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문명의 초창기에 생겨난 순수한 신앙과, 신의 의도를 해석해 인간세상에 적용시키려는 움직임은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이다.
오늘날에는 후자의 활동이 종교의 주된 의미로 자리잡았는데 이 과정에서 기본적인 신의 권위와 능력보다는 인간적인 의도와 결합한 정치적, 사회적 이념으로써 인간을 통제하고 변화시키려는 근원적인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신의 뜻에 따라'라는 전제가 붙지만 신의 계획과 의도는 인간적으로 짐작하고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차원과 동떨어진 신의 영역을 설명하고 알기 위해서 인간적 수단으로 표현하고 규정한 것이 종교이며 이것은 임의로 조작하거나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
실제로 인간 세상의 모든 종교들의 근간이 되는 성서와 경전들은 인간적 의도에 의해서 해석되고 씌여진 것이지, 완전한 인간 문자의 형태로 신에게서 직접적으로 전달된 것이 아니다. 예수, 석가는 글로써 뜻을 남기려고 한 사실이 없다. 추종하던 제자들이 그들의 행동과 말을 기록하고 번역하고 해석한 것이다.
기독교의 근원인 성서는 신에게서 직접적으로 전달된 단순한 메시지인 '십계명'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신학자들에 의해 기록되고 번역 해석된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슬람의 코란은 신의 계시를 받은 무함마드의 말을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오랫동안 이 성경이 신의 능력에 영향을 받아 영의 움직임으로 기록되었다는 '영감론'이 지배적이었으나, 신정통주의 이후 이 이론은 설득력을 잃었다.
이 경전들에 나타난 신의 의도를 바탕으로 인간 세상의 법제가 완성되었으며, 신자들의 인생의 규칙, 즉 계율이 정립되었다. 유일신을 가진 종교들은 이 계율이 엄격하며 근본적인 믿음의 의미와 함께하고 있다.
하나의 신 이외에는 인정하지 않으므로, 그 뜻을 명시한 계율은 절대적인 개념이다.
기독교는 십계명에 그 내용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슬람에서는 엄격한 계율을 지키기 위하여 신의 율법(샤리아)과, 이를 바탕으로 인간 세상에 적용할 수 있는 법(까눈)을 분리하여 명시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을 모두 분류하여 철저히 지키고 있다.
그 중 엄격한 의식, 예를 들어 의무적인 금식같은 것은 믿음의 뿌리를 함께하는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에서 초창기에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나 기독교에서는 후에 안식일과 주일의 의미로 축소되었다.
이 계율들은 신이 인간에서 직접 알려준 의도이기 때문에 유일신을 가진 종교에서 '신의 은혜'로 생각되었으며 순수한 의미에서 종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신의 은총, 축복은 사실 이 부분에 한정된다. 이 조항에 위반되는 행동을 했을 시, 신의 분노를 사게 되어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이 기본적인 믿음이다.
유대교,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같은 믿음에서 출발했으며, 이슬람교는 이 믿음을 해석하여 새롭게 나타난 종교이다. 세 종교는 구약성경의 믿음을 공유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쓰여진 이 내용은 유대인 사회의 율법과 문화 역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유대인의 모든 사회활동의 근원이 되었다. 이 중에서 '십계명'은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3번째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이것은 죄이다'는 조항에 의거, 그들은 이 내용을 알게된 기원전 300년 이후, 그들의 유일신 '야훼'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여호와 하나님' 등으로 자주 일컬어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시 다신교 사회였던 로마가 점령지인 중동지역 통치과정의 유대인과의 끊임없는 갈등속에서, 반란 진압을 위해 성지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그들의 종교를 부정하려 했으나 실패적이었고, 인간적 타락의 가능성이 높은 다신교보다 절대적인 유일신의 가치에 매료되어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기에 이르고, 황제 자신이 개종하였으며 베드로의 후계자 교황을 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로마의 유대교는 '로마 가톨릭'으로 변화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출발이다. 기존의 유대교 신자들은 흩어져 그들만의 믿음을 지켜갔다.
역시 다신교 사회였던 이슬람지역은 무함마드(마호메트)라는 지도자가 등장해 그들의 여러 신 중에서 '알라'만을 유일신으로 인정하였으며, 이것은 대천사 가브리엘에게 직접 계시받은 내용으로 제자들에 의해 '코란'으로 기록된다.
