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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대 : 무조건해라 님 >
11화 - 초롱이의 과거 챕터 4.
토끼를 죽여 그 피로 빌딩의 문을 연 초롱이는 안으로 들어가 커다란 강당같은곳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그들은 모두 어리벙벙한 표정이었다.
소영이에게서 간단한 설명을 들은 바가 있는 초롱이었기에 당황하지않고 소영이를 찾았다.
이리저리 헤매이고 있을 무렵, 누군가가 자신을 붙잡았는데, 돌아보니 소영이었다.
“언니...?”
“왔구나. 히힛. 상황이 순조롭게 되어가고 있어. 너무 다행이야.”
“네?”
“자 이제 네가 해야할 일을 알려줄게. 아마 조금있으면 팀을 짜라고 전달이 내려올거야.
무작위로 팀을 짜는거니까 너와난 물론 한조가 되어야겠지? 그리고 중요한게 있는데...
어떤 한 남자애도 우리 팀에 꼭 껴야해. 그 남자애가 가장 중요하거든.”
여기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남자애.
초롱이는 아직까지도 소영이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다음부터는 네가 잘해줘야해. 최대한 살아남으면서 남자애랑 친해져야해.
아니. 친해지는 것으로는 부족해. 애틋한 감정, 즉 사랑을 느낄 정도가 되어야해.
극한 상황에서는 금방 생길 수 있으니까 가능할거야.”
“저기 언니...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길게 설명해줄수는 없어. 어떻게든 살아남으면서 그 남자애랑 친해져야해. 어떻게든간에. 알았지?”
초롱이는 소영의 부탁에 어려움이 느껴졌다.
이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데, 살아남아야 하며 게다가 어떤 남자애랑 애틋한 감정까지 공유해야 하다니.
그래도 약속이었기에 해야만 했고, 어차피 버리려고 했던 목숨이었기에 두려울 것은 없었다.
“그리고 초롱아. 중요한게 있는데...나중에 널...내가 죽일거야. 그 남자애 앞에서.”
초롱이는 놀라면서도 조금은 예상한 일이었기에 별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소영을 처음 만난 날 죽었어야 했다.
근데 이렇게 얼마간을 더 살 수 있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해도 막상 직접적으로 죽인다는 말을 들으니 심장이 덜컥하며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아아. 걱정마. 여기서는 죽어도 죽는게 아니니까. 날 믿어.”
소영이는 방긋 웃으며 예전에 보여줬던 순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죽어도...죽는게...아니라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믿고 싶어졌다.
소영의 말이라면 뭐든지간에 믿을 수 있었다.
왜 이렇게도 신뢰할 수 있는지는 초롱이 본인도 몰랐지만 자신의 감정에 따르기로 하였다.
확실한 결말과 부탁이 떨어진 지금.
그간 소영이 덕분에 느낄 수 있었던 쾌락을 이제는 스스로가 갚아야 할 때라고 느꼈다.
소영은 구체적인 계획을 초롱이에게 전달하였다.
“일단 내가 그 남자애랑 팀을 짤게. 넌 너 나름대로 도움이 될만한 사람으로 팀을 짜.
단 너무 많이 짜지말고. 2명 정도만. 그런다음 우리팀과 너희팀이 합치는 식으로 하자.
서로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 안되니까.”
“네. 알겠어요.”
“그래. 그럼 있다가 보자.”
소영이는 손을 흔들며 인파속으로 사라졌다.
저렇게 해맑은 웃음의 여자가 여러명의 사람을 죽인 살인마라니.
하긴 초롱이 자신도 그런 고민을 할 입장은 아니었다.
누구와 팀을 짤지 두리번거리고 있는 도중 강당 한가운데에 흰옷을 입은 여자가 나왔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옷이 깨끗했으므로 그녀가 이 음모를 꾸민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도도하고 새침해보이면서도 왠지 가까이 하기 싫은 오오라 같은 것을 내뿜고 있었다.
“이곳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첫 번째 관문 통과를 축하드리며...이제 두 번째 관문으로 가도록 할게요. 호호.”
여자의 맑고도 고운 목소리가 강당안을 가득 메웠다.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며, 온갖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팀을 짜서 움직일 거예요. 여기 계신 분은 총 36명. 6명씩 6개조를 짜세요.
물론 자기 마음대로 짜시면 됩니다. 제한시간 10분. 그 안으로 조를 짜지 못하신 분은 자동 퇴출되겠습니다.”
다시 한번 그녀의 말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갑자기 시작된 2번째 관문.
