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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절반 이상의 미국?! 이민자로서의 삶 이야기...4

ㅠㅠㅠㅠㅠ... |2016.02.03 03:57
조회 5,774 |추천 24
바로 이어집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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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입학해서 학교를 다니는데, 두 가지에 있어서 솔직히 좀 힘들었네요.
첫 번째 것은 자칫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객관적으로 글을 쓰자면...
할머니 댁에 방 하나에 들어가서 살았어요, 제 기억으로는 그 집이 방이 3개였나, 4개였나 했는데 바깥쪽으로 난, 조금은 큰 방을 저희 가족에게 주셔서 살았거든요, 주방과 화장실/욕실은 하나였나 싶고...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 것이, 방이 하나다 보니 저희가 가지고 간 짐들도 다 그 방에 있었는데, 물건이 자꾸 없어지는 것이었어요.워낙에 좁은 곳이고, 항공편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한국에서 들어오는 물건들이 관광객들이나 이민자들이 드나들 때 들어오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저희가 갈 때 비상상비약 등 많은 것들을 가지고 갔는데, 자꾸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그 집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정말 거지꼴로 나올 뻔 했어요, 어머니 말씀으로는 이민가방(2단 지퍼로 되어 있는, 바닥에 바퀴 6개 달린 검은 가방) 여러 개 중 하나의 바닥에 $ 2,000.00을 비상금 명목으로 감춰둔 것이 있었는데 유일하게 손타지 않았고, 그것이 저희 가족 전재산이었거든요.
지갑에 가지고 있던 것, 핸드백에 가지고 있던 것, 비상상비약, 그 외 기타등등...심증은 있어도 심증만 가지고 따질 수는 없고, 물증이 있어도 상대가 아니라고 딱 잡아떼니 방법이 없었죠.아마 지금도 산속 집들은 그렇겠지만 그당시는 집들에 담이 없었어요, 경계석이나, 작은 나무가 자라서 그냥 '담'처럼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싶은데...
여하튼 할머니 집에서 좋지 않게 되어 나오게 되고, 아버지께서 할아버지와 함께 투자하기로, 동업하기로 했던 것도 깨졌죠.투자이민이었나, 할아버지 회사 동업자로 되었었나 했던 신분이 깨지는 상황이 되었던 거죠, 답은 간단해요, 불법체류자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될 상황이었죠.
게다가 한국에서 한창 잘 나가던 일들 다 정리하고 그렇게 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날벼락이었죠.겨우 서너 달 만에 다 정리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신분문제는 심각하게 되었고, 저와 제 동생은 학교에 입학해서 다니고 있고, 가지고 온 물건들은 옷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도둑맞았고, 여기에 더해서 한국에서 컨테이너에 넣어서 보낸 이삿짐도 항구에 묶여 있는 상황이 됐었습니다.한국에서 저희 이삿짐을 컨테이너에 실어서 보내주신 분께서 중간에서 좀 그런 것들을 하셨어서 뱃삯이 지불되지 않았으니 사이판의 항구에서 물건을 찾을 때 내라는 것이었죠.아버지께서는 한국에서 모든 돈을 지불해서 사이판에서는 한 푼도 낼 것이 없게 다 하셨거든요, 보내주신 분, 저희가 사이판 가기 전에 후암동(남산타워까지 걸어서 15분이었나...) 살 때 집에 찾아오셨을 때 제가 몇 번 뵈었었는데...그 분이 중간에서 돈을 좀 손대신 듯...
할머니 집에서는 쫓겨나듯 나오게 되고, 당장 육각수의 '흥보가 기가 막혀'가 되어 버린 상황, 어디로 가야 산단 말이오~ 가 된거죠, 거기에 이삿짐마저 부두에 '볼모'로 잡혀 있고...
뭐 모두 기억나지도 않지만 그걸 따져서 여기다 쓴다고 해서 도움이 될 리는 없고요, 행여나 이민을 준비하시는 분들 중 이삿짐을 선박편으로 보내려는 분들, 서류 잘 가지고 계시라고요...
저희는 아버지께서 변호사 선임을 해서 한글로 사유서를 쓰시고, 영문번역 및 공증을 하시고, 사이판 현지에서 소송을 걸어서 패자 측이 선박비 및 변호사비, 소송비용 전액을 뒤집어 쓰는 것으로 하여 다행히 승소해서 부두에서 짐을 찾아올 수 있었어요.
