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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너무 보고싶으면 어떡해?

언니사랑해 |2022.08.21 03:28
조회 90,346 |추천 561

나는 계속 나이를 먹고 덩치가 자라고 어른이 되어가는데 나보다 네살이나 나이가 많은 언니는 여전히 열일곱이고 이젠 내가 언니보다 나이가 많아

우리는 언니 나 남동생 이렇게 셋이었거든? 물론 부모님과도 사이가 좋았지만 내가 유독 언니를 따랐어. 언니가 하는 건 나도 하고 싶었고 사는 거 먹는 거.. 그냥 작은 습관까지 언니를 따라하고 싶어했어. 언니가 고등학교를 입학하던 때엔 내 눈에 언니가 인서울하는 사람들보다 멋졌어. 내가 초등학교에서 공부할 때 언니는 모의고사란 걸 보고 등급을 매긴다는 게 너무 멋져보였어. 나한테 언니는 앞서 세상을 배우는 사람이었고 그 세상을 나한테 물려주고 안겨줄 사람이었어.

언니가 요리를 진짜 잘했거든. 아빠가 외근이 잦고 엄마는 당시에 새 직장 얻으시려 외국을 나갔던 때여서 집에 우리 셋만 있는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언니가 요리를 해줬어. 그땐 언니도 참 어렸는데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핸드폰으로 레시피를 찾아 만드는 게 너무 고맙고 한편으론 미안했어. 가만히 소파에 있다가도 오후 3시 즈음이 되면 배고프지 않냐고 물어봐주고 내가 스파게티가 먹고 싶다고 하면 아무말없이 만들어줬어. 그런 언니를 보면서 같이 살자고 하던 게 아직도 생생해.

하루는 같이 소파에 있다가 아래가 찝찝해서 화장실을 갔는데 속옷에 피가 묻어있는 거야. 또래보다 일찍 생리가 터진 편이라서 너무 당황스러운 마음에 울면서 언니를 불렀는데 언니가 피 묻은 옷들도 다 직접 손빨래 해주고 생리대 어떻게 차는지도 알려줬어. 더러웠을텐데 귀찮았을텐데 그냥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릴 법도 한데 언니는 나한테 이걸 알려줄 수 있는 날이 왔다고 도리어 기뻐했어. 난 지금도 가끔 생리가 오면 멍한채로 몇분씩 앉아서 추억해.

그 날은 그러니까 언니가 평생을 열일곱에 머물게 된 날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 장례식에선 엄마 다음으로 내가 가장 많이 운 것 같기도 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이후로 소리내 운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정말 목이 찢어져라 울었어. 밥도 안 먹고 우니까 결국 병원도 갔어. 그땐 진짜 무서워하던 주삿바늘이 내 몸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까지 아무렇지도 않았어. 나랑 남동생은 부모님이랑 같이 자서 언니만 혼자 방을 썼는데 나는 집에 오자마자 부모님이 죽은 사람 물건이라고 다 정리해버릴까봐 급하게 언니 책상에 있는 물건이랑 서랍 물건이랑 이것저것 다 챙겨서 나왔어.

나는 내가 평생 그렇게 살 줄 알았거든. 근데 해가 두어번 바뀐 이후부터론 솔직히 말해서 아무렇지 않았어. 기일만 아니면 평소엔 전처럼 죽을 것처럼 울지 않았고 내가 뭘하고 사는지 시험을 망했는지 잘 봤는지 정도는 태연하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였어. 근데 내가 이제 열여덟살이야 언니보다 한 살 나이가 많아. 고등학교 입학을 할 때도 기분이 이상했는데 이젠 진짜 못 버티겠어. 지금쯤이면 언니는 대학을 입학해야 하고 나보다 앞서 더 큰 세상을 맛봐야 하는데. 언니가 경험하지 않은 걸 내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불안하고 슬퍼. 언니가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해야한다 알려줘야 하고 내가 시험을 못 봐도 위로해주고 대학은 어떤 곳인지 알려줘야 하는데 그걸 못 해줘. 이젠 내가 언니한테 세상을 알려줘야 돼.

