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전학을 갔습니다.
남녀공학이기는 한데 남자반과 여자반이 분리되어 있는 그런 학교였죠.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던 시기였는데
아마 반에서의 무리가 대충 형성되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W랑 친해진 건, 중간고사를 치고나서 자리를 바꾼 이후였습니다.
당시 우리 반은, 3주 정도에 한번 씩 랜덤으로 자리를 바꿨는데,
전체 다 자리가 지정된 후에도 암암리에 자기들끼리 다시 자리를 바꾸곤 했죠.
공부를 열심히 하는 녀석들은 앞줄을 선호했고, 그다지 흥미 없는 녀석들은 뒷자리를 선호했죠.
그 때 W랑 짝이 되면서 처음으로 인사를 했었습니다.
저는 꽤나 사교성도 좋은 편이라 전학을 왔긴 했지만
제법 빠르게 적응도 하고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편이었지만,
W는 워낙에 말이 없고 차가운 이미지라 그 전까지는 대화할 기회가 없었거든요.
처음 했던 대화가 정확히는 기억안나지만 제가,
반갑다 잘 지내보자, 전학오고 처음 인사하네
뭐 이런 식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었죠.
과거를 적는 지금 순간에도 그 당시 대화들은 대부분 기억나지 않지만
순간순간 기억나는 강렬한 장면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때 W의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어요.
왼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손으로 펜을 쥐고 있던 W가
제가 말을 걸자
제 눈을 한번 보고 제 명찰을 한번 보고 다시 제 눈을 보더니
그래
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위아래로 날 훑는듯한 시선에
약간 긴장이랄까 잠깐 경직이 됐었죠.
동갑내기 친구가 아니라 무슨 저보다 나이 많은, 선배나 선생님 같은 표정이었다고 해야하나.
그 뒤로 저는 나름대로 말도 걸어보고 친한 척을 했지만
W는 항상 단답으로 대답을 해서 좀처럼 가까워지지는 못했어요.
W는, 말은 많이 안하는 편이었지만 친구들은 많았어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되면 W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W 자리로 모였는데,
그러다가 저랑도 친해지고 급식도 같이 먹으러 가면서 함께 다니게 됐죠.
그래서 오히려 W보다 다른 친구들이랑 훨씬 빨리 친해졌었죠.
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서먹한 사이도 아니고 허물없는 사이도 아닌
적당히 말하고 적당히 어울리는 정도의 사이였는데
한 날은, 수업시간에 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어요.
아직도 분단이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우리 자리가 1분단(창가) 세 번짼가 네 번째 줄이었어요.
W는 제 왼쪽에 앉아있었는데
수업을 듣고 있는데도 옆에서 누가 날 쳐다보면 그 시선이 느껴지더군요.
날 보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하고 수업을 듣고 있는데
W가 좀체 시선을 거두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고개를 홱 돌려서 W를 쳐다봤죠.
뭐, 니가 나 보는 거 눈치챘으니까 그만 봐라, 그런 의도로 W를 봤는데
W는 눈을 피하지도 않고 절 응시하더군요.
오히려 그 잠깐의 순간에 제가 민망해져서 고개를 돌려버렸는데
그러고나니까 수업에 전혀 집중이 안되고
온 신경이 제 왼쪽 뺨에 가있는 것 같았어요.
실제로 빨개지진 않았겠지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만 같더라고요.
억지로 수업을 들어보고 필기를 해보는데도
W의 시선이 너무 불편해서 도저히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W를 쳐다보면서
왜, 라고 입모양으로 물었죠.
그랬더니 W가 어깨를 으쓱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만 보라고 했죠.
처음 말 걸었을 때의 그런 깔보는? 듯한 표정으로 웃더라고요.
뭐.. 비웃음같은?
그러고는 더 이상 절 안 쳐다보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제가 W를 의식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 뒤로 또 한번 W가 강하게 신경쓰였던 적이 있는데
그 때가 한여름이었죠.
그 당시에도 W랑 짝이었는데 이건 우연은 아니었고
제가 앞줄이 걸렸는데
반 친구가 자리를 바꿔 줄 수 있냐고 묻더라고요.