그러나 이러한 갑작스런 상황인데도 누구 하나 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이 게임의 의도는커녕 이유조차 모르는데도 게임에 열중을 하고 있었다.
그건 초롱이도 마찬가지.
초롱이는 우선 30대의 아저씨와 팀을 짰다.
그리고는 청순해보이는 또 20대의 여자와 팀을 짜게 되어 총 3명이 되었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아저씨와 20대의 여자는 더 팀원을 늘리려고 했고, 초롱이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새로운 팀원을 뽑으려는 순간 소영이가 다가왔다.
그 옆에는 소영이의 말대로 한 남자애가 있었는데 소영이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남자애였다.
초롱이는 남자애를 보는 순간 소영이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편안하면서도 불안정하며, 어찌보면 극과 극같기도 한 느낌.
어쨌거나 초롱이팀과 소영이팀은 무사히 합류를 하게 되었고, 마지막 팀원은 인상이 나빠보이는
남자애로서 팀을 모두 짜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초롱이와 소영이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처음 만나는 낯선 사이.
둘의 연기는 실제같았고, 그 누구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팀을 짜고 나서 잠시 후 첫 번째 선택이 시작되었다.
왼쪽과 오른쪽, 몸과 머리.
둘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
다수결에 의하여 오른쪽 머리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미션은 앞쪽 바스켓에 3kg정도의 물건을 넣는 게임이었다.
물론 다가가서 바스켓을 넣을 수는 없는 상황.
바스켓 옆에는 앞팀의 한사람으로 보이는 남자의 머리가 뒹굴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20대 누나의 비명소리와 함께 모두들 겁을 내며 당황해했다.
소영이와 초롱이도 같이 분위기를 따랐다.
속으로는 웃으며 쾌락을 느끼고 있었지만.
모두들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해하는 중 아저씨가 직접 나서서 점프를 하여 바스켓을 내려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아저씨의 죽음.
초롱이는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자신에 대한 진모습을 조금씩 숨겨나갔다.
잘려진 아저씨의 머리를 인상 나쁜 남자가 바스켓에 넣었다.
“축하합니다. 2번째 관문도 통과하셨군요. 자 그럼 3번째 관문으로 가도록 하겠어요.”
다음 관문으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다시 파란색과 빨간색의 선택이 있었다.
자신이 차고 있는 시계로 투표를 하는 것이었는데 결과는 파란색.
길을 따라 나가자 넓은 숲이 나왔고 미션은 시작되었다.
“이 생물체 뱃속에 상자가 있습니다. 공격력은 없지만 그래도 꽤나 까다로울거에요.
이 넓은 곳에 무작위로 있으니 찾아 돌아다니시면 됩니다. 각자 차고 있는 시계에 레이더를 켜두었으니
다음 방으로 가는 문과 이 생물체를 찾기는 어렵지 않을 거예요. 덤으로 무기도 같이 넣어드렸어요.
작살과 도끼. 이렇게 2종류가 있으니 시계를 통해 쓰시면 됩니다. 그럼 시작할게요.”
안내 방송이 끝나자 인상 나쁜 남자는 혼자 개인플레이를 하겠다며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제 남은 사람은 소영이와 초롱, 남자애, 그리고 20대의 여자.
본격적인 미션을 수행하기전 그들은 서로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기로 했다.
“나는 19살이고 이름은 김민경. 휴우...”
“난 15살. 강초롱이야. 히힛.”
초롱이는 수줍어 하며 말끔하게 소개를 끝마쳤다.
초롱이의 소개에 남자애는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은 남자의 차례였다.
“나는 이기수. 18살이야. 민경이 누나. 이런 상황에서...존대 그런 건 좀 웃기겠지? 하핫.”
남자의 이름은 이기수.
초롱은 마음속깊이 이기수라는 이름을 새겨넣었다.
12화 - 초롱이의 과거 챕터 5.
그들은 본격적으로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생물체를 찾아다녔다.
잠시 후 생물체와 맞닥뜨린 그들은 긴장했지만 의외로 생물체는 순해보였다.
그대부터 기수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시계에서 주어지는 무기로 생물체를 죽여 뱃속의 박스를 꺼내 모았다.
어느덧 박스는 인원에 맞게 모두 모으게 되었고 박스를 이용해 다음 관문으로 가려는 순간
그 놈이 나타났다.
초반에 따로 돌아다녔던 기분 나쁘게 생긴 그 놈.
놈이 민경이의 박스를 훔쳐달아났고 남은 시간은 거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박스를 들고 있지 않은 사람은 기수뿐.
