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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대 : 무조건해라 님 >
6화 - 그녀의 등장.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의 향내음이 풍기는 가을이 다가왔다.
길거리엔 어느덧 빨간 낙엽들이 쌓여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나의 마음도 어떤 여자로 인해
행복함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저기 동물원 입구 쪽에 아이스크림 2개를 들고 서있는 그 애가 보였다.
어느새 내게로 다가오더니 따스한 햇빛보다 더욱 강한 아름다움으로 내 눈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오빠, 여기 아이스크림. 헤헷. 진짜 날씨 무지 좋다. 그치?^^”
아이스크림 한 개를 건네받고는 덥석 베어물었다.
바닐라의 달콤함이 내 입술과 혀, 마음을 자극시켰다.
“초롱아.”
“응? 왜 오빠?”
“나 진짜 행복하다.”
“나도!!!^^”
초롱이의 목에는 우리 사이의 증표와도 같은 목걸이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처음의 우리 사이는 굉장히 어색했다.
모든 기억과 아련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와는 달리, 초롱이는 모든 기억이 지워진 상태.
천사가 준 배려로 인해 이렇게 만나게 되어 사귀는 사이까지 발전하게 되었으나,
기억의 잔존 여부는 꽤나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난 개의치 않았다.
추억같은 것들은 지금부터 차근차근 만들어나가면 되니까.
그런 마음가짐으로 초롱이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나였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은 떨칠수가 없었다.
은근히 소영이에 대한 소식도 궁금했으며, 천사들이 계획했던 일명 ‘악마 색출 작전’의 결말도 알고 싶었다.
도무지 확인할 길이 없었기에 그에 대한 궁금증과 불안감이 더 커진 듯 싶었다.
혹시 소영이도 악마가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일부분은 기억을 지우고 나오는게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무슨 생각을 그리 해?”
“응? 아...아냐. 아 저기봐라. 코끼리다^^”
“우왕!!! 진짜^^”
초롱이가 목에 차고 있는 목걸이.
그 때 당시 괴물을 해치워야하는 관문에서 얻은 자그마한 네모의 돌로 만든 목걸이었다.
현실에서 돌아와 나를 처음 만났을때부터 이 목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것 또한 천사가 준 작은 배려 같았다.
초롱이와 나를 이어주는 하나의 매개체라고나 할까?
목걸이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편해지고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너무너무 즐거웠어. 히힛. 다음에도 또 가자 동물원^^”
“그래그래. 안바래다줘도 되겠어?”
“내가 무슨 어린애야? 매일 바래다주게?”
“너 어린애 맞잖아. 아닌척하기는^^”
“뭐야 오빠!!! 어린애라고? 확 기습키스 해버린다?ㅋㄷㅋㄷ”
지금의 우리는 오래된 애인사이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어린 나이임에도 성숙한 모습으로 나의 분위기를 맞춰주는 초롱이가 나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난 천천히 초롱이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였고,
초롱이는 입맞춤을 하는 내내 숨소리만 낼 뿐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의 키스를 한 우리였지만, 매번 느껴지는 짜릿함은 이로 말할 수가 없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키스를 하는동안 그 때의 일이 생각났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초롱이와 몸을 나누었던.
괜히 얼굴이 붉어지며 화끈거렸다.
“헤헤. 나...이제 그만 들어갈게.”
“아아. 그래. 나...나...나중에 보자. 하핫.”
“응. 오늘 너무 즐거웠어. 잘 들어가 오빠^^”
가볍게 인사를 한 나는 돌아섰다.
아직도 입술에서 느껴지는 설레임이 가시지 않은 것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겼다.
꿈만 같은 지금의 행복.
확실히 그 때의 일은 내게 많은 변화를 주었다.
예전과 같이 말썽을 부리지도 않았으며, 분노가 느껴질때도 인내할 수 있는 끈기를 얻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이토록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까지.
어느덧 우리 동네에 다다랐다.
근데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의 동네.
한 쪽 골목을 보니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으나 이미 내 몸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곳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커다란 호기심에 몸이 이끌려갔다고나 할까?
가보니 경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며, 그 주위를 마을사람들이 둘러싸 구경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자 현장의 모습이 보였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으며, 여러 경찰과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주변을 검사하거나 테이프로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아무래도 살인사건이 일어난 듯 싶었다.
지금까지 우리동네에 살인사건은커녕 그 어떤 사건도 일어난적이 없었다.
갑자기 오한이 들며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302동 여자라고 했지?”
“응. 아니 글쎄, 아까 낮에 김씨양반이 조깅을 하던 중 발견했다고 하구만.
이미 살인을 하고 여기다가 버렸나봐. 이게 뭔일인지.”
“왜 죽은거래?”
“그걸 모르겠다고 저마다 쑤근거리는데. 휴우. 그 여자는 평소에 착하고 성실해서 마을 사람들이
다 좋아했잖우.”
“무슨 일일까?”
“혹시 미친 살인범이 아닐...”
“떽!!! 더러운 소리 하지 말래두. 으이구. 살떨리게...”
주민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엿듣던 나는 살인범이라는 말에 움찔거렸다.
아니야.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곧장 뛰어갔다.
그곳에 계속 있으면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져나갈것만 같았다.
집에 와서 몇분이고 계속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심장의 떨림이 사라졌다.
정말 바보같기는.
소영이일리가 없잖아.
혹시 소영이라고 해도 그곳에 나오는 모든 사람은 기억이 지워지게 된다.
기억이 지워진 상태에서 나를 찾아와 복수를 한다는건...
