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원이던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것은 마찬가지일듯
싶다. 특히 이곳과 같은 종합병원은 더욱 그렇다. 1층에 왼
쪽편에는 약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대기실부
근에 모여 있었고, 오른쪽에는 접수를 위해 사람들이 바쁘
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이런 사람들사이에 파묻혀 기둥을 둘러 설치된 의자
에 앉았다. 의자에 앉아 모자창사이로 사방을 한번 둘러 보
았다. 다행히도 별로 나에 대해 신경쓰는 사람은 없어 보였
다. 옆에 앉아 있는 학생은 누군가를 한참이나 기다린 듯
신경질적으로 시계를 연신 바라보고 있었지만 바로 옆에 앉
아 있는 나에 대해서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안내데스크쪽을 한번 힐끔 보았다. 데스크에는 4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 중 두명은 전화를 받는데 정신이
없었고 한 여자는 머리가 백발인 할아버지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해주기위해 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나머지 한 여자는
그런 모습을 쳐다보면서 조금은 재미있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상하기로는 지금 이 곳에 입원해 있는 그 사람에게 기자
들이 많이 붙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기자 같아 보이는
사람들을 찾아 따라가면 그 사람이 입원해 있는 병실을 쉽
게 찾을 줄 알았지만 오산이었다. 누구도 기자라고 얼굴에
써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커다란 플래시가 붙
은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에는 내가 기
자인 척 하고 물어보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병원에서 쉽게 가르쳐 줄리 만무했다. 중요한 증인
이라는 경찰측의 요청으로 안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저 여자가 나를 알아보면 끝장이었다.
이렇게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을 최대한 숙이고 물어보면 더
욱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볼 것이 분명했고, 그렇다고
얼굴을 뻔히 들어내고 물어볼수도 없는 일이었다.
남은 방법은 한가지였다. 입원실을 모두 돌아다니면서 혹시
경찰이 지키고 있는 입원실이 있는지 찾는 수 밖에 없었다.
하루종일 걸려도 찾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으
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안내테스크를 힐끔
돌아보았다. 어느샌가 백발 할아버지 대신 두명의 건장한
남자가 무엇인가를 물어보고 있었다. 그 중 한명이 고개를
돌려 1층 로비를 한번 훑어 보았다.
"엇~~~"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자연스럽게 기둥뒤로 돌아가 그 남
자의 시선을 피했다. 그 남자는 전에 본 적이 있는 남자였
다. 바로 김장호형사였다. 김형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내가 지금 꼭 만나야 하는 사람때문이었다.
나는 기둥뒤에서 숨어서 두 명의 남자를 다시 한번 관찰했
다. 한명의 남자는 무엇인가를 연신 묻더니 고개를 끄덕거
리고는 김형사와 함께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내
뒤편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이 병원은 모두 15층으로 되어 있었다. 입원실은 대부분 6
층이상이었다. 전에 폐수술을 했던 화석이가 입원했던 병실
은 9층이었던 것 같다. 나는 다시 김형사의 눈을 피하기 위
해 기둥을 빙 돌았다. 김형사와 또 다른 형사로 보이는 두
남자는 무엇인가를 계속 이야기하면서 엘리베이터로 다가갔
다. 두대의 엘리베이터 중에 지금 내려오고 있는 엘리베이
터 앞에 서서 계속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나를 잘 보지 못하는 기둥면으로 이동해 비어
있는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그쪽을 곁눈질해 쳐다
보았다. 김형사는 계속해서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 1층 로
비를 수시로 둘러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때마다 고개를 다
른 쪽으로 돌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3명이 내렸다. 엘리베이터가 비자
두명의 형사는 엘리베이터안으로 올랐다. 그리고 문이 스르
르 닫혔다. 엘레베이터에는 두 명 빼고는 아무도 타지 않았
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엘리베이터로 다가갔다. 엘리베
이터는 한번도 멈추지 않고 곧장 13층으로 향했다.