그러나 누구도 기수의 죽음을 원치는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 민경이가 말했다.
“내...내가 뺏기긴 했지만...그래도 난 많이 도왔어. 내가 미끼를 했잖아!!! 나는 살아야해. 나는!!!”
“그럼 뭐야? 내가 죽으라 이거야?”
“아니...너는 꼭 필요한 존재니까. 그러니까...음...뭐 소영이도 일단은 앞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고...으응...”
“먼말이 하고 싶은 건데? 이런 신발.”
기수와 민경이의 대화를 듣던 초롱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 순간 소영이가 아무도 모르게 초롱이에게 작살을 건네주었고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초롱이는 망설임없이 작살을 들고 민경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니까 내말은!!! 초롱이. 초롱이는 몸집도 작고, 가장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허헉...커억!!!”
그대로 민경이의 등쪽으로 작살을 꽂아버렸다.
소영이는 소리를 질렀고, 기수는 굉장히 놀라워 했지만 초롱이는 개의치 않았다.
“오빠. 이제...사람 3명 된거지...? 그렇지? 시간없으니까...빨리 가자...응?”
기수는 굉장히 어이없어했지만 상황은 그런 것을 따질만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그대로 죽어가는 민경이를 냅두고 다음 관문을 향해 뛰었다.
다음 관문에는 민경이의 박스를 훔쳐 달아난 그놈이 있었으며 뭔가 조취를 취하기도 전에
다음 미션이 시작되었다.
“4번째 관문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이번에는 더욱 간단합니다. 추우시죠? 그냥 버티시면 돼요.
제한시간은 1시간. 여기에는 그 무엇도 없으니 돌아다녀봤자 헛수고일꺼에요. 다음 방으로 가는 문은
레이더로 보시면 되니 모두들 수고하세요. 아차차. 한 가지를 빼먹었네요.
여기는 다른 방과 달리 규칙이 있답니다. 그전에 시계를 통해 하나를 선택해주시기 바랍니다.”
시계를 보자 쾌락과 본능이라는 단어가 표시되었고, 소영은 작은 목소리로 초롱이에게 본능을
선택하라고 했다.
선택이 끝난 후 팀은 기수와 초롱, 그리고 소영이와 기분 나쁘게 생긴 놈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곧바로 4번째 미션은 시작되었다.
이제 초롱이와 기수는 단둘이 남겨졌다.
엄청난 추위가 엄습해 오는 순간, 기수는 주위에 있는 눈더미 중 한곳을 파서 초롱이를 데리고
판 곳 안쪽으로 몸을 뉘었다.
초롱이는 이때야말로 기수와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오빠. 고...고마워...”
“뭐가?”
“뭐라 할 줄 알았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도대체가?”
“내가 죽였잖아. 민경이 언니...”
“뭐냐? 그거였어? 그래. 확실히 넌 사람을 죽였어. 하지만 네가 그러지 않았으면 아마 우린 모두 죽었을 거야.
게다가 이 상황에서 너를 불신하고 멀리 떨어질 수는 없잖아. 네가 못미덥긴 하지만 확실히 이번 미션은
네가 필요하니까.”
주위는 더욱 추워졌고 둘은 몸을 바싹 가까이 맞대고 있었다.
이 때 초롱이는 원래는 없던 말을 지어내었다.
“나...나...꼭 살고 싶었어...”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야.”
“나는...나는...혼자가 아니란 말이야...흐흑...”
“뭐라고?”
“나 임신한 상태야. 1달 정도밖에 안됐지만 확실히 임신이야.”
“이...임신...?”
“나 원조교제를 하고 다녔어. 돈이...필요했거든. 그런데 자주 실수를 해서...낙태도 많이 하고...그랬어.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는데...정말 아무 느낌 없었는데. 그러다 좋아하는 남자애를 만나게 됐고
임신하게 됐어. 이번만은 지우지 않을 거라고 떼를 쓰는데 갑자기 정신을 잃었지 뭐야.
정신을 차리니까 이곳에 와 있더라고. 나...죄값을 치르는 건가봐.”
그리고는 슬프지도 않은데도 샘솟는 눈물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런 초롱이의 연기가 기폭제가 되어 그들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한몸이 되었다.
초롱이에 대한 기수의 감정도 점차 깊은 감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느덧 4번째 관문마저도 서로의 체온으로 버텨낸 그들.
다음 관문으로 가서 기다려보니 그놈과 같이 미션을 수행한 소영이는 없어졌고 그놈만이 피로
범벅을 한 체 4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기수는 놈의 모습에 크게 분노했으나 초롱이는 왠지 놈에게서 소영이의 느낌을 받았다.
