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웃대(인생사프리님)
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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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시죠.”
행색은 초라한 전선기라는 청년은 나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의자에 앉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언가 산전수전 다 겪은 그런 눈이었다.
나이도 기껏해야 20대 중후반이나 서른 초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지만, 이런 녀석이 상대하기가 가장 까다롭다.
“신고자 이시라구요? 그런데 용의자 남자친구?”
“예, 그녀는 제 여자친굽니다.”
“왜 신고를 하셨죠? 이거... 왜 라고 묻는 것도 좀 그렇네요. 당연한건데...”
내가 들고있던 펜을 돌리며 물었다. 약간 비꼬는 억양도 섞여있었다.
어떤 녀석인지 알아보려는 약한 도발이었다.
“그렇죠.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아직 주희를 사랑합니다. 그녀가 나쁜길로 빠진다면, 가장먼저 바로잡아야 할 사람도 저죠.”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너무 모범정답이다.
이렇게 틈을 주지 않아서야, 정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나는 말하기를 멈추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진선기라는 자도 나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지속을 하는데, 이 반장이 나를 말렸다.
“자네, 목격자 앞에두고 뭐하는 거야? 하하, 원래 이런 녀석입니다. 너무 맘에 담지 마시죠.”
“괜찮습니다. 수사에 협조할 뿐입니다.
나는 개의치 않고 그를 계속 바라봤다. 끝까지 그의 눈에서 허점을 찾으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서주희를 언제 만났죠?”
“7개월 전입니다.”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 담기엔 좀 빠르군요.”
“3초만에 빠지는게 사랑이라고 하더이다.”
“.......”
그에게 더 이상 뭔가를 바라긴 힘들었다.
말투, 표정, 몸짓, 그리고 사소한 버릇까지 그에게 완벽하지 않은 건 없었다.
마치 거대한 난공불락의 요새를 보는 것 같았다. 굳이 티를 잡자면 창밖을 자주 본다는 것 뿐이었다.
“밖에 뭐가 있나요?”
“아뇨, 오늘은 날씨가 좋군요.”
“구름이 깔렸는데 날씨가 좋다뇨?”
“나는 비오는 날을 좋아하죠.”
그 질문을 마지막으로 나는 일어나 버렸다. 내가 답답해져서 더 하고싶은 말이 없어졌다.
덕분에 전선기란 자는 형식이가 맡게 되었다. 뭔가 속에 갑갑한 기운 때문에 화단에 나가 담배를 피웠다.
“후우...”
범인을 잡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동안 철저한 계획에, 철저한 행동에, 심지어는 먹는 것 까지 계산하며 움직였다. 그 결과로 범인을 내 손으로 잡지는 못했지만 범인은 내 손에 쥐고 있다.
하지만 범인은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성기같은 기분.
“뭐하냐? 같이 펴.”
“어... 끝났어?”
목격자 진술을 다 작성했는지, 형식이가 나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내가 그것을 건네받아 읽을 동안, 형식이도 담배를 폈다.
그는 덩치답지 않게 순한 담배를 좋아했다. 진술서를 보는 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이 30에 무직... 형편없는 놈인데...”
“형편없는 놈인데... 라니?”
“아니, 분명 형편없는 놈인데, 어째서 저런 여유를... 에휴 아니다. 모르겠다.”
형식이는 나를 의아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궁금한 건 나다.
나이 30이나 되어서 직업도 없는 놈은 수도 없이 봐왔다.
30은 양반이고 40대, 50대 노숙자도 많이 봐왔지만, 20대 중반이든, 40대든, 50대든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감 결여였다.
대답을 해도 우리 경찰들 앞에선 웅크러들었고, 말을 더듬는 건 기본이다.
아까처럼 조금만 오래 쳐다보면, 뭔가를 걸린 것처럼 눈을 피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저 사람은 다르다.
“특이한 점 없었어?”
“없었... 아니 있긴있어.”
“뭔데...?”
“그게...”
나는 여기에서 더욱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뭐?! 혼인신고?!”
“어, 재판으로 가기 전에 그녀와 혼인신고를 하겠데, 벌써 도장도 가져왔어.”
“뭐 그런 미친새끼가 다있어? 만난지 7개월 됐다며? 게다가 그 상대가 연쇄살인범이야, 살인 수법도 아주 잔악한...”
“낸들 아냐, 나도 별놈들을 다봤지만, 이런놈은 처음이야.”
나는 짜증이 치밀어 담배를 한대 더 태웠다. 화단엔 내가 만든 담배 묘비만 수북히 쌓여갔다.
정말 빈틈없는 커플이다. 물론 다른 경찰들은 범인만 잡으면 땡이겠지만, 나는 누나가 걸려있다.
그녀가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혹시 죽었다 하더라도 시신은 찾아야 하는데 그것도 어렵다.
“적당히 피고 들어와 임마, 반장님이 걱정 많이 하시드라.”
“그 영감탱이가...?”
“너도 영감탱이, 영감탱이 하면서도 알잖아?”
“.......”
담배를 마저 태우고 들어가려는데, 조사를 마치고 경찰청을 나서려는 전선기가 보였다.
나는 무시하고 들어가려 했지만, 그대로 보내기엔 뭔가 아쉬워 그를 불렀다.
“이보쇼.”
“아, 형사님.”
나를 돌아보는 전선기의 표정엔 미소가 살짝 띄워져 있었다.
나는 속으로 욕이 들끓었지만, 꾹 누르고 미소를 지었다.
“조사 끝나셨습니까?”
“네, 덕분에 편하게 말하고 갑니다. 속이 후련하군요.”
“잠깐 저랑 이야기좀 하실수 있을까요?”
“네, 그러죠.”
흔쾌히 허락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왠지 철옹성같은 분위기라 그걸 깨버리고 싶은 오기가 피워올랐는지도 몰랐다.
이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짜증나고 답답하지만,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었다.
“사건 외의 이야기를 하고싶어서 불러세웠습니다.”
“네, 예상했습니다.”
“예상...?”
“사건이야기면 아까 안에서 다 물어보셨겠죠.”
“아... 예...”
나는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나의 속이 금방 간파당했던 것이다. 이쯤되니 누가 형사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어찌보면 나이 60정도 되신 어르신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혼인 신고를 한다구요?”
“네, 그렇게 결심했습니다.”
“아니 왜 그렇게 갑자기?”
“갑자기는 아니구요, 계속 생각해 오던 겁니다. 이 일이 있기 전부터.”
“뭔가 모르시나 본데, 이번에 형을 받으면 10년? 20년이 넘게 걸릴지도 몰라요.”
“그런건 저에게 상관없습니다.”
신발. 뭐 이런 성인 군자같은 새끼가 다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다시금 꾹 눌러 담았다.
“담배 피는 것 같던데, 한대 할래요?”
“그러죠.”
내가 담배를 건내고 불을 붙여주자, 그는 감사하다는 의미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쯤되니, 내가 왜 이렇게 이 남자에게 집착을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말 하지 않고 담배를 다 태우고, 그에게 악수를 권했다.
“강력 2반 박선후 형사입니다. 조사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계속 수고해주십쇼.”
“.......”
내 손을 잡는 그의 손이 무척이나 딱딱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돌아서서 갈길을 가는 그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어느새 날이 저물고 그의 머리 위에서는 빨간 노을이 지고 있었다.
나는 풀리지 않는 답답함에 한숨을 푸욱 내쉬고, 경찰청 안으로 들어갔다.
어둑어둑해진 길에서, 바닥의 과자를 쪼아먹는 비둘기에게 괜시리 화풀이를 했다.
“쳇, 성기같은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