할머니 집에서 약 10분 정도 떨어진 곳, 동생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걸어서 3분 여 거리에 있는 집을 하나 구할 수 있었죠, 하나님이 보우하사...그 집은 정부 고위공직자의 집이었는데, 한 건물에 세 집이 살았어요, 가운뎃 집은 집주인이, 그리고 양 옆으로 세입자들이.다행히 이사도 가고, 이삿짐도 찾았고...문제는 집세였죠, 방 2개에 화장실 한 개, 월세가 $ 550.00이었습니다, 전재산 $ 2,000을 가지고 있는데 한 달 집세가 $ 550.00... 먹고살고 어쩌고 하면 두 달 살면 끝나는 돈...
저와 제 동생이 뭘 알았겠어요,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눈앞이 캄캄해 지는 상황을 당한 것인데...
그런데 좋은 분 만나서 오히려 아버지께서 아버지 명의로 회사를 설립하시고, 한국에 계셨을 때도 아버지께서 하시던 쪽으로 기술을 인정받으셨던 터라 자잘한 일들 소개받아 하시기 시작하셨죠.
다행히 두 달 후에 쫓겨나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다행히 그 집에 뒷마당이 있었는데 상당히 넓었어요, 그리고 집주인도 너무 좋은 분들이었어서 뒷뜰을 우리 가족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줘서 뒤에 배추, 상추 등 푸성귀들을 심어 먹을 수 있도록 해주셨죠.말도 안통하는데 한국어, 영어, 몸짓발짓 다 섞어서 대화를 시도했더니 집주인 아주머니께서 나름 잘 알아들으시고 허락해 주시고...싹이 나고 잘 자라니까 주인집에서도 신기해 하며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니께서 채소를 좀 주인집에 가져다 주시고, 주인집도 원주민 음식들 좀 넉넉하게 해서 저희 가족에게 주시고...
아마, '부'하게 발전하지 않았던 곳?!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인지 인정이 상당히 많았죠,얼마나 '부'와 관계가 없어보였나 하면... 도로에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가 별로 없었고, 10년 된 차량은 기본이고, 운전석 문이 통째로 없는 차, 녹슬어서 구멍뚫린 차, 와이퍼 작동 안되는 차(비오면 창 밖으로 손 내밀어서 와이퍼 들고 수동으로 닦아내야 했던...ㅎㅎ), 그냥 길거리에 버려진 차, 비 오면 천장에서 비 새는 집, 함석판/틴(Tin)으로 지붕 얹어서 기둥에 얽어놓은 집들 등...
요즘 젊은 친구들은 이야기만 들어서는 아마 그냥 상상이 안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상황이다보니 아버지께서도 나름 일거리가 있으셨고, 잘 하셔서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서로 소개해서 집전화도 놓게 되고, 기타등등...
그 집에서 한 3년 살았었나... 잘 되어서 이사나오고 나서도 한 4, 5년 전까지, 그 집주인들과 부모님께서 연락하고 사셨네요, 하와이로 가셔서 그곳에서 사시다가, 남편되시는 분께서 건강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참 마음이 아팠어요.
좋은 이야기 아니니까 여기서 접고, 대신 이민을 계획하시는 분들께서는 꼭 기억하셔야 하는 것이, 혹 가시려는 곳에 지인이나 믿을 만한 분이 계시지 않아서 맨땅에 헤딩하셔야 하는 경우라면 꼭 철저히 잘 준비하세요, 아무리 제 이야기가 1989년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사기치는 사람들이나 나쁜 사람들, 특히 해외에서 "같은 한국사람 아닙니까" 하는 사람들 중에도 참... 글로 쓰기에 죄송한 단어들이 잘 어울릴 만한 분들이 계십니다... ㅠㅠ
특히 같은 지역사람이라고 하면서 사투리 팍팍 써가면서...
일단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미국땅, 남가주에서 들은 이야기는, 중국사람들은 중국사람이 살인죄를 저지르고 China Town에 숨어들면 공권력이 찾아내지 못한답니다, 엄청 잘 숨겨줘서요.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금방 체포된답니다, 하도 신고정신이 투철해서... 특히 서류미비자(불체자)들에 대해서는 경찰에 열심히 가서 신고하더랍니다, 몇 년 된 이야기이고 요즘은 못들어 봤는데, 서로 싸우다가 또는 미비자들에게 협박하다가 경찰을 찾아가거나 만나면 어디에 불법체류자 있으니까 잡아가라고... 그런데 경찰은 이민법 관련에서는 출동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사람들 왜 그러냐"는 말을 했다 하더라고요.
아니기를 바라고, 저도 전해들은 '~카더라' 통신이기를 바랬지만... 과연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지... 부디 더이상 이런 소리 안들리기를 바라고, '정'으로 산다는 한국사람들이 해외에 나와서 '정' 떨어지는 짓은 안했으면 합니다...

