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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사라지다 11편

운비 |2006.12.31 16:00
조회 121 |추천 0

어두운 상자 속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아무것도 느끼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볼 수도 없는 곳에 있다.  여길 빠져나오고 싶은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무섭고, 두렵고,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인데 그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지금 이 순간 병우가 제일 보고 싶다. 병우가....

 

"병우아~~"

"화영아 정신이 드니. 화영은 아빠야."

"누나. 누나 괜찮아."

 

죽을 힘을 다해 눈을 떴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희미한 얼굴이.... 아빠와 화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보고 싶은 얼굴이 아니다. 병우의 얼굴이 없다. 내가 이렇게 아프게 누워 있는데 병우가 내 옆에 없다. 내가 아프거나 힘들어할때 24시간 내 옆에 있어주던 병우가 없다.  어딜갔지? 내가 이렇게 아픈데... 어딜간거야.  눈물이 나올 것 같아 화영은 젖먹던 힘까지 모아 일어났다. 아무래도 병우를 찾아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화장실에 간것 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화영은 일어나 병우를 직접 찾아 나설 생각이었다. 머리가 부셔질 것 처럼 아파지만 병우를 보면 그 아픔도 다 낳을 것 같았다.

 

"병우아... 병우아. 어디에 있어."

"누나, 지금 .. 누나는 지금 일어나면 안돼. 의사 선생님께서.. 아니 그러니까 누나는 지금 환자라서 이렇게 돌아다니면 안돼."

"화영은 병우는 말이다. 그게 병우는..."

 

뭔가 숨기는 듯한 아빠와 화진의 얼굴이 못마땅했다.  아빠의 표정이 심하게 창백한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진은 아예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병우는 아직 일본에서 안온거야. 그래서 그래"

 

침묵만이 되돌아 올뿐이었다. 나를 외면하는 아빠의 화진을 상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힘겹게 화진의 방으로 갔다. 혹시 병우가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병우는 없어. 오지 않아."

 

화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굴을 향한 외침인지 모르지만 그 말에 화영은 동작을 멈추었다.

 

"병우는 안와. 일본에서 오지 못했어."

"화진아 그만해."

"아빠, 누나꼴 좀보세요. 저 얼굴이 산사람 얼굴이에요. 이젠 알 건 알아야죠. 이틀동안 병우만 찾아었어. 그 놈은 오지 못하는데... 그렇게 아프면서 병우만 찾았다구요"

"이 자식이 그만못해"

 

화영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이틀동안 잠만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  병우는 아직 일본에서 오지 못한것 같은데... 왜 화진이 화를 내는지 아니 괴로워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병우는 내가 아픈것도 모르고 있을뿐인데 말이다.

 

"병우한테 화내지마. 내가 전화하면 금방 올거야"

 

겨우 겨우 말을 했다. 아직도 몸이 아팠다.  감기 몸살인 것 같다. 이렇게 아픈적이 없었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다.

 

"그래도 못와"

"이 자식이 그만 못해. 지금 누구보다... 니 누나가 제일 힘들거야"

"그만해. 내가 일본에 전화해볼게"

 

티비옆에 있는 전화기로 걸어가 일본 집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몇분을 전화를 잡고 있었다.

 

"전화 받지 않을거야. 병우는...."

 

화난 아빠의 몸짓에 화진은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여보세요. 어머니 저 화영이에요. 병우가 아직 오지 못해서... 병우 아직 일본에 있나요. 혹시 옆에 있으면..."

 

나의 전화로 어머님의 몹시 흥분된 목소리로 갑자기 일본어로 뭐라고 말씀을 하셨다. 화영은 그저 전화기만 잡고 있었다.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화영은 어머님이 말씀하시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병우가 집에 없다라는 소리인지... 그 다음은 아버님의 소리가 들렸다.  두분이셔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는 듯 했다.

 

"어머니, 병우 집에 없는건가요?"

"화영아"

"아버님 안녕하세요. 병우 아직 일본에 있나요?"