아니지. 나에게 복수할 이유도 없잖아.
그렇다고 해도 우리동네에 저런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는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도 남았다.
딩동.
부모님은 모두 나가시고, 집에는 혼자만 있는 상태.
아직 밤 7시정도밖에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기에 부모님일리는 없었다.
누구일까?
현관문으로 다가가 조용히 밖을 내다보자 말끔한 인상의 정장을 입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누...누구시죠?”
“네. 검찰청에서 나온 전민태 검사라고 합니다. 잠시 조사할게 있으니 문 좀 열어주십시오.”
그는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보여줬지만, 사실 신분증이 진짜인지는 내가 알 턱이 없었다.
문을 열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고민하던 나는 이내 체념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기수군?”
“네? 어떻게 제 이름을...?”
뇌리를 스치는 불안감으로 문을 닫으려고 했으나 한발 늦었다.
검사라고 밝힌 그는 닫히는 문을 가로막고는 내게 말했다.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전민태 검사입니다. 도움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도...도움이요?”
“하핫. 힘이 장난이 아니네. 어린 나이로 보이는데...끙끙. 좀 이야기를 들어보시는게 어떠신지?”
나는 문에 주는 힘을 풀었다.
우선을 대화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한 존재였다면 이미 내게 해코지를 했을 터.
비록 위험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어느정도 자신은 있었다.
그 때의 일로 얻은 것은 끈기나 희망같은 선한쪽의 것들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이성의 끈을 놓치고 폭발했던 몸짓이라던가 엄청난 힘도 내 몸은 기억을 하고 있었다.
“휴우. 기수군. 아침부터 찾았는데 어렵게 만난 댓가가 겨우 이거로군요. 하핫.”
상황을 풀기 위한 농담이었는지 멋쩍게 웃는 그.
내 굳은 표정에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뭐 본론으로 바로 넘어가도록 하죠. 동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죠?”
“자세히는 몰라요. 나갔다가 방금 들어와서...”
“그렇군요. 그럼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죽은 여자는 24살의 여자로서 이름은 조민아,
이 곳 주민이더군요. 사인은 과다출혈 및 쇼크사입니다. 몸에 수십개의 칼자국으로 보아 마구
난도질을 당한 듯 싶구요. 용의자를 조사해봤으나 역시 예상대로 원한을 가질만한 인물은 없었고요.”
“저기 검사님. 도대체 왜 그런 말씀을 저에게 해주시는건가요? 그리고 예상대로라는 말은 무슨 뜻이고요?”
그제야 검사의 눈이 강렬해지며 엄숙한 분위기가 되었다.
검사라는 타이틀을 낙하산으로 얻은 것은 아닌 듯싶었다.
“저는 지난 수년간 그녀의 발자취를 추척해왔죠. 하지만 절대 잡을수가 없었습니다.
아니면 잡지 말아야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고요.”
“그녀라뇨?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죠...?”
“이번에 죽은 여자의 몸에 난 칼자국이 몇 개인지 아십니까?”
“.....?????”
“얼굴에 10번. 팔에 각각 한번. 다리에도 각각 한번. 그리고 배쪽과 가슴쪽에 5번,
마지막으로 음부쪽에 한번. 도합 20번입니다.”
“검사님!!! 도대체 무슨 말을...”
“지난번 19번째 사건에서는 19번을 그었죠. 그러나 그때와 다른건 음부에 마지막 한번을
그었다는겁니다.”
난 도통 이 검사가 무슨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몇 번을 그었는지, 왜 죽었는지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는 나에게 이런 이해못할
말들은 듣기 싫은 잡음일 뿐이었다.
“전 그런 이상한 말들을 들으려고 문을 열어준게 아닙니다.”
“기수군. 초롱이라는 여자를 아시나요?”
“!!!!!”
순간의 전율은 나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7화 - 재회.
이 검사라는 남자가 어떻게 초롱이를 알고 있는거지?
아니, 어떻게 알았다기보다는 어째서 나에게 초롱이라는 이름을 들먹이는지가 중요했다.
혹시 소영이가 탈출하여 모습을 바꾼거라면...?
“오호. 굉장한 살기로군요. 진정하십시오. 우선 제 말을 들어보는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어떻게 초롱이라는 이름을 알죠? 어떻게?”
“그 말인즉슨 초롱이라는 여자를 안다는 의미겠지요? 후훗. 좋습니다.
답변을 해줬으니 나도 질문에 답을 해야겠군요. 말씀드렸다시피 전 이번 연쇄살인범을 오랫동안
추적해왔어요. 일정한 주기가 있으면서도 무질서한 살인을 저지르는게 특징이었죠.
근데 이상하게도 근래 몇주동안은 살인을 뚝하고 멈추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다시 연쇄살인이 일어난것이고요.”
검사는 알 수 없는 말들을 하며 자신이 가져온 서류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무기를 꺼내지는 않을까 바짝 긴장했으나 그가 꺼낸건 얼굴이 그려진 종이 한 장이었다.
종이 한장은 무기를 꺼내는 것보다 더한 충격을 내게 주었다.
“이게 그 연쇄살인범의 사진입니다. 일명 몽타주라고도 하죠.”
이...이건?
연필로 그린 그림이었고, 미대 출신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그린 듯 허술해보였지만 확실히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종이속의 연쇄살인범은 바로 박소영, 그녀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 여자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보군요. 사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찾아온겁니다.
연쇄살인범, 박소영에 대한 이야기를요.”
“저...저기 검사님. 죄송합니다만, 전 아무것도 모르는...”
