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한번만 더 그러면 어떡할래? 콱 나가뒤져버려 알겠어? 진짜로 뒤질래? 참나. 무슨뜻인지는 알고 대답하냐?’
나는 단순히 같은 잘못을 하면 엄마가 나를 지난번처럼 내복바람으로 집밖에 내쫒겠다는 의미쯤으로 알아듣고는 대답했다.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달은건 중학교 2학년 사춘기 남자애들의 말장난 속에서였다. 뒤진다는건 쓰레기통을 뒤지는 등의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죽음을 의미했다.
초등학교2학년 때 놀이터에서 처음보는 무리와 놀았다. 친구들과 남자애들도 섞여있었고 키가큰 고학년 언니도 있었다. 처음해보는 게임인데 내가속한 팀이 이겨 신난 나와달리 상대편 남자애는 분해서 항의를 하고 있었다. 나는 게임룰을 잘모르기에 대화에 끼어들수없었고, 철봉아래에서 흐릿해진 출발선을 다시 긋고 있었다. ‘탕!’ 총소리와도 같은 마찰음이 이마의 통증과 맞물려 났다. 옆에있던 언니가 괜찮냐고 물으며 놀이터 아이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나는 철봉에 이마를 부딪힌줄 알고 괜찮다며 이마를 만졌다. 새빨간 피가 손에 묻어났다. 말도 안 섞어본 남자애가 홧김에 던진 돌에 맞아 이마를 세바늘 꿰맸다. 엄마는 그애를 멋대로 용서하고 치료비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애들이 놀다보면 그럴수있죠.’라며 되려 그애 엄마를 달래주었다. 그애엄마에게는 이해심 많은 이미지를 구축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더이상 내편이 아닌 엄마로 남았다. 나는 그애와 다투지도 않았고 화를 돋우지도 않았다. 그저 잘못던져진 돌에 맞았을뿐이다. 엄마는 내가 그아이를 자극했기때문에 돌에 맞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왜 용서해야하는지 나를 이해시키지도 않았다. 이마에 난 상처보다 내마음 하나 어루만져주지 않는 엄마의 말들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비슷한 일이 동생에게 일어났다. 동생이 같은반 여자애에게 의자를 던져서 머리에 상처를 입혔다. 엄마는 동생과 함께 여자애와 그애 엄마에게 사과하고 왔다. 집에 와서는 여자애가 먼저 말로 자극해서 동생이 화를 이기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며 흉을 봤다. 엄마는 가해자를 포장하는 재주가 뛰어났다. 근래들어 화두였던 미투에도 ‘그때가 언젠데 이제와서 난리들이래. 미투가 사람여럿 망치네.’라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어릴적 서러웠던 일들도 지금와서 꺼내놓으면 그때가 언젠데 아직도 그러냐며 내 상처의 유효기한을 멋대로 정해버렸다.
엄마의 제멋대로인 구석은 다툼을 중재할때 발휘된다. 레몬맛 얼음아이스크림을 싸우지말고 먹으라며 동생과 내몫으로 두통을 사왔다. 긴원형의 뚜껑이 달린 통은 열어보지 않고 흔들어보는것만으로도 남은양이 가늠이 되어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다. 한통이 통채로 내 소유인것이 좋아서 아껴먹었다. 반면에 동생은 개봉과 동시에 많은 양을 해치웠다. 동생은 틈만나면 냉동실을 열어 얼음을 먹어댔고, 나는 즐거움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 참았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건 동생통의 무게와 내통의 무게가 별반차이가 없음을 알아차린 후였다. 동생은 몇개 안남은 본인것은 두고 내것을 먹어왔다. 화가난 나는 그동안 많이먹었으니 그만먹으라고 남은거 합해도 이미 먹은양보다 적으니 남은건 내몫이라고 말했다. 동생은 울음으로 엄마를 소환했다. ‘동생이 먹으면 어때서! 누나가 돼서 동생한테 양보할줄도 모르고! 둘다먹지마!’ 엄마는 얼음통을 바닥에 던졌다. 얼음 조각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내 몫의 행복은 맛도 못 본채 녹아 사라졌다.
바닥은 나에게 친숙하다. 엄마에게 매질을 당할때면 차디찬 바닥이 늘 함께했다. 더이상 도망갈곳 없는 구석으로 몰렸을때, 맞으면서 매질이 어서 멈추기를 간절히 빌면서 바닥의 무늬를 센다. 가끔은 바닥무늬가 말도 안되게 사람얼굴로 보일 때가 있다. 나를 바라보며 같이 그 시간을 견뎌내주는것 같아서 우습지만 위로가 되었다. ‘대갈빡에 뭐가 들었나 망치로 깨부숴보자! 내가 전생에 무슨 웬수를 져서 너 같은 것을 낳았나 몰라! 차라리 같이 죽자! 너죽고 나죽자! 캭퉤! 더러운 년아!’ 괴물로 변한 엄마에게는 그 순간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이 곧 무기다. 파리채, 먼지떨이, 머리빗, 옷걸이, 빗자루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사용했다. 무기를 바닥에 두드려가며 ‘몇대 맞고 정신차릴래?’라고 묻는다. 한대라고 대답하면 ‘그거 갖고 정신차릴 수 있겠어? 더 맞아야지.’라고 말한다. 그럼 눈치껏 숫자를 올려서 말해본다. 어차피 더 때릴거면서 왜 물어 보는 건지 궁금해 할 겨를이 없다. 그시절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에 살았으니 층간소음 걱정없이 두드려대며 공포감을 조성했다. 머리로 이해가 안가는데 맞아서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 엄마의 이상한 믿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엄마는 손으로 옷도 곧잘 찢었는데, 머리끄덩이를 잡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때면 그날 입고 있는 옷이 애꿎은 희생양이 된다. 엄마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고, 혼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은 옷이 아까워서 일부러 낡은 옷을 입은 적도 있다. 물론 예감은 항상 빗나갔다. 손에 가위가 들린 것도 아닌데 맨손으로 내가 입은 상의를 잡아뜯고 찢어 너덜너덜하게 만들어서 영화 ‘가위손’이 떠올랐다. 거울 속 내모습은 책에서 본 원시인과도 같았다. 책과는 다르게 거울 속 원시인은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