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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대 : 무조건해라 님 >
16화 - 나를 지우다.
나와 똑같은 모습의 내가 서 있다.
곰탱이의 배는 갈라져 있는 상태였고 그 사이로 빨간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그 안에서 또 다른 내가 나온건가?
나와 생김새는 물론 온몸의 상처, 표정, 말투까지 똑같았다.
도플갱어라는 말을 새삼 떠올려 본다.
“후훗. 이거 재미있는걸?”
내가 말하지만 내가 아니다.
머리가 혼잡해 온다.
내 앞에 있는 또 다른 내가 말한것인지 아니면 내가 또다른 나인건지.
이러한 복잡함은 놈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나와 같이 머리를 붙잡고 있었으니까.
“귀염둥이란 또다른 나를 말한건가 보군.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나?”
거울을 보는 듯 하다.
몸짓하나하나가 모두 똑같다.
원래부터 나라는 존재가 두명이었던 것처럼.
난 말없이 칼을 들었다.
그게 내 답이었다.
“둘은 필요없다 이건가?
“네가 정말 나라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텐데?”
“후훗. 그렇군. 말은 필요없겠네.”
놈도 칼을 들었다.
칼에 묻은 핏자국마저 똑같은 우리.
많이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한게 바로 나 자신과의 싸움.
그것을 실제 현실에서 느낀다는 사실에 다시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내가 달려들자마자 또다른 나도 달려들었고 우리는 칼을 맞댔다.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힘도 같았고, 실력과 거침없는 자세도 같았다.
의식없는 칼부림.
우린 그렇게 10분간 칼을 맞대기만 했다.
“후우. 역시 나라서 그런지 쉽지만은 않군. 하지만 그만큼 스릴있고 재밌는걸?”
거리를 넓히며 말을 하고 있는 놈을 쳐다보았다.
순간의 표정마저 똑같군.
이런 일을 거듭할수록 이 음모를 꾸민 자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우선 그러기 위해선 이 놈을 죽여야 할 듯 하다.
난 생각을 바로잡았다.
“그래. 말은 필요 없다는 거지? 누가 죽는지 한번 해보자고.”
다시 한번 붙은 싸움은 역시나 방금전과 같았다.
서로의 공격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막혔고, 힘마저 똑같았기에 모든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응?”
싸우던 도중 난 급작스럽게 발을 뒤로 빼며 칼싸움을 멈췄다.
놈은 의아스런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뭐지? 포기하는건가?”
“이제 널 죽이겠다.”
“날 죽이겠다고?”
“그래. 널 죽이겠어.”
맞아.
확실히 죽일거야.
한가지를 깨달았거든.
“하핫. 잘도 죽이겠다?”
난 놈의 말을 무시한체 칼로 내 왼쪽팔을 그었다.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왔고 팔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내가 한것이지만 정말 너무나도 잘 그었군.
팔 한번 그었다고 이런 통증을 느끼기는 매우 힘들테니까.
“뭐하는 거지? 설마 지금 우리의 상황을 거울로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자신을 공격하면 또다른 나도
상처를 입는 식으로...”
“닥쳐. 우선 넌 내가 아니야. 나는 나 혼자뿐이거든.”
놈이 낮게 웃는다.
웃는 놈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다.
그리고는 혀를 뽑아 잘근잘근 씹는다면...?
생각만 해도 흥분이 되어 참을수가 없다.
“나야말로 놀랐다. 또다른 내가 이렇게까지...”
“네가 정말 나라면 우리가 왜 비겼을까?”
“뭐라고?”
일단 너는 멍청하다는 점에서 내가 아니야.
난 널 죽인다.
넌 내가 아니니까.
“내가 칼을 왼쪽으로 휘둘러야겠다고 생각하면 너도 똑같아야 하는 것 아닌가?”
“개소리를 하는군. 그야 당연히 서로의 위치상으로 보면 반대니까...”
“그렇다면 내가 칼로 위에서 내려찍는건? 어떻게 네가 막을 수 있었지?”
아무런 표정변화없이 나를 쳐다보는 놈.
내 말이 어이없었나 보다.
“나야말로 이제 알겠네. 너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지금의 너와 나는 꼭두각시같은
2명이 아닌 각자 생각을 가진 똑같은 2명의 모습이다. 그런 상황에서 똑같이 움직일 리가 없잖아?”
내 말의 허점을 그대로 짚어냈다.
다행이었다.
“그러니까 더더욱 너는 내가 아니라는 거야.”
“뭐?”
“나 스스로도 아침의 나와 저녁의 내가 틀리다. 몸상태뿐만 아니라 말투와 성격마저 미세하게 달라질 수 있지.
그런데 나와 다른 공간에 서있는 네가 나와 같을수는 절대 없다. 나 스스로는 지금 서있는 이곳에서조차
여러개의 나로 쪼개진다고. 그것도 수없이 많이.”
내 말에 놈은 생각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 빠져들어 골똘히 생각하는 꼴이란.
정말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군.
“내 팔을 베어버림으로써 너와의 차이는 더욱 벌어졌다. 그럼 이제 죽이겠다.”
