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은식이가 다니는 우리고장 도립대학교 앞에서 내렸다.
택시로 약 반시간 거리였다. 학교 앞은 방학임에도 불구하
고 학생들이 꽤 많았다.
이곳에 올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전혀 학교 앞이라고는 생
각되지 않았다. 시내의 유흥가처럼 술집과 당구장, 노래방
등이 즐비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술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등학생일때도 이곳에 많이 왔었다. 물론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기 위해서였다. 다른 곳보다 대학교 앞은 더욱 자
유롭게 술을 마실수가 있었다. 술을 마시고 대학생들과 시
비가 붙어 패싸움을 한적도 여러번 있었다. 그때를 생각해
보니 자꾸만 쓴 웃음이 나왔다.
나는 은식이를 만나기 위해 우리가 한두번 만난적이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커피숍은 2층이었다. 은식이는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직 약속한 한시간이 되려면 10분
정도 시간이 있었다. 나는 창가에 앉았다. 나는 서빙보는
아가씨에게 일행이 오면 시키겠다고 했다.
창가에 앉아서 길을 내려다 보았다. 여전히 등과 어깨에 가
방을 짊어진 대학생들이 분주하게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오
늘따라 이상하게 그들과의 거리가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저들사이에 현미도 끼어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씁쓸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중
요한 문제가 있었다. 어쩌면 나의 인생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수도 있는 일에 어이없게 말려든 기분이었다.
아니 어이없게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떠밀려 빠져들어 버린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누군가의 덫에 걸려든 기분.. 덫에 걸린 나 자신
의 모습을 상상했다. 도망치려고 발버둥치지만 점점 더 덫
은 나를 죄여오는 것 같았다.
조금 기다리자 중형차한대가 커피숍앞에 멈추었다. 눈에 익
은 차여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 그 차에서 은식이가 내렸다.
아마도 은식이는 자신의 아버지차를 몰고 온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은식이 아버지는 교환근무로 미국에 있는 병원
에서 근무한다고 했었다.
그러니 당연히 은식이 어버지차는 은식이가 쓸수 있는 모양
이었다. 차에서 내린 은식이는 불안한 듯 한참이나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그러고는 빠르게 건물로 뛰어 들어왔다.
한 5초정도 후에 커피숍문을 열고 은식이가 들어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 은식이가 다가가왔다.
"야 너 괜찮은거야?"
은식이가 나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물었다. 머리를
싸맨 붕대는 모자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고때 땅바닥
에 나뒹굴면서 얼굴과 팔을 긁혀서 상처가 조금 난 상태였
다..
"응. 조금 다쳤지만 괜찮아.. 넌??"
나는 안색이 창백한 은식이에게 되물었다.
"너말이 사실이었어.. 화석이가 납치당했다는 말.. 그말이
사실이었어.."
은식이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은식이도 그 사이트를 등록된 사진을 본 모양
이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너도 그 시체사이트 본거야?"
은식이는 힘없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화석이 맞지.. 그 겨드랑이의 상처 말이야. 그거 화
석이 폐수술자국이잖아.."
은식이도 그 사진을 본 모양이었다. 은식이의 눈에서 눈물
이 주르륵 흘렀다. 갑자기 나도 눈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참았다. 화석이의 웃는 얼굴과 목이 잘려 있던
사진이 동시에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울지마 새꺄!! 운다고 해결될일이 아니잖아.."
서빙하는 아가씨가 와서 주문을 부탁했다. 아가씨는 은식
이가 울고 있는 것을 보고 약간 이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별
신경쓰지 않고 나의 주문을 받았다.
"너랑 주완이는 어떡게 된거야?"
은식이는 조금 진정되었는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 가랑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밤 이야기를 차근히 이야기해 주었
다.
"그럼 주완이도??"
"몰라.."
몰른다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화석이의 경우를 본다치면 주
완이도 어떡게 되었을지 장담할수가 없었다.
"도데체 뭐가 어떡게 돌아가는지 알수가 없어. 누군가가 우
리를 노리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리고 그 는 도체데 뭐야?"
"주완이도 등록을 했단 말이지.. 그리고 당했고.. 나도 등
록을 했는데.."
