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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9일 - 1

고양이눈 |2013.01.08 06:01
조회 5,358 |추천 8

2015년 3월 1일.

 

눈을 떴다.

꿈속엔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없었다.

검은 화면만 가득찬 꿈.

도대체 이게 뭐지?

이런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2016년 2월 난 다이어리를 열어 기존에 썼던 내용을 체크해나갔다.

2016년 2월 29일...

 

그렇다.

나에겐 2016년 2월 19일이 통째로 없어져버렸다.

그리고, 바로 2016년 3월 1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과연 이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따르르릉... 따르르릉....

알람이 울린다.

 

나는 손을 뻗어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고는 보류버튼을 누른다.

그리곤, 베게에 얼굴을 몇 번 비벼 털어내곤 눈을뜬다.

 

나는백수다.

 

알람이라는거 백수한테는 필요없다는걸 알지만 오늘같이 특별한 날이 일년에 몇 번쯤은 있어줘야 나도 사람이구나... 싶다.

 

침대에 누워 리모콘으로 tv를 켠다.

보지도 않는 tv지만 저렇게라도 해야 방안의 사람 온기가 느껴지기에 습관적으로 켜놓게 된다.

 

그렇게 다음번 알람이 울리자 난 고급 실크로 만든 하얀색 이불을 벗겨내고는 화장실로 향한다.

따뜻한 물이 예열의 시간도 필요없다는 듯이 콸콸 쏟아져나온다.

 

잘 정돈된 화장실... 물기하나 없는 바닥...

방에는 걸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 카펫이 깔려있다.

 

방안은 참 조촐하다.

그러나 인테리어는 참 고급스럽다.

그 고급스러움이 나에게 아늑함을 준다.

그래서 난 이 호텔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나를 명품옷에 좋은 차를 몰고 다니는 백수인 나를 재벌이나 졸부의 아들쯤으로 보지만...

사실 난 고아다.

살면서 단 한번도 직장다운 직장을 다녀본 적 없고 알바를 빼곤 돈을 벌어본 적도 없다.

 

 

그냥 나에겐 이 인생이 쉽다.

아니... 쉬웠다.

.

.

.

적어도 그날이 오기 전까진 말이다.

 

 

 

 

 

 

 

 

 

 

2014년

 

슬슬 돈이 떨어져가고 있다.

돈 같은 것에 집착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없으면 상당히 불편한 경우가 많다.

 

한 번도 직업을 갖아 본 적 없고 그렇다고 부모가 있는 것도...

집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난 그 흔한 신용카드 한 장 소유해본 적 없다.

그렇기에 매번 현금을 필요한 만큼 준비를 해두는데 깜빡 잊고 준비해두지 못할땐 며칠이고 호텔 체크 아웃도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다행히 이 호텔은 거의 여관으로 따지면 달방 수준으로 살고 있기에 호텔측에서의 배려가 있어 며칠 정도는 유예를 두고 쫒겨나진 않지만...

그런 경우 괜한 눈칫밥에 신경이 이만 저만 쓰이는게 아니다.

 

 

 

오늘은 슬슬 움직여야 할 것 같다.

 

 

 

따르릉 따르릉

 

나 : 여보세요?

 

성민 : 일어났냐?

 

나 : 어....

 

나는 한쪽어깨에 핸드폰을 끼고 손목셔츠의 단추를 잠그며 대화를 이어간다.

 

 

성민 : 나 지금 너희 호텔 앞인데... 나와 밥이나 먹게.

 

나 : ......그래? 나 안그래도 갈데가 있는데...

 

성민 : 어디?

 

나 : ....................바다나 볼러갈래?

 

성민 : 좋지....

 

 

 

성민은 내 고등학교 친구다.

내게 남은 유일한 친구.

 

 

호텔 1층...

잘 빠진 내 차가 대기하고 있다.

그 옆에 성민이 손목시계를 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삐빅...

 

나 : 타.

 

성민 : 아까 나온다면서 왜 이렇게 오래걸려. 더워 뒈지는줄 알았네...

 

나 : 갑자기 배가 아픈데 어떡하냐? 올라오지 그랬어.

 

성민 : 올라가긴 뭘 올라가... 그러다가 엇갈리면..? 이럴 줄 알았으면 안에서 기다릴껄...

 

 

20년을 만나면서 느끼는건 성민은 변함없이 투덜거린다는거다.