"내 말 잘 듣거라.  병우 비행기 사고로 이틀전에 죽었다. 지금 병우 장례치르고 오는 길이다."

 

한 순간 아버님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화영은 수화기를 잡은 손에 순간 힘이 들어갔다.  병우가 비행기 사고를 당했다고한다. 이틀전에... 그제서야 화영은 그날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병우... 병우가... 그럴리가 없어요. 뭔가 잘못 알고... 병우 저한테 뭐 화난 일이 있었나요. 거기 아버님..."

"화영아. 내말 잘 듣거라. 이제 병우는 없다. 그러니까... 병우 잊고.. 그만.. 잊고, 잘 살거라. 우린 너에게 아무것도 해줄것이 없구나."

"거기 아버님..."

 

울먹이시는 아버님의 목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울렸다.  이건 악몽이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믿을 수가 없어요. 아니. .. 이건 현실이 아니에요"

"이건 현실이고, 병우의 죽음을  인정해야한다.  잘 살거라."

 

뚜~~~~~ 화영의 손에서 수화기가 떨어졌다.

 

"아빠, 병우가.. 병우가... 세상에 없데... "

 

화영의 눈에서 눈물이 강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멍해진 화영은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가만히 몇분이고, 몇시간으로 움직일 생각도 없이 앉아만 있었다.

 

"어휴~~미치겠다. 정신 차려. 간 놈은 간놈이고, 누나라도 살아야지. 정신차리라고..."

 

누나의 마음을 모르느게 아니다. 누구보다 여기서 제일 힘든 사람은 누나라는 걸 화진이도 안다. 하지만 저렇게 넋을 놓고 있는 누나를 보는게 가슴이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하루 아침에  잃은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하지만 혹시나 누나마저 죽을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만... 화영아,  뭐라고 할 말을 해야할지 아빠도 모르겠다.  니 마음 누구보다 알기때문에 아빠는 지금 너한테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조금만  아파했으며 좋겠다.  너를 사랑하는 아빠로써 니가 조금만 아파했으며... 좋겠구나"

"아빠 미안해"

 

그 말에 누구보다 충격을 받은 사람은 그였다.   꼭 자신을 보고 있는 듯 해서 누구보다 가슴 아픈 사람은 자신이었다.   제발... 제발 너만은 아빠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기에 지금 이 순간 그는 딸아이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가 없었다.

 

"화영아, 나쁜 마음 먹지 말아. 제발 부탁이다.  병우는... 니가 병우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 안다. 하지만 가족을 위해서 살아주길 바란다.  부탁한다."

 

화영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보고 싶지 않다. 심장이  없어진 느낌이다.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았다.  굳어져 버린 심장을 파고 싶은 심정이다.

방으로 들어간 화영은 그로부터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병우에 대한 기억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걱정스러워하는 가족을 뒤로 하고 화영은 문도 열지 않았다.  화진은 이러다가 누나가 죽을까봐 밖에서 전전긍긍이었다.  

 

"누나 지금 며칠째야.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지금 우리는 보이지 않아.  아빠는 지금 누나때문에 매일 같이 술만 마셔.  우리 버리고 죽을 작정이야."

 

문을 부스고 들어온 화진은 송장처럼 하고 있는 누나를 보고 경악을 했다. 

 

"미쳤어.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온방에 병우 사진이 널려 있었다. 침대에도 바닥에도 오직 병우 사진뿐이었다. 화진은 너무 화가 나서 그 놈의 사진을 마당으로 집어 던졌다.

 

"그만해. 그만해."

"이제서야 반응이 오네. 이 녀석 사진이 그렇게 중요해. 우리보다 이 놈이 더 중요해. 누나도 살아야지. 아빠가 얼마나 누나 걱정하시는지 알아. 잠도 못자. 혹시나... 혹시나..."

 

화진은 어느새 울고 있었다. 

 

"미안해. 하지만 병우 사진은 안돼."