“박소영이 이번 살인사건 현장에 종이를 한 장 남겼습니다. 보여드려도 될까요?”
보여드릴까요도 아니고 보여드려도 될까요라니.
검사는 내게 접혀있는 낡은 흰색종이를 내밀었다.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박소영, 그녀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졌다.
어둠 그 이상의 어둠.
종이를 받은 나는 펼처서 읽기 시작했다.
‘기수. 미래로 가는 길에 어떤 여자가 붙잡고 있다면 난 그 여자를 죽이겠어. 행복이야 어떻든간에.’
이게 무슨뜻이지?
나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인가?
“기수라는 이름이 쓰여있길래 이 곳 동네 주민 리스트를 뒤적거렸더니 당신이 나오더군요.
이 편지, 이해가십니까?”
“하지만...초롱이에 대한건 어떻게 아신거죠?”
“죄송하지만 당신이 없는 시간동안 뒷조사를 좀 했습니다. 그랬더니 여자친구에 대한 정보가 나오더군요.
바로 강초롱씨요.”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검사마저도 종이 속에 나온 여자를 초롱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어째서 나의 미래를 막고, 죽여야할 상대가 초롱이라는거지?
이미 한번 초롱이를 죽여놓고서!!!
나한테...나한테 복수하면 되잖아. 나한테...
“검사님. 박소영의 범행 시간 주기는 어떻게 되나요?”
“네? 아아. 보통 살인이 끝나고 3일 정도 후에 살인이 일어났지요. 지금까지의 방식대로라면...음.
이번 사건 피해자를 검사해본 결과 사인 시각이 13일 밤이니까... 오늘이네요. 다음 범행의 시간이.”
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롱이가 위험하다.
온몸이 반응하며 세포들 각각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기...기수군? 진정하십시오. 아직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전 알 수 있어요. 분명히 올겁니다. 지금 당장 제가 가봐야겠어요.”
“어디를 가신다는거죠?”
“초롱이한테요. 무슨일이 있어도 제가 지켜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에서 나와버렸다.
집안에는 지금 낯선 검사가 홀로 있겠지만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긴장이 온몸을 에워쌌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왔다.
대로변에 다다른 나는 택시를 잡았다.
초롱이의 집까지는 대략 30분거리.
한밤중인 시간인만큼 택시는 막힘없이 목적지로 달려가고 있었으나 초조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도착지에 도착한 나는 거스름돈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은체 택시에서 뛰어내렸다.
전력질주로 초롱이의 집까지 뛰어온 나는 비로소 숨이 막히고, 힘이 들다는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었다.
폭발할듯한 감정을 추스르며 초인종을 눌렀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불안감과 함께 분노가 느껴졌다.
정말로...정말로 초롱이를 죽인거라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어보니 스르륵 문이 열렸다.
제발 초롱이가 실수로 문을 열어놓은것이기를.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자 음산한 분위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다고 인정할 수 없는 분위기.
마지막 관문에서 내 몸을 칼로 찔렀던 소영이에게서 느낀것과 같은 분위기였다.
집안으로 들어선 나는 진동하는 피비린내를 느꼈다.
이미 늦은건가...? 소영이는 끝내 초롱이를 또다시 죽이고만 건가...?
엄청난 분노에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좀 더 들어가자 피비린내의 근원지를 찾았다.
그건 바로 초롱이의 부모님.
매번 내가 집에 놀러오면 따뜻하게 대해주었는데...
분노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초롱이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꺄아아아악~~~”
그때 2층 방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단순한 비명소리라고 해도 난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초롱이!!! 난 지체없이 2층 방으로 뛰쳐올라갔다.
방문을 부시며 안으로 들어가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는 마주치지 말아야할 그녀.
소영은 초롱이의 목을 휘어감은체 다른 한쪽손의 칼로 위협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기수. 잘지냈어?^^”
내 눈앞에서 초롱이를 죽게 해놓고, 난 또 다시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그 때와 같은 상황이지만, 그 때보다 더한 분노를 느끼는 이 순간.
내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스럽고 절망스러웠다.
“오...오빠? 커컥...”
“많이 놀랬지? 하긴 나도 놀랐어. 아마도 어떻게 내가 그곳에서 나왔는지 궁금할거야. 후훗.
뭐 어차피 나중에는 알게될테니 설명은 안할래. 지금은 할 일이 있으니까.”
“소...소영!!! 소영아!!! 제발 놔줘. 제발...제발 초롱이를 놔줘. 응? 복수는 나에게만 하면 되잖아.
제발, 부탁이야...”
초롱이는 지금 소영이에게 목이 졸린체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눈물나게 슬펐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금방이라도 소영이의 칼이 초롱이 몸에 박힐것만 같았다.
“복수? 웬 복수? 난 너에게 복수할 마음이 전혀 없어. 오히려 네가 보고싶었는걸?^^”
“으아아아악!!! 제발 소영아!!! 제발!!!”
나의 절규에 가까운 함성에도 소영은 눈썹하나 꿈쩍하지 않고 빙그시 웃고만 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도 나를 괴롭히는거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자 그럼 이제 해야할 일을 해야지. 히힛.”
“아...안돼!!! 죽이지마. 썅!!! 죽이기만 해봐. 널 토막내버릴거야. 진짜야. 진짜 토막토막내서
죽일거야. 고통스럽게...”
“그래? 그것 참 흥미가 당기는 이야기인데? 호호.”
소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칼을 서서히 초롱이의 목쪽에 갖다댔다.
