무뚝뚝하고 신경질적이셨어. 우리 엄마는 멍히 앉아 있곤 했는데 너희 엄마는 화난 얼굴로 항상 뭔가를 하셨어. 뭘 이고 다니며 팔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행상도 했던 거 같아."
"엄마와 아빠는 어떻게 만났을까?"
"모르겠어. 분명한 것은 우리 엄마가 죽고 나서 너희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집에 들어왔다는 거야."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 기다렸다는 듯이......"
시은이는 핸드백에서 진통제를 꺼내 입에 물고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정우는 거울 속에 비친 시은이를 보았다. 광대뼈가 그대로 드러난 앙상한 얼굴. 이마에 돋아난 파란 정맥만 아니라면 미라와 흡사했다.
숨을 쉬고 있는 걸까. 꼼짝 않고 있으니 은근히 불안했다.
"누나."
못 들은 걸까. 아니면 기력이 없는 걸까. 시은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퍼?"
정우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서 물었다. 그제서야 시은이가 힘겹게 눈을 떴다.
"아직은......"
시은이가 돌릴락 말락하게 입술을 달짝거리고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진통이 몰려오기 전에 모르핀의 약효가 퍼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휴우.'
정우는 시은이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날이 갈수록 그녀가 곁에 살아 있음으로써 주는 안도감이 커져 갔다.
톨게이트를 지나자 평일이라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차들이 무서운 속도로 지면을 박차고 달려갔다.
정우는 앞차를 따라가기 위해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바늘이 성난 코브라처럼 머리를 치켜들었다. 차체가 위태로이 흔들렸다.
앞차와 대한 감각도, 시대감도 잊혀졌다. 비명을 지르며 주변의 경치가 찢겨져 나갔다. 달리는 게 아니라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는 도대체 어느 시대일까?
우린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정우는 눈을 부릅뜨고 앞차의 뒤꽁무니를 노려보았다.
[KIESBEST]
키 - 베 - 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