"누나... 누나 꼴 좀봐.  늘 밝은 누나는 어디로 가고, 얼굴 가득 그늘진 죽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거 알아"

"화진아, 그냥...."

 

화영은 병우의   사진을 끌어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그 동안 속으로 울던 화영은 소리내어 마음껏 울었다.  병우가 없는게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실감나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병우는 오지 않았다.  "빨리 올게.  너보고 싶어서 빨리 올거야. 조금만 기다려." 이렇게 말하던 병우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병우는 오지 않는다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화진아, 병우 물건들... 마당으로 갖고 나오너라."

 

심각한 표정을 짓던 그가 병우의 물건을 하나하나 마당으로 던졌다.   그 모습을 보던 화영은 공포로 얼굴이 질렀다.

 

"아빠 안돼."

"널 위해서다."

"아빠.. 안돼. 제발.. 제발.. 병우.. 병우거야. 안돼"

 

아무리 발버둥쳐도 화영의 말을 듣는사람은 없었다.  병우가 주던 곰 인형. 병우와 같이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 병우의 옷과 가방.  추억들이  마당 한가득 쌓여 있었다.

너무나 소중해서 병우가 준 물건들이 아니라 병우가 나에게 주면서 하는 말들이 너무 소중해서 잊혀지지 않았다.


"태워라."

 

그 한마디에 화진은  라이타를 던졌다. 

 

"안돼.. 안돼..." 

 

날 잡고 있던 아빠의 손을 뿌리칠 힘이 없었다. 화영은 그 자리에 울부짖었다.  병우가 타고 있는 듯해서 미칠 것 같았다. 꼭 병우가 불에 타고 있는 듯해서.....

 

"이제 잊거라."

"아빠는 잊었어. 아빠는 그렇게 했어."

"나처럼 살지마.  너만은 아빠처럼 살지마라. 그래서 이러는거야"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병우가 타고 있는데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병우가 죽었는데... 난 이렇게 살아있다.

예전에 병우와 하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화영은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가족들은 화영의 그런 행동이 더욱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내가 갈게. 내가 죽으면 너도 따라 죽을거라고 했지. 나도 그래.  니가 없는 이 세상 살고 싶지 않아.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이야. 바보... 얼마나 힘들었니? 같이 가자고 한마디만 했으면 웃으면서 따라 갔을건데... 병우아 사랑해."

 

그저 침대에 자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자고 일어날 줄 알았다. 그러나 화영은 그 시간 이후로 깨어나지 않았다.  잠을 자고 있는지 아님 죽음을 선택했는지 깨어나지 않았다. 병원으로 옮겨진 화영은 정밀 검사를 받았지만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을뿐이었다.

 

"도대체 뭐야"

"뇌파에 이상이 있어.  충격적인 일이라도 있나.  스스로 죽어가고 있는거야. 이런 일은 나도 처음보는 일이세. 자네 딸....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있다는 말이세"

"이 사람아, 지금 뭐라고 했는가? "

"이 친구아. 자네가 더 잘알 것 아니야. 누구보다 뇌연구에 힘쓰던 자네가 아닌가?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그건 저 아이의 의지야."

 

고개를 흔들어보이는 오랜 친구의 얼굴에 그늘이 져있었다.  한때는 잘나가던 박사였던 그가 왜 모든걸 버리고 떠나야했는지 오직 이 친구만이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죽음으로 헤어진 그 친구는 모든 걸 버리고 떠났다.  화영과 화진이가 없었다며 벌써 그녀를 따라갔을것이다. 그 대신 그는 가족을 선택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이 세상에 남기고 간 두 자식을 키우기로 했던 것이다.  그 마음 누구보다 잘 알기에 친구는 올만에 만나는 그 친구를 도와줄 수가 없어 안타깝지만 했다.

 

"이대로 살게 할 수는 없네.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지 않나?"

"식물인간이라도 되면 좋겠지.  이대로 가면 목숨도 위험해"

화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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