말이 이상한 곳으로 흘러버렸는데, 다시 돌아가서...
2. 영어야 뭐 배워간다고는 하지만 한인학생들의 수가 적다보니 좀...그 와중에 같은 학년 한인학생들 총 4명 중 3명이 여학생...두 명은 동갑, 한 명은 전편에서 언급한 월반한 여학생(77년생이던가 76년생이었나...)참 쉽지 않더군요, 같이 밥도 먹고 어쩌고 하면 좋을 텐데, 남학생이 한 명만 더 있었더라면...
게다가 제가 다닌 중학교가 7 ~ 9학년까지 있었어서 한 살 위 삼촌과 친구들하고 같이 학교를 다녔는데 삼촌 친구들과 동갑내기들 중에는 여학생들이 별로 없었던 반면 제 나이/학년 또래에는 남학생의 세 배의 수가 여학생... (남학생 나 하나, 여학생 셋... ㅎㅎ)
그래서 형들이 장난을 쳐도 꼭 제가 여학생들 앞에서 망가지는? 모습을 연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일을 꾸몄고, 저는 눈치없고 멍~ 하게도 자주 속아넘어가고... ㅠㅠ그나마 다행인건 여학생들 앞에서 망가지는 모습은 별로 연출이 안됐다는 것... ㅎㅎ그 중 하나가 미식축구공을 저보고 잡으라고 하고는 꼭 여학생들 앞으로 던지고, 그것도 머~ㄹ리, 그래서 내가 쉽게 잡지 못하게...
근데 별로 여기서는 재밌거나 관심있을 만한 것이 없으니 한 가지만 올리고 패스... ㅎㅎ
동갑내기 여학생들 중 둘의 별명이 하나는 성냥개비, 다른 하나는 이쑤시개였어요, 둘이 그만큼 '말랐'다고 봐야겠죠, 별명이 그정도니 얼마나 말랐었을 지 생각해 보시길...요즘 걸그룹들이야 섹시미와 쭉쭉빵빵을 '모토'로 하는지 다들 몸매들이 좋아서 비교대상이 없고, 누가 좋을까 모르겠네, 일단 제가 기억하는 바로는 연예인들 중에는 없다고 해야 할 듯요...그 여학생들 중 한 명, 이쑤시개 별명을 가진 학생이 저의 집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살았어요, 
작은 삼촌(큰 삼촌은 저보다 3살 많았고 작은 삼촌은 1살 위)과 형들이 저희 집에 와서 저보고 수영가자고, 전 좋다고 허락받고 따라나왔는데... 그 여학생 집 앞에 세우더니 저보고 그 여학생 데리고 나오라고... ㅠㅠ그 여학생 언니가 두 살 위인데, 형들하고 친군데...전 그저 좋다고 멋도 모르고 들어가서 가자고 했다가 웃음거리가...형들이 저 놀리려고 장난친걸 전 진짜로 알아듣고 가서... ㅠㅠ
여하튼 수영은 갔어요.그 때 수영하러 갔던 곳으로 기억하는데, 사진을 좀 올려볼까 싶네요, 전 그 날은 거의 수영 못했지만...사진출처 : Google Image, "Grotto, Saipan"(그리고 앞의 글들에 올라있는 사진들도 모두 Google Image에서 Saipan을 검색한 결과들입니다)