고등학교때 이 자식의 부모님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이 새끼랑 엮일 일도 없었을텐데 정말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정도의 투덜거림이다.

 

 

성민 : 근데 바다? 어디 바다??

 

나 : 경포대나 다녀오자.

 

성민 : 오... 경포대... 여름은 바다쥐~~~~~~~~~~~~~·

 

성민과 난 바다를 향해 내달렸고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경포대 해변을 거닐었다.

 

 

성민 : 오~~ 깔삼한데... 야... 저기 저 여자 봐봐... 아주 몸매가.... 와.... 내가 꼬셔볼까?

 

나 : ............잠깐만.................

 

난 여자보단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계속 찾고 있었다.

 

 

나 : 빙고!!!

 

난 썬글라스를 벗어 손에 쥐고는 성민을 뒤로하고 코너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로 뛰어갔다.

 

 

 

성민 : 야... 올때 디스 한갑 사와...

 

뒤에서 성민이 소리쳤고 난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해보이곤 구멍가게로 들어갔다.

주인의 인사를 바란다는건 무리일 정도로 가게안엔 헐벗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나: 디스 한갑주세요.

 

가게주인 : 2000원입니다.

 

 

난 카운터에 DP되어있는 복권을 손으로 가리키며 “복권도 한 장주세요.”라 말했다.

 

가게 주인은 여행지와서 복권을 사는 사람이 있네...라고 생각하는듯 잠깐 갸우뚱하면서 종류를 물었다.

 

가게주인 : 즉석드려요?

 

나 : 네....

 

가게주인 : 4000원입니다.

 

난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해진 지폐를 꺼내곤 카운터 복권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성민 : 야... 넌 뭐 이런데 와서까지 복권을 사냐? 돈 독 오른 새끼.

 

나 : 크크크크크크크 자 이제 놀아보실까?

 

성민은 금새 얼굴에 화색을 뛰며 내 팔을 끌고는 아까 봐둔 아가씨들 옆으로 슬금슬금 이동했다.

 

성민은 도대체 어디서 저런 저렴한 멘트는 배워오는건지...

더 웃긴 건 저 저렴한 멘트에 넘어오는 저 여자들도 한심하다는거다.

 

그렇게 그녀들과 어울려 밤이 될 때까지 술을 진탕마시고...

저녁엔 웃돈까지 두둑히 올려 얻은 호텔방에서 그녀와 홈런을 쳤다.

 

 

아침 날이 밝자마자 난 숙취로 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성민의 방 문을 두들겼다.

 

한참 후에야 바지를 주섬주섬 챙겨입으며 나오는 성민을 밀치며 성민의 방으로 들어갔다.

 

전라의 몸을 하고 있던 성민의 파트너는 이불을 끌어오리며 비명을 질렀고, 난 손을 눈썹위로 올리며 미안함을 표시하곤 성민의 옷가지를 들고는 성민 팔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성민 : 뭐야...? 개자식아. 아직 잠도 안깼구만...

 

나 : 빨리 가자... 안 좋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으면...

 

성민은 내 말에 그의 파트너에게 전화하는 제스쳐를 보내곤 내 뒤를 바로 따랐다.

 

 

 

성민 : 바로 올라갈꺼야?

 

나 : 어... 그래야 될 것 같다.

 

성민 : 아... 대체 넌... 매사에 이렇게 즉흥적이냐.

         아... 어제 걔랑 인사도 제대로 못.... 아! 씨팔!!! 연락처도 못 받았는데... 이 강아지야!!!

 

나 : 신발! 머리 깨질 것 같아! 조용히 좀 해... 저녁에 더 쌔끈한년 만나게 해줄테니깐.

 

성민 : 아... 씨...발.... 그...럴..래?

 

나 : 단순한 새끼

 

 

난 바로 서울로 올라가 복권 브로커를 만났다.

복권은 탈세에 유용하게 사용되기에 나 같은 고객은 VIP고객중에서도 으뜸 고객이다.

복권 브로커 역시 내가 중간 브로커라고 알고 있어 아직 나의 정체는 모르는 듯 하다.

2억짜리 즉석 복권을 건네고 세금을 제한 나머지 금액을 챙겨 차에 올랐다.

그날 난 성민과의 약속으로 끝장나는 여자 품에 안겨 잠에 들었다.

 

 

 

나 : 신발...

 

성민 : 왜 그래? 안 좋은 꿈 꿨어?

 

나 : ...........신발...

 

성민 : 뭔데?