초롱이는 아무런 확신도 없이 놈이 분명히 소영이라고 믿었다.
기수의 분노가 커질수록 초롱이는 그것을 이용해서 기수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기수를 다독거리던 중 다음 5번째 미션이 시작되었다.
“5번째 관문도 간단해요. 지금 보면 총 3개의 문이 보일거에요. 그 중 빨간색으로 되어 있는 문은
다음방으로 가는 문이구요, 나머지 파란색으로 된 2개의 문은 다른 방과 연결되어 있는 문이랍니다.
이곳은 총 3개의 방으로 되어있어요. 각각 한명씩 들어가 있는거죠. 자신은 지금 있는 방에서만 다음방으로
갈 수 있어요. 다른사람의 방에서는 갈 수 없답니다. 2개의 파란색문으로 다른방에 갈수있으나 똑같은 길로
되돌아 올 수 는 없어요. 다시 돌아오려 할 경우 트랩에 빠지게 될거에요. 자 이제 대략의 설명이 끝났으니
가장 중요한 설명을 해드릴까요? 다음 방으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것은 바로...손목이에요.”
미션이 시작되자 각각의 3명은 자신의 방으로 이동되어졌다.
기수와 떨어진 지금 상태.
우선 초롱이는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물론 그것 또한 기수의 마음을 애태우게 하기 위한 하나의 속임수였다.
그렇게 울고 있는데 시계에 새로운 문구가 하나 떴다.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비밀 문구.
당연히 초롱이는 YES를 선택하였고, 초롱이가 얻은 힘은 재생이었다.
잠시 후 기수가 초롱이의 방으로 도착하였고 그렇게 둘의 반가운 재회가 이루어졌다.
그때부터 기수는 한시도 초롱이를 곁에서 떠나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천천히 다음 방으로 향했고, 기수가 앞장을 섰다.
다음 방에 도착하자 기수가 먼저 안착하여 내려가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 돌아보니 아까 그놈이었다.
“쉿. 초롱아. 나야. 소영이.”
“아아...언니?”
얼굴과 몸은 모두 그놈이었으나 말투와 표정으로 소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비밀 문구는 변신이었어. 상황에 너무나도 맞는 힘인 것 같아. 네 비밀문구는 뭐니?”
“나는...재생...”
“그래? 좋았어. 그럼 일단 여기서 널 떨어뜨린 후 너의 손목을 벨게. 그런다음 기수가 달려들면
내가 상처만 좀 내고 갈테니까 네가 그 재생으로 기수를 고쳐줘. 알았지?”
“네...언니.”
“아 그리고 이거. 네가 여기서 죽게 되면 맨처음 강당에서 본 하얀색 옷 입은 여자 있지?
그 여자에게로 가게 될텐데 거기서 넌 기억이 지워질거야. 그러니 넌 이 목걸이를 꼭 잘 보관 한 다음
들고 나가야해. 이게 있으면 나중에 모든 기억을 다시 찾을 수 있을거야.”
검은색의 보석이 달린 목걸이는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초롱이는 그 목걸이를 건네받으며 의지가 담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드디어 때가 왔어. 이제까지 잘했어. 아파도 참아. 알았지?”
소영이는 초롱이를 방쪽으로 밀었고 그대로 초롱이는 방으로 쿵하며 떨어졌다.
그 순간 기수가 초롱이를 돌아보며 소리쳤고, 그와 동시에 소영이가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낫을 높게 쳐들고 기수를 보며 한번 미소를 짓고는 그대로 초롱이의 오른손목을 잘라냈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고 초롱이는 길게 소리를 내질렀다.
“꺄아아아악!!!”
소영이는 손목을 들며 웃었고 그 모습에 기수는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분노를 이기지 못한 기수는 소영에게 달려들었고 소영은 아주 짧게 미소를 지었다.
달려드는 기수를 냅두고 소영은 낫을 초롱이에게로 던졌고 뒤늦게 그것을 막으려고 했던
기수는 초롱이를 감쌌다.
낫은 기수의 어깻죽지에 박혔다.
“정말 병신이 따로 없네. 쯧쯧쯧. 그럴 줄 알았다니까. 하하. 둘이 사이좋게 잘 죽으라고. 그럼 이만.”
소영이는 마음껏 웃으며 다음관문으로 가는 문으로 사라져버렸다.