칼을 들고 달려들자 놈은 바로 긴장하며 방어준비를 취했다.
후훗.
역시나 짜릿해.
베어들어가는 내 칼을 놈 또한 칼을 들어 막았다.
칼을 맞댄체 서로 힘을 주고 있는 상태.
순간 놈이 미끌하더니 한순간 몸의 중심을 잃었다.
난 그 때를 놓치지 않았다.
아니, 놓칠 리가 없었다.
내가 의도한 것이니까.
“으으윽...”
놈의 칼을 힘으로 눌러버리고는 그대로 심장에다가 칼을 박았다.
피가 뿜어져나오며 내 얼굴을 적셨다.
따스하고 달콤한 향기가 났다.
“어...어째서...”
그 말과 함께 놈의 몸이 쓰러져 간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몸이 녹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잖아. 너와 내가 있는 공간은 다르다고. 네가 있었던 공간에는 빨간 액체가 흘러나오는 미끄러운
곰인형이 있었고, 내 공간에는 없었지. 그게 너라는 존재와 나라는 존재의 차이인 거다.”
“그...럼...손에 상처를 낸것은...?”
“너를 그쪽으로 유인하기 위해 쇼한거야. 방금 전 관문에서 내가 죽인 여자가 가르쳐 준거지. 아주 쓸만하군.”
죽음을 고스란히 담고있는 놈의 표정과 몸짓, 말투를 보니 환각에 빠져드는 쾌락이 느껴졌다.
이런것인가, 죽음이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보는 죽음이란 이렇게 달콤하고 아름다운 것이던가.
내 온몸에 튄 새빨간 피.
손에 묻은 피를 혀로 핥으며 다음 방으로 가는 문으로 걸어갔다.
아직 부족해.
나에게 더 알려줘.
죽음이라는 것을...
난 서서히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갔다.
17화 - 놀라운 만남.
이번에 나온 통로는 전과 비교해서 꽤 길었다.
그리고 온통 빨간색이었다.
빨갛다기 보다는 붉게 타오르는 모습이었다.
서서히 길을 걷자 바닥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신경쓰지 않고 계속 걸었으나 그 고통은 더욱 커졌다.
발바닥이 새카맣게 타는 듯 했다.
그런데 신기한건 정작 발바닥을 보면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점이다.
신체는 멀쩡했지만 뇌는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10분 정도 고통을 참으며 걷자 문이 나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좁은 통로가 보였다.
좌우로 통로가 있었고, 또 그 통로들은 각각의 길을 갖고 있었다.
꼭 미로같았다.
“이로써 마지막 분도 오셨네요. 축하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열심히 해주셨네요.”
안내가 나오자 시계는 반짝이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지도 비슷한 화면이 나왔다.
여러 가지 색깔의 점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의 지도 같았다.
“시계를 보면 탈출구가 보일거에요. 초록색의 점이 바로 탈출구에요. 여러분은 빨간색의 점이니 현재
위치를 가늠해서 가시면 될거에요. 모두들 수고 많으셨어요.”
끝난 건가...?
이제 좀 재미를 느끼려고 하니까 끝나는건가...?
정말 허망하네.
아니야.
아직은 끝난게 아니지.
그 놈.
나의 이성을 마비시켜준 고마운 그 놈.
분명히 놈이라면 살아있다.
그런 고마운 그놈을 살려둘수는 없지.
시계의 지도를 보니 탈출구까지의 거리는 꽤나 멀었다.
잠시 걸어봤지만 내 위치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을 정도니까.
그렇다면 놈도 탈출구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게다가 대충 주위를 보니 이곳은 미로형식임에 틀림없다.
그 이야기는 시간이 더욱 지체된다는 뜻.
시간은 충분하다.
우선 나는 왼쪽 길로 방향을 잡았다.
길을 따라 걸어보니 확실히 이곳은 미로형식이 맞았다.
길을 가다가 양갈래의 길은 물론 막힌 곳까지 나와 애를 먹었으니까.
젠장.
길 하나가지고 헤매고 있는 것은 너무나 지루하다.
어서 놈을 찾아야해.
안그러면 머리가 미쳐 돌아버릴 것만 같다.
숨가쁘게 뛰어다니던 나는 어느 방에 도착했다.
미로형식의 통로가 있고 그 중간중간에 이런 작은 방이 있는 듯.
방은 반대편쪽에 문이 있었고, 안에는 여러 가지 기구와 가구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그 안에 놈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반대편 문쪽으로 걸어갔다.
“으으윽...흐흑...”
오른쪽 탁자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픔에 찌든 여자의 신음소리.
왠지 모르게 그 소리가 낯이 익고 기분 좋게 들렸다.
그쪽으로 가보니 어떤 여자가 있었는데, 왼쪽팔은 잘려 있었으며 배도 거의 반이 잘려 있었다.
죽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였다.
“왜...왜...이제 다 끝났는데...크흐으으윽...흐흑...”
몸에 난 상처와 옷 상태를 보니 생존자 같아 보였다.
죽기 직전의 여자를 관문을 위한 시험대상으로 쓸리는 없을테니까.