 

나 : 그년이 죽었어.

 

성민 : 누구? 어떤년?

 

나 : 어제 바닷가에서 나랑 떡친년..

 

성민 : 엑? 진짜? 어떻게??

 

나 : 빚이 있었나봐...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 쓰고 못 갚다가...

 

성민 : 헐... 대박.

 

나 : ......................신발...

 

 

성민은 차 의자에 깊게 누워있다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말을 이었다.

 

성민 : 야... 근데... 너가 눈으로 직접 보는거 말고, 너랑 관계없는 건 못보지 않냐?

         그 아가씨랑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던거야?

 

나 : ..................아니...아... 신발...

      나도 그래서 1년 뒤에 미래가 바뀌어도 나랑 상관없다 생각하고 바꿨는데...

 

성민 : 그럼 어떻게 죽었는지 알어?

 

나 : 1년 뒤 오늘 내가 뉴스를 보는데 거기에 나오더라.

 

성민 : 얼굴이 자세히 나온것도 아닐텐데 그 아가씨라고 하기엔... 좀... 아닐 수도 있잖아.

 

나 : 나한테 필요 없는 정보를 다음날 눈을 떴을때 기억해 내는 일은 없었어.

      사실... 말은 안했지만 어제 내 꿈대로라면 그 년이 내 복권을 먹고 튀어야해.

      나중에 그년을 내가 찾아내긴 하는데... 일주일이 지나서야...

      거기다 돈도 절반이나 쓴 상태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빚을 갚았겠지...

 

성민 : 꿈속에서 그 아가씨 빚있는것도 나오냐?

 

나 : 내가 보지 못한 그년 인생을 어떻게 아냐?

      뉴스에서 나오는 내용 보니 대충 이랬으니 뒈졌구나 싶은거지

      여튼 그년 찾으러 다니는 그 일주일이 너무 귀찮길래...

      그러면 안되는데... 복권을 두 장 샀어.

      당첨된 한 장은 그년이 절대 찾을 수 없는 곳...

      한 장은 내 자켓주머니..

 

성민 : 찾을 수 없는 곳?

 

나 : 니 쟈켓....

 

성민 : 내 쟈케엣?

 

나 : 그래... 강아지야. 몇 번을 말해!!!

 

성민 : 아... 씨팔... 그래서...?

 

살짝 언잖은듯이 미간을 찌푸리던 성민은 이내 내 말을 끌어냈다.

 

 

나 : 그년이 너랑 혹시라도 다시 마주치게 될까봐 너 일찍 깨워서 서울 왔는데..

      신발... 뒈지긴 왜 뒈져...

 

성민 : 야... 넌 돈도 많은 새끼가... 미래를 바꿔서까지 그걸 뺏어야겠디?

         인정머리 없는 새끼야.

 

나 : ......아.. 신발... 모르면 될지 알았는데... 신발...신발...이런식으로 보여질지 내가 알았겠냐.

 

성민 : 그 아가씨 졸라 불쌍하다. 이 인정머리 없는 새끼 덕분에...

 

나 : 야! 이 개쌔끼야. 첨부터 돈도 없으면서 여기저기 돈 빌려 쓰고 다니고...

      바닷가 와서 놀 돈은 있냐. 그 된장같은 년이 잘못인거지.

 

성민 : 너가 그런 말 할 자격은 없는 것 같지만...

         뭐 그년도 정신상태가 안 좋긴하네... 잊어버려... 니가 그런다고 바뀌는것도 없잖아.

 

나 : ................................... 마음이 편치가 않아.

 

성민 : 아! 그럼... 오늘이라도 그년 찾아서 복권을 바꿔치기 하는 건 어때?

 

나 : 벌써 긁어봤으면?

 

성민 : 뭐 어때!!! 경식이때도 니가 돌려놨더니 아직까지 잘 흘러왔잖아.

 

나 : 아... 신발...

 

 

난 손가락 열 개를 다 머리카락속에 집어넣고 머리를 헤집어댔다.

 

 

 

 

성민과의 대화에서 보듯이...

 

난 미래를 본다.

정확히 1년 뒤의 미래를...

오늘... 잠에 들면 내년의 오늘을 볼 수 있다.

 

 

경식이때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경포대녀에게도 좋게 마무리 된다는 보장은 없다.

혼란스럽다.

(경식 : 고등학교 친구 / 고등학교때 미래를 바꿔놓은 친구. -판엔 없습니다.)

추천수8
반대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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