칼은 목에 걸려진 목걸이에 부딪혀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흐흑.,,안돼!!! 안돼 이것만은!!!”
초롱이는 목숨이 걸린 지금같은 상황에서도 저 목걸이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우리 사이를 연결해준다고 믿어온 목걸이.
목숨보다 소중한거라고 내게 늘 말했던 초롱이의 모습이 불현 듯 떠올랐다.
“넌 지금 죽기전이란 말야. 근데 목걸이 따위를 신경쓰면 내가 너무 무안하잖니.”
“안돼!!! 안된다고!!! 흐흑. 더 이상 건들지마. 더 이상...”
툭~~~챙그랑.
목걸이는 바닥에 떨어지며 맑은 소리를 냈다.
내 심장도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까짓게 뭐라고.”
히죽웃으며 말을 하는 소영이.
죽이고 싶었다. 정말 미칠 듯이 죽이고 싶었다.
“미...미안해 오빠. 이 목걸이 꼭 지키고 싶었는데...꼭...커컥”
순간 눈앞의 광경이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정신을 잃은것도, 꿈을 꾸는것도 아니었다.
굉장한 피냄새와 함께 따스한 체온의 열기가 얼굴에서 느껴졌다.
“죽는 마당에 마지막까지 꼴값이야...호호.”
초롱이의 몸은 점차 바닥으로 쓰려졌다.
목은 비정상적으로 꺾여 있었으며 한쪽 목부분에선 선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방안은 피분수의 꽃이 피었다.
그리고 이내 내 몸까지 피분수로 인해 빨갛게 물들어갔다.
“하...하핫...하하하하핫...하하하하핫!!!”
나도 믿기지 못할 정도의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가장 지하의 밑바닥에 사는 생물체가 내는 소리마냥 굵고 텁텁했으며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였다.
근데 참 이상했다.
점차 거대했던 분노가 사라져갔으며 지난번처럼 이성이 끊기지도 않았다.
이게...뭐지?
이 알 수 없는 기분은 도대체 뭐란 말이지?
심연으로부터 느껴지는 뜨거운 느낌은 슬픔도 고통도 분노도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는 無의 느낌.
마침내 심연속의 느낌은 온몸을 지배해버렸다.
고개를 들어 똑바로 소영이를 쳐다보았다.
웬일인지 소영이는 웃음을 넘어서 환희마저 차있는 것처럼 보였다.
없어져야 할 존재.
내 인식은 죽이고 싶다가 아닌 없어져야할 존재로 소영이를 느끼고 있었다.
난 손을 들어 소영이에게 손바닥을 내보이듯 펼쳤다.
스스로 무엇을 하는건지도 모른체 행동은 이루어졌다.
“기...기수...아니지. 이제 아니지. 반...반가워요. 진실로...”
또 다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구나, 박소영.
그 때 바닥에 쓰러진 초롱이에게서 애교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나...잘했어...?”
“?????????????????!!!!!!!!!!!!!!!!!!!!!!!!!!!!!”
8화 - 초롱이의 과거 챕터 1.
식물은 사랑을 받은 만큼의 예쁜 꽃을 피운다고 한다.
하물며 인간은 얼마나 예민할까.
초롱이는 어렸을적부터 무관심속에서 자라왔다.
부모님 없이 생활한 애들보다야 나은 상황이었다지만 그에 못지 않은 소외감을 느꼈다.
그건 초롱이 탓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초롱이를 무시한 것 또한 아니었다.
초롱이의 아빠와 엄마는 사이가 안좋아서 싸우기 일쑤였고, 그렇게 서로를 미워하던 그들은
어떻게든지 집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서로 안면을 맞대고 있는 것조차 그들에겐 고통이었던 것이다.
이혼 서류까지 작성해본게 수십번이었지만 그러기엔 서로가 필요했던 그들.
온갖 마음의 장벽은 다 쌓아놓은체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몸을 맞대며 살아갔던 것이다.
그런 집안의 삭막함이 초롱이를 외롭게 만들었고 나아가 학교생활에서까지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어쩌면 따돌림을 당하게 된 이유도 반 아이들의 잘못이 아닌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린 초롱이의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뭐해? 내 말 안들려?”
방과후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지옥의 시간.
신비감으로 덮혀있는 여고의 진실은 참으로 잔혹했다.
“미...민희야...”
“아 진짜 얘가 오늘 따라 왜 이래. 얼른 안가?”
“나 오늘 하루만 쉬면 안될까? 제발...”
“야. 너 예쁘게 보살펴주는게 누군데 지금와서 발등찍겠다는 거야? 응? 너도 은근히 즐기면서 왜 그래?”
반아이들도 무서워하는 민희는 흔히들 말하는 날라리였다.
민희를 비롯한 5명이 항상 몰려다녔는데 학교 애들은 그녀들을 독버섯이라고 불렀다.
예쁘고 화려함 속에 감춰진 치명적인 독.
참으로 잘 지어낸 별명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초롱아. 잘들어. 오늘 니가 만날 아저씨는 진짜 좋으신 분이야. 돈도 많이 주고. 근데 니가
이런식으로 나오면 나 미쳐버릴지도 몰라. 내 말 알아듣겠지?”
그들은 몸을 치장하고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여자에게 있어서 가장 쉽게 돈을 버는건 몸을 파는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들 스스로가 그런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는 오빠들하고 관계를 맺는 것도 벅찼기에 고심 끝에 생각한 것이 초롱이였다.
아저씨와 초롱이를 엮어주고는 자신들이 댓가를 받는다.
