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네이버 미스터리 박물관
(http://cafe.naver.com/mysterymuseum)
작성자 angel_entity
초등학교 4학년 쯤이었습니다
엄마와 목욕을 하던 도중
무엇엔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어지럽더니
갑자기 코피가 났습니다
빨간 피가 욕실 바닥으로 툭, 툭 떨어질 때
동시에 거실에서 전화가 울렸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불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 고모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구나
전화를 받고 돌아온 엄마가 말했습니다
예감이 적중했다, 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여덟 살 때 저는 고모 할머니 댁에 놀러갔다가
마당에 묶어 기르는 개 한 마리를 괴롭힌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 돌아가신 후
혼자 지내시기 적적하셔서 기르던 개였습니다
일부러 녀석 쪽으로 돌멩이를 걷어차
녀석에게 명중시키는 놀이를 하다가
한번은 정말 잘못 겨냥하여
녀석의 콧잔등에 상처가 났습니다
마당에 빨간 피가 떨어졌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크게 야단치시며
- 남에게 해를 끼치면 반드시 돌아온다 설사 동물일지라도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안방에서 종이와 붉은 펜을 갖고 나와
무언가 적으시더니
종이를 태워 녀석의 코에 바르셨습니다
녀석은 탄 종이를 낼름낼름 핥아 먹었고
잘 들리지 않았지만
- 당분간은
이라고 할머니가 중얼거린 것 같았습니다
혼날까봐 두려워서
개를 괴롭혔다는 말은 쏙 빼고
고모 할머니가 개의 코에 종이를 태워 붙였다고
집에 돌아와 엄마한테 말하자
- 너가 잘못 봤겠지 할머니가 왜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하고 엄마가 나무라셔서
그 이후로는 현실이 아니라
마치 옛 이야기의 한 장면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던 일화였는데
물기를 닦고 나왔음에도
코피가 좀처럼 멈추지 않아
휴지를 말아 넣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 부적(?)을 써서
할머니가 살아계신 동안은
날 지켜주셨구나
나도 한번 코피 터졌으니 피장파장이다
이제 녀석도 편히 눈을 감겠구나
일년 전엔가 이미 죽어버린 그 녀석이
제게 인사 아닌 인사를 하고 갔다 생각할 때쯤
드디어 피가 멈췄습니다
할머니와 녀석이 저 세상에서 잘 지내기를
진심으로 기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