[찌이잉~~~]
마침 옆 엘리베이터가 멈추어 섰다. 목발을 집고 있는 남
자와 간호사 한명등이 내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 엘리
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리고 13층을 눌렀다. 같이 탄 두명의
여자는 계속해서 누군가의 흉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두명의 여자는 7층에서 내렸다. 다시 엘리베이터는 서서히
위로 움직여 13층에 멈추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살펴 보았다. 양쪽으로
갈라진 복도는 모두 입원실인 모양이었다. 1층같은 번잡함
은 찾아 볼길이 없었다. 아마도 약간은 입원비가 비싸게 청
구될 듯한 층 같아 보였다.
나는 왼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3개의 입원실을 지나가 기억
자로 복도는 꺽이었다. 복도 모퉁이틀 따라 아무 생각없이
걸었다.
"앗~~"
모퉁이를 돌다가 나는 놀라서 몸을 숨겼다. 복도 저편에 방
금전 보았던 김형사와 다른 형사가 경찰복을 입고 있는 경
찰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경찰복을 입
고 있는 경찰은 항시 입원실앞에서 증인이라는 사람을 지키
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조금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김형사는 경
찰에게 무엇인가를 훈계하듯 이야기하다가 입원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일단 몇번째 방인지 확인했다. 복도의 모퉁
이에서 7번째 방이었다. 그곳에 나의 최후의 생명줄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손에서 땀이 배어져 나왔다. 일단은
찾아내는 것 까지는 성공했다. 나는 뒤쪽을 한번 돌아 보았
다. 저쪽편 복도에서 간호사 2명이 나와 엘리베이터쪽으로
다가가고 있었지만 나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나는 일단 몸을 숨긴 후 김형사와 다른 형사 한명이 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앞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픈사람
들이 편리하게 이용하게 하기 위해서인지 화장실이 꽤 컸다.
우연하게도 화장실의 세면대의 커다란 거울로 복도가 그대
로 보였다. 나는 그 거울로 복도를 관찰했다. 약 10분이 지
나갔다. 그 동안 몇명이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나는 그때마
다 소변기에 몸을 가까이대고 볼일을 보는 척 했다. 다시
10분정도가 지나갔다.
화장실의 거울에 김형사와 다른 형사가 비쳤다. 그들은 엘
리베이터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완전히 내려갔다고 생각될 정도까지 기다린 후 화장실에서
입원실 앞을 살폈다.
여전히 그 입원실 앞에는 경찰복을 입은 경찰 한명이 앉아
있었다. 그는 입원실 문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가 가끔
일어나서 복도창으로 밑을 내려다 보곤 했다.
입원실안에는 몇명이나 있을까? 안에도 경찰이 있는 것이
아닐까?
너무나 위험했다. 하지만 이미 각오한 사실이었다. 위험하
긴 하지만 지금은 도박을 해야만 했다. 저 안에 있는 증인
이라는 사람이 내가 자신을 납치하고 화석, 주완, 은식을
죽인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만 말해준다면..
아마도 증인이라는 인물은 자기가 당했던 극도의 공포때문
에 무엇인가 착각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경찰이나 메스컴
때문에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놈이 나라고 착각하고 있을
것 같았다. 내 얼굴을 본다면 분명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 질게 틀림없었다.
일단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만 밝혀진다면 그 를 만든 그 살인마를 경찰에서 찾게 될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저 입원실안에 있는 사람이 착각을 하고 정말로 내
가 범인이라고 한다면...
거기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나에게 더이상
남은 희망은 없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저 입원실에 있는 사람이 윤미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납치된 윤미.. 그녀가 살인
마에게 납치되었다가 도망쳤다면...
하지만 윤미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윤미라면 나를 범인이
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쇼크때문에 경찰에게
이상한 말을 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혼란스러웠다. 나는 혼란한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다시 입원실쪽을 바라 보았다.
나는 흠칫 놀랐다. 의자에 앉아 있던 경찰이 어느샌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해서 화장실로 오고
있었다. 아마도 볼일을 보려는 모양이었다. 나는 화장실입
구에서 복도를 쳐다볼다 말고 안으로 뛰어 들어와 빠르게
소변기앞에 섰다.
이 짓도 몇번을 했더니 이제는 익숙한 자세가 나오는 것 같
았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심각하게 볼일을 보는 자세를
취했다. 경찰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경찰은 무척이나 젊어보였다. 아마도 신참인 모양이었다.