“누구 짓이냐?”
내가 물었으나 여자는 극심한 고통으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 말이 없었다.
겁에 질린 표정과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는 이미 생기를 잃었다.
“허헉...헉...흐........”
이윽고 목이 꺾이며 여자가 죽었다.
여자의 몸을 자세히 살펴보니 분명히 누군가 벤 흔적이었다.
대충 보니 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낫?
나도 모르게 입가의 미소가 걸렸다.
분명히 놈이다.
“꺌꺌꺌...!!!”
난 미친 듯 웃어대며 반대편 문쪽으로 달려나갔다.
문을 열자 또 다시 통로가 나왔고 무작정 뛰어갔다.
그 통로에는 군데군데 피가 묻어있었다.
놈의 피인가, 아니면 놈이 죽인 여자의 피인가?
뭐 그런것들은 그다지 상관이없다.
내게 있어 중요한것은 어떻게 그 놈을 죽이냐뿐이니까.
통로를 따라 계속해서 방을 거쳐서 10분여를 걸어갔지만 놈은 보이지 않았다.
놈은 커녕 사람하나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이 길이 맞을텐데.
내가 온 길은 탈출구로 가는 방향이었다.
놈이든 아니면 다른 생존자였든 분명히 탈출구쪽으로 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길이 맞을텐데, 왜 보이지가 않는거지?
어느덧 거의 탈출구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역시나 그런건가.
놈은 아예 탈출구에서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죽일셈이었나 보다.
이미 끝난 선택의 게임.
근데 놈은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
무의미한 살인의 쾌락.
이해되고도 남았지만 내겐 분노가 우선이었다.
내가 칼을 쥐는 힘이었으며 단 하나의 이유였으니까.
계속 해서 걸어가자 통로 벽쪽에 뭔가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핏자국이었다.
방금 묻은 듯 흘려내리고 있는 피.
놈은 이곳에 있다.
통로를 따라가자 양쪽길이 나왔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던 그 때.
오른쪽에서 아주 작은 인기척이 들렸다.
뭔가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
그저 느낌이었지만 분명했다.
강한 피냄새가 나를 자극했다.
참을 수 없는 흥분을 느끼며 오른쪽 길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통로 자체가 어두워 앞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더욱 신경이 곤두섰다.
챙!!!
정말 순간이었다.
쇠에서 나온 작은 빛사광이 나를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게 했다.
어두운 곳에서 기습을 한 것이라 구부려진 쇠의 모양빼고는 여전히 보이는게 없었다.
나의 칼과 낫이 부딪힌체로 멈춰있는 가운데 상대방에서부터 떨림이 느껴졌다.
낫으로 한 기습적인 공격.
이런 단서들이 놈이라고 말해주는 증거였지만 이 떨림과 내 직감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낫으로 나를 공격한 사람은 매우 떨고 있었다.
약간 흐느끼는 소리마저 들렸다.
“꼭 살겠다고...약속했는데...흐흑...이제...다...다...끝났어...흐흑...”
마지막 기습이 무효로 끝나자 포기하는 식으로 말을 하는 목소리.
난 굉장히 놀랬다.
말의 내용이 아닌 목소리에.
“너...너는?”
모든게 멈췄다.
너무 충격이 커서 정지해 버렸다.
그 모든 것이...
“기...기수...?”
18화 - 벗겨지는 진실들.
온통 피를 뒤집어쓴 여자는 바로 소영이었다.
죽은줄로만 알았던 소영.
그 소영이가 내 칼을 낫으로 막으며 부르르 떨고 있다.
“기...기수...살아있었구나? 흐흐흐흐흑...”
낫을 떨어뜨리며 얼굴을 감싼체 울기 시작하는 소영.
난 여전히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기수야...나 무서웠어...죽을만큼...”
“다가오지마!!!”
내가 소리쳤다.
소영이는 내말에 흠칫 놀라며 다가오는 걸음을 멈췄다.
난 다시 소영이에게 칼을 들이댔다.
“소영이는 죽었어. 넌...누구지?”
그래.
죽은 소영이가 살아있을 리가 없어.
맞아.
이건 분명히 가짜야.
허상이라고!!!
“나...죽지 않았어. 그래 사실은...죽을뻔 했는데...간신히 살았어.”
“헛소리 하지마. 너 그 놈이지? 어찌된 일인지는...아아. 그랬군. 비밀 문구. 그걸 이용해서 내 눈을 속이려고
하는거지? 니가 얻은 비밀 문구는 환각인가? 그래? 내 말이 맞지?”
크나큰 충격에 나는 정신이 분열됨을 느꼈다.
애써 찾은 평온의 폭력성.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잃고 싶지 않았다.
“아니야...나...소영이 맞...아. 그...그놈이...내 배를 가르고...그 피로 추위를 이기면서...흐흐흑...”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하고 있군.
내 칼끝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하...하지만!!! 그렇게 죽어가던 내게...비밀 문구가 왔어. 훌쩍...내...내가 받은건 복구였어.
뭐든지간에 한가지만 복구만...가능했고...나는...살...수 있었어...흐...흐흑...”
