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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친구를 뺏아간 친구 이야기

스푸트니크 |2015.09.15 22:29
조회 28,045 |추천 46
 
주말에 고등학교 때 친구를 만났습니다.
저한테 보여줄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나간 자리였는데
결혼 할 사람이라고 여자친구를 데려왔더라구요.
대충 예상은 했지만, 여자친구와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졌다가 튕겨져 올라오듯이 뛰더라고요.
 
참..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물 때쯤 되면 꼭 가슴을 한번씩 후벼파고
괜찮아질때면 또 저를 들쑤셔놓고 가네요.
 
주말에 만난 친구는, 고등학생 때 전학가서 같은 반이었던 친구로
제가 좋아했던 여자를 세번이나 뺏아갔던 놈이죠.
그 중에 두번은 여자친구였고요.
그 여자들이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괴롭히고 싶어서? 제가 연애하는 게 꼴보기 싫어서?
 
세번이나 좋아했던 여자를 가로채갔는데도
괴롭고 마음은 너무 아픈데
도저히 그 친구가 미워지지 않았어요.
 
이게 무슨 감정인가 싶어서 너무 혼란스럽고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는데
주말에 얼굴을 보니
이제야 제 감정을 알겠더라고요.
 
그럼 뭐하겠어요.
너무 늦어버렸는데.
 
 
이 카테고리가 '지금은 연애중'이긴 하지만
사실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 것도 아니고
달달하고 설렐만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도 아니예요.
 
아무 사이 아닌 친구죠, 결과적으로.
뭐.. 스킨십은 있었지만요.
 
친구 이니셜을 따서 W라고 부르겠습니다.
 
 
W가 데려온 여자분은 한눈에 봐도 미인이었습니다.
1차로는 간단히 밥을 먹으면서 안부도 묻고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어떻게 프로포즈를 받았는지
여자분이 신나서 이야기를 해주는데
재밌다는 냥 들어주면서 웃었지만 참 웃어지가 않더군요.
그냥 그 자리가 빨리 끝나기를 바랐어요.
 
식사자리가 겨우 끝났다 싶었는데 W가 2차를 가자고 하더라구요.
술이나 한잔 더 하자구요.
그래서 또 자리를 옮겨 셋이서 술을 마셨죠.
여자분은 애교도 많고
정말 누가봐도  W를 많이 사랑하는게 느껴지더라고요.
인터넷에서 꿀떨어진다는 말을 하던데
정말 눈에서 꿀떨어진다는 게 어떤건지 여자분을 보면서 톡톡히 느꼈죠.
 
W는 워낙에 무뚝뚝하고 좀 차가운 성격이라 그냥 담담하게 있더군요.
이 자리가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건 아마 저 혼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취기가 돌았는지 W가,
OO(제 이름)이가 반대하면 우리 결혼 못 해. 난 결혼 안할거야. 라고 말하더라고요.
물론 장난이었겠지만,
그냥 하는 말이지만,
기분 진짜 더럽더라고요. 끝까지 날 갖고 노나 싶어서.
 
여자분은 해맑게,
그럼 OO씨한테 잘 보여야 겠다면서, 사실 제 얘기 많이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내 얘기를 많이 들어? 무슨 얘기를 했을까.
세 번이나 내가 좋아했던 여자를 재미로 뺏어간 얘기?
아니면 나한테 본인에게 키스하라고 시켰던 얘기?
그것도 아니면 2년전 얘기를 했으려나?
 
했을 리가 없겠죠. 그냥 형식상 하는 말이겠죠.
알면서도 W를 힐끔 보게 되더라고요.
난 대체 무슨 기대를 한건지.
 
2시간은 앉아있었던 것 같은데
무슨 대화가 오고갔는지 기억도 안 나요.
그냥 쓰잘데기 없는 영양가 없는 얘기.
W도 저도 별로 많이 말 안했는데
여자분이 사교성이 좋아서 분위기는 나쁘지 않게 끝났던 것 같아요.
 
2차가 파하고 술집에서 나오는데
W가 여자분한테 오늘은 그냥 택시타고 혼자가라고 하더라고요.
자기는 나랑 한잔 더 하겠다고요.
전 그래도 여자분댁까지 데려다주는게 좋지 않겠냐고 마음에도 없는 소릴 했지만
오랜만에 봤으니까 한잔 더 하고 들어가자더라고요.
 
 
W랑 더 있고 싶은 마음과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있었어요.
괴로운데 좋고
좋은데 고통스럽고 뭐 그랬어요.
 
그리고 둘이서 3차로 조용한 술집에 갔는데
진짜 별 대화는 없었어요.
우리 둘 사이에선 정적이 흐르고
술집에서 나는 사람들 소음이 간간히 들려오고..
 
그 침묵이 견디기 힘들어서
결혼 축하한다고 먼저 말을 꺼냈죠.
여자친구 예쁘더라, 라고 덧붙여서.
그러니까 W가 진심이야? 라고 물으면서
저를 빤히 보는데
그때 또 심장이 뛰기 시작하더라고요.
 
설레서도 아니고
날 쳐다봐서 부끄러워서도 아니고
고통스러운 감정이었어요.
 
솔직히 좀 재수가 없다고 해야할까,
이새끼는 대체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길래 몇년을 나를 괴롭히나..
그만큼 했으면 됐지..
나는 이제 다른 여자도 못 만나는데 싶으니까 억울하기도 하고.
 
거짓말이었지만, 진심으로 축하한다, 라고 말했어요.
그니까 W가
하지말까? 하고 묻는데 욕도 하고 싶고 주먹한대 갈기고 싶고
솔직히 그냥 키스하고도 싶고..
근데 전 예전부터 쭉 용기 없었거든요.
지난 주말에 비로소 제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게 됐기도 했고..
 
