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삼촌 집에서의 아침.
1. 아침식사를 같이 준비하면서
숙모에게 영국은 어떤 곳이에요?
라고 묻자
-겨울이 오면 일찍 해가 져 버려서 우울해 지는 곳.
이라고 했다. 단순한 한마디였지만, 아마 영국에서, 타지에서 외롭게 지내면서 분명 힘든 일이 많았을 거다.
일찍 해가 져 버리고, 이렇게나 먼 외국에서
칠흙같은 어둠과,
똑딱똑딱 흐르는 시계소리와
그리고 내 숨소리만이 남아버릴 때.
시덥잖은 농담이나 하다못해 오늘 뭘 먹었는지,
오늘 집에 오는 길에 침대커버가 세일을 한다던지 등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한없이 늘어놓고만 싶은데
아무도 없는
그런 밤을 매일 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삼촌에게도 영국은 어떤 곳인지 물어봤는데,
놀랍게도
이모랑 똑같은 대답을 했다.
2.삼촌은 배려심이 많고 자상하지만 무뚝뚝한 면이 있다. 그리고, 똑 부러지는 성격.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다. 영국에서 지내면서 조심해야 할 점이 있나요? 라고 묻자,
-'영국 사람들에게는 YES OR NO 를 확실히 해야 해'
라고 하셨다.
그리고 삼촌은, 함께 공원 구경하러 가자는 숙모의 제안을 똑 부러지게 거절했다.
-NO.
귀찮았던 걸까, 삼촌.
3.인종차별에 대해 이상한 이야기를 많이 들은지라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삼촌은 그쪽에 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영국놈들 다를 거 하나 없어.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더 똑똑하고 부지런하지.
-음,영국에서 지내면 위험한 부분이 있나요?
-한국이랑 똑같어. 한국에서 조심해야 하는 거 여기서도 조심하면 되는 거야.
중학교 2학년 이후부터 이곳에서 쭉 지내온 삼촌은 아마 어려웠던 일도 난처했던 일도 곤란했던 일도 모두 다 가지고 있지 않으려나.
분명 그 힘들었던 일들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건,
내가 기죽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아닐까..
감사했다.
-그래, 어딜 가나 자신감이지! 우랴아아아앗!
오전 11:00
런던의 버스터미널로 가는 자동차 안.
4 . 학교가 있는 bristol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나를 위해, 삼촌과 숙모는 차를 태워 heathrow central(한국 버스터미널이랑 비슷하다) 까지 바래다 주셨다.
차를 타려는데, 트렁크 쪽에 거미줄이 쳐져 있어서,
무척 오랜만에 이 차를 꺼내셨다는걸 깨달았다.
시동을 걸며 삼촌은
-사실 이 차,고속도로를 달릴 만한 컨디션이 못 돼. 그래서 조금 더 오래 걸릴거야
라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곧이어 카세트테이프에서
고전 클래식 음악이 나왔고,
차가 통통통 움직이기 시작했고,
창밖으로는 이층으로 된 가정집들이 무수하게 이어졌다.
멍 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지금 새로운 세상에 와 있구나.
깨닫았다.
그리고 이곳에도 어김없이
나를 위해 주는 좋은 사람이 있구나-
참 다행이다.
차는 계속 통통통 달렸다.
14:00
브리스톨로 가는 버스 안.
5. 버스 티켓이 무척이나 비쌌다. 말도 안돼, 40파운드라니!!! 이거 한국으로 치면, 7만 2천 원이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 데 칠만 이천 워어어언!!! 이곳이 정녕 교통비가 비싼 나라 영국이로구나. 버스 티켓 아저씨에게 가격에 당황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나는
누..누가 기죽을 줄 알고?! 이정도는 당연히 예상했단 말이지...!
스러운 표정으로 티켓을 끊었다.
(나중에 알았는데,내가 탄 건 공항버스라 조낸 비쌌던 거였다. 사실 왕복 20파운드면 충분했다.)
6.버스가 계속 간다.
이제 도착하면, 짐 풀고
할머니 일도 도와드리면서
내일부터는 학교도 가겠구나.
이국적인 곳이지만
여기에 내 위치가 생기고 할 일이 있고.. 그에 대한 부담도 있다.
그래서 외국에 왔지만 - 아직 신난다기보다는 자꾸만 긴장이 된다.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여행이나 레져가 아닌
또 하나의 새로운 일상이구나.
7.버스 창밖으로 평야가 펼쳐진다. 평야 위로, 구름 구림자가 또렷히 비친다.
그리고 저건- 와-
유채꽃이다.
엄청나게 많아.
지구 반대편에
우리 동네에 핀 꽃이 똑같이 피어있다.
8.버스는 계속 브리스톨로 가고 있다.
아침에 삼촌 집을 나와 산책을 좀 했다. 정말 유럽쪽에는 요리요리하게 생긴 성당이 많은 거 같다.
삼촌 집 창문 너머로... 뒷마당이 보인다.
뒷마당에서는 삼겹살 싸 먹을 상추를 기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