자신을 애써 막아주며 스스로 몸을 던진 기수를 보며 초롱이는 뭔가 감동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느끼기에는 스스로 너무 타락했다고 느꼈다.
이내 감동을 지우며 최대한 아련함을 남기는 말을 하였다.
“흐흑...흐흐흑...흐흑...왜...왜 그랬어...흐흑...”
그 질문에도 기수는 애써 웃기만 했을 뿐이었고, 초롱은 슬슬 비밀 문구를 써야 할때가 왔음을 느꼈다.
“오...오빠...흐흑. 자...잠깐. 손 좀 줘봐...왼손...”
“으윽...왜...왜? 낫 박혀 있어서..이손은 그렇게 안 예쁜데...히히.”
기수가 내민 손을 어루만지며 비밀문구를 쓴 초롱.
상처는 말끔히 사라졌으며 기수는 놀란 눈으로 초롱이를 보며 말했다.
“초...초롱아? 뭐한 거야? 응?”
“커헉...오빠. 꼭 살아...남아야해...흑.”
“뭐하는 거야? 응? 뭐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뭐해? 너는 왜 안 고쳐? 너 지금 죽어가고 있어.
알고 있는 거야? 응? 초롱아?”
“그건...한번밖에...쓸 수 없어...커흐...비밀...문구로 얻은...힘이야...”
“허어엉...이 멍청아. 그럼 그거 왜 나한테 쓰는 건데? 응...? 너는 꼭 살아야한다며...이씨...젠장.”
“아까 떨어지면서...배에 충격이...윽...갔나봐. 거기서...피까지...나왔는걸. 내 몸은 고칠 수...
있어도 내 아기까진...못 고쳐. 아기 없는 삶은...무의미해”
“흐윽. 멍청아. 그래도 살았어야지. 그래야 네가 좋아한다는 그 놈을 다시 만나던가 하지, 이 병신 같은 년아!!!”
“아기는...못살려도...오빠는 살릴 수...있었으니까. 그걸로...그걸...로...만족해...꼭 살아줘...알았지...?”
또 다시 꺼낸 거짓말.
초롱이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슬픈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눈물이 멈출 생각을 안한 것도 그 탓이었으리라.
“고...마웠어...오...빠...”
초롱이의 눈은 점차 힘을 잃고 닫혀버렸다.
그것과 동시에 기수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기수의 이성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13화 - 초롱이의 과거 챕터 6(완결).
기수가 다음방으로 사라지고 난 후 초롱이는 정신을 잃었다.
‘이런게 죽음이구나...’
점차 나락으로 빠지는 기분에 몽롱함을 느낄 무렵,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고 있었다.
지옥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환한 빛이었다.
“눈을 뜨세요.”
맑고 고운 천사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초롱이의 귓가를 괴롭혔다.
자신의 어깨위에 손이 올려졌음을 느낀 초롱이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기분 나쁜 환한빛이 눈을 따갑게 만들었으나 잠시 그런 상태로 있자 점차 적응이 되었다.
자신의 앞에는 소영이의 말대로 아까 강당에서 본 흰색옷의 여자가 있었다.
“우선 치료부터 해드릴께요.”
여자는 초롱의 몸에 손을 갖다댔을뿐인데 초롱이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끔히 나았다.
극심한 고통이 사라지자 초롱이는 정신을 차렸다.
일단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로 하였다.
“저의 이름은 세나에요. 그냥 마음에 들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죠.”
세나라는 이름의 여자.
확실히 초롱이에게 있어서 여자의 존재는 거부감이 들었다.
소영이와는 극과극의 분위기를 가진 여자였기 때문이다.
“소개는 뭐 이쯤해서 되겠군요. 그럼 이곳에서 내보내드리죠. 물론 기억은 다 지운 상태로요.”
“자...잠시만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초롱이의 질문에도 세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대답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럼 이만.”
세나는 일어서서 천천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점차 세나의 손에서 환한 빛이 커져가고 있었다.
초롱이는 소영이가 준 목걸이를 꼭 쥐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목걸이로 인해 손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다시금 초롱이는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끼며 눈이 감기고 있었다.
초롱이는 잠에서 깨어났다.
평소때처럼 기지개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손에 뭔가가 잡혔다.
자세히 보니 검은색의 작은 보석으로 만들어진 목걸이었다.
“이게 뭐지?”
자다 일어난 자신에게 이 목걸이가 잡혀져 있는 것도 이상했으며 목걸이에 대한 자신의 감정도 이상했다.
왠지 목걸이를 차고 싶고, 차고 다녀야만 할 것 같은 기분.