나를 쳐다보는 애처로운 눈에서 눈물이 쉴새없이 쏟아져 내렸다.
점점 머리가 복잡해져왔다.
“갈라진...배가 다시 붙고...피가 다시 생기고...정말...흐흑. 무섭고 치가 떨렸지만...나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왔어. 우리...살아야 하잖아...살자고 했잖아...흐흐흐흐흑...”
“자, 잠깐!!! 멈춰!!! 젠장. 이런 말도 안되는...씨팔. 그래 좋아. 네가 소영이라고 쳐. 근데 무슨 증거로?
증거가 없잖아!!!”
내 말에 소영이는 엎드린체 펑펑 울기만 했다.
그 흐느낌이 내 뼈속까지 전해져 왔다.
“미...민경이 언니. 그리고 초롱이...흐흑...다 죽었어...?”
뭐? 민경이 누나와 초롱이?
그 말에 나는 내 앞에 있는 여자가 소영이라고 확신했다.
초롱이는 그렇다쳐도 민경이 누나의 이름은 그 놈이 모른다.
놈이 없을 때 서로의 이름을 말해주었고, 이후에 민경이 누나는 바로 죽었기에 놈이 알턱이 없다.
그런 생각에 도달하자 울컥했다.
민경이 누나를 죽게 만들고, 소영이를 죽이고...
그리고 초롱이마저 죽였던 그 놈.
한번 죽었었던 소영이는 굉장히 큰 충격을 받은 듯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의 원흉.
놈을 생각하니 다시 평온해졌다.
그 평온함은 곧 흥분을 불러왔다.
“어떻게 살아남았어?”
“흐흑...으응? 아아...아저씨를 한분 만났어. 그 아저씨가 이것저것 도와주셔서...흐흑...”
“아저씨? 어디있는데?”
“저쪽 뒤편 오른쪽 길에 있어...훌쩍.”
소영이 뒤로는 오른쪽의 갈림길이 있는 통로가 있었다.
그곳에 그 아저씨라는 사람이 있나 보다.
“근데 나를 왜 공격한거야?”
“그 남자...미쳤어...완전 미쳤다고...”
“남자라니? 우리 팀이었던 그 놈...?”
고개를 끄덕이는 소영이.
이제 울음을 거의 멈추었다.
“무슨일인데?”
“아저씨와 같이 출구를 향해 가고 있는데...그 놈이 갑자기 공격을 했어. 그래서...그래서 아저씨는 상처를
입었지만 놈도 마찬가지로 상처를 입어서...다행히 사라졌지만 언제든지 다시 올것같아서.
무서웠지만 아저씨를 지키려고 나는...”
다시 울려고 하는 소영이를 멈추게 하고는 생각에 빠졌다.
놈은 분명 살육을 즐기고 있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지금의 상황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
그로 인해 그 아저씨라는 사람과 소영이는 위협을 받았고, 놈과 아저씨는 상처를 입었다.
다행히 놈은 물러갔지만 아저씨가 다쳤기에 소영이는 낫을 들고 놈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고.
낄낄낄...
“기...기수야...?”
내 모습에 놀란 듯 나를 쳐다보는 소영.
그래도 웃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왜...왜그래?”
“아니야. 아무것도. 키키키키킥. 일단 아저씨의 상태 좀 보자. 저쪽으로 가면 되나?”
“으...응...”
상처입은 아저씨에다가 소영이, 게다가 나까지 있는 이 곳.
놈은 분명히 오게 되어있다.
이보다 먹음직스런 음식은 없을테니까.
나 또한 여기서 그 놈을 기다린다.
놈을 죽이는 것만이 나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으니까.
그 생각을 하니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소영이를 지나쳐 통로 오른쪽 길목으로 들어가자 나이 든 남자의 신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조금 더 걸어가니 바닥에 쓰러진체 피를 흘리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가슴에 상처를 입었는지 엎드린체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상태가 굉장히 안좋았다.
“커컥...씨펄...주...죽일거...크흑...”
나를 그 놈으로 착각했나 보다.
얼굴을 들지도 않은체 갖은 욕을 해대며 피를 토하고 있었다.
“난 그놈이 아니다.”
“쿨럭...누...누구냐!!!”
“생존자 중 한명이다. 당신을 공격한 사람에겐 빚이 좀 있지. 당신을 공격한 놈은 어떤 상처를 입었지?
언제 공격을 받았나?”
“이...인간이 아니야...쿨럭...악마였어...그 눈빛은...크큭...살의로 가득찬...악마의 눈빛이었다고!!!”
살의로 가득찬 눈빛이라.
나도 곧 그렇게 될 것같다.
놈을 만나게 된다면 말이지.
“내가 죽일거다. 그러니 말해. 어떻게 공격받은거지?”
놈에 대해 어떻게든 알아야 했다.
그것마저 없이 기다리는건 흥분이 되어 미칠 것 같았다.
“너...크쿡...너는...죽이지 못해...절대...죽이지...못해. 나 본적이 있어...예전에 티비에서...”
“티비? 무슨말을 하는거지?”