로마 가톨릭과 이슬람교는 각기 지역에서 강력한 정치적 기반이 되어, 로마가 전성기를 맞고 이슬람이 거대세력으로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절대적인 유일신의 개념은 통치자에게는 유리한 이념이었으나, 신도들이 이해하고 신앙심을 높여가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실제로 구약성경의 하느님은 인간에게 매우 엄격하고 무서운 절대자 그 자체였다.
기존의 다신교 신앙에서는 상황과 장소에 따라 각기 다른 인격신들이 존재했고,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힌두교'가 그 예다.
기독교가 인격신의 특색을 갖기 시작한 것은, 예수의 의미를 해석하고 집중하고부터이다.
로마의 신학자 '마르키온'은 구약성경을 부정하고, 신이 인간을 사랑하고 정의로운 존재라는 것은 예수로 증명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구약성경의 하느님에 관련된 일부 내용을 삭제하기도 했으며, 예수 자체를 신으로 인정하지는 않았다. 당시 신학계에서 이단으로 간주, 배척되었으나 이 이론은 큰 파장을 일으켜, 예수의 의미에 대해 집중하고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신의 구원의 약속을 재조명하는 작업으로 사도들과 신학자들의 증언과 기록을 바탕으로 신약성경이 쓰여지기 시작했고, 구약성경의 하느님과 신약의 예수님은 동일한 개념이며, 신이 진정한 뜻을 인간에게 전하기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와,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해 직접 고통을 겪으며 용서하였고 이것은 구원의 증거이며 약속이라는 구원론이 확정되었다.
오직 변함없는 예수를 통한 구원의 계약과 믿음으로써 성령을 통해 이에 다가갈 수 있다는 내용은 종교개혁자 칼뱅에 의해 정립된 부분이다.
유대교에서는 구약이후 이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해석본인 '탈무드'를 추가하였고, 이슬람에서도 코란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한 주역서와 해석서들이 추가되었으며, 코란 해석은 매우 중요한 작업으로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오역들과, 비종교적인 부분까지 포함되었으며, 성서를 포함한 현재의 경전들은 초기의 순수한 신앙 자체의 의미로만 보기는 어렵다.
구원론을 바탕으로 한 포교의 형태는 유일신을 가진 종교에서만 나타나는 특색으로, 주로 통치자들의 정복이념과 명분으로 작용하였다.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인간적인 훈련과 스스로의 통제를 중점으로 했던 불교는 특이한 경우이며, 종교적 신념과는 다른 개념으로 발생지와 주변국들을 목표로 포교가 성행하기도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다수의 중생을 목표로 한 깨달음의 전달인 '대승불교'이다. 유일신의 부재로 많은 지역 민간신앙들과 결합하기도 했으며, 강력한 통치수단이 되지 못했다고 해석된다.
사실 불교는 당시 가장 강대하고 부유했던 지역에서 발생했던 믿음으로, 현세를 즐기고자 하는 인간에게 내세적 구원론은 호소력이 약했다고 본다.
불교의 구원론은 현세의 인간이 죽어서 죗값에 따라 지옥에서 벌을 받고, 심판의 연장된 개념으로 내세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는 것인데, 죄를 지은 인간은 내세에 짐승이나 하층민으로 태어나 고통을 받게 된다고 알려졌으며 수행을 통해 초월한 자 만이 이 고통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당시 가장 열악하고 가난한 환경에서 생겨난 기독교적 구원론과는 차이가 있다.
유일신을 가진 종교들은 인간중심의 학문이 발달하기 전까지, 모든 예술과 학문의 중심이었으며 이 연구들은 통치자들의 정복이념으로 악용되었다.
유대교는 성지인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목표인 '시온주의'의 강력한 기반이었고, 실제로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이 건국됨으로써 이 믿음은 성과를 이루었다.
이슬람은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교파로 분리되어 무력투쟁의 수단으로 변질된 예가 많다. 현재도 근본주의자들의 정치투쟁의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미국 내 흑인의 단합을 호소하는 세력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기독교는 성서해석을 근거로 한 정복과 인종차별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 이야기를 근거로, 네덜란드인의 흑인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념이 되기도 했다.