학교갈 준비를 마친 초롱이는 목걸이를 목에 걸어보았다.
자신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렸기에 마음에 든 이 목걸이.
학교의 제재는 어느정도 있었으나 선생님 눈만 잘 피하면 목걸이를 해도 될거라 생각했다.
초롱이는 학교로 출발했고, 학교는 여느때와 같았다.
자신을 괴롭히던 민희와 민희의 패거리들은 실종처리 됐으며 더 이상 그 문제로 학교에
경찰들이 오지는 않았다.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들의 부재는 초롱이에게 크나큰 자유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 목걸이 또한 소영이가 자신을 위해 놓고 간 것이라 여겼다.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초롱이.
목걸이를 쳐다보며 가던 도중 어떤 남자와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 뭐야 신발. 조카게 아프네. 눈 뜨고 다니는거에요? 아 진짜 짜증나.”
투덜대며 일어나던 초롱이는 자신과 부딪힌 남자를 보게 되었고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아아...!!!”
초롱이는 잊어버렸던 기억이 한꺼번에 머릿속으로 주입되는 것을 느꼈다.
선택의 장소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
기수와의 만남, 소영언니의 부탁, 그리고 소영언니가 준 이 목걸이.
모든 기억이 되돌아온 초롱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짜증을 냈다.
“뭐에요? 부딪혀 놓고 그렇게 멍하니 있으면 다에요? 존내 짜증나. 아악!!! 신발. 옷 더러워졌어. 아씨.”
“저기...미안하다...지켜주지 못해서...”
기수의 말도, 기수의 마음도 모두 이해가 됐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초롱이에겐 할 일이 있었으니까.
“나랑 사귀지 않을래? 장난 아니야. 널 좋아해. 아니.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지. 지켜주고 싶다.
이번만큼은 꼭. 지켜주도록 해줘.”
초롱이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소영이가 시킨대로 하는 일일뿐인데도 기수의 고백은 어느샌가 자신의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
왜 소영이가 이 남자를 선택한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초롱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수의 품에 안겼다.
그렇게 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기수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초롱이도 점차 진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소영이가 초롱이의 눈앞에 나타났다.
“언니...?”
“휴우. 힘들었어. 그곳에서 빠져나오기가...^^ 뭐 어쨌든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너무나도 반가워^^”
초롱이는 소영의 등장으로 불안감이 느껴졌다.
이제껏 소영이가 시킨대로 모두 했으나 이미 기수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지금,
더 이상은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는 또 어떤 부탁을 하려고 오신 건지요...?”
“아아. 초롱아.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다름이 아니라, 널 기수 앞에서 죽였으면 하는데...
물론 죽이는 척만 할거야.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잠시 후에 기수가 이곳으로 올거야. 아 맞다.
네 엄마는 내가 올라오다가 죽였는데. 괜찮지?”
이미 소영이에게 모두 줘버린 자신의 목숨이었는데 어찌 이리도 안타깝고 허무한 것인지.
초롱이는 더 이상 기수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언니...저 기수 오빠를 정말로 사랑해요...진심으로요...”
“응? 그래서?”
“더이상 기수 오빠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어렵게 자신의 의사를 밝힌 초롱이.
소영이가 화를 낼거라 예상했던 초롱이는 소영이의 웃음에 의외였다.
“내가 기수를 괴롭힌다고? 히힛. 말도 안돼 그건. 너 기수와 같이 있으면 왠지 편해지고 기분이 좋지?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사랑하게 되지?”
“네...? 네...그런데요...?”
“그건 기수가 우리들과 비슷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우리들보다 더욱 강한 존재지.
지금은 각성을 하지 않은 상태라서 그럴뿐. 난 기수를 각성하게 만드려고 이 모든 것을 계획한거야.
기수를 괴롭히지 말라고? 괴롭히는게 아니라 오히려 도와주는 거지. 계획의 성공은 지금 상황에 달린 것이고.”
그렇다면 기수의 각성을 위해 이제껏 이 모든 것을 계획한 것?
초롱이는 의외의 상황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과연 널 죽이는 척하는 것만으로 각성이 될지...하지만 해봐야지. 일단은...”
“죽여줘요. 나를...”
“응?”
“전 괜찮으니까 진짜로 죽이세요. 괜찮아요.”
“하지만...”
“기수 오빠의 진짜 모습...보고 싶어요. 대신 확실히 해주세요. 부탁이에요.”
소영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아래층에서 뛰어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보지 않아도 기운을 느낌으로써 그가 바로 기수라는 것을 초롱이와 소영 둘다 느낄 수 있었다.