처음에는 초롱이에게도 얼마정도의 돈을 주려고 했으나 스스로 마다했기에 지금은 완전히
자신들의 몫이 되었다.
습관이란 그런것이었다.
양심에 찔리고, 옳지 못한 행동이라도 자꾸만 하다보면 쉽게 느껴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민희는 머뭇거리는 초롱이가 짜증나 미칠 것만 같았다.
짝.
고개를 숙인체 움직일 생각을 안하는 초롱이의 뺨을 쏘아올렸다.
그런데도 손하나 움직이지 않았고, 다만 훌쩍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울지마 이년아. 너도 사실 느끼고 있잖아. 지금와서 왜 그러는건데? 아놔. 씨팔. 진짜 짜증나게 할래?”
“민...희야. 나...나 오늘...그날이란 말야...흐흑...”
“뭐? 그럼 더 잘됐잖아. 임신할 걱정도 없고. 더 잘된거잖아 이년아.”
초롱이 스스로도 더 이상 버틸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등이 떠밀려졌고,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또 어떤 아저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멈출 생각을 안했다.
“그만둬!!!”
낯익고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자신만한 키에 남자답지 않게 흰 피부를 가진 남자애가 보였다.
“뭐야 저건?”
민희가 낮은 음성으로 경계하는 동안 남자애는 초롱이에게로 다가왔다.
약해보이는 몸과는 달리 눈에서는 강한 빛이 쏟아져나왔다.
“너희들 뭐하는거야? 지금 뭐하는거냐고!!!”
“시...시훈아...”
소극적이고 말이 없던 초롱이에게 어렸을적부터 친구가 되어준 유일한 아이.
자신의 몸 하나 지킬힘도 없으면서 언제나 말만으로는 초롱이를 지켜주겠다고 허풍을 떨던 착한 아이.
초롱이는 가장 보이기 싫은 모습을 가장 마음에 두고 있는 아이한테 보이고 말았다.
온갖 억정이 무너져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무슨 백마탄 왕자야? 뭐야 이거. 죽을래?”
“착한 초롱이 건드리지마. 그냥 냅두라고!”
“이게 진짜!”
민희를 비롯한 독버섯 멤버들은 시훈을 무차별적으로 때리기 시작했다.
워낙에 몸이 약한 시훈인데다가 여자라고 해도 여러명의 애들이었기에 시훈은 얻어터지는 수 밖에 없었다.
끝내 견디다못해 바닥에 쓰려졌으나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시훈의 팔과 다리는 벌겋게 물들었고, 입에서도 작게나마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그만해!!! 응? 민희야 제발. 내가 지금 갈게. 지금 간다고. 그러니 제발 그만해...제발...”
“후아. 남자놈이 뭐 이래? 에씨 짜증나. 별것도 아니면서.”
시훈은 부끄러움 때문인지 고통 때문인지 일어날줄을 몰랐다.
엎드린체 내쉬는 시훈의 거친 숨소리에 초롱이는 미칠 것만 같았다.
“여기 xx모텔로 가면 아저씨들이 다 알아서 해줄거야. 꼭 돈받아오는거 잊지말고. 알았지?
에씨. 퉷. 야 미친놈. 너 앞으로 까불지마. 알았어?”
민희와 패거리들이 사라지자 초롱이는 얼른 시훈의 상태를 살폈다.
또 다시 눈물이 쏟아나오려 했으나 간신히 참았다.
“괜찮아...? 시훈아...”
시훈의 몸상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평소에도 워낙에 몸이 약한탓에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지는 아이인데.
그렇기에 마음속이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자신 때문에 시훈이 이렇게 되었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슬펐다.
게다가 이제는 시훈도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되었다는 점.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워서 한없이 떨어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시훈아. 앞으로는...하지마. 나 아는척도 하지말고, 날 위해 웃지도 말고, 날 위해 뭔가를
하려고 노력하지도 마. 그냥...모른체로...그렇게 해줘.”
마음에도 없는, 오히려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말들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날 위해 늘 애를 써왔던 시훈에겐 이런일이 있어서는 안되었다.
고통을 받는건 자신 혼자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가...가지마!!! 내가...내가 지켜줄께!!!”
시훈을 놔두고 발걸음을 옮기던 초롱이는 그의 외침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발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다시 주저앉아버릴것만 같았기에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난 약한 남자가 싫어. 날 지켜줄 수 있는 남자. 그런 남자가 좋아. 그 동안 즐거웠어.”
크게 말한 것은 아니었으나 충분히 시훈도 들었을 것이다.
초롱이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모텔에서는 평소와 같이 나이든 중년의 아저씨가 자신을 맞아주었다.
그러나 오늘은 좀 특이하게 여러명이었다.
이제는 눈물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메말라버린건지 아니면 심장이 메말라버린건지 알 수 없었다.
“헤헤. 귀여운 꼬마 아가씨. 아저씨들이 예쁘게 잘 다뤄줄테니까 걱정하지마. 알았지?
듬뿍 이뻐해줄테니까.”
‘나를...예뻐해준다고...? 이런...나를...?’
아저씨들의 더러운 욕정과 잠시 후 찾아온 고통을 느낄 무렵에 예전에 들었던 말이 얼핏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신이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던 아이의 한마디.
‘난 네가 어떤 애이든 상관없어. 나에게 쌀쌀맞게 대해도, 말없이 무시해도 난 네가 좋아.
넌 나한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애니까. 히힛.’
표현은 안했으나 그 말을 듣고 나서 얼마나 기뻐했었는지.
집으로 돌아와 밤새도록 가슴을 붙들고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근데 내게 그런 심장떨리는 말을 해준 그 아이.