나는 나이도 먹고 덩치도 자라고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데 언니는 여전히 열일곱이야. 나도 이제 언니가 원한다면 스파게티 정도는 레시피 없이도 만들어줄 수 있는데 언니가 궁금해하던 문이과 선택도 나는 이제 직접 겪는데 언니는 보지도 듣지도 않아. 하나도 안 힘들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너무 힘들어. 이럴 땐 어떡해? 보내준다는 게 안 되고 나는 계속해서 힘들때면 언니만 생각하고 나는 아직도 언니가 알려준 세상 속에 살고 싶어하고 너무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은 것 같아? 부모님한텐 안 알려드리고 싶어. 이건 언니가 알아줬으면 좋겠고 언니가 위로해줬으면 하는데 그게 안 되면 진짜 어떡해야 돼? 나는 이제 열아홉이 되고 언니가 항상 걱정하던 수능을 볼 텐데 언니는 여전히 빳빳한 교복차림이고 나는 언니한테 술을 배울 줄만 알았는데 언니가 내 남자친구를 골라주고 언니가 먼저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 나는 그 다음에 할 생각이었는데. 그 어린 나이에 언니가 결혼을 안 하겠다고 했을 땐 언니랑 같이 자취할 수 있는 거냐며 좋아했는데 그게 다 안 되고 못 하게 된 게 너무 와닿아서 버거워. 나 언니가 너무 보고싶어 얘들아 어떡해? 진짜 너무 힘들어 언니가 많이 그리워 어떡하지 진짜 뭘 해야 될까

추천수561
반대수14
베플ㅇㅇ|2022.08.21 03:30
눈물난다 가족 잃은 사람한텐 정말 감히 뭐라 할 지 모르겠어 힘내길 바라..
베플ㅇㅅㅇ|2022.08.22 14:44
기억해주고 언니가 다 못해본 예쁜 세상 잘 사는게 가장 큰 선물 아닐까 힘내 쓰니... 난 평생 언니가 없어서 그 맘 잘모르지만 나에겐 예쁜 여동생이 있어. 그애한테 더 잘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베플동생|2022.08.22 14:28
나에게도 그런 언니가 있었지. 지금은 내마음속에만 남아있는지 벌써 15년이 되었네. 학교 끝나고 집에갈때 알바끝나고 집에갈때 속상한일 있을 때, 무서울 때, 고민있을 때, 항상 언니랑 통화를 하고 언니랑 이야기도 많이하고, 자취를 했었어서 언니가 엄마같고 친구같고, 도움 받으면서 컸었는데 우리언니가 멈춰있던 그 나이에 내가 결혼을 했고 나는 이제 엄마가 되어서 살고있는데, 아직도 슬프고 마음이 아파. 언니가 살아있었다면 언니한테 주저리주저리 하소연하고 나 힘들다 얘기하고싶은데 언니 애도 내 애도 같이 육아하면서 수다하고 싶은데 그런언니가 없어서 아직도 생각도 많이나고 그립고 힘들어. 가끔 죽음이라는게 별거아니구나. 그냥 가면 그만인걸..하고 나도 그냥 가도되겠다..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어. 죽음이라는게 참 허무하지.. 결혼전에는 우리엄마가 나까지 먼저가면 얼마나 힘들까하고 버텼는데. 이제는 내가 가버리면 엄마없이 커야하는 아이들한테 미안해서 버티는중이고 한번씩 마음이 많이 힘들어질때가 있어. 나는 한번씩 엄마나 나를 잘 아는 친구나 사촌들과 언니 얘기를 해. 언니를 잊지않는게 내가 언니를 위해 해줄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잘 버텨내자.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는 말이 너무 싫었는데, 그게 또 현실이라서.. 잘 살아가보자 !!
베플00|2022.08.23 01:09
내나이 23, 엄마나이 50에 엄마가 하늘가셨는데 내나이 58 엄마나이보다 많아졌네요. 기억속의 엄마 얼굴이 지금 거울속의 내 얼굴보다 훨씬 젊어서 내가 누군가 합니다. 어린나이에 어린언니를 잃은 슬픔이 크겠네요. 슬퍼하되 너무 오래,너무 깊게는 하지마세요. 그럼 언니도 슬플꺼예요. 힘내세요.
베플oo|2022.08.22 14:26
멋지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길 바래. 언니는 그걸 원할거야. 내 동생 잘한다 내 동생 훌륭하다 할 거야. 나중에 언니만나면 언니 나 잘 살았지! 하고 자랑스럽게 말하도록 잘 살아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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