“알았어. 확실히 할게.”
소영이는 초롱이의 목을 감싸며 칼을 초롱이 목에 가까이 갖다댔다.
그리고 잠시 후 방까지 뛰어온 기수가 소영을 보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소영!!!”
“오랜만이야, 기수. 잘지냈어?^^”
그들의 마지막 피날레는 시작되고 있었다.
14화 - 종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믿으라고?소영이 너는 여러모로 나를 신경쓰이게 만드는군."
“믿지 않는가 본데 사실이야.”
“그럼 이제까지 겪었던 모든 일이 다 네가 꾸민 일이라고?”
“난 여러명의 아저씨들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로 인해 에이즈라는 병에 걸렸어.
그때는 정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지. 물론 그런 마음으로 마구 사람들을
죽여나갔어. 그러다가 어느날 너를 만나게 된거야.”
“갑자기 뭔 헛소리지?”
“한 여자를 골목길에서 죽인 후 나오는데 너와 부딪혔어. 순간 목격자가 생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를 죽이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었어. 넌 나보다 더한 심연의 눈을 가지고 있었거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의 손에는 피로 얼룩져 있었으며 가쁜 숨을 쉬고 있었지.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지나쳐가는 너를 보며 생각했어. ‘내가 찾던 어둠이 바로 여기있었구나’라고.”
애써 기억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이 그때의 영상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내게 이런 능력이 있었던가?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영상은 재구성되었고, 그 영상은 또렷한 기억으로 자리잡았다.
소영을 처음 만난 것은 선택의 방이 아닌 바로 몇 년 전.
내가 이성을 잃고 술주정을 하는 아버지를 때려죽인 그 날.
아버지를 죽인 나는 무작정 집을 나왔고, 우연히 지나치던 소영이랑 부딪힌 것이었다.
이제껏 이성을 잃고 흥분했던 나의 과오로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원래의 내 본모습이었다니.
나의 본모습을 본 소영이는 나를 각성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천사들이 계획한 선택의 실험 때문에
스스로 위험해 빠지면서까지 나를 구했던 것이다.
마침내 그곳에서 빠져나온 나는 초롱이와의 행복한 생활을 지내다 갑자기 나타난 소영에게
초롱이를 잃자 바로 각성을 하게 된 것.
이제야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명확해졌다.
어째서 내가 선택의 방에서 그리도 놀라운 힘을 보여줬는지.
초롱이와 소영이에게서 왜 동질감을 느꼈는지.
“키키키키킥...”
갑자기 새어나오는 웃음을 멈출수가 없었다.
내가 악마였다니...아니...악마라는 것은 인간의 잣대로 만든 존재일 뿐.
이것 참. 애써 나를 풀어주었던 세나를 생각하니 웃겨 죽을 것만 같았다.
“기수...아니. 이제 위대한 분이시겠죠. 전 기다렸습니다. 이런 모습의 당신을요. 모든 것은
당신을 깨우기 위해서 행하였던 일. 이제 저를 죽임으로써 완벽한 각성을 해주세요.”
소영이는 무릎을 꿇은 체 눈을 감고 있었다.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귀찮다고 해야 하는 건가?
“내가 왜 너를 죽여야하지?”
“네? 그거야 당신의 각성이 끝났기에 저의 존재 가치는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으면 죽여야 하나? 죽는 것은 무엇일까? 왜 악마라는 것들은 서로를 못죽여 안달이지?”
“.....?????”
“이봐. 소영. 일어나봐. 내 얼굴을 보라고.”
머리를 조아리던 소영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의아스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소영이 약간은 귀엽다고 생각되었다.
“네가 그리도 원하던 어둠이 보이냐?”
나는 기수였을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긴 기수가 나였으며, 내가 기수였으니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런 평범한 얼굴의 소년이 네가 찾아다니던, 각성시키려고 노력하던 어둠이란 말이다.”
“평범한 얼굴이 중요한게 아니라...내면에서부터 나오는...!!!”
“그러니까 묻는 거야. 나의 내면에서 나오는 분위기는 어떻지? 절망인가? 아니면 죽음?”
소영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가치관에 혼란을 느끼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다른 질문을 하지. 넌 어떤 존재지?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악마인가? 어둠인가?
아니면 어둠과 악마를 찬양하는 인간인가?”
“그...중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하급의 악마라는 건가?”
“굳이 따지자면요...”
“그런 네가 나를 추앙하는 것을 보니 난 분명 상급 악마인가 보군. 그런가?”