만세절벽 좌회전

그로토/새섬/자살절벽 직진

베테랑 묘지 좌회전

 

Grotto 입구...

저 있었을 때는 주차장도 대충대충 해놨던데 작년에 갔었을 때는 관광버스들도 여러 대 들어올 수 있도록 해놨더라고요, 물론 그만큼 저는 과거의 추억을 되새겨볼 여유가 없어졌었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요...


입구로부터 내려가는 계단인데요, 이 사진은 올려찍은 것인데, 계단 수를 세는 사람마다 다 다르더라고요... ㅎㅎ

최소한 100개입니다.

이 계단을 스쿠버다이빙 한다고 공기통 메고 다니는 사람들 참...

경사가 상당해요, 이거, 자칫 미끄러지면 그냥 밑으로 청룡열차 타고 내려갔다고 봐야 할 듯... 


제발...초상권에 걸리지는 않겠죠... 저 분 누구신지 몰라요... ㅠㅠ

계단을 다 내려오면 저렇게 보여요.


바로 윗 사진 가운데 돌이 있죠?

거기 올라가서 안으로 들여다 보면 저렇게 보여요, 저 불빛이 있는 곳이 바로 사이판의 동쪽,

사이판이 Commonwealth of the Northern Mariana Islands의 수도인데, Mariana... 익숙한 분들 게실 지도...

저기로 나가서 좀 가면 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마리아나 해구, 대충 생각나는 대로 쓰면 그 깊이가 아마 11,000m가 넘는 곳이라죠? ㅎㅎㅎ

저기 빛 있는 곳까지 들어갔었어요, 잠수하지 않고서는 더이상 못갈 곳까지 가서 물안경 쓰고 내려다 보니 스쿠버다이버들이 성냥개비보다 작게 보일 만큼 깊어요.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자꾸 가다보니까 재밌더라고요, 그 구멍으로 물이 들락날락해서 네 번째 사진에 보이는 흰 파도가 칠 정도.


윗 사진에 노란 박스부분 보이시나요?

좀 익숙해지고 나서 저곳에 벽타고 올라가서 다이빙하고 놀았어요,

아래의 작은 사진이 그 벽에 올라가면 보이는 모습이고요.

참 색이 예뻐요, 파란색, 그리고 사람들이 서있는 곳, 바위들이 있는 곳 사이로 돌아다니는 물고기도 보기 좋고...

그당시에는 수중카메라가 없었어서 사진을 못찍었는데, 있었더면 엄청 찍었을 겁니다.

 

사진을 더 올리면 좋겠는데 너무 많아지기도 하고 해서 그만 올릴게요, 검색해 보셔도 좋을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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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가고 싶어 지네요, 작년 여름에 태풍불었을 때 갔다왔고...부모님 연세도 있으시고 해서 가급적 1년에 한 차례 방문이라도 하려고 합니다,생각 같아서는 지금 미국에서의 모든 것을 접고 들어가서 부모님을 모시고 싶은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이 들고나니 계실 때 효도하라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지금 여기는 오전 11시가 다 되어 가는데, 새벽 4시 좀 넘어서 사이판에서 어머니께서 전화하셨더라고요, 좀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한국에 살고 있는 여동생하고도 문자를 주고받고...말인즉슨 제가 좀 피곤합니다, 일도 해야 하고, 점심시간에 은행업무도 좀 봐야 하고... ㅠㅠ
혹시 시간이 되면 오후에 다음 편 올릴게요, 추억이 계속 생각나서...
추천수24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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