공부 열심히 하는,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그런 친구(였을거예요 아마.. 가물가물)..
그 친구 자리가 맨 뒷줄이었는데
그 옆자리가 W였죠.
당시에는 6월이어서 W를 포함한 무리끼리 이미 친해졌을 때고
W랑 저도 친한 사이었어요.
(중간에 건너 띄어서 뭔가 여전히 어색한 사이 같지만)
W와 다시 짝이 되고부터 급속도로 친해졌는데 아마 내기를 하면서부터 였어요
처음에는 엄청 사소한거였어요.
친구 중에 수업시간에 잘 조는 친구가 있었는데 걔가 이번 수업시간에 잘까 안잘까,
아니면 영어선생님이 오늘 치마를 입었을까 바지를 입었을까 라든지
수학시간에 문제 푸는거 니가 걸릴까 내가 걸릴까 뭐 이런거였어요.
지는 사람이 보통 매점에서 간식 사주거나
아니면 이마에 땡꼬 맞거나 그런 걸 했었죠.
그러다가 체육 시간이었는데 그 날은 축구를 하게 됐죠.
저는 체육복 상의를 안 가지고 와서 하복 안에 입은 흰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어요.
W랑 저는 서로 다른 팀이었는데
W가 또 내기를 하자고 하더라고요.
어느 팀이 이길지.
무슨 내기 할거냐고 하니까,
물 뒤집어쓰기를 하자고 하더라고요.
저도 오케이하고 축구를 했는데, 뭐 결과적으로 우리 팀이 졌어요.
축구가 끝나고 다 같이 수돗가로 가서 막 얼굴 씻고 목 씻고
그러다가 수업 시작 종 울려서 막 급하게 교실에 올라가려는데
W가 벌칙받아야지, 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 이미 물 거의 다 뒤집어썼다고 하니까
그래도 벌칙은 벌칙이라고 가만있으라더군요.
벌칙이긴 했지만 뭐, 워낙 덥고 이미 과격하게 세수를 한 터라
딱히 벌칙 같지도 않아서 빨리 하라고 했죠.
W가 호스를 갖고 오더라고요.
제일 끝에 있는 수도꼭지는 항상 호스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뭐 화단에 물주기용이나 청소용 그런거였을거예요.
그러더니 물을 틀고 저를 향해 물을 뿌리는데
멀리서 쏴~하고 뿌리는 게 아니라
바로 앞에서 제 어깨쪽부터 적시더라고요.
근데 그 분위기가 장난같은 즐거운 분위기가 아니라, 애들 다 올라가고
수돗가에 덩그러니 남아서 물을 맞고 있으니까
좀 이상했어요.
어깨부터 뭐 바지며 신발까지 다 젖었죠.
짧은 시간이었는데 조금 어색해져서,
수업 시작하겠다, 빨리 해, 라고 하니까
W가
아직,
이라더니 제 머리를 적시기 시작하더군요.
호스를 제 머리위로 갖고 와서 물을 부으니까 제 머리카락이 젖기 시작하는데
그 순간이 갑자기 너무 적막하게 느껴지고 어색한거예요.
W는 바로 내 앞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물을 붓고
나는 굳은 듯이 가만히 서있고..
확실히 벌칙은 벌칙이었네요.
그 순간이 몹시도 불편했으니까..
선생님이 늦게 들어오셔서 수업에 늦지는 않았지만
전 한시간 동안 옷도 못 갈아입고 물 뚝뚝 흘린 채로 앉아있었죠.
그 수업시간동안 W랑은 한 마디도 안 했어요.
화난 것도 아니고 싸운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서먹해진듯한 느낌? 뭐, 저 혼자만의 기분일수도 있었겠지만요.
그게 제가 두 번째로? W를 의식했던 기억이예요.
얼마전에 W 만나고 와서, 하소연 하듯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W 생각이 자주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적어봤습니다.
원래는 고등학교 때 내 여자친구 뺏아간 얘기를 적으려고 했던건데
쓰다보니까 길어져서 엉뚱한 얘기만 적어버렸네요.
별 얘기 안 썼는데 시간이 늦었네요.
읽어주시는 사람이 있다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