“살인마야...살인을 즐기는...그런...크큭. 50명이나 죽인...연쇄...살인마. 너도 죽고 싶지 않으면...
어서...어서...도망쳐...쿨럭...”
그 말에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초롱이의 낙태, 나의 이성 마비, 그리고 연쇄살인범의 그 놈.
각각의 사람은 모두 죄를 안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너...너는 죽을...”
“이봐.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내 물음에나 대답하라구.”
내 말에 조금씩 고개를 드는 아저씨.
그 모습이 굉장히 힘겨워 보였다.
“더 이상...여기 있지 말고...허허허허걱!!!”
응?
무슨 일이지?
상황을 체 알아차리기도 전, 바로 그때.
가슴 언저리에서 커다란 고통이 느껴졌다.
고개를 내려보니 내 몸을 관통한 낫이 눈에 들어왔다.
19화 - 죽음이란.
“키키키키킥...”
이...이 목소리는?
“역시나 예상대로야. 널 죽일때가 가장 짜릿해. 그 누구하고도 느낌이 달라. 키키킥.”
소영이?
내 가슴에 낫을 꽂은 사람이 소영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믿고 싶지 않은 장면이 보였다.
가슴에 꽂힌 낫을 잡은체 미소를 짓고 있는 소영이.
이미 사람이 아니라 악마였다.
“쿨럭...너...너 그놈...인거냐?”
처음부터 소영이가 살아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은 그 놈이라는건데...
굉장한 통증으로 제대로된 사고가 되지 않았다.
“커커컥...저...저 여자야!!! 그...살인마!!! 쿠쿠쿡...모두 죽을 거야...모두...허헐...”
뒤에서 아저씨의 외침이 들렸다.
살인마라고...?
티비에서 나왔던?
“아직도 어리둥절해? 응?”
“으윽...너...비밀문구를 받은건가...?”
“비밀문구? 그거야 받긴 했지.”
“여...역시나...이 살인마 새끼...커컥억...으아아아악!!!”
놈이 내 가슴에 박혀있는 낫을 뽑아냈다.
내 피로 얼굴을 적신 놈은 혀로 피를 빨고 있었다.
“달콤해. 너에게선 나와 비슷한 냄새가 난다니까. 그렇기에 더욱 죽이고 싶었지. 정말 짜릿한걸?”
“이...이 개쓰레기 같은놈!!! 아악... 잘도 소영이 행세를...”
“응?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죽이고 싶다.
그러나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너무나도 분했다.
“소영이 행세를 하다니? 내가? 꺄르르르르...너 참 웃긴다? 키키키키킥.”
피가 너무나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대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원래부터 소영이었어. 그건 내 이름이라고.”
“뭐...?”
“설마 너 그 놈이 소영이 행세를 한거라고 생각하는거야?”
통증도 통증이었지만 무엇보다 귀로 들리는 이 말들이 더욱 충격이었다.
정신이 멍해져왔다.
“처음에 약한척 한것은 다 연기였어. 그건 살인을 위한 밑바탕이었으니까.
그러다가 그 놈과 따로 분리되어진거야. 근데 그 놈이 나를 강간하려고 하니까 귀찮아서 죽여버린 것뿐.”
하핫.
이놈은 지금 헛소리를 해대고 있다.
정신이 돌아버려서 개소리를 해대고 있는 것이다.
“그때 비밀문구라는게 오더라구. 내 능력은 변신이었어. 눈에 보이는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것이야.
그래서 난 그 놈으로 변신한다음 놈의 피로 추위를 견뎠어. 아무래도 남자의 몸으로 변신하는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그렇게 이곳까지 오게 된거야.”
“다...닥쳐!!! 신발!!!”
“믿고 싶지 않나봐? 후훗. 뭐 마음대로 해. 근데 그 변신이라는게 다행히도 풀리는 것이더라구.
오히려 타이밍이 좋았다고나 할까? 솔직히 널 어떻게 죽일까 고민했거든. 일이 잘 해결됐지 뭐야. 후훗.”
“으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는 바람에 피가 더욱 뿜어져나왔다.
낫에 찔린 가슴부위가 벌어지며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으나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정신적인 충격이 내게는 더욱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곳에 의해 나는 더욱 완벽해졌어. 이제 살인은 아무것도 아니야. 내게 있어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야.”
이제야 이해가 갔다.
어째서 눈앞에 있는 여자가 민경이 누나의 이름을 알고있는지.
어떻게 그렇게 빠른 기습을 내게 할수있었는지.
그러한 사실들이 이해되는것이 싫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커커컥...이 개같은!!! 왜...왜 죽이는거야 사람들을...도대체 왜...다 끝났는데...아아아아악!!!”
우리를 위해 헌신한 아저씨.
그리고 자진해서 나서준 민경이 누나.
마지막으로 짧았지만 깊은 정을 느꼈던 초롱이.
그들과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너도 조금은 이해할거라 생각하는데? 살인을 하는데 그 목적은 어디에도 없어. 즐기거나 분노로 인해
살인을 하는건 어설픈 새끼들이나 하는 짓이지. 목적없는 죽음. 그거야 말로 진정한 본능이 아닐까?”