그 아이는 지금 상처를 입어 슬퍼하고 있을 것이다.
간접적으로 그 아이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었다.
너무나도 고맙고 좋아하는 애한테 말이다.
고통스럽고, 아프고, 힘들었지만 가장 힘든 감정은 미안함이었다.
“자 여기. 근데 오늘 그날이었나봐? 뭐 나야 처녀랑 한 기분이라서 더 좋았지만. 케켈.”
돈을 무미건조하게 집어든체 초롱이는 모텔에서 나왔다.
몇 명의 남자가 자신을 올라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반신이 쑤셔왔고, 걸음걸이조차 똑바르지 못한 상태로 무작정 걸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모든 것이 미웠다.
모든 것이 싫었으며 모두 다 죽이고 싶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흐르지 않던 눈물이 다시금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처절한 고통속에서의 분노를 느끼며 얼마나 걸었을까.
무심코 들어선 골목길에서 그녀를 만났다.
온몸에 피칠을 한체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그녀를.
9화 - 초롱이의 과거 챕터 2.
초롱이는 눈앞의 상황을 직접 보고 있음에도 믿지 못했다.
가녀린 몸에 청순한 얼굴을 한 여자는 얼굴에 온통 피로 얼룩진체 한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다.
그녀 앞에는 피해자로 보이는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고 있었다.
충격적인 이 광경에 초롱이는 조금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칼을 들고 있는 여자는 초롱이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초롱이를 쳐다보았다.
다시 한번 히죽거리며 웃는 그녀.
죽어가는 남자를 놔두고는 초롱이에게로 다가왔다.
“아...아아...아아아아아...”
이제껏 말하는 것만큼 쉬운 것은 없다고 생각해왔던 초롱이.
그저 입을 놀리며 혀만 조금 움직이면 나오는 말은 가장 쉽고도 자연스러운 신체의 기능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리도 쉬운 말하기가 이렇게도 버벅되는 것일까?
마침내 초롱이 코앞까지 다가온 여자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피로 얼룩진 얼굴이 확대됨에 따라 초롱이는 거의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너...죽고...싶어...?”
여자는 태연하게도 이런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근데 신기하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버벅거리던 입이 평온을 되찾았다.
방금전까지만해도 죽는게 차라리 나을거라고 생각했던 초롱이.
방금전의 고통과 아픔을 떠올리자 모든 것이 두렵지가 않았다.
어느새 멈춘 눈물은 눈에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네...네...”
오래전부터 알아왔던 사이처럼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서로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질문도 없이 그렇게 대화는 간결하고도 의미심장하게 나누어졌다.
여자는 초롱이의 대답에 다시 한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죽어^^”
들고있던 칼은 높이 들려졌고, 초롱이는 질끈 눈을 감았다.
‘많이...아프겠지? 얼마나 아플까? 지금 내가 안고 있는 고통보다 아플까?’
겪었던 고통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갓다.
이제 곧 느껴질 고통을 애써 잊으러 노력하던 초롱이는 몇 분이 지나도 아무런 감각이 없자
조심스럽게 눈을 떠보았다.
눈을 뜬 광경은 예상외였다.
여자는 칼을 내린체 자신의 얼굴만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 재미없네. 별로 죽이고 싶지도 않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여자는 뒤돌아섰다.
분명히 그녀에게 있어 자신은 있어선 안될 목격자인데 왜 이대로 자신을 살려두는걸까?
조용히 멀어지고 있는 여자를 초롱이는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무섭고 당황스러우며 얼른 피해야 할 상황임에 틀림없었지만 왠지 모를 미련이라고나 할까?
애매하고도 알 수 없는 감정이 자꾸만 어떠한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그건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저...저기요!!!”
초롱이는 여자가 뒤돌아보지 않을거라고 예상했으나 여자는 뒤돌아보았다.
여자의 표정은 한결같이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저를 죽여주세요...죽여달라고요!!!”
“내가 왜?”
“네? 그거야...전 일단 목격자니까...”
“그래서?”
할말이 없었다.
살인자가 이리도 당당할지는 생각도 못했다.
“어쨌든 죽이셔야 해요. 안그러면 제가 신고할거에요. 그러니 죽이시는게...”
“왜 죽고 싶은데?”
자살만큼은 절대적으로 싫었으며 무서웠다.
그렇기에 생판 모르는 이 살인자에게 이런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근데 막상 살인자가 왜 죽으려고 하냐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꼬집어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었다.
“죽고 싶은 거야, 아니면 누구를 죽이고 싶은 거야?”
여자의 말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제껏 죽고 싶다는 생각만 했었지, 근본적으로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그들을 죽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정말로 자신은 죽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기엔 지금의 여자가 한 말이 너무나도 가슴에 와닿았다.
“죽...죽...이고 싶어요. 꼭...꼭...죽이고 싶어요.”
생각지고 못한 말이 입을 통해 나가버렸다.
말을 하고 나자 가슴이 뻥 뚫리듯 편안해졌고, 슬프지도 않은데 눈물이 흘렀다.
뭔가 환희에 찬 기분이었다.
“내가 죽여줄까?”
초롱이는 의지와 상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만나고 들어본 적도 없는 살인자일뿐인 이 여자에게 가느다란 운명의 연결을 느꼈다.
눈물도 그런 친한 사이와의 만남에서 흘러나오는 반가움의 뜻이었다.
“좋아. 내가 죽여줄게. 누구를 죽이고 싶은 건데?”