콜라잔을 쥐고 있는 은식이의 손이 매우 떨렸다. 그 떨림에
콜라잔안에 들어 있는 얼음조각들이 달그락소리를 냈다.
"지혁아!! 나도 당하는게 아닐까? 나도!! 나도 등록을 했단
말이야!!"
"목소리 좀 낮춰.."
은식이의 상기되어 큰 목소리에 커피숍의 많은 사람들이 우
리에게 주목했다. 은식이는 내 말에 목소리를 낮췄다. 사람
들은 금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신들이 하던 이야기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 두려워.. 화석이처럼 그렇게 당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하면 무서워 죽겠단 말야!!"
"진정하라니깐.. 그 사진이 정말로 화석이인지 아닌지 확실
한것도 아니잖아.. 얼굴도 없고.. 그리고 가짜로 만든 사진
일거야.."
"웃기지마.. 너도 알잖아.. 분명해... 그 사진은 분명히
화석이라고.. 제길!! 그딴 사이트 찾아내는게 아니었어!!"
시체사이트를 처음으로 찾아낸 것은 은식이였다.
"나 때문이야.. 내가 그런 사이트를 찾아내서 다 이렇게 된
거라구. 내가 죽인거야.. 내가!! 화석이랑 주완이는 내가
죽인거라구.. 흑흑.."
뭐라고 해줄말이 없었다. 은식이의 감정은 공포와 분노 그
리고 자책감으로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이런 은식이의 이런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은식이가 진정되기를 기
다렸다. 다시 진정된것처럼 보이자 나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시체사이트때문만이라고는 생각할수 없어.."
나는 현미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등록할때 질문들이 있었잖아.. 넌 어떡게 썼어?"
은식이는 잠시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뜸을 들였다.
"응.. 주소같은 묻는 질문은 아예 없었어.."
"그래? 그런데 어떡게.."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역시 현미의 말대로 다른 사건
이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혹시 내가 군대간 사이에 너희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아냐?"
"무슨 일이라니?"
"혹시 너희들 사고 친거 아니냐구? 남에게 큰 원한을 살만
한 일한거 없냐구?"
은식이는 내 질문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아니야.. 그런것 없어.. 그럴리가 없잖아.."
"하긴.."
은식이의 태도로 보아 정말로 그런일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진전이 없었다.
"지혁아!! 나는 무서워.. 화석과 주완.. 그다음에는 나야
분명하다고.. 이번엔 내 차례야.."
"진정해.."
"우리를 노리는것은 사람이 아니야.. 두려워... 어딜 가도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느껴져... 악마의 눈길이..."
"후~~~~"
나는 한숨을 내쉬고 내 앞에 놓여진 사이다를 한번에 들이
켰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 있었다. 결국 화석이와 주완이
를 노렸던 그것의 정체는 아무것도 파악되지 않았다. 그것
이 서서히 나와 은식이의 목을 조르는데도 우리는 아무것도
아는게 없었다. 답답했다.
"이만 나가자!!"
나는 계산을 하고 도로로 나왔다. 은식이는 운전을 할만한
상태같아 보이지 않았다. 은식이가 저렇게 마음이 약한놈이
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한심했다. 10년 넘게 사
귀었지만 우리는 그냥 웃고 즐기기만 같이 했을 뿐이었다.
"키줘!!"
나는 은식이의 키를 받아 들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은식이
는 조수석에 탔다.
"어떡게 할래? 너희집은 안되겠다.."
나는 시동을 걸었다. 갈만한 곳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화석이와 주완이도 당한만큼 은식이도 절대 안전하지 않았
다. 그렇다고 우리집으로 갈수는 없었다. 나는 살인사건 용
의자이지 않은가? 집에서 경찰이 잠복하고 있을수도 있다
고 생각되었다.
나는 갑자기 웃음이 피식 나왔다. 너무나 암담한 나머지 더
이상 슬플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이렇게 된 바에야 될되로
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내 인생에 밝은 미래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아 왔
었다. 물론 막 살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
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내가 비극적으로 설계해보았던
초라한 내 인생보다 더욱 비참했다.
"쳇.."
갈 곳은 한군데 밖에 없었다. 현미네 집..
나는 악셀을 세게 밟았다.
어느덧 피빛 석양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