허리춤에는 총을 차고 있었다. 가스총인지 권총인지 구분은
할수 없었다. 그리고 다른편에는 짧은 곤봉을 차고 있었다.
아마도 귀찮게 찾아드는 기자들을 쫓기 위한 위협도구쯤 같
았다.
화장실안으로 들어선 경찰은 화장실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한번 비추어 보더니 얼굴에 뭐가 났는지 손톱으로 무엇인
가를 짜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더니 바로 내가 서 있는 소
변기 옆으로 다가와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 휘파람까지 불
기 시작했다. 곡명은 알수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 태연하게 볼일을 보는 척 한 후 열지도 않은
지퍼를 다시 잠그는 척을 했다.
기회였다.
분명한 기회였다.
나는 화장실을 나가는 척 하다가 화장실 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문을 닫는 동작과 동시에 티셔츠 안 허리춤에 차고 있
던 권총을 꺼내 들고 경찰쪽으로 겨누었다.
[철컥~~~]
화장실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그 소리에 놀란 경찰이 볼
일을 보는 자세로 고개만 뒤로 돌려 문쪽을 바라보았다. 그
것과 동시에 그의 눈은 자신의 뜰수 있는 최대한으로 떠졌
고 입도 그것과 동시에 헤하고 벌어졌다.
"꼼짝마~~~"
나는 작지만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겁을 줄 필요가 있었다. 정말 쏠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뭐야~~~~"
볼일을 보는 자세로 놀란 듯한 목소리를 내뱉는 경찰은 갑
자기 생리작용을 멈출수 없었는지 무척이나 엉거주춤한 자
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볼일은 그대로 보고 절대 뒤를 돌아볼 생각은 하지마.. 이
총은 장식품이 아니니깐..."
나는 말을 하면서 그에게 조금씩 다가가 바로 한걸음 뒤쪽
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뒤통수를 조금 비켜 총을 겨누
었다. 계속 총을 쥐어봐도 잡으면 언제나 손가락이 너무나
떨렸다. 특히 사람에게 겨누면 떨림은 더욱 심해졌다. 혹시
실수로 방아쇠를 당가게 될까봐 나는 그의 머리를 비켜서
조준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위협으로는 충분했다.
"쏘쏘지.. 마세...마세요..."
이 경찰은 내가 사람을 수없이 죽인 연쇄살인범인이란 것을
확실히 교육 받은게 틀림없었다. 그의 온 몸이 심하게 떨리
고 있음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방금 생리현상을 해결
하지 않았다면 바지를 지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몇가지만 묻겠어..."
"아.. 예..예.."
"병실안에는 몇명이 있지?"
"그그.. 그그게.. 그그러니까..."
총의 위력인지 아니면 나에 대한 두려움인지 경찰이 너무나
더듬었기 때문에 그의 말을 이해하는데 꽤나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대충 정리하면 안에는 경찰한명뿐이었다. 가족도 특정시간
이외에는 환자의 빠른 안정을 위해서 면회가 금지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경찰은 방의 어디쯤 있어..."
"그그그게.. 그러니까.. 문 바로바로.. 왼쪽.. 아아아니..
오른쪽...이요.."
"확실히 말해.. 왼쪽이야? 오른쪽이야?"
"그그게.. 오오오른쪽이요.."
"그리고 한가지더..."
나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확하게 권총의 손잡이부분
으로 목덜미를 후려쳤다. 영화에서 이러면 대부분 기절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악~~~~]
하지만 남자는 기절은 커녕 내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내가 때린것이 꽤나 아팠는지 비명을
질러대며 발광했다. 나는 놀라서 경찰의 얼굴을 주먹으로
아주 세게 후려쳤다. 그제서야 경찰은 기절해버렸다.
"쳇~~~"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경찰의 입주변에 피가 배어져 나왔
다. 하지만 지금 남 걱정이나 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
었다. 나는 기절한 남자의 겨드랑이를 잡고 일으켜 화장실
제일 안쪽에 있는 창고로 끌고가 안에다 밀어 넣은후 문을
닫았다.
막 화장실을 나서려고 하는데 한명의 남자가 닫힌 문을 열
고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그 남자를 지나쳐 화장실에서 나왔다.
복도에 놓여져 있는 빈 의자가 보였다.
'이제 한명 남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