그렇게 둘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남자의 시체를 두고 2명의 여자는 길고도 긴 이야기를 하였다.
초롱이는 자신이 겪은 모든 경험을 비롯하여 오늘 겪었던 슬픔과 고통까지도 모두 이야기 해주었다.
이야기 하는 동안에도 어찌나 흥분이 되었는지 주체를 못할 정도였다.
여자는 초롱이의 이야기를 말없이 다 듣고는 조용히 미소지었다.
도저히 살인자로 안보이는 여자의 미소는 초롱이의 마음을 편안케 만들었다.
“여...여기까지에요. 제 이야기는.”
“그래.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정말 죽이고 싶었겠네^^”
그 누구가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데 이렇게 밝게 웃으며 칭찬을 해줄까?
초롱이는 마음의 안식처를 얻은 기분이었다.
“알았어. 내가 죽여줄게.”
“정말...죽여주시는건가요?”
“왜? 못 믿겠어?”
“아니 그게 아니라 어떠한 댓가가 있는것도 아니고...”
“댓가 있어.”
“네...?!!”
예상한 일이었지만 댓가가 무엇일지 두려웠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숨까지 버리려고 했으면서 댓가를 두려워하기는...’
잠자코 여자의 요구를 듣기로 하였다.
“나중에 나를 한번 도와주면 돼.”
“어떤 것을요...?”
“그건 나도 몰라. 나중가면 알겠지. 뭐 어려운 것은 아니야. 사람을 죽이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지금과 같은 밑바닥의 상황에서 이것저것 잴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초롱이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좋아. 그럼 이만. 반가웠어.”
친한 언니동생 사이인 마냥 여자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였다.
여전히 이 모든 상황이 믿겨지지 않았던 초롱은 걸어가고 있는 여자에게 마지막 질문을 하였다.
“저기요...!!!”
“응?”
“제 이름은 초롱이에요. 강초롱. 언니...이름은요?”
이름을 알고 나면 모든 상황이 현실일 것 같았다.
그러한 중요한 의미를 이름에 두기로 마음먹은 초롱이었다.
“내 이름은 소영. 박소영이야.^^”
그 말을 끝으로 여자, 아니 박소영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주위를 한번 둘러본 초롱이도 얼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다음날.
학교에 간 초롱이는 하나의 변화를 깨달았다.
‘민희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
초롱이의 입가에 순식간에 맺혔다가 사라진 미소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0화 - 초롱이의 과거 챕터 3.
벌써 3명 째 돌연 실종되었다가 얼마후엔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모두 다 초롱이를 괴롭힌 여학생이거나 원조 교제를 하던 아저씨들이었으나 누구도 초롱이와
연관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워낙에 비밀리에 한 원조교제였기에 그들의 원조 교제 관계를 아는 사람은 당사자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늘 민희가 혼자서 아저씨들을 구해놓고 초롱이를 보냈기에 철저하게 비밀이 지켜졌던 것이다.
물론 검찰에서도 초롱이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기 위해 오긴 왔었다.
그러나 그건 단지 같은반 친구로서 형식상 질문만 한 것.
초롱이는 사실 처음엔 긴가민가했었다.
정말로 우연으로 시작한 소영이의 만남 이후, 자신을 구렁텅이에 빠뜨린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가다니.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기에 만약 소영이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냥 우연이라고 치부시킬 뻔 하였다.
“네가 말한 5명은 다 죽였어.”
“에...엥?”
홀연히 나타난 소영은 마치 밀린 숙제를 대신 해준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말했다.
그녀에겐 살인이란 그런 하기 귀찮고 번거로운 숙제에 불과한 듯 싶었다.
“그...럼 이제...저에게 부탁을 하실거라도...?”
“응. 실은 그 일 때문에 온거야. 약속했었지? 죽여주는 대신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사실 초롱이는 마음속 깊이 부정하고 있었으나 자신이 원망하던 사람들이 죽어나갈때마다
알 수 없는 희열감에 빠지곤 하였다.
사람을 죽여보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었기에 그런 자신의 감정은 충격이었다.
오히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복수를 하고나서 드는 허탈감이 더욱 이해가 안갔다.
자신이 미워하는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
그것만큼 짜릿한 기분은 없을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짜릿함을 느껴본 초롱이었기에 오히려 소영이의 부탁이 살인이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있었다.
“이번에 나와 함께 갈 곳이 있어. 거기서 넌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돼.”
“어떤...곳인데요?”
“쉽게 말해 선택을 할 수 있는 곳이야.”
원래부터 제정신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말 한마디마다 그러한 감정은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소영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근데 문제가 있어. 그 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게 아냐. 선택되어진 자들만이 선택을 할 수 있는거지.”
“선택되어진 자들이라뇨?”
“쉽게 말해서, 나쁜 짓을 해야해. 지금의 나처럼 말야. 하긴 나쁜 짓이라는게 인간의 망상으로
나눈 하나의 잣대일 뿐이니까. 일단 그렇게만 표현할게.”
소영이의 부탁은 어느 장소에 같이 가자는 것이었는데, 그 곳에 가기 위해서는 나쁜짓을 해야만 한다?
초롱이는 그 나쁜 짓에 대한 정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럼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거죠...?”
“뭐 어려운 것은 없어. 살인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한데, 너에게 그런 것을 시킬 수는 없으니...”
“아...아뇨!!! 저 할 수 있어요!!!”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말인가.
오히려 당황한 것은 소영이였다.
“뭐야? 지난번에는 부탁이라는 말에 걱정어린 표정으로 쇼를 하더니.”
