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속 나이를 먹고 덩치가 자라고 어른이 되어가는데 나보다 네살이나 나이가 많은 언니는 여전히 열일곱이고 이젠 내가 언니보다 나이가 많아
우리는 언니 나 남동생 이렇게 셋이었거든? 물론 부모님과도 사이가 좋았지만 내가 유독 언니를 따랐어. 언니가 하는 건 나도 하고 싶었고 사는 거 먹는 거.. 그냥 작은 습관까지 언니를 따라하고 싶어했어. 언니가 고등학교를 입학하던 때엔 내 눈에 언니가 인서울하는 사람들보다 멋졌어. 내가 초등학교에서 공부할 때 언니는 모의고사란 걸 보고 등급을 매긴다는 게 너무 멋져보였어. 나한테 언니는 앞서 세상을 배우는 사람이었고 그 세상을 나한테 물려주고 안겨줄 사람이었어.
언니가 요리를 진짜 잘했거든. 아빠가 외근이 잦고 엄마는 당시에 새 직장 얻으시려 외국을 나갔던 때여서 집에 우리 셋만 있는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언니가 요리를 해줬어. 그땐 언니도 참 어렸는데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핸드폰으로 레시피를 찾아 만드는 게 너무 고맙고 한편으론 미안했어. 가만히 소파에 있다가도 오후 3시 즈음이 되면 배고프지 않냐고 물어봐주고 내가 스파게티가 먹고 싶다고 하면 아무말없이 만들어줬어. 그런 언니를 보면서 같이 살자고 하던 게 아직도 생생해.
하루는 같이 소파에 있다가 아래가 찝찝해서 화장실을 갔는데 속옷에 피가 묻어있는 거야. 또래보다 일찍 생리가 터진 편이라서 너무 당황스러운 마음에 울면서 언니를 불렀는데 언니가 피 묻은 옷들도 다 직접 손빨래 해주고 생리대 어떻게 차는지도 알려줬어. 더러웠을텐데 귀찮았을텐데 그냥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릴 법도 한데 언니는 나한테 이걸 알려줄 수 있는 날이 왔다고 도리어 기뻐했어. 난 지금도 가끔 생리가 오면 멍한채로 몇분씩 앉아서 추억해.
그 날은 그러니까 언니가 평생을 열일곱에 머물게 된 날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 장례식에선 엄마 다음으로 내가 가장 많이 운 것 같기도 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이후로 소리내 운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정말 목이 찢어져라 울었어. 밥도 안 먹고 우니까 결국 병원도 갔어. 그땐 진짜 무서워하던 주삿바늘이 내 몸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까지 아무렇지도 않았어. 나랑 남동생은 부모님이랑 같이 자서 언니만 혼자 방을 썼는데 나는 집에 오자마자 부모님이 죽은 사람 물건이라고 다 정리해버릴까봐 급하게 언니 책상에 있는 물건이랑 서랍 물건이랑 이것저것 다 챙겨서 나왔어.
나는 내가 평생 그렇게 살 줄 알았거든. 근데 해가 두어번 바뀐 이후부터론 솔직히 말해서 아무렇지 않았어. 기일만 아니면 평소엔 전처럼 죽을 것처럼 울지 않았고 내가 뭘하고 사는지 시험을 망했는지 잘 봤는지 정도는 태연하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였어. 근데 내가 이제 열여덟살이야 언니보다 한 살 나이가 많아. 고등학교 입학을 할 때도 기분이 이상했는데 이젠 진짜 못 버티겠어. 지금쯤이면 언니는 대학을 입학해야 하고 나보다 앞서 더 큰 세상을 맛봐야 하는데. 언니가 경험하지 않은 걸 내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불안하고 슬퍼. 언니가 이렇게 해야한다 저렇게 해야한다 알려줘야 하고 내가 시험을 못 봐도 위로해주고 대학은 어떤 곳인지 알려줘야 하는데 그걸 못 해줘. 이젠 내가 언니한테 세상을 알려줘야 돼.
나는 나이도 먹고 덩치도 자라고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데 언니는 여전히 열일곱이야. 나도 이제 언니가 원한다면 스파게티 정도는 레시피 없이도 만들어줄 수 있는데 언니가 궁금해하던 문이과 선택도 나는 이제 직접 겪는데 언니는 보지도 듣지도 않아. 하나도 안 힘들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너무 힘들어. 이럴 땐 어떡해? 보내준다는 게 안 되고 나는 계속해서 힘들때면 언니만 생각하고 나는 아직도 언니가 알려준 세상 속에 살고 싶어하고 너무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은 것 같아? 부모님한텐 안 알려드리고 싶어. 이건 언니가 알아줬으면 좋겠고 언니가 위로해줬으면 하는데 그게 안 되면 진짜 어떡해야 돼? 나는 이제 열아홉이 되고 언니가 항상 걱정하던 수능을 볼 텐데 언니는 여전히 빳빳한 교복차림이고 나는 언니한테 술을 배울 줄만 알았는데 언니가 내 남자친구를 골라주고 언니가 먼저 결혼을 하고 애를 낳으면 나는 그 다음에 할 생각이었는데. 그 어린 나이에 언니가 결혼을 안 하겠다고 했을 땐 언니랑 같이 자취할 수 있는 거냐며 좋아했는데 그게 다 안 되고 못 하게 된 게 너무 와닿아서 버거워. 나 언니가 너무 보고싶어 얘들아 어떡해? 진짜 너무 힘들어 언니가 많이 그리워 어떡하지 진짜 뭘 해야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