털썩.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는 쓰러져 버렸다.
바닥에 스며드는 내 피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럼 이만. 이제 모두 죽였으니 더 이상 볼일은 없어. 난 이만 갈게.”
저 살인마가 탈출구로 나가게 된다면...?
안돼.
그것만은 안돼.
꼭 죽여야만 해.
근데 어떻게 죽이지...?
어떻게...
그 순간 비로소 생각이 났다.
비밀문구!!!
‘힘의 사용을 선택하셨습니다. 당신이 가질 수 있는 힘은 타임스톱입니다. 10초간 시간을 멈출 수 있습니다.
사용 횟수는 단 한번뿐이니 신중히 쓰세요.’
그거라면 죽일 수 있다.
조금만...조금만 움직이자.
왼손에 있는 시계를 보니 어느샌가 비밀문구사용이라는 아이콘이 떠 있었다.
이미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잡생각을 접어둔체 간신히 아이콘을...클릭했다.
지이이이잉.
멈췄다.
내 몸에서 흐르는 피도, 탈출구쪽으로 걸어가는 살인마도, 공기속의 흐름마저도.
모든 것이 멈추니 아픔을 느끼는 고통조차 없어졌다.
난 일어섰다.
그리고는 칼을 꺼냈다.
시계를 보니 7초정도가 남아있었다.
눈앞의 살인마와는 불과 몇걸음 차이.
이정도면 충분하다.
난 칼을 들고 서서히 살인마에게로 다가갔다.
20화 - 마지막 선택.
살인마에게로 다가간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이 낯선 곳에서 가장 먼저 알게 되었던 사람.
툭하면 울기만 해서 걱정이 되었던 사람.
이제는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다.
쾌락도, 불쾌함도, 성취감도 없었다.
아무런 느낌이 없는 포커페이스.
인간에게 뇌가 없다면 이런 표정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멈추어진 시간에서의 10초는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시계를 보니 남은 시간은 3초.
나는 피묻은 칼을 들었다.
겨냥한곳은 그녀의 심장 부위.
칼을 심장에 찔러 넣으려는 그 순간.
문득 여러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진하여 나섰다가 죽음을 당했던 아저씨.
그 놈에게 상자를 뺏기는 바람에 초롱이에게 죽은 민경이 누나.
그리고 나와 꼭 살자고 약속했지만 죽어버리고만 초롱이.
다 각기 이유가 있어 죽은것이지만...
그 이유가 나에게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가 아저씨에게 조금만 더 일찍 방법을 알려주었다면.
놈과 합동해서 2번째 관문을 실행했었으면.
초롱이를 좀 더 안전하게 보살펴줬으면.
그럼 모두 죽지 않았을텐데.
모두 나 때문에...나 때문에...
‘꼭...살아줘...알...았지? 고...마웠어...오빠...’
으아아아악!!!
초롱이는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면서 나를 살렸지만 나는 멍청하게도 죽어가고 있다.
내가 모두 죽인거야.
내가...흐으윽...
난 힘을 잃고 칼을 떨구었다.
“으으으으윽...”
눈 깜짝할 새에 나는 다시 쓰러져 있는 상태로 돌아왔다.
멈춰진 시간이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의 상황으로 돌아오는 듯 했다.
커다란 고통을 느끼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소영이.
정말 죽이고 싶은 살인마이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자격이 없다고 해야하나.
모두를 죽음에 몰게 해놓고서 마지막 남은 소영이마저 죽인다면...
내 자신이 붕괴될 것만 같았다.
죽음이란 것은 굉장히 무섭고 두려웠지만 그보다 죽임이라는 것이 나를 더욱 조여왔다.
내가 한 행동들이 떠올랐고 난 무서워졌다.
싫다 이제 그런건.
나는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와있었다.
“흐으...윽...”
분명 내 얼굴은 피로 물든 바닥에 처박고 있는 상태인데도 여러 장면들이 보였다.
내가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혔던 일, 이성이 마비되어 아버지를 폭행했던 일, 소년원에서조차 폭력을
일삼으며 문제를 일으켰던 일.
그리고 이곳에 와서 있었던 수많은 일들.
후회, 고통, 슬픔, 분노, 비통, 답답함이 온 몸을 감싸며 휘돌았다.
마지막으로 나온 사람은 이상하게도 초롱이다.
초롱이가 날 보며 웃어주고 있다.
자신을 죽게 했는데도, 약속도 지키지 못했는데도...
웃어주고 있는 것이다.
“초...초롱아...흐흐흐흐흑...”
그 웃음이 나를 따스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아주 천천히 초롱이에게로 다가갔다.
잠시 후.
눈앞이 온통 컴컴한 나는 무언가의 감촉을 느꼈다.
어떠한 존재들이 나를 들고 옮기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죽었고, 그 말로만 듣던 저승사자에게 끌려가는 것일까?
죽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 나를 두고 먼저 갔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구나.
만나게 되면 꼭...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 몸을 이끌던 힘이 사라지며 나는 바닥에 안착됨을 느꼈다.
여전히 앞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눈을 뜬것인지 감은것인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다.
