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서럽고 장엄한 외톨이들의 한숨!, 그 대서사시를 당신은 아는가?
올해로 자취 경력 4년차인 베테랑 자취생, 나는 꽃다운나이에 꽃처녀 스무살의 여대생이다.
시골 골짜기 골짜기에서 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의 학업을 마치고 문명의 빛을 보고자 시내로 나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나의 장엄한 자취생활은 시작되었다.
드세고 텃새 심한 시내아이들과 여고생활하며 첩첩산중인 수험생 생활도 어려운데 자취까지 병행하다 보니 나의 생활은 엄마찾아 삼만리 여행을 떠나는 울보인생 그 자체였다.
아침에 깨워주는 사람이 있나 쥐 대갈통 만한 방에 세탁기가 있나 그렇다고 변변한 냉장고가 있나.
무기징역살이 죄수는 제때 제때 밥이라도 준다지. 늦잠이라도 자는 날엔 물 한모금 마실 시간도 없이
학교 뛰어가기 바쁘니. 물많이 쓰면 물 아껴쓰라고 아침부터 소리지르는 집주인 할매 쉰 목소리에 묶은 때를 제대로 벗길수가 있나. 서럽고 서글픈 나의 자취생활은 그렇게 고달픈 스타트를 끊었다.
올해로 자취경력 4년차, 겪을 만큼 겪고 울만큼 울었을 횟수의 경력이다.
지금은 웬만한거엔 걱정도 눈물도 나지 않을 만큼 독초가 되서인지 배짱이 똥배짱이다.
요리서부터, 수도, 전기, 보일러, 세탁 까지 이젠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없는 반찬에 눈물로 고추장에 밥 비벼먹던 시절이 어끄제 같은데 이젠 웃으며 비벼먹을 수 있을 만큼연륜이 생겨서인지 마트에서 고추장을 지나칠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밭 몇 더더기 논 몇 더더기의 지지리도 가난한 농촌가정에 무슨 돈이 있어 자취까지 시키나 싶어
수도요금 달라는 말이 입에서 차마 떨어지지 않아 한참을 수도 없이 생활한 적이 있었다.
아침잠이 쥐약이었지만 애들 없는 교실에 가방을 던져 놓고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었다. 내가 세수한 물이 수돗물이었는지 눈물이었는지 수건 대신 화장실에 걸린 재활용
휴지로 얼굴을 닦으면 눈아래로 물이 흐르고 또 흐르곤 했다.
이젠 내나이 스물 대학생 성인이니 적어도 수도요금 없어서 학교화장실에 뛰어갈일은 없다.
없으면 알바라도 뛰어 벌으면 되는거고 적어도 자금난으로 내 자취에 서러움을 주는일 따윈 없다.
문제는 보일러다. 겨울이라도 되면 잘 돌아가지 않아 내 몸을 냉동오징어로 만들고 가끔은 몹쓸 독감을 안겨주는 자취생의 최대의 적이다.
고3 그 절대절명의 시절 드럼통을 들고 주유소에 갔던 기억이난다. 급한대로 한달치 용돈을 털어
용돈만큼의 기름을 주유한 드럼통을 들고 보일러에 기름먹이를 주느라 쭈그려 않아 호스를 눌러대던
내 기름진 손이 가끔 생각나곤 한다. 내 손엔 언제나 하루가 멀다하고 고장이 나 손봐야할 것 투성이로 쾌쾌한 냄새와 설거지에 빨래로 찌든 습진으로 가득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내 손에서 아빠냄새가 난다고 좋다며 만지작 거리더니 또 다른 친구가 내 손에서 엄마냄새가 난다고 좋다며 만지작 거리는게 아닌가. 나는 그 날밤 집에서 이불속에 들어가 꼼짝 하지 않았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참아내며 생각했다. 그동안 힘들었던게 피난짐 싼 가출소년 보따리 풀어내듯 차근 차근 이해가 되었다. 혼자서 엄마 아빠 일을 다 하려니 힘들지 않고 살겠는가. 공부하나 전념하기도 힘든
고등학생이 이일 저일에 치이니 곱디 고운 손이 아빠손 마냥 우락부락해지고 엄마손 마냥 습진이 그득한것이 당연지사한 일이지. 형광등 갈아끼우다가 깨뜨려서 손 베이고 올라선 의자에서 떨어져 인대 늘어나고 빨래하다 하수구 구멍에서 튀어나온 주먹만한 쥐새끼로 까무라치고.... 보일러 리모컨 고장나
하루는 뜨거운 사막에서 살고 하루는 꽁꽁 어는 북극에서 사는 참으로 기구한 삶이다.
대학교 와서는 뭐가 다른가. 술병나면 화장실에서 토할때 등 두려줄 사람이 있나 아침에 북어국 끓여줄 사람이 있나. 감기몸살에 열이 40도까지 올라도 이마에 물수건 얹어줄 사람이 있나.
그래도 대학생이니 자취하다 서러워서 울진 않겠지 나는 생각했다.
생활의 모든 악조건을 다 이기더라도 이기지 못하는게 한가지 있다는걸 미처 몰랐었다.
혼자라는 것. 생활의 악조건보다 더한 적. 그건 지금 여기 나 혼자있다는 생각. 바로 외로움이다.
몸이 으슬으슬 춥고 열이 끓어 누워있다가 안되겠다싶어 약이라도 먹어야 겠다싶어 밥을 먹기위해
상을 차렸다. 유일히 남아있는 메추리알장조림 반찬을 꺼내 밥상을 차렸다. 방바닥이 차가워 카펫트위에서 먹어야 겠다싶어 밥상을 들고 카펫트로 이동하는데 상다리가 전기밥솥 전기줄에 걸려 미끄덩하더니 카펫위로 밥상이 미끄러져 버리는게 아닌가. 유일한 반찬인 메추리알장조림은 국물까지 깨끗하게 카펫트 위로 엎지러져 버리고 메추리알은 '떼구르르' 굴러 방 이곳 저곳을 활보하기시작했다.
나는 순간 몸이 얼어버려 한참을 일시정지한 비디오 플레이어처럼 가만히 우두커니 서있었다.
눈물이 핑돌더니 주르륵 주르륵 장대비처럼 와락와락 눈물이 쏟아지는게 아닌가.
엉엉 함참을 그대로 서서 그렇게 울어버렸다. 머리는 펄펄 열이 끓어오르고 머리는 땀으로 젖어오고
너무나 처참한 모습에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결국 제풀에 지쳐 방 구석구석으로 굴러간 메추리알을 주워 수도물에 뽀드득 뽀드득 씻어 먹고 간장냄새로 진동하는 카펫트를 힘겹게 화장실에 옮겨와
간장물을 빼고 그제서야 약을 먹고 만신창이가 된 몸을 눕혀 그 날 밤 잠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번은 이런 처절한 일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으레 아무렇지 않게 넘기곤 하지만
몸이 아플때 엄습해오는 처절함은 눈물을 만들곤 한다. 그러기에 아프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한다. 아프면 나만 손해라는 말! 이 말은 어쩜 옛 자취인들이 만들어낸 고어가 아닌가 싶다.
눈물나게 서러운 자취 생활 백서 하나, 아프지 말고 악착같이 건강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