“그 이상이에요. 전 느낄 수가 있어요. 상상할수도 없는 거대한 분이시라고...”
“키키키키킥.”
소영의 말대로 내 웃음소리는 정말 소름끼치기 짝이 없었다.
나 스스로가 들어도 이정도인데 보통의 인간이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그러나 여전히 소영을 죽일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천사는 희망과 빛을 주며 악마는 절망과 어둠을 준다? 아니면 악마이기에 절망과 어둠을 주는 건가?
그 무엇도 맞지 않아. 왜냐하면 정말 네말대로 내가 악마라면 난 온통 절망과 어둠을 뿌리고 다녀야
하는 것 아닌가? 근데 이상하게도 난 그럴 마음이 추호도 없어. 널 죽일 마음도 전혀 없고.”
오히려 이런 내 모습이 공포스러웠는지 소영은 몸을 떨며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난 소영이를 지나쳐 뒤에서 피를 흘리며 쓰려져 있는 초롱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래. 이것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지.
내 앞에서 초롱이를 죽게 만들고도 아무런 힘이 없어 무기력했던 그 때의 나.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내가 아니다.
난 초롱이의 잘려진 목부위에 손을 갖다대었다.
손에서는 푸르스름한 빛이 흘러나왔고, 그대로 초롱이의 상처 부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점차 푸르스름한 빛은 초롱이의 살이 되고 피가 되었으며 잠시 후 초롱이의 몸은 완전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소영이의 표정을 힐끔보니 공포와 당황함을 섞어 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으...으으...아으...”
상처가 치유되고 나자 정신이 들었는지 초롱이가 간헐적인 신음소리를 내었다.
이내 신음소리를 멈춘 초롱이가 눈을 떴다.
“어때? 괜찮아?”
“기...기수 오빠...? 응...? 난 분명히 죽었는데...분명히...”
다행히도 영혼이 완전히 빠져나가지는 않았나 보군.
영혼이 빠져나간 후에는 아무리 나라고 해도 관여할 수 없는 존재가 개입하게 마련이니.
난 초롱이를 일으켜세우고는 소영이에게로 떠밀었다.
“소영. 너의 할 일은 아직 남았어. 그러니 죽지마. 내 허락없이는 죽을 수 없어. 그 누구도.
일단은 이 아이를 보살펴줘.”
“오...오빠?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응? 지금의 오빠는 예전 모습 그대로인데...
근데...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거지...?”
초롱이는 다시 내게로 다가오려 했으나 무언가의 벽에 막힌 듯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
그런 초롱이를 소영은 감싸안으며, ‘괜찮아’라고 위로하였다.
“어...언니. 나 도저히 모르겠어. 지금 이게 어떻게 된건지...흐흐흐흐흑...”
"이런이런. 울지말라구.그렇게 울면 살려준 보람이 없잖아."
“저기. 저도 이해가 안되요. 어째서 초롱이를 살릴 수 있었으며 저를 죽이지 않고도 그리 태연할 수 있는거죠?”
“몇번을 말해야 하나? 인간의 놀음에 놀아나지 말라구. 악마의 성질과 본성은 우리 악마들이 정한다.
인간이 정하는게 아니야.”
“그렇지만 이제까지 생각해왔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종교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관념상으로도 인간의 모든 것에는 악마와 천사가 등장하지.
하지만 말이야. 그런 인간들 중에 정말 실제로 악마와 천사를 본 사람이 있었던가?
그저 보지도 않고 마음속에서 존재하고 싶다고 믿은 것 뿐이지. 자신의 악한감정은 악마때문이고,
자신의 선한감정은 천사라고 믿고 싶었을 뿐.”
“그럼.....이제...무엇을 하실 생각이시죠?”
“글세. 어떠한 연유로 나같은 존재가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어떤 이유가 있기에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어떤 이유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지. 그건 내 스스로가 알아서 정할테고.”
난 방을 한번 스윽하고 둘러보았다.
그러자 방은 피한방울 튀지 않은 깨끗한 공간이 되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한, 꼭 시계로 거꾸로 돌린 모습이었다.
“자 그럼 이만. 연락은 내가 하도록 하지.”
“어디로...가시는 거죠?”
“어디긴 어디야. 집이지. 난 학교를 가야해. 기수라는 놈은 고작 학생 신분이거든. 하하하하핫.”
난 방문을 나서며 마음껏 웃었다.
무엇을 할지, 또 어떤 것을 할지에 대해 생각을 하니 저절로 설레였다.
그렇게 나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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