모든게 엉망진창이었다.
“잘했어요.”
청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늘 나라라는 곳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목소리가 있었던가.
설마 내가 천국에 온것은 아닐테고.
근데 왠지 낯이 익은 목소리다.
어디서 들었던 것일...
“기수군? 눈을 뜨세요. 그래가지고 뭐가 보이겠어요?”
내게 눈을 뜨라고 말하는 여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승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투와 목소리다.
하긴 이제껏 들어왔던 이야기는 편견일수 있으니까.
실제와는 다른 예측이었을지도.
여자의 말대로 눈을 뜨겠다고 생각하자 비로소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강한 빛에 의해 온갖 얼굴을 구기며 표정을 일그러뜨려야 했지만 조금씩 적응이 되며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엎드린 체 웅크려 있었고 양 옆쪽과 앞쪽에 사람 비슷한 형체가 보였다.
여자의 목소리는 앞쪽에서 들렸기에 아무래도 앞에 있는 사람이 말한 것이겠지.
어느정도 빛에 적응이 되자 여자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색의 길다란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머리가 온통 하얀색이었고, 피부 또한 백옥인게...
“너...너...는!!! 커커컥...”
난 입에서 한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뭐지 이 피는?
죽은 내가 왜 피를 토하는거지?
그리고 내 앞의 있는 이 여자.
이 여자는 왜 내 앞에 있는거야?
“뭘 그렇게 놀라고 그러나요? 기수군.”
이 여자.
분명히 알고 있는 여자다.
아니, 오히려 모른다는게 더 말이 안될 수도.
내가 처음 이곳에 들어와서 강당에 있었던 그 때.
우리를 안내해주던 바로 그 흰옷의 여자였다.
21화 - 내가 원하는 것.
“일단 치료해 줄게요.”
그 여자는 손을 들더니 나에게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그 순간 몸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들이 모두 사라졌다.
몸을 보자 상처는커녕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약간 허무하다고나 할까?
신기함보단 허무함이 더욱 강했다.
“기수군. 반가워요. 일단 제 소개를 하죠. 저의 이름은 세나에요. 그냥 마음에 들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죠.”
도통 모르겠다.
여기가 어디이고, 이들이 누구이며,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냥 꿈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많이 황당하실거에요. 물론 보통은 이러한 만남을 가지지 않지만 기수군은 워낙에 특별해서요.”
“도대체가 무슨말인지...당신은 누구지? 이곳을 만들고 이런 개같은 관문을 만든게 당신인가?”
“개같은...? 후훗. 뭐 그런셈이 되겠네요. 호호호호홋.”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지?
어째서 이런짓을 한것이며 어떻게 한거지?
“당신. 악마인건가?”
“악마요? 제가요? 호호호호홋.”
꽤나 아름다운 웃음소리를 갖고 있는 여자.
미모 또한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뭐 어차피 악마라는 것도 인간의 잣대로 만든 것 뿐이니까요. 쉽게 당신들의 잣대로 말하자면 저희는
그 반대에요. 바로 천사에요.”
하하하하핫.
천사?
이런짓을 해놓고서 천사라고 말하는게 너무나도 웃겼다.
“웃는것을 보니 믿지 않으시는가 보네요. 뭐 좋아요. 어차피 설명해주려고 했던 것이니까요.”
난 웃음을 멈추고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지금까지의 일을 떠나서 나를 금새 치료한것만 봐도 인간은 아니겠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천사에요.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러한 관문을 만드는건 도저히 불가능하죠.
방금 당신을 치료한것도 마찬가지에요. 물론 당신들이 생각하는 신은 아니에요. 솔직히 신이 있는지는
저희도 몰라요. 저희는 신을 모시는 하인같은게 아니라 인간처럼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그 말은...?”
“이 공간에는 인간도 있고, 동물도 있고, 식물도 있죠? 그러한 생명체가 공존하고 있는데 저희도 그 중에
하나라 이거에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떠한 새로운 세상에서 존재하는게 아니랍니다.”
“그 말이 진짜라면...왜 그동안 인간의 눈에 띄지 않았던...거지?”
“그야 우리가 인간보다 훨씬 월등하니까요. 개미가 인간을 감지하고 느낄 수 있을까요? 그거랑 마찬가지에요.”
이런 터무니없는 말이...
말도 안된다.
“그럼 왜 당신들은 인간을 지배하지 않는거지?”
“지배요? 인간과 저희는 확실히 차이가 나지만 상하관계는 아니에요. 공존관계라고나 할까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형태죠. 악마도 마찬가지에요.”
“주고받는다고? 무엇을?”
“저희는 인간과 살면서 여러 가지를 행동하도록 유도해요. 인간들은 그런 행동을 선한 행동이라고 하더라구요.
다른 사람을 돕거나 헌신하는 일 같은 것 말에요. 악마는 그와 반대되는 일을 하죠.”
“그 행동을 유도해서 뭘 얻는다는 거지?”
“인간을 유도해서 우리가 원한 행동을 하게 만들면 저희는 거기에서 힘을 얻는답니다.