이것은 다른 의미로 '선민사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갈 운명으로 정해진 특정인들은 다른 이들보다 선천적으로 우월하며, 지배의 명분이 있다는 것이다. 나치의 게르만민족 우월주의나, 중화사상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선민사상으로 발전한 유일신 종교이념들은 선택받은 자들의 당위성을 바탕으로, 이를 증명하고 한정적인 이득을 위한 수단과 명분으로 믿음을 내세우고 있으며, 선택되지 못한자들을 위한 포교를 중심으로 하지는 않는다. 즉, 신의 뜻에 따라 선택된 자들은 이미 정해졌으며, 구원받지 못하는 선택되지 못한자들이 있는 것 또한 신의 뜻이므로 굳이 포교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른 이야기지만, 이것을 모두 부정한 것이 공산주의이다. 오로지 평등한 사회를 목표로 발생한 것이 공산주의 혁명이었으나, 중재자가 없는 평등주의는 보장받지 못했고, 지도자들은 모두 독재자로 변신해 이 이론은 실패했다. 공산혁명의 아이콘으로 기억되는 '체 게바라'는 평등을 위한 순수한 혁명투쟁을 꿈꾸었으나, 현재 모든 공산국가들은 독재주의로 변질되어 몰락하였다.
기독교에서 가장 오래된 개념인 '원죄론'은 위대한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정립되었으며, 선민사상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었다. 이것은 후에 칼뱅에 의해 재조명되어 '예정된 구원론'으로 정리된다.
창조된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신의 계율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발생한 이 인간최초의 죄는 구원론의 핵심적 전제가 된다. 즉,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죄인의 후손이므로 죄를 알게 된 시점부터 죄의 근원인 악을 배척하고 신에게 귀속될 운명이 정해져 있으며, 인간은 근원적으로 악하며, 인간이 행할수 있는 자유는 모두 죄에 해당하는 부분이라는 내용이다.
칼뱅의 예정론조차도 구원받을자와 구원받지 못할자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선민사상의 형태였으며, 인간적인 이성으로는 죄의 근원을 벗어날 능력이 없으므로, 인간은 신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후에 이것은 근대철학의 분석과 재조명을 통해 인간의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죄와 선이란 문제로 정리되어, 근대적인 법제와 도덕의 기본개념이 된다. 종교에 이 개념이 녹아들어간 것이 현대의 기독교이다. 즉 믿음은 순수한 신 중심의 의미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되었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포교가 이루어졌다.
죄와 죽음의 길, 선과 생명의 길이란 선택은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과 예정된 구원을 더욱 강조할 수 있는 전제가 되었고 자발적인 믿음과 회개, 전도의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냉정히 말하면, 신의 영역을 인간적으로 해석하여 자유의지와 평등을 강조한 인간적 의미의 구원론인 셈이다. 단지 다른 이에게 선택가능한 생명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서 구원을 위한 인도를 증명해보이려는 욕심은 현대사회에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이것은 정치 사회적인 특별한 목적과 달리, 교세를 확장하기 위한 의도로 변질된 점이 많고 그들이 주장하는 천국과 지옥의 구원론은 이미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선택으로 변한 내용이므로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즉, 하나님만이 아시는 계획과 사실이 의도적으로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거짓이기 때문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보다 겸허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대철학과 순수한 종교의 의미를 혼동해서는 안되며, 인간의 선택과 신의 예정된 운명은 공존할 수 없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볼 때, 신이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것이 목표라는 주장은 결국 인간의 해석에 따른 것이며, 초창기의 순수한 신앙이 가졌던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종교인이라면 자의적인 해석과 적용에 앞서,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절제, 엄격함을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죄인이 죄인에게 선의 길을 가르치고, 심지어 용서와 구원을 말하는 것은 가장 큰 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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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 '로마가톨릭'의 시작은 밀라노 칙령 이전이며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고, 팍스 로마나(Pax Romana)시대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기 이전, 시저 사망 후 옥타비아누스가 초대황제가 된 시기이다. 황제가 교황의 위치를 겸임했다는 것은 동로마제국의 '동방정교회'이며, 로마가톨릭의 교황이 이미 존재했고, 동방정교회의 수장의 명칭은 '교황'이 아니었다. 밀라노 칙령을 전후하여 로마가톨릭이 시작되고, 기독교가 권위를 얻게 된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