알아서 하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니가 하지 말라면 안해. 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때 느꼈어요.
아 신발. 이 지랄맞은 감정이 사랑인가. 싶은.
근데 입에서 튀어 나간 말은 전혀 본심이랑은 달랐죠.
그건 니가 알아서 해야지 왜 나한테 묻냐..
그리고는 여자분 참 애교도 많고 귀엽더라며 안 사랑하냐고 물었어요.
 
담담한 척 물었는데
목소리가 떨렸던거 같아요. 아마 W도 눈치챘겠죠.
안 사랑한다고 말해주길 바랐는데
좋아는 하지
라고 대답하더라고요.
 
또 나혼자 북치고 장구쳤다는 생각에
김도 새고 지치고
그냥 오늘을 마지막으로 안 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요.
 
그게 다야.
라고 W가 덧붙이더라고요.
그러더니, 마지막으로 진짜 할말 없냐고 묻더라고요.
여기서 무슨 말을 할까. 결혼하지 말라고 하면 안할까.
안하면? 그런다고 달라질게 있나,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닌데..
내 마음을 털어놔버릴까. 싶었지만
 
그만 가자.
하고 일어섰어요.
 
일찍 집에 갈 줄 알고 차를 가지고 나간터라 대리를 불렀는데
W는 술 생각이 있었던건지
차를 안 가지고 왔다면서
우리집까지 같이 가겠다고 하더군요.
W집 방향이 아닌 건 알았지만, 별소리 않고 제 차에 같이 탔어요.
 
뒷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없이 각각 창밖만 보고 있었죠.
집까지 가는 그 삼사십분이 불편한데,
그 불편함이 계속 이어졌으면.. 싶기도 했어요.
 
뭐.. 제 바람은 언제나 그랬듯 이뤄지지가 않고
역시나 집에는 도착하더군요.
 
택시 잡아주겠다고 했는데
들어가는거 보고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자긴 술 별로 안 취했다고.
엘리베이터 타고 집 문앞까지 따라오는데
딱히 거절할 것도 없고 나란히 같이 걸었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잠깐 들어왔다 가라고 해야되나, 고민했지만
이대로 헤어지는게 좋겠다 싶었죠.
근데 W가 따라들어오더라고요.
 
둘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그냥 현관에서 멍하니 있었어요.
컴컴한 집에서 현관 센서만 켜졌다가 꺼졌다가 반복하고..
하고 싶은 말은데 막상 또 할 수 있는 말은 없더라고요.
 
근데 W가 키스를 하더라고요.
머릿속은 뿌리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참 병신같은게, 또 좋더라고요. 그 순간이 너무.
이러니까 몇년을 날 갖고 놀았겠죠.
 
W가 입을 떼고는 제 목을 잡더라고요.
옷 목덜미를 잡는 것도 아니고
뭐랄까 목을 조르듯이 잡았달까.  
손에 힘이 들어가서 약간 숨이 막혀왔지만 가만히 있었어요.
W가 마지막으로 묻는다면서, 자기한테 할 말 없냐는거예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어요 정말로.
어린애처럼 펑펑 울고 싶다는 생각과
W 머리채를 잡고 다시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과..
그리고.. 그냥 솔직한 내 심정을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과...
 
몇 초쯤 고민했지만
정답은 하나였어요.
여지껏 그랬듯이 이번에도 똑같이 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전,
그냥 고개를 저었어요.
W 손에 힘이 더 들어가더라고요
전 켁켁거리고.
그러더니 너는 끝까지 비겁하다고 말하더니 나가버리더라고요.
 
W가 나가고나면
펑펑 울줄 알았는데 눈물은 안 나오더군요.
그냥 담담했어요, 그날은.
 
근데 후유증은 며칠이 지나서 찾아오는지
어제 아침부터 참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이 허전하고
또 한편으론 너무 복잡하고 답답하네요.
 
 
그래서 그냥 하소연이라도 할 겸 적어봤습니다.
저는 확실히 동성애자는 아니었어요.
좋아하는 여자도 있었고, 여자친구도 있었고.
 
아마 W는 더더욱 동성애자는 아닐거예요.
적지 않은 여자를 사겼거든요.
 
근데 저는 지금은 뭐 이도저도 아니예요.
대학생 때 마지막으로 사겼던 여자친구를 W한테 뺏기고
그 뒤부터는 아무도 좋아지지 않더라고요.
그게 벌써 4년쯤 됐나.
 
 
고등학생 때 끝났으면 좋았을 관계를
참 오래도 질질 끌었다 싶네요.
 
읽어주시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수46
반대수13
베플|2015.09.16 22:03
딱봐도 그친구도 글쓴이 좋아하는것 같네요. 꼭 동성연애 하시는 분들만 좋아한다고 칭할수는 없죠. 내 생각엔 고등학교 때부터 글쓴이 좋아한것같은데, 잘생각해보세요. 부정하려고 들지마시고. 근데 난 왜 이글보면서 대리만족 하고 있는거냐; 전 동성연애 적극 찬성합니다. 두려워 하지 마세요.
베플쏘베리|2015.09.18 04:48
둘다 현실부정하느라 지금까지 온듯. 키스한게 첨도 아닌거 같구만 서로 대화를 나눈적이 없나? W는 정말 자기마음을 진실하게 말한적이 없나? 글쓴이가 어쩌면 계속 부정했던건 아닐까 그래서 비겁하단소리 듣는걸까 의문점이 많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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