“부끄럽지만 전 언니가 그들을 죽여줄때마다 크나큰 희열을 느꼈어요.
하지만 역시 제가 직접 한 것이 아니라서 마음에 와닿지는 않더라고요. 느껴보고 싶어요.
그 희열을 직접 제 손으로 느껴보고 싶어요.”
정말 진실하고도 솔직하게 털어놓은 초롱이.
소영이의 입가엔 미소가 걸렸다.
“내가 왜 널 죽이지 않았는지, 어째서 널 대신해서 그들을 죽여야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네.
뭐 좋아. 일단 죽일 때 최대한 아무런 감정없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람을 죽이는게 좋아.
그게 어렵다면 길을 가다가 우발적으로 아무나 죽여도 되고.”
“가장...아끼는 사람...?”
“그래. 보통 이렇게 물어보면 대부분 부모를 떠올리더라. 어리석은 거지.
부모는 어차피 나이를 많이 먹었잖아? 생명력이 약해. 난 결혼한지 얼마 안된 부부의 첫 아기를 죽이는게
가장 짜릿한 것 같더라.”
소영이의 눈에서는 커다란 쾌락에 대한 동경심이 느껴졌다.
실로 무서운 말들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초롱이는 이해가 갔다.
그 순간 자신이 죽여야할 사람도 팍하고 떠올랐다.
“누구를 죽일지 결정했나보네. 그럼 이만. 나 가볼게. 보는 눈이 워낙에 많아서.
일단 충분히 그곳에 갈만한 자격이 갖춰지면 그들이 알아서 너를 찾아올거야.
그럼 넌 잠자코 따라가기만 하면 돼. 다만 시간이 많지 않으니 빠른 시일내로 하는게 좋아. 그럼 그곳에서 보자.
”
소영이는 초롱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는 어디론가 발길을 옮겼다.
초롱이도 살짝 떨리기 시작하는 몸을 추스르며 집으로 돌아갔다.
자신은 그저 살인만 하면 그들이 알아서 찾아온다고 했으며, 그 곳 또한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다만 문제는 시간.
시간이 촉박하고, 어려운 일이었으며, 생각해 본적도 없는 살인이었지만
오히려 마음 속 깊은곳에서는 즐거움이 느껴졌다.
이제껏 자신을 숨긴체 자신과 다른 삶을 살다가 이제야 자신을 찾은 느낌이랄까?
누군가가 공부나 운동으로 자아실현을 한다면 자신은 다만 자아실현의 도구가 좀 비정상일
뿐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로부터 3일 후.
소영이의 부탁을 받은지 정확히 58시간 만에 첫 살인을 하였다.
피해자는 자신과도 안면이 있는 40대의 아줌마였다.
그녀는 초롱이에게 예리한 칼로 목의 반이 잘린체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네...네가...왜? 아...안돼...제발...그애만은...”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매우 두껍고 질겨보이는 사람의 목이 이리도 쉽게 잘릴줄이야.
장인이 만든 것처럼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손쉽게 아줌마의 목이 잘렸다.
민희의 구타에도 반항 한번 못하던 갸날픈 자신이 있었는지 대해 의문마저 품을 정도.
오히려 그러한 힘은 더욱 자신감을 만들어줬고, 쾌감을 주었다.
“누구 왔어 엄마...응?”
한 소년이 방에서 나오다가 앞의 광경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엄마는 목의 반이 잘린체 죽어있었고, 그 옆에는 한 여자애가 칼을 들고 온몸에 피투성이로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여자애는...
“초...초롱아?”
“시훈아. 안녕?”
초롱이는 잠시의 지체도 하지 않았다.
바로 시훈에게 달려들어 심장에 칼을 꽂았다.
선붉은 피가 다시 한번 몸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커...커억...왜...?”
시훈은 가슴을 유린당한 고통보다도 슬픔의 고통이 더욱 컸다.
자신이 지켜주려 했으며, 자신이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사랑하였던 여자애가 자신의 엄마를
죽이고 그것도 모잘라 자신의 심장에 칼을 찔렀다.
엄청난 양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왔다.
도대체 왜 이러냐고 묻고 싶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초롱이의 작은 혼잣말만이 귓가를 맴돌았다.
“재...밌...어...재...밌...어...재...밌...어...”
시훈은 점차 눈꺼풀이 무거워짐을 느끼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초롱이는 낯선 검사의 등장으로 약간 불쾌했다.
검은 양복의 그는 다짜고짜 초롱이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우리와 함께 갈 거냐, 아니면 여기서 죽을 거냐?”
살인한 것이 들켜 자신을 잡으러 온지 알았던 초롱이는 의외의 질문에 약간 놀랐다.
그제야 소영언니가 말한 그들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함께 갈께요.”
무표정의 대답을 지켜보던 전나수 검사는 초롱이를 차에 태웠다.
한참을 달리던 차는 어느 순간 멈췄다.
그곳에는 커다란 빌딩이 있었는데 전나수 검사는 초롱이에게 시계를 하나 주고는 이것을
차고 저 빌딩으로 가라고 주문을 하였다.
시계는 초첨없이 화면만 있는 신기한 모습이었다.
임무를 다 한 전나수 검사는 다시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버렸고, 초롱이는 혼자만 남겨졌다.
또 다시 설레임에 휩싸인 초롱이는 빌딩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 왼손에 차고 있던 시계가 소리를 내며 켜졌고, 문구 하나가 화면에 떴다.
‘문을 열려면 A, 밖으로 나가려면 B를 선택하세요.’
그렇게 새로운 운명의 엇갈림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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