어떻게 왜 얻게 되는지는 몰라요. 인간도 그렇지 않나요? 어째서 음식을 먹어야만 힘이 나고 살아갈 수
있는지 본질적으로 모르잖아요. 그저 그렇게 정해져있기에 그런거죠.”
머리가 복잡하면서 지끈지끈거렸다.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때로는 다른 존재의 모습으로 우리는 인간의 행동을 유도해요. 어떤 모습이 될지는 모르죠.
그건 악마도 마찬가지고요.”
“근데 말야. 천사라면서 왜 이런 관문을 만든거지?”
내 말에 세나는 천천히 내게로 걸어왔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녀의 미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린 악마와 적대관계에요. 물론 존재할때부터 적대관계였던것은 아니죠. 살아가기 위해 서로가 얻어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것이 상반되니까 적대관계가 된 거에요.”
“갑자기 그게 무슨말이지?”
“다른 존재들은 우리에게 영향이 없어요. 인간은 빼고요. 하지만 악마들은 저희에게 크나큰 타격이죠.
저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뺏어가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악마를 죽여요.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세나라는 이 여자.
왜 이렇게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만 하는거지?
답답했다.
“내가 물었잖아. 왜 이런 짓을 한거냐고!!! 지금 그게 다 무슨말인데?”
“흥분하지 말아요. 지금 말하고 있잖아요. 저희는 얼마전 각성하지 못한 악마의 소식을 들었어요.”
“각성하지 못한 악마?”
“그래요. 악마와 천사는 어떠한 존재로 태어나게 되죠. 그러다가 자신이 악마 또는 천사라는 사실을
각성하면서부터 그 존재로 살아가게 되는거에요.”
“그런 말도 안되는...”
“근데 소식으로 들은 그 각성하지 못한 악마는 굉장히 강하다고 하더군요. 만약 스스로 각성하여 힘을 기르면
저희에게 굉장한 타격을 입을 정도로 말에요. 그래서 저희는 결심했죠. 미리 그 악마를 죽여버리자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쉽게 말해 검사를 받은건가?
악마인지 아닌지?
“우선 사람으로 범위를 좁혔어요. 그런다음 가장 악마에 가까운 사람을 골라 이 관문에 참가 시킨거죠.
지금까지 기수군이 겪은 일은 모두 악마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 대한 시험이었답니다.”
“특성?”
“점차 관문을 통과하면서 악랄해지며 폭력적으로 변하게 되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악마로서 가장 필요한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무감각이에요.”
무감각.
그랬다.
소영이가 그랬다.
죽음이란 아무것도 아닌 공허함이라고.
“중간마다 죽은 사람들은 그럼...”
“악마로서의 탈락인거죠. 그들은 모두 저희가 치료해서 다시 예전 생활로 되돌아가도록 했어요.
이곳에서의 기억은 모두 지우고요.”
그럼 다 살아있다는 건가?
아저씨, 그 놈, 민경이 누나, 그리고 초롱이.
순간 울컥하여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그럼 소영이는...악마인건가?”
“아직은 몰라요. 좀 더 시간이 지나면서 보이는 각성상태에 달려있겠죠.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요.”
이런 황당한 진실에 나는 얼이 빠져버렸다.
이해는 가능했으나 받아들이기는 정말 힘들었다.
“기수군. 당신은 특별해요. 솔직히 저는 기수군이 악마라고 생각했거든요. 인간 이상의 힘과 분노,
그리고 살인적 쾌락까지. 하지만 당신은 마지막에 인간이기를 선택했어요. 어째서 소영씨를 죽이지 않은거죠?”
애써 눈물을 참으며 세나를 쳐다보았다.
이제까지 겪었던 상황을 보자면 분노가 생기는게 당연한데도 그런 기분은 느껴지지 않았다.
“모르겠어 나도.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어. 만약 소영이를 죽이면 내 모든 것이 파괴될것만 같은 기분이었어.
그게 싫었어. 나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고.”
“후훗. 역시나 특별하군요. 사실 놀랐어요. 그 상황에서 인간의 의지를 보인다는것이. 그래서 전 당신을
이곳으로 불렀어요.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었거든요.”
“선물?”
“네. 일종의 우리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선물이라고 봐도 되고요, 호홋. 당신이 원하는 것 한가지를 들어줄께요.
물론 제 힘의 한계내에서요. 아마 웬만한 것은 한계내의 소원일테니 아무거나 하나 말해보세요.”
영문도 모른체 끌려와서는 이상한 관문을 통과하며 이곳까지 오게 된 나.
그것들이 모두 악마를 찾기 위한 관문이었으며 그 관문에서 나는 인간으로서 합격을 했고 지금은 그것에
대한 선물을 준다고 한다.
황당하고도 웃긴 일이었다.
“원하시는게 없나요? 뭐 아무거나 말해도 좋아요. 엄청난 액수의 돈, 뛰어난 외모같은 것은 물론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 변신할 수 있는 능력, 힘이 쎄지는 능력 등 다 좋아요. 무엇이 갖고 싶으시죠?”
난 말없이 세나를 쳐다본다.
그래.
선물을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지.
내가 원하는 것이라...
난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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